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신흥사(울산)

신흥사(울산)

22071     2020-03-27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4길 280

함월산 신흥사(含月山 新興寺)는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동 739변지에 소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푸르른 녹음 따라 함월(含月)의 골짜기로 들어서면, 신라의 선덕여왕 당시에 설립된 고찰 신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흥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 당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명랑조사(明朗祖師)가 세운 사찰이다.

건흥사의 창건주가 신라 호국불교를 지표로 삼은 명랑조사였다는 사실은 호국도량으로서 신흥사의 면모를 짐작케 한다. 문무왕 당시 신라가 만리성을 쌓는 동안 신흥사에는 승병 백여 명이 머물면서 무술을 닦았다고 하니, 이 절이 초기부터 승병과 관련된 호국도량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양란 때는 승병들을 모아 전투에 참가하여 호국의 의지를 불태우고 군량미를 제공하는 등 울산지역 승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함으로써 명랑조사의 굳건한 뜻을 이어왔다.

이후 6.25사변 당시에는 남부군 활동지로서, 지리산 자락의 여러 사찰들처럼 수많은 경전과 판각이 사라지고 폐허가 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고목 아래에 앉아 고찰의 방문을 물을 때 낯선 객의 모습에 하늘은 금새 흑색으로 바뀌고 동쪽에서 소용돌이가 불어와, 마치 명랑스님이 부린 조화와 같다. 울산의 호국도량 신흥사를 찾아가는 길은 조사가 쳐놓은 문두루비법이 펼쳐져 있는 듯, 미로를 헤매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우곡사(창원)

우곡사(창원)

21739     2020-03-27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로 459

* 전단산에 자리 잡은 고찰, 우곡사 *

우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단계리의 전단산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우곡사(牛谷寺)는 인근의 성주사(聖住寺)ㆍ성흥사(聖興寺)와 함께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한 신라고찰로 알려져 있지만, 창건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우곡사가 자리잡은 전단산이 불교와 관계 깊은 지명이라는 점, 낙동강을 낀 곡창과 왜구를 막아주는 산악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병참기지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 등으로 창건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우곡사의 대표 명물, 벼락맞은 은행나무 *

우곡사 경내를 들어서는 초입에는 벼락맞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둘레가 네 아름이나 되고 키가 30m를 넘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채 두 길 높이 이상은 자취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벼락을 맞은 부분은 불에 타서 까맣게 죽고 말았지만 바로 그 옆자리에 새로운 싹을 틔워 줄기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팔뚝이나 허벅지만한 굵기의 이 줄기들은 다시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고 있다. 이 은행나무의 모습은 우곡사와 너무도 닮아 있다. 가람 또한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법등을 꾸준히 이으면서 새롭게 발돋음하고 있으니 말이다.

* 우곡사의 창건과 걸어온 길 *

전단산에 있는 우곡사는 신라시대인 837년(흥덕왕 7) 무염국사(無染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현재 창원시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3곳의 전통사찰이 있다. 즉 불모산 성주사, 비음산 불곡사, 전단산 우곡사이다. 그런데 이 전통사찰의 창건자는 모두 무염화상(801~888)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염화상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인물로,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의 성주산 성주사(聖住寺)를 창건한 무주무염(無住無染)을 말한다. 이 지역의 전통사찰들이 무염국사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모두 그를 창건자로 삼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전단산(?檀山)에 있는 절이라고 나와 있어 그때까지는 우곡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말기의 부호인 구만호(具萬戶)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우곡사에는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당시의 유명한 화공이 그린 초상화가 있었으나 최근 도난당했다고 한다.

월봉사(울산)

월봉사(울산)

23523     2020-03-27

울산광역시 동구 봉수로 55

월봉사는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 60번지 함월산(含月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월봉사는 1천여 년을 거치는 온갖 풍상 속에서도 그 법등을 잘 이어오고 있는 사찰 중 하나이다. 사찰의 배산(背山)을 이루는 함월산(含月山)은 옛날 어느 한 고승이 방어진 바닷가를 거닐던 중 우연히 눈을 들어 이곳을 보니 분명 바다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야 할 달이 그곳 산 위에 동그라니 걸려 있음을 보고, 길지(吉地)라 여겨 먼 훗날에 대찰(大刹)이 들어설 자리로 예언하였던 곳이다. 아마도 그때 고승이 예언한 대찰이 바로 지금의 월봉사였을 것이다. 지금은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산중사찰의 분위기가 덜하지만 창건 당시만 해도 인근에 이처럼 수려한 명당은 없었던 듯하다. 전국의 승려들에게 계율을 가르치고 법도를 시행했던 성도(聖道) 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최근에 가람을 일신하였고 근래에는 유치원을 건립하는 등 대중포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21121     2020-03-27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2길 181-78

* 암벽을 깎아 새긴 통일시라 마애불, 방어산 마애불 *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산131번지 내 위치한 방어산마애불 삼존상(三尊像)은 암면을 깎아 새긴 마애약사불상(磨崖藥士佛像)과 그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인데, 신라 애장왕 2년(801)에 만들어진 신라 하대의 가장 저명한 마애불이다. 이 불상은 8세기의 이상적 사실주의 경향의 불상들과는 다소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구의 불상이지만 위장부적(偉丈夫的)인 당당한 체구가 아닌 현실적인 장대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특징은 정적(靜的)이며 침울하기까지 한 얼굴, 탄력감이 줄어진 신체 각부, 그저 둥글기만 한 어깨, 밋밋한 가슴과 배 등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광보살(日光菩薩)의 강렬한 인상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의 온화하고 우아한 얼굴 등에서 이상적인 양식이 다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한층 해이되고 한층 활력이 줄어진 현실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이행되어 가던 변모과정을 잘 보여주는 801년의 절대연대를 가진 중요한 마애불상으로서 1962년 1월 21일 보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 방어산 마애불의 형태 *

마애불은 본존(本尊) 전체높이 5m, 본존상 현재 높이 2.85m, 좌협시상(左脇侍像) 높이 2.45m, 우협시상(右脇侍像) 높이 2.64m이다. 재료는 청석(靑石)이다. 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중국·일본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수법도 양각(陽刻:浮彫)·음각·선각(線刻) 등 다양하다. 원래부터 바위를 매끈하게 다듬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은 석질(石質)이 더욱 고르지 못하고 아랫부분은 탈락이 심하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보물
지정번호 : 보물 제159호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
종류 : 불상
크기 : 본존 전체높이 5m, 본존상 현재 높이 2.85m, 좌협시상 높이 2.45m, 우협시상 높이 2.64m

덕연서원

덕연서원

19453     2020-03-27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예용3길 12-2

1591년(선조 24)에 주세붕(周世鵬)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림에서 뜻을 모아 동림서원(桐林書院)을 창건하였으며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회진되었고 1660년(현종 1)에 칠원현 남고(南皐)에 중건(重建)하여 남고서원(南皐書院)이라 불렀다. 그 후 1676년(숙종 2) 4월에 왕으로부터 덕연서원(德淵書院)이란 현판을 사액(賜額)받았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고 1911년에 다시 덕연서당을 세웠으며 1964년에 존덕사(尊德祠)를 지어 다시 주세붕의 향사를 진행하면서 중건 복원하였다. 덕연서원 옆에 세운 별사로 향현사(鄕賢祠)가 있었는데 일명 덕원서원(德院書院)이라고도 하였다. 이 사우는 배세적(裵世績), 주박(周博), 배석지(裵錫祉), 황협(黃悏, 주맹헌(周孟獻)등 다섯 사람을 향사하기 위하여 1698년(숙종 24)에 건립되었고, 1868년(고종 5)훼철되었다가 1976년에 중건되어 향례를 행하고 있다.

흥륜사(인천)

흥륜사(인천)

36249     2020-03-27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량로46번길 38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 위치한 흥륜사(興輪寺)는 지금으로부터 약 613년 전(서기 1376년) 고려 우왕 2년 공민왕의 왕사(王師)로 계시던 나옹화상(懶翁和尙)께서 개창하였다. 처음 이곳의 경관이 하도 수려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고 그에 따라 산의 이름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청량산은 1592년 임진란의 변화로 소실된 후 340여년동안 빈터만 남아있다가 서기 1938년에 절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가 그 후 1966년에 옛 건물을 헐고 새로이 건물 8동을 세웠으며 1977년 6월에는 절 이름을 바꾸어 지금의 흥륜사로 개칭하였다. 청량산에 위치한 이 흥륜사는 가까이는 송도 유원지와 송도국제신도시가 위치해 있으며 인천상륙작전공원도 흥륜사 입구에 위치해 볼거리도 많은 곳이다. 특히나 흥륜사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풍경은 인천대교를 끼고 넘는 그 풍경이 아름다워 낙조의 비경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흥륜사는 한국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국제선원, 만불전 등을 개설하였고, 조상님을 모시는 최첨단 시설의 추모전을 개원하여 운영하고 있다.

계승사(고성)

17845     2020-03-27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대법3길 236

태고의 신비로움과 암벽의 경이한 모습을 품고 있는 공룡의 나라 고성 금태산 기슭에 자리한 계승사는 시간의 흔적만큼이나 계승사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억년전 이 곳이 공룡들의 땅이라고 증명하듯 초대형 공룡발자국을 남겨두었다. 또 거대 암반 위에는 파도가 밀려가면서 모래사장에 만들어내듯 한 물결무늬 화석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승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은 거북등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태고의 빗방울이 남긴 자국에 까지, 그야말로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품이 따로 없다. 용두봉에서 발원하여 기암괴석과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 석간수는 그 옛날 매일 부처님의 공양미로 올릴 석 되 두 홉의 공양미가 쏟아졌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맑고 청정하다.

금태산 계승사에서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를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의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金太山)과 남해의 금산(錦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조용히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라 천년 고찰 계승사는 천연자연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그 호젓함을 더해주고 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조용한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바위 위 계승사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풍경소리가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신광사(세종)

18376     2020-03-27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토골고개길 24

* 신도가 다가가기 쉬운 도심 속 사찰. 신광사 *

신광사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있는 노적산에 자리한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약 160여년 전으로 추측되며, 1920년 이경직 주지가 복원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창건 당시 토골절, 수양사(修養寺) 등으로 불리었으며, 혜원스님이 1980년 신광사로 개칭하였다. 젊음의 활기가 넘쳐 흐르는 사찰. 누구나 신광사를 찾게 되면 느끼게 될 첫 인상이다. 누구나 신광사를 찾게 되면 느끼게 될 첫 인상이다. 그 이유는 쉽게 알게 된다. 사찰의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대학생들이 살고 있는 홍익대학교가 근처에 있으며,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젊은 사찰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신광사 *

신광사는 후덕한 상호를 지닌 주지스님의 모습만큼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는 그런 곳이다. 신도가 절집에 가까이 다가가기 쉬운 도심 속 사찰이다. 신광사는 그렇게 참배객이 접근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한편으로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품어 안으면서 불법을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이러한 노력은 사찰 곳곳에 배치된 석물 하나하나에도 배어 나오고, 법당 안에 봉안된 불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신광사는 젊은이와 함께 계속 성장할 것으로 기억되는 그런 사찰이다.

정법사(창원)

20595     2020-03-27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몽고정길 46

통도사 마산포교당 정법사는 가고파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합포만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뒤로는 학이 춤추는 형태인 마산의 명산 무학산(舞鶴山)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 불자들의 신앙과 포교의 구심점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빛나는 민주성지로 손꼽히는 포교의 도량으로서, 고통 속에 번민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참된 삶의 안내자로서 무명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자 한 정법사는 마산사람들 사이에선 그냥 ’포교당’으로 통한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포교당이라 하면 당연 정법사를 지칭하는 말이 된지 오래이듯 정법사가 마산불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사뭇 남다르다. 정법사는 전통사찰이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는 정법도량이다. 도심 포교당이라는 창건목적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여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도를 실천해 가고 있는 정법사는 지난 96년 부임한 주지 지태스님에 의해 이 시대 불자들의 최고선이 동체대비사상의 실천임을 깨닫고 헐벗고 삭막한 이 도시에 춥고 배고픈 이웃들을 위한 종교개혁과도 같은 큰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정법사는 마산지역 포교당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정법사 경내 벽면 한편으로 ‘마산불교 거사림’ ‘정법교직원불자회’ ‘마산시청 공무원불자회’ ‘마산불교청년회’ ‘영축다도회’ ‘정법불교학생회’ 등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곳이 마산불교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시켜준다. 이처럼 정법사는 10여개에 이르는 마산지역 신행단체들에게 ‘생활법당’이라는 활동공간을 마련해 줌으로써 지역신행단체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신행활동을 북돋워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초 조계종으로부터 전문교육기관으로 승인받은 영축불교대학을 운영, ‘배우지 않고는 실천도 없다’는 기치를 높이 들었으며 불우이웃돕기 생필품 판매소와 무료급식소인 ‘보현의 집’을 운영, 지난 7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200여명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매일 점심공양을 대접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사업, 불우이웃 결연후원활동 등을 펼치며 이 시대 진정한 보살행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28년 개원해 지역의 대표적 사립유치원으로 성장한 역사 깊은 대자유치원 역시 마산지역 내에서 참다운 인성교육에 헌신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 마산포교당으로 지난 1912년 4월8일 초창된 정법사는 현재 전통사찰 제33호로 등록되어 있다.

* 창건배경 및 역사

마산 도심 정중앙에 위치한 정법사는 우리 민족이 갖은 탄압과 혹사를 당하고 있던 일제치하에 불법(佛法)으로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민생을 구제하고자 한 당시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九荷) 대선사에 의해 1912년 창건됐다. 초대 주지로 경봉 대선사가 취임한 이래 불교계의 수많은 큰스님들이 거쳐간 곳이기도 하거니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 정법사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도모하기도 한 민족사관의 중심도량이기도 하다.

지곡사(산청)

20209     2020-03-27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 396

지곡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이다.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고,고려 광종 대에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다. 최근 지곡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8~9세기 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위와 같은 이야기를 뒷받침하였다. 지곡사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되었다가, 근래 옛 지곡사 산신각 자리에 중창하여 옛 지곡사의 전통을 이어 받아 법등을 밝히고 있다.

* 창건

옛날의 지곡사는 인근인 내리 772-4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應眞)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다고 조선시대 후기에 기록된 『지곡사용화당기(智谷寺龍華堂記)』에 전한다. 또 진관선사오공탑비(眞觀禪師悟空塔碑)에는 고려 광종(光宗) 대에 고승인 진관 석초(眞觀釋超) 스님을 지곡사의 주지로 임명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절을 크게 중창하여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으나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 되었다.

* 연혁

지곡사와 관련된 문헌은 적은 편인데 전성기에는 300여 명의 스님들이 있었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홍예다리를 놓아 오색 무지개가 공중에 걸린 듯 하여 다리를 건너면 티끌세상의 번뇌를 씻을 수 있다고 하여 세진교(洗塵橋)라 하였는데 그 홍교는 흔적만 남아 있는 길가에 세진교비(碑)가 홀로 서서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 스님이 지은 『유산음현지곡사기(遊山陰縣智谷寺記)』에 따르면 지금의 축대 위에는 대웅전이 있었고 왼편에는 약사전 오른편에 극락전이 있었으며 앞에는 큰 누각, 누각 밖에는 천왕문과 금강문이 있었고 회랑과 요사가 좌우로 늘어서 있어 영남의 으뜸가는 사찰로 선객과 시인들이 즐겨 찾던 가람이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음현(山陰縣)』조에는 고려 예부 상서 손몽주(孫夢周)가 쓴 혜월(慧月)과 진관(眞觀)의 두 비(碑)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귀부(龜趺) 2기만 남아있고 다행히 비문은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암 성안(寒巖性眼)과 추파 홍유 스님이 절의 중흥을 도모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 일제의 침략으로 폐사가 되었으며 한암대사비와 추파당대사의 탑비가 절 위쪽 300m 지점에 있다. 옛 지곡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세진교 각자(刻字), 우물 배례석편, 수조 4기, 귀부2기, 물방아 확(수조), 부도, 장대석, 축대 등이 남아 있다. 무상한 세월과 함께 대찰이 폐허로 변했지만 지곡사지에서 멀리 동쪽으로 황매산(黃梅山)을 바라보면 부처님이 누운 와불 모습으로 바라보며 신비감을 더해준다. 지곡사지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지곡사는 1958년에 강덕이(姜德伊) 스님이 중건 했는데 본래의 지곡사 배치와는 무관하게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청안사(세종)

18145     2020-03-27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가느실길 128-23

*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사찰, 청안사 *

금성산과 작성산, 국사봉 등이 에워싸고 있는 산속, 가느실 마을에서 동쪽으로 약 150m 가량 올라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대한제국 광무4년(1900)에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현재의 성불사에서 약 50m 정도 아래쪽으로 내려간 경사면에 위치한 옛 절터에서 조선시대 중기의 기와편과 백자편이 출토된 바 있어서 적어도 이 무렵에는 사찰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백제 말에 창건된 북혈사로 추정되는 비암사에 속한 암자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가는 길 주변에 전의나무 마을이 있어 필요한 과실수나 약초 등을 구 할 수 있어 좋다. 절로 올라가는 입구에 작은 소나무 숲이 있어 맑은 정취를 자아내며 사찰 주변 풍경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천수답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좌우로 큰 참나무 군락이 있어 늘 청설모와 다람쥐를 볼 수 있다. 작은 연못에는 색색의 수련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전면에 나지막한 법당이 있다. 아직 단청이 되지 않은 소나무 향이 물씬 풍기는 법당에 들어서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경전들이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어 잠시 부처님 말씀을 읽으며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았던 ‘마음챙김’을 할 수 있다. 맑고 편안한 마음으로 고개 들면 가까이 계신 부처님과 서원 크신 지장보살님을 닮으리라 다짐하며 돌아서 법당을 나오면, 우측 높다란 돌계단 위로 작은 삼성각이 보인다. 삼성각은 산의 주인인 산신, 홀로 깨달으신 독성, 자식의 인연을 맺어주는 칠성 세분이 계신 곳이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보면 3층 석탑과 맞은편 산이 눈높이에 걸린다. 탑을 돌아 산책로 가는 길에는 돌 틈 사이로 갖가지 야생화와 보라색 용담, 노랑 들국화가 소담하게 피어 있는 왼편에 돌부처님이 앉아계신다. 야트막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산에 올라 내려오기 까지 20-30분 정도 소요되며 등산로가 끝나는 곳에 원두막이 있어 차 한 잔 하며 멀리 보이는 계룡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청안사의 창건배경 및 역사 *

청안사는 대한제국 광무4년(1900)경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현재의 청안사에서 약 50m 정도 아래쪽으로 내려간 경사면에 위치한 옛 절터에서 조선시대 중기의 기와편과 백자편이 출토된 바 있어서 적어도 이 무렵에는 사찰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백제 말에 창건된 북혈사로 추정되기도 하며 일설에는 비암사에 속한 암자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또한 현 사찰지에 신라시대의 불당이 있었다고 전해기기도 하고 주변지명이 절골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1900년경 스님들이 살기 시작하여 1950년경 곽재순씨가 요사터에 법당을 다시 지었고 1987년 법진스님이 법당을 현재 위치에 개축하였다. 청안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불교태고종 성불사(成佛寺)였다. 그러나 2001년 3월부터 주지로 부임한 청현(靑峴)스님에 의해 2002년에 현재의 이름인 청안사(淸眼寺)로 개명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으로 종단을 변경하였다.

법화암(창녕)

17228     2020-03-27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적지길 184

*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는 사찰, 법화암 *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창건 당시 영취산에 있던 보림사(寶林寺)의 부속 암자였으며, 1850년(조선 철종 1) 국의(國儀)가 중창하고 1857년(철종 8) 다시 국의가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법당이 남아 있고, 법당 안에는 법흥왕 때(재위:514∼540) 만들어졌다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영산 법화암다층석탑이 전한다.

흔히 청석탑 또는 와탑이라고 부르는 이 탑은 본래 보림사에 있던 탑인데, 임진왜란 때 보림사가 불에 타자 법화암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 원당의 다층석탑과 형태가 비슷하다. 또한 암자 뒤편의 기암괴석들이 만들어 내는 바위병풍은 길손들에게 또 다른 비경을 선물한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풍경소리가 더 청정하게 느껴지는 법화암은 삶에 지친 중생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준다. 법화암은 지나가는 길손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부처님과 인연한 이들에게는 법당의 문을 여 밀고 들어가 두 손 모아 삼배의 예를 올리면 잠시나마 마음의 때를 씻는 안식처와도 같은 곳이 되어 준다.

* 법화암에 대한 얽힌 전설 *

법화암에는 쌀바위와 빈대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어느 해에 흉년이 들어 한 승려가 굶어죽겠다고 하자 주지가 ‘쌀 담을 그릇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승려가 그릇을 가져오자, 주지는 암자 뒤에 있는 큰 바위로 가더니 합장하고 염불을 외웠다. 그리고 석장으로 바위를 찔러 구멍을 내자 쌀이 나왔다. 쌀은 매일 먹을 만큼만 나왔다. 주지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새 주지가 부임해 왔다. 그는 쌀이 나오는 바위를 보자 욕심이 났다. 바위를 부수면 천 석, 만 석의 쌀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석공을 시켜 구멍을 크게 뚫었다. 그러나 구멍에서는 쌀 대신 빈대가 쏟아져 나왔고 빈대가 온 절에 퍼져 절이 황폐해지고 말았다. 지금도 법화암 옛터 돌틈에는 빈대가 많이 기어다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