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모항해수욕장

모항해수욕장

59136     2019-06-13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모항길 23-1
063-580-4413

* 2019 해수욕장 개장정보 *
- 기간: 7.13.~8.19.
- 시간: 10:00~19:00
- 성수기: 7.22.~8.18. / 19:00~21:00 (추후 확정)

바다를 낀 변산반도 국립공원 해안도로에서 변산과 격포를 거쳐 곰소로 가다보면 모항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모항해수욕장은 아담한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밭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규모는 작지만 서해의 다른 해변과 달리 물이 빠져 해변이 드러나도 하얀 모래가 가득하고, 해수욕장 곳곳에서 바다낚시와 선상낚시를 즐길 수 있다.

변산반도 일대에서 가장 한적한 해수욕장으로, 2000년 12월에 관광지로 조성되었고, 가족호텔, 가족휴양촌 등 각종 숙박시설과 해변카페 등이 조성되었다. 주변에는 모항갯벌체험장, 호랑가시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122)가 있으며 격포항에서 모항으로 가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빼어난 풍경의 갑남산을 끼고 있는 모항해수욕장은 갯바위 낚시와 갯벌 체험장으로 가족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으며 해안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해송은 모항해수욕장의 랜드마크가 됐다. 또한 전국 사진작가들의 일몰 포인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격포해변

격포해변

77406     2019-06-13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변산해변로 29-14
063-580-4739

* 2019 해수욕장 개장정보 *
- 기간: 7.13.~8.19.
- 시간: 10:00~19:00
- 성수기: 7.22.~8.18. / 19:00~21:00 (추후 확정)

격포해수욕장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닭이봉과 채석강 사이에 있어 채석강의 절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백사장 길이 약 500m로,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고 물이 맑으며, 경사가 완만해 해수욕장으로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절벽 위에 있는 수성당에서 바라보는 서해안은 시원스럽다. 대천해수욕장·만리포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의 3대 해수욕장으로 손꼽힌다.

해수욕장 왼쪽의 채석강(전북기념물 제28호)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과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하고,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수직암벽이다. 썰물 때면 드넓은 암반이 드러난다. 오른쪽에는 사자바위를 중심으로 좌우 약 2km에 이르는 적벽강(전북기념물 제29호)이 있다. 외변산 봉화봉에서 내려다보면 아담하기까지 한 유난히 흰 모래사장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해안선을 타고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해안도로는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곳이다.

인근에 서해의 일몰이 가장 뛰어난 곳 중 하나로 꼽히는 월명암 낙조대가 있다. 해수욕장에서 배를 빌려 바다낚시를 할 수도 있어 연중 사람들이 몰려든다. 왕등도는 바다낚시터로 잘 알려진 곳이다. 변산반도에는 해수욕장 이외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내소사는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변산온천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해변온천이다. 죽막마을의 후박나무군락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부안읍에서 해수욕장까지 직행버스로 40분, 전주시에서는 1시간 40분, 김제읍에서는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고사포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50033     2019-06-13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노루목길 8-8
063-580-4413

* 2019 해수욕장 개장정보 *
- 기간: 7.13.~8.19.
- 시간: 10:00~19:00
- 성수기: 7.22.~8.18. / 19:00~21:00 (추후 확정)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약 2km에 이르는 백사장과 방풍림으로 심어 놓은 송림이 장관을 이룬다. 일대의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맑고 깨끗하며 모래도 곱고 부드럽다. 해수욕장 앞에는 웅크리고 있는 새우모습을 닮은 하섬(蝦島)이 있는데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쯤에는 모세의 기적처럼 2km의 바닷길이 열리는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이배원 가옥

16200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천남1길 13

* 익산시 향토유적 제10호 이배원가옥 *

이배원가옥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있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2002년 12월 14일에 익산시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현 관리자의 조부인 이배원이 1917년에 지은 것으로 그는 함라면의 대표적인 부농 중 하나였다. 이씨집 외에도 당시 함라에는 소위 만석꾼으로 일컬어지는 두 명의 부호, 즉 김씨집(김안균가)과 조씨집(조해영가)이 있다. 이 집은 세 집 중에서 가장 먼저 지은 집으로 김안균가와 조해영가의 모델로 작용하였으며 평면의 구성에서도 서로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있다.

* 한옥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이배원가옥 *

건립 당시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곳간채 등 여러 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주위의 토석 담장만이 남아 있다. 사랑채는 내부가 개조되어 원불교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안채는 입식부엌으로 개조하여 활용하는 안방 뒤쪽 공간을 제외하고 비교적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안채는 ‘ㄱ’자형 목조 와가로 장대석 두벌대 기단 위에 주좌를 높게 치석한 방형 초석을 놓고 기둥은 방주를 사용했다. 기둥은 모서리를 둥글게 쇠시리 하여 모접기 하였다. 평면은 좌측부터 건넌방, 대청, 웃방으로 이어지며 웃방에서 전면으로 두 칸의 안방과 부엌이 돌출 된 ‘ㄱ’자집이다. 이 집은 평면상으로 전후 퇴집 구조이나 가구 구조는 1고주오량가(一高柱五梁家)로 배면 평주에서 고주 중간에 대들보를 끼우고 고주 머리가 직접 종보와 중도리를 받치게 했다. 이배원가옥은 한옥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인근에 조해영가옥과 김안균가옥이 있어 토석 담장과 한옥 기와지붕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소세양신도비

18976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 조각이 매우 뛰어나고 서체가 아름다운 소세양신도비 *

소세양신도비(蘇世讓神道碑)는 1998년 1월 9일에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王宮面) 용화리 탄곡 용화산(龍華山) 동쪽 산기슭에 있으며 1564년(명종 19)에 건립되었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218㎝이며 너비가 103㎝, 두께가 25㎝의 대리석으로 화강암으로 된 직사각형의 대석 위에 세워져 옥개석을 얹었다. 대석은 가로 196㎝, 세로 112㎝, 높이 90㎝의 크기로 전면과 후면은 3개의 정사각형 안에 국화문을, 양측면에는 2개의 정사각형 안에 국화문을 조각하였다. 후대에 이수가 파괴되어 도괴의 위험이 따라 현재에는 교체된 옥개석이다. 비의 전액(篆額)은 글씨 크기가 약 12㎝이며, 심전(沈銓)이 전서(篆書)하였다. 비문의 서체는 해서(楷書)로 홍섬(洪暹:1504~85)이 썼으며 비명은 크기가 약 2㎝로 소세양의 아들 수(遂)가 썼다. 소세양신도비는 임진왜란 이전에 건립되어 현존하는 비석 중 조성시기가 빠르며, 조선시대의 비석으로써 기본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각이 매우 뛰어나고 서체가 아름다워 신도비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 조선 중기의 문신 소세양 *

소세양의 자는 언겸(彦謙)이고, 호는 양곡(陽谷) 또는 퇴제(退齊)이다. 소세양은 1504년(연산군 10)에 진사가 되었고, 1509년(중종 4)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직제학을 거쳐 사성(司成)이 되었으며, 이후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1530년 왜구를 방어하는 데 소홀한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등용되었다. 1545년(인종 1) 윤임(尹任:1487~1545) 일파의 탄핵으로 사직했으나 을사사화로 윤임 등이 몰락하자 다시 좌찬성을 역임하였다. 또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송설체에 능하였다. 그의 문집으로는 《양곡문집(陽谷文集)》이 있다.

남중동 오층 석탑

15660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24길 8-5

* 익산시 향토유적 제12호 남중동오층석탑 *

남중동오층석탑은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이리여자고등학교 화단에 있는 석탑이다.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2003년 11월 5일에 익산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절터에 있던 것을 이리여자고등학교 화단으로 옮겨왔다고 전하고 있다. 전체높이는 2.74m이다. 1층은 탑신 폭 47cm, 높이 10cm이며, 5층은 탑신 폭 24cm이다. 기단부는 2매의 지대석 위에 1매의 각각의 면석과 갑석으로 이루어졌고 기단 갑석이 1층 옥개석 폭만큼 줄어들어 안정감이 적어지는 고려시대 석탑에서 보이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탑신부는 5층으로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으로 구성되었고 각 층의 면석에는 도드라지게 우주(모서리기둥)를 모각하였으며, 1층 탑신석에 비하여 위층의 탑신의 높이가 크게 줄어들지 않아 비교적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개석은 3층의 층급받침이 있으며 낙수면과 우동마루의 경사는 심하지 않으나 옥개석의 합각에서는 반전을 이루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5층 옥개석 위에는 노반과 앙화(仰花), 수연이 함께 표현된 듯한 큼직한 상륜부가 놓여있다. 상륜부는 1매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노반과 앙화 위에 복발이 놓이는 것과 달리 복발 대신 수연과 같은 구조물이 놓여 있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 작고 아담한 느낌의 남중동오층석탑

남중동오층석탑은 높이와 너비 등에서 작고 아담한 느낌을 주며, 모서리가 풍상에 깎여 닳은 모습을 보여준다. 혹시 산속의 작은 절 입구에 있었다면 어울릴 듯한 모습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석탑으로는 익산시 마동 260-2번지의 이리초등학교의 정원에도 하나가 있다. 이 탑은 모양이나 크기로 보아 남중오층석탑과 매우 유사하다.

삼세오충렬사

15944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68

* 전라북도기념물 제61호 삼세오충열사 *

삼세오충열사는 전북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8월 3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삼세오충열사는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전라도 용안현 출신으로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대에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7년(1681)에 충열사를 세웠다.

*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

관리 사무소를 지나면 광장입구에는 정문인 충신문이 있다. 충신문을 지나 올림픽기념 숲을 걷다보면 외삼문인 복절문에 이르고 복절문 좌측에는 기념관인 영국관이 있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본사우인 삼세오충열사에 이른다. 여기에는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우측에 직과 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삼세오충열사의 현판은 여산 권갑석 선생이 쓰셨다. 삼세오충열사를 나와 우측으로 가면 신도비와 오응정의 묘가 있고 정려각이 있다. 최근에는 모충제를 건립하였다. 충신문의 우측으로 가면 오충신의 묘와 오응운, 오응태, 오하몽, 오석근, 오식 등 직계선조의 묘가 있고 오영우, 오사고, 오희, 오사만, 오영수 등을 모신 삼신단이 있다.

위도해수욕장

28259     2019-06-13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위도로 366
063-580-4413

* 2019 해수욕장 개장정보 *
- 기간: 7.13.~8.19.
- 시간: 10:00~19:00
- 성수기: 7.22.~8.18. / 19:00~21:00 (추후 확정)

위도해수욕장은 1969년에 개장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수영장이다. 산들이 감싸고 있는 아담한 모래사장으로 해변의 폭이 1km가 넘는다. 맑은 물과 수심이 깊지 않아 가족단위 피서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마치 소쿠리 안처럼 되어있고 1km가 넘는 고운 모래사장과 백옥같이 맑은 물은 수심이 깊지않아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는 위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특히 전망이 좋아 모래사장에 앉아 있으면 왕등도의 원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비교적 수심이 얕아 물놀이엔 제격인데, 해수욕과 함께 썰물때면 축구, 족구, 배구 등 다양한 공놀이를 할 수 있다.

김육불망비

15448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천남1길 13

* 익산시 향토유적 제11호 김육불망비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김육의 불망비이다. 2002년 12월 14일에 익산시 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석의 건립년대는 조선 효종10년 1659년으로 영의정 김육(1580~1658)이 사망한 이듬해로서 호남지역의 대동법 실시를 여러 차례 건의하고 유언으로까지 임금에게 간절하게 당부한 김육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일종의 선정비이다. 비는 기단, 비신, 이수로 구성되었으며 기단은 화강암, 비신과 이수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비의 전면에는 중앙에 ‘영의정금공육경요보민인덕부망비’라 새겨져 있으며, 그 좌측 하단부에 ‘산부대 상공 해부심 고금’이라는 명문과 후면에 ‘기해 이월’이 음각되어 있다. 이수에는 양각으로 무늬를 조각하였는데, 전면 중앙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가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며, 주변을 이무기의 몸체가 감싸고 있다. 이수의 후면 중앙에는 국화무늬가 있고 주변에는 구름무늬가 양각되어 있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실학적 개혁 정치가, 김육 *

김육(金堉, 1580∼1658)은 실학적 개혁 정치가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입문하였는데 광해군 때 조정에서 쫓겨나 10년 동안 은거하다가 1623년에 인조 즉위 후 복귀하여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그 후 충청도관찰사와 한성부우윤·도승지·병조참의·대사헌·예조판서·개성부유수 등을 거쳐 1651년(효종 2)에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상평통보의 유통과 대동법 확산에 힘을 기울였으며 후대의 실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자파묘비

16026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화곡1길 53-15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8호 소자파묘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소자파(蘇自坡)의 묘비(墓碑)이며 1999년 7월 9일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8호로 지정되었다. 1526년(중종 21)에 건립되었으며 진주소씨 익산종중에서 소유·관리한다. 비신(碑身)은 대리석으로 높이 165㎝, 너비 93㎝, 두께 23㎝이다. 화강암으로 된 대석은 가로 136㎝, 세로 98㎝, 높이 73㎝이며, 전면과 후면은 2개의 정사각형 안에 용화문을, 윗부분은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4각의 받침돌은 국화무늬를 조각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연꽃과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그 조각이 매우 섬세하고 뛰어나다. 비의 전액(篆額)은 글씨 크기가 약 10㎝로 김희수(金希壽:1475~1527)가 썼으며 남곤(南袞:1471~1527)의 글이다. 비의 뒷면은 이행(李荇:1478~1534)의 글이고, 글씨는 크기가 약 10㎝의 해서(楷書)로 성세창(成世昌:1487~1548)이 썼다. 비의 모습이 완전하고 비문의 글씨도 선명하며 조각수법도 우수하다. 또한 비의 건립연대가 중종 21년(1526)으로 익산지역에 전해오는 금석문으로서는 가장 빠른 것이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 조선 중기의 문신 소자파

소자파의 자는 미수이고 1451년에 태어났다. 1483년(성종 14)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의빈부(儀賓府) 도사(都事)를 역임하였고, 1524년(중종 19)에 임지인 전라남도 구례에서 사망하였다. 그 후 아들의 벼슬이 올라감에 따라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과 숭록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좌찬성 겸 의금부 부사에 추증되었다. 소자파는 소세양신도비의 주인공 소세양의 아버지이다.

남궁찬묘석상

15562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목사동길 48

* 웅장한 모습의 남궁찬묘석상 *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갈산리에 있는 석상이며 1999년 11월 19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성종 때의 관료 남궁찬의 묘 앞에 세운 화강암재로 만든 두 기의 석상이다. 함열남궁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궁찬의 호는 호은(壺隱), 본관은 함열(咸悅)이며 개국원종공신 계(啓)의 증손이며 이조참판 순(順)의 아들이다. 성종 8년(1472) 생원시에 급제하고 성종 20년(1489) 대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올랐다. 중종 즉위 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상소문을 올리고 비판하여 용안 호항(壺項)에 유배되었다. 그 후에 대제학 과 이조판서로 다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고 은거하다가 죽은 후 이곳에 묻혔다.

* 조각수법 뛰어난 이국적 모습의 석상 *

일반 묘석상처럼 묘 앞에 시위하듯 좌우로 벌려 서 있다. 크기는 좌측 석상이 전체 높이 250㎝, 머리 부분 높이 65㎝, 밑 부분 폭 76㎝, 어깨 폭 81㎝이다. 우측 석상은 머리 부분 높이만 70㎝로 좀 더 크고 나머지는 같다. 두 석상이 같은 형식의 관복을 입고 있으며 모습도 머리에 둥근 모자를 쓰고 있고 광대뼈가 나온 긴 얼굴에 뚝 튀어나온 눈, 얼굴에 비해 작은 코 등 서로 비슷하다. 이런 형식은 여느 문·무인석상과 다른 특이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양손을 배 앞에서 소매 속에 감춘 모습만 일반 석상들과 같을 뿐 전체적인 모습도 이국적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상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승이나 돌하르방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5백여 년 세월 훼손 없이 보존 *

이 석상은 화강암으로 조각하여 남궁찬의 묘 전면에 석등과 함께 위치하고 있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전혀 손상이 없는 입상이다. 정확한 제작년대는 알 수 없으나 남궁찬 사후 묘의 설치와 비슷한 시기인 조선 중종 년간의 16세기 중반경으로 추정되며, 문인석으로 세웠던 것으로 판단되나 석상 자체의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양식에 있어서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고 비교적 조각수법도 뛰어나 문화재로 지정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아석정

15297     2019-06-13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아리랑로 9-34

* 익산시 향토유적 제4호 아석정

아석정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정자이며 2002년 5월 30일에 익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금마면 서고도리 서계마을의 산 중턱에 위치한다. 1934년 소진홍(蘇鎭洪)이 선조 대대로 살아오던 자리에 터를 닦아 건립하였다. 뒤쪽은 숲으로 이어지고 앞으로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단정한 모습으로 전통적 기법을 유지하고 있는 아석정, 아석정은 산 중턱에 터를 고르고 거칠게 치석한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조성하였다. 기단 상면은 현재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으며 그 위에 한자 높이의 민흘림 원형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정면 3간, 측면 2간의 정자를 남서향(艮坐坤向)으로 구성했다. 정면은 세 간 모두 6자(1820cm)로서 주간이 일정하며, 측면의 주간은 5자(1520cm) 길이이다. 마루는 우물마루로 1m 높이로 비교적 높게 구성하였는데 기둥뿌리와 마루를 구성하는 멍에 사이에 人자형으로 기둥마다 가새를 설치하였다. 마루 주위는 평난간을 시설하였다. 난간의 높이는 한자 남짓 되며 전면은 아자형으로 나머지 삼면은 안상을 뚫은 궁창으로 머름을 꾸미고 있다.

공포는 초익공구조이다. 쇠서 전면은 직절하였고 안쪽은 사절하여 보아지 역할을 하는 일반적인 구조이다. 주간은 매 칸마다 창방 위에 4개의 소로를 배설하여 장여를 받게 했다. 도리는 굴도리인데 기둥마다 도리와 기둥머리 사이에 두 개의 원형철근 꺾쇠를 V자형으로 박아놓아 도리를 고정하고 있다. 가구는 전후 평주에 두 개의 대들보를 걸고 대들보 위에는 종보가 거의 맞닿도록 충량과 반턱맞춤으로 놓여 있고 그 위에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는 5량식 구조이다. 종도리 밑 상량대에는‘세재갑술4월13일오시입주동일미시상량(歲在甲戌四月十三日午時立柱同日未時上樑) 산수우락풍월위정(山水寓樂風月爲情)’이란 상량문이 남아 있어 1934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들보에 직각으로 걸려 있는 충량 위에는 외기(外機)를 짜고 지붕을 구성했는데, 겹처마 팔작집으로 근래에 한식 오지기와로 번와하여 상태가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이며 목가구의 기법에 있어서도 비교적 전통적 기법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