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답십리 고미술상가

24198     2019-10-16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99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고서화, 고가구, 도자기 등의 고미술품과 독특하고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밀집한 곳이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청계천 8가, 이태원, 아현동 등지에 흩어져 있던 고미술상점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답십리 일대에 모여들기 시작하여 형성되었으며 현재 약 140여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고미술품은 물론 나무촛대, 괘종시계, 오래된 액자 등과 같은 오래되고 독특한 소품들이 많아 볼거리가 풍성하다. 일반 상점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물건들이 많아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다. 일반적으로 인사동이 질 좋고 값 비싼 고미술품들을 주로 판매한다면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몇 천원부터 시작되는 작은 소품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가섭사

가섭사

21437     2019-10-16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가섭길 494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수석제자로‘가섭존자(迦葉尊者)’가 있다. 그는 석가 열반 후 손수 다비식을 집행한 인물로, 고행‘두타행(頭陀行)’을 가장 충실히 실천한 제자로 꼽히고 있다. 석가가 연꽃으로 들자 미소로써 답했다는 그 유명한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주인공이 바로 가섭이다.한편 대승불교에는 칠불(七佛)이 있는데, 세속에서 왕위를 잇듯 부처님도 대를 이어 세상에 출현한다.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불, 가섭불, 석가모니불이 그것이다. 지금은 석가모니불의 시대이며 다음은 미륵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 대승불교의 가르침이다. 즉 역사적으로 불타는 석가모니 부처님 혼자이지만, 불교 교리로는 진리를 깨달은 자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현 시대 뿐만 아니라 과거는 물론 미래에도 부처님이 등장할 것이다.따라서 과거칠불과 함께 현재불, 미래불의 사상이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사상은 본생담(本生譚)의 구도자상과 어울려 보살 등 대승불교의 사상적 연원이 되는 것이다.가섭산 정상 아래에 자리한 가섭사는 산 이름이나 절 이름에서부터 이미 이러한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감로암(서울)

감로암(서울)

24180     2019-10-16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23길 16

동대문에서 대학로로 들어가는 율곡로 대로변에 자그마한 사찰이 있다. 그 이름도 특이하게 목마른 중생에게 구제의 감로를 준다는'감로암'이다. 도심 속 삭막한 빌딩 숲 사이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주택가 그 곳에 정말 도심에서 보기 힘든 자그마한 암자가 있다. 규모로 보나 사세로 보나 정말 암자의 수준이지만, 그 역사는 벌써 100여년이 흘렀다. 가람은 대로변에서 주택가로 나 있는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면 보이는 곳에, 여느 주택과 별반 차이없이 건물을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예배하고 있다. 하지만 여법하게 산문을 만들고 단청을 하며, 기와를 엮어 고풍스런 가람의 멋을 느끼게 한다.옛부터 관음영험도량으로 알려진 감로암은 동네 어르신들, 특히 할머니들의 다담방,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감로암은 사찰의 이름처럼 누군가 구제 받을 수 있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감로가 있는 곳이다. 지금은 마시지 못하지만 보타전 아래에는 여전히 그 옛날 감로의 맛을 느끼게 했던 감로가 흐르고 있다.

경산포교당(보문사)

경산포교당(보문사)

20202     2019-10-16

경상북도 경산시 장산로26길 20

도심사찰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더구나 전통사찰일 경우 포교와 연관되는 불사의 어려움도 함께 수반된다. 그럼에도 가없는 정진과 함께 포교의 원(願)을 놓지 않는 까닭은 부처님의 자비원력에 대한 숭고한 종교적 약속을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경산 보문사(普門寺)’라는 이름을 함께 쓰고 있는 경산포교당은 전통사찰임에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 많은 방법을 모색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찰이다. 하양포교당과 함께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의 포교당으로는 단 2곳인 이 곳 경산포교당은 도심 빌라 숲에 가리워 신음하고 있다. 또한 하양포교당과 달리 매우 협소한 장소에 위치해 있어 전통사찰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도 전통사찰이라 불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새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가선 주택건물로 인해 전통사찰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경산시 삼북동 어느 동네 골목에 자리한 경산포교당은 지하1층 지상 2층의 단촐한 주택식 건물이다. 입지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경산포교당은 포교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나가고 있으며 어느 누가 사찰을 찾아와도 가족같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아마도 공간이 협소한 까닭도 일조했으리라 여겨진다.이러한 이점을 살려 지난 20년간 어린이법회를 거르지 않고 봉행해와 미래불교의 새싹인 지역 어린이 포교에도 선두를 점하고 있다. 경산포교당은 앞으로도 사찰을 벗어나 지역주민들과 함께 복지사업, 자원봉사 등 뜻깊은 실천운동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갈 예정이다.

화담숲

화담숲

13646     2019-10-16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도척윗로 278

화담숲은 서울에서 40분 거리,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생태수목원이다. LG상록재단이 우리 숲의 생태계를 복원하는데 중점을 두고 1,355,371㎡ (약 41만평) 대지에 4천 3백여종의 국내외 자생 및 도입식물을 17개의 테마원으로 조성했다. 화담숲의 화담(和談)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는 의미로, 화담숲은 인간과 자연이 교감할 수 있는 생태 공간을 지향한다. 우리 숲의 식생을 최대한 보존하였고, 자연을 사랑하는 누구나 편히 찾을 수 있도록 친환경적인 생태공간으로 꾸몄다.

또한 자연의 지형과 식생을 최대한 보존하여 조성된 덕분에, 노고봉의 계곡과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수목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소에 산책을 하고 싶어도 몸이 불편해 트레킹할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약자, 어린이 등을 위해 유모차나 휠체어를 타고 편안히 자연을 감상하여 힐링할 수 있도록 5km의 숲속 산책길 전구간을 경사가 완만한 데크길로 조성하여 가족단위 관람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요 테마원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이끼원’을 비롯해 1,000여 그루의 하얀 자작나무가 펼쳐진 ‘자작나무숲/소망돌탑’, 명품분재 250점을 전시하고 있는 ‘분재원’ 등이 있으며 국내 최다 품종인 480여 종의 단풍나무를 비롯해 우리 숲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화담숲은 생물종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함께 국내에 자생하는 멸종 위기종인 반딧불이, 원앙이 등의 생태복원을 위한 서식환경을 연구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복원 노력 덕분에 화담숲 곳곳에서는 우리에게 친근한 도룡뇽, 고슴도치, 다람쥐 등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그 밖에 민물고기 생태관과 곤충체험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경흥사(경산)

경흥사(경산)

18551     2019-10-16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

예로부터 무병장생를 의미했던‘십장생(十長生)’은 우리네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특히 그 중 학(鶴)은 우리의 풍수와 접합해 사찰의 배치조건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니게 되었다. 학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도도한 기상과 높은 생존력을 의미한다고 하니 학이 지닌 풍수와 관계된 사찰은 그 사세와 밀접한 관련성를 가지고 있다 하겠다. 동학산 경흥사는 이러한 학과 연관된 풍수를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동학산은 학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경흥사는 학의 부리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거기다 학의 서기(瑞氣)를 막기 위한 병풍산이 건너편에 있어 경흥사는 외부와도 차단된 지형적인 특성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특히 경흥사는 학의 도도한 기상을 닮아서인지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義僧軍)들이 이 곳에서 최초로 훈련해 전장에 나가 용감히 싸웠으며, 또 사찰의 규모 역시 대단했다고 한다.현재 경흥사에 남아있는 고승의 부도들이 이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으며 동학산 언저리에 잔존하고 있는 경흥사의 광활한 옛 절터에서도 초석과 석축 등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 곳이 결코 미미한 사세가 아니었음을 역시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경흥사가 임란 때 승병을 훈련시켰다는 이유로 탄압하고 한국전쟁 전후의 극심한 도굴 등으로 인해 절은 점차 피폐해졌다. 그러나 예전의 사세를 회복하려는 스님들의 노력으로 현재 경흥사는 대웅전, 명부전, 독성전, 산령각, 종각 등 대부분의 불사가 모두 마무리되어 동학산 기슭에서 경산시청법우회 등의 법찰로 지역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고석사(포항)

고석사(포항)

18413     2019-10-16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로 526

고석사는 상서로운 빛을 발하는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면서 생겨난 절이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 어느 날 경주에 있는 궁궐에 동쪽으로부터 세 줄기의 서광이 비춰 그 빛이 연 3일간 계속되었다. 선덕여왕의 명으로 혜능 국사가 서광이 발하는 곳을 찾아가니 한 바위에서 서기가 발하는지라 그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고 절을 지었다. 그리고 오래된 바위에서 서광이 발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고석사라 칭하고 또한 뒷산 기암괴석이 동해를 바라보며 솟아있어 망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보광전 약사여래불 주위를 두 손 합장하고 돌다보면 듬직한 부처님의 뒷모습이 따뜻하고, 모르는 사이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 온기를 느끼게 된다. 빛으로 만들어진 절, 고석사는 작지만 환한 빛을 지녔다.

가산사

19160     2019-10-16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안내회남로 671

* 임진왜란 당시 역사적 의의가 큰 사찰, 가산사 *

가산사(佳山寺)는 충북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산211번지 채운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과 의승군(義僧軍)이 활동했던 사찰 가산사(佳山寺)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로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곳이 병자호란 이후에야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오지였고, 그 규모 또한 크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기록을 볼 때 가산사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사세도 미약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가산사는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의승군과 의병이 훈련했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의병장들로는 곽재우, 고경명, 정문부, 조헌등이 있고, 의승군으로는 서산, 사명, 영규, 처영, 신열, 법정스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영규대사는 서산대사가 승군의 총책임을 맡기 전 자발적으로 승군을 조직한 최초의 승장(僧將)이시다. 이곳 가산사 일대는 이러한 영규대사와 조헌선생이 의승군과 의병을 훈련하고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그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분은 청주성 탈환에 큰 공헌을 하였고, 금산의 연곤평 전투에서 순절했는데 국가에서는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가산사를 호국사찰로 지정하고 진영을 봉안하여 제향(祭香)을 올리게 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을 염려한 조선총독부는 그간 전해오던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제로 빼앗아 가버렸고, 불온사찰이라 지목하여 가산사를 탄압하기도 했다.오늘날 옥천군에서는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충의열사들을 위해 해마다 가산사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한 순절한 의승군과 의병을 위한‘순국충혼위령탑’건립을 발원하며 호국의 성지를 새롭게 가꾸어 나가고 있다.

* 가산사의 유물 및 유적 *

가산사에 현존하는 건물은 극락전과 산신각·요사 등이다. 극락전은 1624년 중건할 때 지은 것으로, 내부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인 아미타불좌상이 있다. 아미타불좌상은 향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90cm이다. 복장에서 나온 《복장기(腹藏記)》에 따르면, 1624년 경상북도 김천시 쌍계사(雙溪寺) 북암(北庵)에서 조성되었다고 한다.복장에서는 이밖에 유물로 《묘법연화경홍전서(妙法蓮華經弘傳書)》1권 등 6점의 문헌이 나왔다. 이들 문헌은 1477년(성종 8) 전라북도 완주군 화암사(花巖寺)에서 간행한 것으로 조선초 서지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산신각도 극락전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거동사

19296     2019-10-16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사곡길 77-81

거동사(巨同寺)는 경북 영천시 자양면 보현산(普賢山) 남쪽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영천시를 지나 안강 방면으로 나가 조교동 삼거리에서 임고를 따라가면 영천댐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산허리를 감고 굽이굽이 이어져있는 영천댐을 따라 보현산 쪽으로 약 20km 올라가면 보현산 청소년 야영장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일명 약초 마을이라 불리는 마을 안길을 따라 약 2km 더 가면 거동사가 보인다. 유난히 저수지가 많은 산길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길, 나무마다 주렁주렁 풍성한 열매를 매달아 놓아 마음의 풍요로움을 안겨주는 곳이다. 주변에 남아있는 암자의 유허지를 보아 대찰(大刹)이 있었음이 추측이 되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대웅전과 승방, 요사채 하나와 산신각만 남아있다. 신라 고찰이라고 보기에는 여느 절과 다름없는 평범한 절이지만, 한 때는 건물이 100여채가 자리한 대찰이었다고 마을 주민들에 의해 입으로만 전해올 뿐, 번창했던 시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거동사가 한참 융성할 당시에는 아침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 3㎞ 아래인 영천댐 상류인 지금의 충효사까지 내려올 정도로 신도가 많았다고 한다.

너무 많이 찾아드는 신도를 감당하기 어려워 한번은 주지스님이 유명한 대사를 찾아가 신도의 발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이 대사는 절에 있는 부도군의 위치를 옮기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날 스님은 부도탑을 지금의 거동사가 정면으로 보이는 산기슭으로 옮겼고 이때부터 거짓말처럼 신도의 발길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사찰건물도 하나 둘 없어지고 쇠퇴해 지금의 거동사만 남아있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이곳으로 부임한 혜휴 주지스님은 그동안 찾지 못했던 부도탑을 수맥연구가의 도움으로 다시 찾았다고 한다. 절 맞은편에 있던 3기의 부도군을 거동사 인근에서 찾아내 지난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전에 묻혀있던 부도탑에서 엄청난 기운을 느낄 수 있어 곧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신도의 발길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한 이곳에 신기하게도 부도군을 옮긴 후 이번 초파일에는 마을 진입로가 막힐 정도로 많은 신도가 찾아들었다고 한다. 주지 혜휴스님과 거동사 신도님들은 부도군이 옮겨진 후 번창했던 시절의 옛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차있다.

검단사(파주)

22460     2019-10-16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292-33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847년(신라 문성왕 9) 혜소(慧昭)가 창건하였다. 혜소는 얼굴색이 검어 흑두타(黑頭陀) 또는 검단(黔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찰 이름은 그의 별명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사찰이 있는 오두산이 검은 편이라 검단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검단사는 문헌이나 역사적인 기록이 없어 그 내력을 짐작할 수 없지만, 먼 옛날 얼굴색이 검어 흑두타(黑頭陀)라는 별명을 가진 혜소국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다.검단사의 창건은 847년에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는 그 흔적이나 유구는 찾아 볼 수 없으며, 북한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기도하는 조그마한 암자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고림사

19364     2019-10-16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상역로 174-96

고림사(古林寺)는 진안군 부귀산(富貴山)에 위치해 있다. 고림사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원효 스님이 부귀산에서 수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원효 스님은 삼국통일의 대업이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원리대로 원만히 성취되기를 소망하여 부안의 변산, 진안의 부귀산 등 주로 편안할 ‘안(安)’자가 들어 있는 곳을 찾아 수도했는데, 그 자리가 곧 고림사 근처에 있는 좌선대(坐禪臺)라고 한다.뒤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잘 전하지 않는데, 다만 고려 때는 절을 상림사(桑林寺) 혹은 운림사(雲林寺)로 불렀다고 한다. 고림사라는 이름은 절 주위에 수백 년 된 거목들이 가득 들어 차 있어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근대에 와서 1928년에 절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다가 1932년 무렵에 중창이 완료되었다. 완전히 소실된 것을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 1동으로 중건하였는데 관음전에 모셔져 있는 관음상은 화재 속에서 구해낸 유일한 유물이다.

관음사(울산)

22099     2019-10-16

울산광역시 중구 신기16길 62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 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서 돌아와 발길이 닿은 불국토 태화동에는 태화사(太和寺)의 후신인 관음사가 있다. 태화사(太和寺)는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백 여분의 불사리를 분산하여 봉안한 세 사찰 중 하나로, 황룡사ㆍ통도사ㆍ태화사로 이어지는 신라의 대찰로 알려져 있다. 먼 옛날 뱃길을 따라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고 도착한 자장스님은 이곳 태화사에서 국민의 안락을 위해 끊임없이 무릎을 조아렸을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은덕이 이곳 신라의 영원하기를 기원하며…. 현재 그 터는 폐허가 되어 자취를 알 수 없으나, 태화사 십이지상 부도가 출현한 부도골에는 관음사라는 기도처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도심에 있지만 때 묻지 않아 정갈한 멋 풍기는 관음사에
오늘도 자장의 염원 속에 불은(佛恩)을 바라는 이들이 찾아오누나
관음보살 관음보살 부르며 부처님께 머리 조아리는 보살들
그들은 먼 옛날 신라의 자장처럼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