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미륵사(부산)

미륵사(부산)

22987     2021-02-25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126

*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 미륵사 *

미륵사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말사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인 금정산성 북문으로부터 15분은 더 산행을 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미륵사는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금정산성 북문(北門)은 범어사에서 보아 쪽으로 1.6km,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의 남쪽 0.9km 지점에 있다. 최고봉인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 오르려는 잘록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미륵사는 산행이 아니고서는 오를 수 없는 정통 산지가람이다. 금정산은 대도시에 인접한 산인만큼 교통이 편리하다. 장전동 식물원 입구에서 산성(동문), 산성마을, 금강공원(동식물원), 케이블카 탑승장, 범어사 등 금정산 산행을 위한 길목은 많다. 우선 금강공원입구에서 산성행 버스를 타고 산성마을 안 종점에 하차 후 도보로 북문까지 간 후 북문에 있는 쉼터이자 약수터인 세심정을 끼고 왼쪽 산허리를 감아 오르다 보면 미륵사에 가 닿을 수 있다. 또는 범어사로부터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북문까지 가도 된다. 천년도량 미륵사 염화전 뒤편에 서 있는 웅장한 암봉. 미륵봉으로 불리는 이 암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한 미륵사는 원효스님이 창건하고 주석하면서 '미륵 삼부경' 중의 하나인 ‘상생경종요(上生經宗要)’를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금정산성 북문으로부터도 한참을 더 산행해야만 가 닿을 수 있는 미륵사는 금정산의 절묘한 여러 봉우리들 가운데서도 경이로운 역사와 설화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각종 국제 행사 때나 아시안 게임 등에 정화수로 쓰이는 석간수가 샘솟는 천년의 신비를 머금은 사찰이다. 경내 한가운데 위치한 염화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는 마치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선바위'로 불리고 있는데 여러 개의 바위들이 모자이크를 한 듯 어울려 있으나 해가 지고 난 뒤 바위와 바위 사이의 틈새가 보이지 않을 때쯤 드러나는 그 웅장하고도 경건한 형상은 큰 감흥을 주기에 충분하다.발 아래로 금정산성 능선과 산성마을, 멀리 부산 앞바다까지 내려다 보이는 기막힌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세상 시름도 다 덧없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미륵사 석간수 한잔을 마시고 금정산의 봉우리들을 내려다보노라면 원효스님이 설하신 “마음이 있으면 갖가지의 일이 생기고, 마음이 없으면 갖가지의 일도 저절로 없나니, 모든 일이 마음 갖기에 달려 있느니라" 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 글귀가 저절로 떠오른다.

* 원효스님이 기운이 남아있는 미륵사 *

원효스님도 그러하셨는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하고 있는 이 절묘한 터에 기도도량을 세우고 미륵봉 아래 미륵암이라 이름하니 이로써 1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미륵사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미륵사는 또한 나반존자 기도영험으로도 이름난 사찰이다. 미륵사 가장 높은 곳에 독성각이 있고 원효스님이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불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이곳 모서리 뒷편 자연 암석에는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을 양각한 흔적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장삼 왼쪽 자락의 부족한 부분을 조각했던 것인데 이 미륵바위를 훼손한 석공은 그 날 당장 엄청난 재앙을 입었다고 하니 그 영험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원효스님의 자취가 어린 미륵사는 이와같이 미륵불과 독성불을 모신 첫손 꼽히는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안동 장승공원

안동 장승공원

29403     2021-02-25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59

하회마을 입구에 조성된 장승공원이다. 장승조각가 김종흥 씨가 버려진 나무들을 자르고 깎아서 만든 250여 기의 장승이 도란도란 모여 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같은 전통적인 장승을 비롯해 안동색이 강하게 반영된 하회탈 장승 등 표정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승이 많이 있다.

단양 관광특구

단양 관광특구

6255     2021-02-25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고수동굴길 3-11

단양 8경으로 유명한 단양은 유람선을 타고 도담삼봉과 구담봉, 옥순봉 등 충주호반의 절경을 유유자적 관람할 수 있는 관광특구다. 굽이도는 물길과 함께 사인암, 상선암 등의 선경을 감상하다 보면 신선놀음을 하는 듯 한가로운 기분도 만끽할 수 있다.소백산 국립공원은 한반도 중심에 우뚝 솟아 백두대간의 장대함과 신비로움을 엿볼 수 있는 명산이다.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여러 봉우리를 따라 걷는 종주 코스는 많은 등산객이 사랑하는 트레킹 코스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라면 다리안관광지, 천동관광지, 온달관광지 등의 유원지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자연을 만끽하는 캠핑, 드라마촬영지에서의 추억 만들기 등 특별한 재미가 가득한 공간이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단양관광특구에서는 꽃과 자연, 단양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5월의 소백산철쭉제, 10월의 온달문화축제이다. 축제시기에 단양을 찾으면 활기찬 단양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또, 단양읍의 도전, 별곡, 상진, 고수리 일대에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어 관광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 단양 관광특구 현황
1) 범위 /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과 매포읍 일원
2) 면적 / 4,448,737㎡
3) 관광특구 지정일 / 2005년 12월 30일

* 단양 관광특구 시설 현황
소백산 국립공원, 도담삼봉, 사인암 관광지, 고수동굴, 활공장, 유람선 선착장, 불교천태중앙박물관, 대성산 자연휴양림 등

내장산조각공원

내장산조각공원

19459     2021-02-25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호반로 214

국립공원 내장산 서래봉 자락 아래 내장호수와 잘 어우러진 자리에 국내4대 미술전 대상 수상 작가 16명의 수준높은 작품을 전시한 조각공원으로,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탑과 농민군 대표 동상 설치, 수목원 등 관광객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공원이다.

북평해암정

북평해암정

24234     2021-02-25

강원도 동해시 촛대바위길 19

1979년 5월 30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삼척심씨(三陟沈氏)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 10년 삼척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낙향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심동로의 자는 한(漢)이요, 호는 신제(信齊)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한림원사(翰林院使) 등을 역임하고 고려 말의 혼란한 국정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권세가의 비위를 거슬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이때 왕이 이를 만류하다가 동로( 東老: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낙향한 후에는 후학의 양성과 풍월로 세월을 보냈다. 왕은 다시 그를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고 삼척부를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였다. 지금의 해암정(海岩亭)은 본래 건물이 소실된 후 조선 중종 25년(1530)에 어촌(漁村)심언광(沈彦光)이 중건하고, 정조 18년(1794) 다시 중수한 것이다. 건물은 낮은 1단의 석축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 형식이다. 4면 모두 기둥만 있고 벽면은없다. 뒤로 지붕보다 조금 높은 바위산이 있어 운치를 더해 주며, 이곳에서 보는 일출 광경은 장관이라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이 덕원(德原)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이곳에 들러 '草合雲深逕轉斜 (초합운심경전사 : 풀은 구름과 어우르고 좁은 길은 비스듬히 돌아든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다.

* 규모/양식 - 단층 8작지붕 초익공 양식, 정면 3간, 측면 2간
* 시대 - 조선 중종 25년 (1530년)

진천 길상사

진천 길상사

23839     2021-02-25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길상사는 진천 도당산에 있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흥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사당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진천현 산천조와 사묘조에 "신라진평왕시 만로군태수 김서현처만명 임신 20월생 자왈유신 장태어현15리 화위신 인위태령산 자신라시 치사우춘추강향축행제 고려잉지지 본조 태조 8년 시정지 영소재관치제"라하여 신라 때부터 장군의 태가 묻힌 태령산 아래 사당을 건립하고 국행제를 지내오다가 조선 태종 8년부터 관행제로 치제하였다. 그 뒤 임진 병자양란시 병화를 입어 폐허가 된 것을 철종 2년(1851) 백곡 가죽리에 죽계사자리에 계양묘를 건립하였으나 1926년에 도당산에 길상사를 재건하고 1959년에 개축하였는데 1975년에 정화하여 길상사를 전면 신축하였다.

본전은 "흥무전"으로 콘크리트조 와즙, 정면 5간, 측면 2간, 주심포 8작집인데 그 안에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바깥 뜰에는 1957년 세운 "흥무대왕신성비" 이선근이 글을 만들고 김만희 씀와 안뜰에는 1976년에 세운 "김유신장군사적비" 이 은상 글 김충현 씀 그리고 입구에는 같은 해에 세운 "길상사중건사적비"조건상 글 이상복 씀가 있다. 김유신은 만로군 태수 김서현의 아들로 진천에서 출생. 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이 되었고 진덕여왕 때는 백제 12성을 함락하여 상주행군대총관에 오르고 무열왕 7년 상대등으로 당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당 연합군의 대총관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하고 태대각간이 되었으며 한수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였고 흥덕왕 때에는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관리 - 진천군

영월 청령포 관음송

영월 청령포 관음송

26658     2021-02-25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 단종 유배생활의 벗, 영월의 관음송 *

한강 상류지역인 영월군 남면의 강 가운데 고립된 작은 섬의 소나무숲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수령 600년의 천연기념물이다. 높이는 30m에 이르고, 가슴높이에서의 둘레가 5m나 된다. 밑에서 1.2m되는 높이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있는데,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관음송이라는 이름은 청령포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조선의 제6대왕인 단종은 숙부인 세조로부터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단종은 눈물과 비애, 그리움, 외로움 속에서 처소 바로 옆에 있는 소나무에 걸터앉아 마음을 달래었다. 바로 이러한 단종의 모습과 슬픈 말소리를 보고 듣고 했다 하여 ‘관음(觀音)’이란 이름이 이 소나무에 붙여졌다는 것이다.

* 국가의 재난을 슬퍼하는 소나무 *

단종의 영혼이 깃든 관음송은 더 이상 보통의 소나무가 아니었다. 신령스러운 나무가 된 것이다. 관음송에는 국가에 위난이 닥칠 때마다 어떤 변화가 있어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다. 나무의 껍질이 붉으스레한 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여 그 변고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 관음송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사나사(양평)

사나사(양평)

26349     2021-02-25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길 329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 속해 있다. 용문산의 주봉인 백운봉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7년 (923)에 고승인 대경대사가 제자 용문과 함께 창건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하였다.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고왕사 보우가 140여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8년(1382) 12월 24일 보우스님이 용문산 소설암에서 입적하였는데, 이듬 해인 1383년에 문인 달심이 태고의 부도와 비를 사나사에 세웠다.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단월 한방손이 재건하였다.영조 51년(1773)에 양평군 내 유지들이 뜻을 모아 당산계를 조직하고 향답을 사찰에 시주하여 불광담을 마련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내에 비를 세웠다. 순종 원년(1907)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근거지라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그 2년 뒤인 1909년에 계헌이 큰방 15칸을 복구하였으며, 1937년에 주지 맹현우 화상이 대웅전 15칸을 재건하고 조사전 5칸을 지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사변으로 인해 사찰이 전소된 것을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 산신각 큰 방을 재건하고 함씨각을 지었다. 1993년에 주지 한영상이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하였고 현 주지 화암스님이 주석하면서 포교와 교육, 기도 도량으로 일신하였다. 경내에는 도유형문화재 72호인 원증국 사석종탑과 도유형문화재 73호인 원증국사석종비가 있다.

* 사나사의 유래 *

923년(태조6) 고려 태조의 국정을 자문한 대경국사(大鏡國師) 여엄(麗嚴, 862~929)이 제자 융천(融闡)과 함께 세웠다고 전해진다. 《봉은사본말사지》에 의하면 창건 당시 비로자나불상과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화순광산이씨승지공비

화순광산이씨승지공비

17153     2021-02-25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광산이씨 승지공비는 이달선의 묘갈비로 화순읍 앵남리 앵남역 부근에 있다. 이달선(l457 ~1506)은 광산이씨 시조 이순백의 6대손으로 승정원 부승지를 지냈다. 고려사개수와 태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고 홍문관 제학을 지낸 이선제의 손자이며 귤정 윤구의 딸 해남윤씨를 부인으로 맞은 전라감사 이중호의 조부이다.부친인 이형원은 부제학이 되어 일본통신사를 지냈는데 이달선은 그의 둘째 아들이다. 23세에 부친을 여읜 후 3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다. 그의 둘째 아들 공충이 선조 7년(l574)에 승지공비를 세웠다.호패형의 이 비는 비머리에는 별다른 조각이나 장식이 없고 위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은 상광하협의 형태이다. 비문은 조맹부체로 비교적 자획이 선명하고 호활한 서체를 그대로 볼 수 있다.

1. 비 명 : 증승지이달선묘갈비
2. 찬 자 : 비문 윤구(l495~1549), 음기 이이(1536~l584)
3. 서 자 : 이산해(l539~1609)
4. 자 경 : 전서 8cm, 비문 2cm, 음기 3.5cm 비문을 지은 윤구는 해남인으로 효정의 아들이며 호남 삼걸로도 지목되는 인물이다. 기묘사화로 해남에 유배되었으며 l538년 복관되었다. 이달선의 손자 이중호의 장인이기도 하며 이발은 그의 외손이 된다. 또한 율곡 이이는 이 비문이 찬술되고 세워지게 되는 사정을 기록하였다. 비문을 쓴 이산해는 서화와 산수에 능하고 문장에도 뛰어나 선조초 팔대가의 한명으로 일컬어졌다.이상과 같이 찬자, 서자가 당대에 이름을 날렸던 문장가, 명필이었다는 점이나 조선초기의 자료라는 점,그리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점은 금석문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호남칠족의 성쇠에 결정적인 전기의 하나로 삼을 수 있는 이발의 피화와 연계 가치가 있다.

양송천묘역

양송천묘역

22784     2021-02-25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 정철의 스승, 양송천 묘역 *

송천 양응정의 묘역으로 현재 제주 양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묘역에는 1581년(선조 14) 유림들이 세운 묘비와 석물이 있는데 정교하고 고풍이 역연하다. 또 이곳에는 양응정의 아들이며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의 묘와 양응정의 손자인 한림학사(翰林學士) 양만용(梁曼容)의 묘가 있다. 조선 조 명종~선조 때의 문장가이자 문신인 송천 양응정의 선비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 묘역을 기념물로 지정하였으며, 산 아래(동호동 46)에 제각(祭閣)이 있고 묘 앞에 민병승이 찬(撰)한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묘제일은 음력 10월 10일이다.

*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송천 양응정 *

양응정(1519∼1581)은 字(자)가 공변, 호가 송천으로 홍문관 교리인 학포 양팽손의 아들이다.  1540년(중종35) 생원시에 장원하고 1552년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정자에 벼슬길에 나간 뒤 홍문관부수찬, 예문관봉교를 거쳐 수찬(修撰)에 올랐다. 이어 사간원, 사헌부, 공조, 예조, 병조를 두루 거쳤으나 당시부터 싹 트기 시작한 당쟁의 희생이 되어 박산(광산구 박호동)마을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조정에서는 송천의 재주와 학문을 아까워하여 다시 불러들여 홍문관수찬, 교리, 응교(應敎)와 예문관봉교와 응교, 세자대강원 보덕(世子待講院 輔德), 사간원 사간을 역임했다. 이어 홍문관 부제학(副提學), 승정원 좌우승지(左右承旨), 성문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사간원 대사간, 사조참의를 거쳤으나 여러 차례 모함에 걸려 광주 진주 목사직과 경주부윤, 의주목사 등 외직으로 옮겨 다니기도 했다.

송천은 제자 정철에게 「나는 글로 헛이름을 얻어 자칫하면 비방거리가 되는데 이것은 유자(儒者)의 수치」라면서 「그대들은 행여 문장가가 되려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또 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백광성, 홍연(洪蓮) 등의 제자들에게 「궁리의 뿌리 없이 먼저 문자에 능한 자는 있을 수 없다. 나 역시 늦게나마 그것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글 잘 쓴다고 깊은 사상없이 함부로 붓을 날리는 일이 없도록 당부한 말로서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훌륭한 가르침이다. 송천은 그 자녀들의 교육도 훌륭하여 「크게는 삼강오상(三綱五常)에서부터 작게는 일사일물(一事一物)까지도 모두 나 자신에게 갖추어진 것으로 수행의 길에는 남녀의 다름이 없다」고 하고 충신, 신독(愼獨), 무자기(無自欺)야말로 학문의 요체이며, 주자의 말대로 「만사불구충효외(萬事不求忠孝外)」라는 말로 자주 깨우쳐 주었다. 이러한 가정교육이 있었기에 훗날 임난때 그 자녀들의 충효열삼강(忠孝烈 三綱)의 본이 세워졌으니 그 자녀들의 애국충절을 위한 고난의 자취는 양씨 삼강문에 정려(旌閭)되어 전해지고 있다.

장유사(김해)

20494     2021-02-25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563

우리나라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최초 불법을 전파했다고 전하는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있다. 장유암 근처에는 해발 801m의 불모산 용지봉 준령에서 흘러내리는 장유대청계곡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져 장유암을 찾는 이들에게 세상사 시름을 모두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 장유암의 볼거리 사리탑 *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의 처남인 장유(長游:본명 허보옥)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팔각사리탑(石造八角舍利塔)으로, 질지왕 때 장유암을 재건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암자와 관련 유물은 거의 소실되었다. 석탑의 크기는 높이 241㎝로, 팔각기단 위에 팔각의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올렸다.

금용암(부산)

24008     2021-02-25

부산광역시 연제구 성지곡로 111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末寺)이다. 조선 말기 철종 때 이곳에 점술가 여인이 초막을 짓고 공덕을 베풀며 살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이인덕행(李仁德行)이라는 보살명을 얻었으며, 1919년 10월 15일 해인사에 출가하여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대봉(大鳳)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대봉은 이곳에 기와집으로 인법당 3칸을 짓고 금용암이라 불렀다. 당시 법당에 봉안하던 석조 지장보살좌상은 금박하여 지금도 염화전에 있다. 절 담벽 아래의 비탈길에 1939년 5월 20일 세워진 대봉의 상반신이 선각(線刻)된 사적비가 있다.금용은 '황금연꽃'을 뜻하며, 이름처럼 한여름을 전후하여 경내 곳곳에 피어나는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쇠미산 허리 부분의 협소한 지역에 일부 축대를 쌓아 지었기 때문에 절터가 그다지 넓지는 않다. 내부는 승방(僧房)인 향적당(香積堂)과 음식을 준비하고 신도들의 식당으로 사용되는 원통료(圓通寮), 본당인 염화전(拈華殿), 칠성·산신·독성을 모시는 삼성각(三聖閣)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용암은 사직동과 초읍동 사이의 작은 암자이지만 성지곡 수원지 뒷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한켠으로 속세의 흔적들을 멀리 떨쳐 버리듯 늘어선 300미터의 우거진 송림길은 사찰을 찾는 중생들의 세진(世塵)을 말끔히 씻어 정갈히 한다. 보이지 않는 일주문 격인 송림길을 조금 더 오르면 길 왼편으로 금용암 입구 무불선사의 탑비가 자리하고 있어 사찰의 초입에 다다랐음을 일러준다. * 금용암이 유명해진 까닭은? * 예로부터 득남을 소원하는 이들의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이곳에는 여늬 사찰과는 달리 삼성각 내에 세사람의 여인을 그린 삼신제왕탱이 소중히 모셔져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 기도하여 태어난 아기들이 초로의 모습으로 이곳을 찾는 일이 빈번하다 하니 참으로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도심사찰이 아닌가 싶다. 또한 삼신 할머니가 점지해 준 자손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불보살님들의 가피를 입는다 하여 인근 지역에까지 ‘자손이 번창하는 사찰’로 이름 높으니 그래서 금용암의 삼성각은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