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 동상

80931     2019-12-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5

경복궁 앞 세종로에 조성되어 있는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세종대왕은 민족의 영웅으로서 경복궁에서 즉위하여 승하하신 최초의 임금이었던 역사적 사실 등을 고려해 새로운 정신으로 세종대왕 동상을 건립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하게 되었다.동상은 높이 6.2m, 폭 4.3m 규모로 기단 위에 좌상으로 남쪽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 뒤(250m)에 자리잡고 있다.

동상의 모습은 왕의 위엄보다는 온화한 표정으로 한손에는 책을 들고 또 다른 손은 백성들을 다독이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준다. 세종대왕 동상 전면 공간에는 혼천의(渾天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기구), 측우기(測雨器, 조선 세종 이후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쓰인 기구), 앙부일구(仰釜日晷, 17~18세기에 제작된 해시계)를 만들어 전시해 놓았고 광장 가장자리에 흐르는 물길에는 조선시대 연표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동상 후면에는 기둥형태의 6개 열주에는 집현전 학사도, 주자소도, 6진 개척도, 대마도 정벌도, 지음도, 서운관도를 부조 형식으로 조각해 세종대왕의 업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동상 후면 기단에는 세종이야기 전시관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조선의 제4대 왕(1418~50) 재위 이다. 재위기간 동안 유교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법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해 조선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했다. 또한, 한글의 창제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키고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다. 이름은 도 자는 원정,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비는 청천 부원군 심온의 딸 소헌왕후이다.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

19640     2019-12-12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

* 진천 삼용리 백제요지 *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을 끼고 전개되어 있는 야산지대인 이곳 이월면 삼용리는 이웃 덕산면 산수리와 더불어 삼국시대 토기 성립과정을 알려 주는 가마터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진천 지역 토기 가마터들은 1986년에 중부고속도로 건설공사 일환으로 시행된 문화유적 조사 중 한남대학교 발굴단이 발견하여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초기의 토기. 제작기술을 규명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일대에 흩어져 있는 가마터들은 한반도에서 기원전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를 굽던 가마터가 중심으로, 이 타날문토기가 삼국시대 토기의 모태가 되었다.1990년도에 발굴된 이곳 삼용리 요지군에서도 서기 2~3세기경의 타날물 토기 가마터 6기(基)가 조사되었다.길이 2.4m에 불과한 소형부터 7.9m에 이르는 대형까지 크기는 다영하였으나 모두 바닥과 벽은 땅을 파 지하에 설치하고 천정은 지상에 나온 반지하식 등요였다. 이 가마터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연소실의 구조로, 아궁이의 바로 밑이 불을 때는 곳으로 되어 있다.이와 같은 수직식 연소실(垂直式燃燒室)의 등요는 중국 전국시대 토기요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나라 초기 삼국시대의 타날문토기, 중국의 전국시대 토기 제작기술에 받아들여 성립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 진천 산수리 백제요지*

소형은 산능선 가까이에, 대형은 그보다 아래쪽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된 가마의 구조는 모두 수직연소실과 토기를 놓았던 소성실로 구성된 반지하식의 등요이다.1986년도에 시행된 중부고속도로 건설구간의 문화유적조사 중 대전 한남대학교 발굴단이 발견하여 다음 해에 발굴조사된 서기 4세기경의 백제토기 요지군이다. 이 곳에서는 모두 8기의 토기요지가 조사되었는데 길이 3m내외 소형이 4기, 8m내외의 대형이 4기였다. 소형은 능선 바로 가까이에 대형은 그보다 약간 아래 경사 면에 위치해 있었다. 기본 구조는 모두 같아 아궁이의 바로 밑이 불때는 곳인 수직식 연소실과 토기를 놓았던 연소실로 구성된 등요였다. 그러나 소형은 바닥과 벽이 지하로 들어가 지하에 설치된 완전 지하식이었다. 이 곳에서는 많은 토기편(土器片)이 수집되었는데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打捺紋土器-두드림무늬토기)가 백제토기로 발전되어 갔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 경사면을 이용할 수 있는 완만한 야산이 발달되어 있는 이 일대에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토기의 모태가 된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요지(打捺紋土器窯址)들이 분포되어 있다. 토기 태토(胎土)로 쓸 수 있는 양질의 점토산지도 인근 미호천변 속칭 '어지미'들에서 확인되었는데 이 일대에서는 서기 기원전후 무렵부터 타날문토기요지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 시대 - 삼국시대이전

진천 신헌 고가

진천 신헌 고가

21026     2019-12-12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논실안길 58-1

신헌 1810(순조10)~1888(고종25) 무신외교가 자는 국빈, 호는 위당, 초명은 관호, 본관은 평산훈련대장 홍주의 손자, 의직의 아들, 금위영 대장이 되어 1849년 (철종즉위) 헌종이 위독할 때 사사로이 의사를 데리고 들어가 진찰한 죄로 섬에 위리 안치되었다.1854년 무주에 이배, 1857년 풀려 나왔다. 1862년 통제사가 되고, 1864년에 형조,병조의 판서를 거쳐 공조판서를 지냈다. 1866년 총융사로 병인양요때 강화의 염창을 수비, 난이 끝난 후 좌참찬겸 훈련대장을 지내고 수뢰포를 제작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1868년 어영대장이 되고 행지삼군부사, 공조 판서를 역임. 1874년(고종 11) 진무사가 되어 강화연안에 포대를 구축했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 판중추부사로서 전권대관이 되어 일본의 전권 변리대신 구로다와 강화에서 병자수호조약을, 1882년 경리통리기무아문사로 전권대관이 되어 미국의 슈펠트와 한미 수호조약을 각각 체결하고, 이 해 판삼군부사가 되었다. 글씨에 능하여 예서를 잘 썼으며, 문장에 뛰어났고, 묵란을 잘 그렸다. 시호는 장숙이다. 신헌고택 건립 당초에는 ㄱ자형으로된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 중문 등이 있었으나, 사랑채,행랑채는 근년에 해체하여 진천읍내의 길상사를 중수하는데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ㄱ자형의 안채 주변에는 동남쪽으로 중문과 광채가 있고, 주위로는 막돌로 쌓은 담장이 장방형을 이루면서 이어져 있다. 안채는 가운데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마루 전면에는 4분합문을 달았다.

망끝전망대

망끝전망대

22113     2019-12-12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망끝 전망대는 보길도의 가장 서쪽인 보옥리 바로 못 미쳐 망월봉 끝자락의 돌출부에 자리한다. 전망대에 서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천길 단애가 펼쳐진다. 끝없이 탁트인 시원한 바다와 함께 서해바다로 붉은 몸을 감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망끝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추자도와 함께 옥매, 가도, 상도 등 다도해의 수많은 섬과 함께하는 일몰은 한편의 서사시다.

장자호수공원

장자호수공원

18482     2019-12-12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878

구리시가 토평지구 장자못의 수질을 개선하여 조성한 장자호수공원은 한때 오, 폐수로 악취가 나던 장자못이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말끔히 단장되었다. 산책로로 조성된 하천의 제방 변에 수목을 심는 등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 환경을 가꾼 결과 2005년 2월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복원 우수 사례’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약 105,6003㎡(3만 2천평)의 면적에 3.6km의 산책로가 있어 가벼운 운동과 나들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야외무대에서 각종 음악회, 전시회 등이 주말에 열리고 주민 휴식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면서 일일 이용객이 5,000여 명에 이른다.

* 규모 - 면적 107,385m², 평균수심 2.2m(0.2m~4.7m), 산책로 4.6km

구리 명빈묘

구리 명빈묘

21142     2019-12-12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1991년 10월25일 사적으로 지정된 명빈묘는 조선조 제3대 태종의 후궁인 명빈(明嬪) 김씨의 묘이다. 명빈은 지돈령 부사(知敦寧付事) 안정공(安靖公) 김구덕(金九德)의 딸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태종 11년(1411) 11월 명빈으로 책봉(冊封)되었고 성종 10년(1479) 6월 5일 사망하기까지 태종부터 성종에 이르는 7대에 걸쳐 내명부를 지켰으나 태종과의 후사는 없다. 일명 아천동 동사골 구릉(丘陵)에 8,264.5m²(2천5백 여평)의 규모로 조영되었으며 묘역의 석물(石物)은 표석1기, 문인석 1쌍, 상석(혼유석) 향로석 등이 있다.

공주 갑사 철당간

공주 갑사 철당간

20364     2019-12-12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보물 제 256호 갑사 철당간·지주는 당을 다는 철깃대와 기둥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우는 깃대인데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이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좌우에서 지탱하기 위한 버팀 기둥을 말한다.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센티미터의 철통 24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당간의 높이는 약 15미터이다. 그러나 1893년에 4개의 철통이 부러져 처음보다 낮아졌다.이 철당간·지주가 만들어진 시기는 갑사가 신라 의상대사가 일으킨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는 점과 받침돌 측면에 새겨진 안상조각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된다. 갑사의 철당간 지주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당간 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진 계룡산의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절이다. 공주에서 19km 떨어져 있고, 동학사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면 갈수 있는 거리에 있다.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암시해주듯이 갑사의 가을 단풍은 더없이 아름답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갑사는 계룡갑사,갑사,갑사,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워 왔으며, 통일신라 화엄종 십대사찰의 하나였던 명찰이다.

망우당공원

망우당공원

36406     2019-12-12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공원, 망우당공원 *

대구의 동쪽 관문에 자리 잡은 공원으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망우당공원"이라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 장군은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신출귀몰한 전략을 펴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장군은 붉은 복장에 백마를 탄 모습으로 전장에 나타나곤 해서 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원 내에는 말을 타고 장검을 찬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동상 가까이에 망우당 기념관을 지어 장군의 유품을 보관해 두고 있다. 망우당공원에 들어서면 하얀 성벽 위로 번듯한 누각 하나가 맨 먼저 눈에 띈다. 영남제일관이다. 영남제일관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서,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된 것을 1980년에 옛 모습을 찾아 이곳에 중건해 놓았다. 대구독립운동의 대표적 유적지인 조양회관도 공원 내에 있다. 조양회관은 3.1운동 이후 일본의 식민지정책으로 회유되기 쉬운 민중을 깨우치고 민족혼을 심기 위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공간으로 1922년 10월 서상일(제헌국회의원)이 중구 대신동에 건립한 것을 1984년 6월 9일 망우당공원 내에 이전 복원하였다. 공원 사방으로는 백일홍, 목련, 은사시나무 등이 동산을 이루고, 뒤쪽 절벽 아래로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 독립운동의 산실, 조양회관 *

이 지방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조양회관은 1922년에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조양(朝陽)이라는 이름에는 '조선의 빛'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회관에는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사에 관한 각종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무주리조트 관광곤도라

무주리조트 관광곤도라

63816     2019-12-12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만선로 185

관광곤도라를 타고 해발 1,520m 설천봉에 오르면 덕유산 정상 향적봉을 20분만에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이 험하지 않아 노부부나 가족들이 쉬엄쉬엄 오르기에 좋으며, 정상에 오르면 적상산, 마이산, 가야산, 지리산, 계룡산, 무등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마 조망이 빼어나다.

정읍 전봉준 유적

18513     2019-12-12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이 건물은 일명 녹두장군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東學運動)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전봉준 선생은 조선왕조(朝鮮王朝) 철종(哲宗) 6년(1855)에 이 지방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고종(高宗) 27년(1890) 동학에 입도하였으며, 서당(書堂) 훈장(訓長)으로 있었다.당시 전국의 농촌은 일부 탐관오리(貪官汚吏)의 학정(虐政)으로 농민들의 원성(怨聲)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이곳 고부현(古阜縣) 역시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만석보(萬石洑) 수세(水稅) 강제징수 등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하고 원성이 높았다. 이 때 선생은 고부현의 동학 접주(接主)로 분노에 찬 농민들과 동학교도의 조직을 이용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保國安民)의 구호를 내세우고 동학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고종 31년(高宗 1894) 갑오 동학(甲午 東學) 혁명(革命) 당시 전봉준(全琫準 1854~1895)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그런데 서편으로 한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택(古宅)은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시에서 1974년에 국비와 군비로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출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끝방은 방(房)으로 보다는 살림살이 등 속을 넣어두는 도장으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공간으로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連動) 천장이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草家)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村老)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陽橋里 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갑오년(甲午年 1894) 1월에 봉기한 후 안핵사 이용태(按 使 李容泰)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 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補修)를 하면서 해체(解體)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上樑文)에 무인(戊寅) 2월 26일(高宗 15年 1878) 세운 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廢屋)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 규모 - 정면 4칸
* 면적 - 225㎡

구리타워

27003     2019-12-12

경기도 구리시 왕숙천로 49

구리타워가 있는 구리자원회수시설은 하루 200톤의 생활폐기물을 소각·처리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소각시설로 소각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구리 자원회수시설은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한 우수 사례로서 국내외에 알려져 전국지자체·유관기관 및 일반인 등 매년 8만명 이상이 견학하고 있다. 특히, 혐오 시설로만 여겼던 소각장의 굴뚝을 이용하여 지상 100미터 높이에 전망대와 레스토랑을 설치하였고, 시설내에 실내수영장, 축구장, 게이트볼장 등을 만들어 구리시민의 여가활용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무주 트리스쿨

28302     2019-12-12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무주로 1788-9

트리스쿨에서는 어린이,청소년 및 성인들에게 나무의 소중함을 알리고 "나무를 이용한 만드는 즐거움"을 통해 창의력을 키우고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트리스쿨의 목공체험 프로그램은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여러가지 도구들을 이용하여 나무를 다듬고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품을 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두뇌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목공체험은 단순한 체험이 아닌 자연과 기쁨을 통해 쌓이는 "학습"이다. 트리스쿨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목공체험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어른들을 위한 목공예 체험교실도 열고 있다. 국산 원목과 고가의 장비를 이용해 서각, 찻상, 꽃병 및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목공예체험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성인의 취미생활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