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남양주 사릉(정순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양주 사릉(정순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7728     2020-05-29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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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임시휴관 (2020.05.29 ~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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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왕후의 무덤, 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조선 왕조 시대 때 가장 비운의 여인으로 꼽히는 단종(端宗)의 비(妃)인 정순(定順) 왕후(1440∼1521년)는 1453년 왕비로 간택되었으며 2년 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의덕(懿德) 왕대비에 봉해졌다. 하지만 1457년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있는 유배지로 보내지고 정순 왕후도 부인으로 강봉된다. 그 해 단종은 사사되면서 정순 왕후는 궁궐에서 추방당해 동대문 밖 숭인동 동망봉(東望峰) 기슭에 들어가 살았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에 왕후는 늘 통곡하였으며, 이로 인해 동정곡(同情哭)과 동망봉 이외에도 많은 유래가 생겼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정순왕후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세조가 내린 집과 식량을 끝내 받지 않았다. 평생을 청빈(淸貧)하게 살다간 정순 왕후는 죽어서도 여인네들의 한을 달래는 토속신으로 숭앙되었다. 왕후가 자식이 없었으므로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무덤을 만들었고,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왕후의 무덤을 사릉이라 했다. 하지만 살아 생전 생이별을 해야 했던 두 분은 죽어서도 같이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 한 곳으로 모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사능의 형태 *

사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봉분 앞에 상석 1좌, 상석 양측에 망주석 1쌍을 세웠다. 봉분 주위에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1쌍이 배치되어 있고, 그 바깥쪽으로 3면의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이 둘러져 있다. 그 아랫단에는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그리고 장명등이 있다.

남양주 홍릉(고종과 명성황후)과 유릉(순종과 순명,순정 황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양주 홍릉(고종과 명성황후)과 유릉(순종과 순명,순정 황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0150     2020-05-29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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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마지막 두 황제와 그 비를 모신 이곳은 사적 제 207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릉은 대한제국 초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능이고, 유릉은 마지막 순종황제와 원비 순명황후 민씨 및 계비 순정황후 윤씨를 모신 능이다.원래 홍릉은 명성황후 민씨의 능으로서 서울 청량리에 있었으나 고종의 승하로 국장할 때 이곳에 옮기어 함께 모셨다. 유릉은 원래 순명황후 민씨의 능으로 양주 용마산에 있었으나 순종 인산 때 이곳에 이장하였고, 1966년 순정황후 윤씨를 또한 이곳에 함께 모셨다. 홍릉과 유릉은 종래의 왕릉과 형식이 다르며 모두 광무 이후 황제라 칭하던 왕이었던 만큼 명태조의 효릉을 본따서 조영하였다. 종래의 정자각 대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고 그 앞쪽으로 문무석을 세우고,홍살문까지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낙타 말의 순으로 석수를 세워 놓고 있다. 홍릉 석물이 전통적인 수법으로 만들어진데 대하여 유릉 석물은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며 입체감을 잘 살리고 있다. 청량리에서 경춘가도를 가다 도농동 삼거리 검문소에서 춘천쪽으로 약4km 지점 오른편에 울 창한 소나무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왕·공족의 분영은 묘로 한다는 정책을 펼쳤다. 왕의 무덤인 능陵도 세자의 무덤인 원園도 아닌 일반인의 무덤인 묘墓로 격하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왕공가궤범을 따르자면 고종과 순종의 무덤은 왕릉이 될 수 없었는데, 이때 왕실에서 생각해낸 것이 고종의 비 명성황후의 홍릉과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의 유릉이었다. 고종의 장례 때는 명성황후의 재궁을 원 홍릉(청량리)에서 현 홍릉(남양주시)으로 옮겨와 합장하였고, 순종의 장례 때에도 구 유릉(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순명효황후의 재궁을 모셔와 합봉(남양주시)하였다. 새로운 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능의 칭호를 가져다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제로서는 이것을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었으며, 능의 이장 문제 또한 이왕직이나 총독부가 관여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왕실 내의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별 탈 없이 처리되었다.그러나 본래 왕릉 장법에서는 왕비의 능에 왕을 합장할 경우엔 새로운 능호를 쓰게 되어 있다. 중종이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옆에 같이(이때의 경우 한 구역 안 두개의 능침이라 하여 동원 이강이라 한다. 봉분은 따로 떨어져 두개이지만 제사는 한 정자각에서 받는다)안장되었을 때 희릉의 능호를 같이 쓸 수 없다 해서 정릉으로 능호를 새로 올렸던 전례가 있고, 숙종은 인현왕후의 능에 묻을 것을 미리 지시했기 때문에 인현왕후의 능호인 명릉을 그대로 사용하였다(이 경우는 봉분이 붙어있어서 쌍릉이라고 한다). 원래 왕릉 장법에 따르면 새로운 능호를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고종과 순종의 경우는 일제의 간섭으로 인하여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양주 광릉(세조,정희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9710     2020-05-29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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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와 세조비의 무덤, 광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조선 제7대 세조와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으로 사적 제197호이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을 취하였고, 두 능의 중간지역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웠다.세조의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에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처리하였다.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이전에 병풍석에 새겼던 12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또, 능역 아래쪽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생략되어 있다.이렇게 간소하게 능을 조성함으로써 부역인원과 조성비용을 감축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 능제(陵制)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상설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능 주위에는 문인석·무인석·상석·망주석·석호(石虎)·석양(石羊)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 광릉은 크낙새 서식지 *

광릉 주위는 30여만 평의 넓은 숲으로 100살 넘은 노목들이 울창하여 새들의 낙원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천연기념물 제11호인 크낙새 서식지로 유명하다.

구리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5024     2020-05-29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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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1408년(태종 8)사망하자 태종의 명으로 파주, 고양 등지에서 좋은 능자리를 물색하던 중 당시 검교참찬 의정부사를 지내던 김인귀(金仁貴)가 추천하고 영의정부 사 하륜(河崙)이 결정하여 능지로 정해진 곳이다. 동구릉의 조성은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이루어 졌는데 동구릉이라고 부른 것은 추존왕 익종의 능인 수릉(綏陵)이 아홉번째로 조성되던 1855년(철종 6)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이라고 불렀다.동구릉에는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하여 현릉(顯陵 : 5대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 목릉(穆陵 : 14 대 선조와 그의 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 휘릉(徽陵 :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숭릉(崇陵 : 18대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 혜릉(惠陵 :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 원릉(元陵 : 21대 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 수릉(綏陵 : 23대 순조의 세자인 추존왕 익종과 그의 비 신정왕후), 경릉(景陵 : 24대 헌종과 그의 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 등 모두 아홉 개의 능이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은 구리시 인창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국가지정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동구릉은 능제의 변화와 조선 왕조 500년의 부침(浮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더욱이 능 전역에 우거져 있는 숲과 능역을 가로지르는 개울물 등 빼어난 경관까지 갖춰 찾는 이들이 많다. 구리시의 많은 문화행사들이 이 곳 동구릉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헌릉(태종,원경왕후)과 인릉(순조,순원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헌릉(태종,원경왕후)과 인릉(순조,순원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1186     2020-05-29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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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대 태종과 그의 비 원경왕후의 묘가 나란히 모셔져 있는 헌릉,그리고 제23대 순조와 그의 비 순원왕후가 합장되어 있는 인릉을 함께 헌·인릉이라 부른다. 태종은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탄생하였고, 정종 2년(1400)에 세자로 책봉되고 같은 해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재위 18년 (1418), 세종에게 전위하고 세종 4년(1422)에 56세로 승하하였다.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탄생하여 정종 2년에 정빈에 책봉되고, 정비에 전봉되었으며, 56세로 승하하였다. 순조는 정조 14년(1790)에 탄생하여 그 24년(1800) 11세로 즉위하였고, 재위 34년(1834)에 45세로 승하하였다. 순원왕후는 정조 13년(1789)에 탄생하여 순조 2년(1802) 에 비로 책봉되고, 철종 8년(1857)에 69세로 승하 하였다. 헌릉과 인릉 앞에는 각각 정자각과 비각이 있다. 인릉은 본래 파주군의 장릉 근처에 있던 것을 철종 7년에 서울 서초구로 옮겨온 것이다.

서울 선릉(성종과 정현왕후)과 정릉(중종)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선릉(성종과 정현왕후)과 정릉(중종)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56361     2020-05-29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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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에는 조명이 설치된 부분만 관람 가능
※ 11월~2은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야간관람 중지

선릉에는 조선 제9대 성종과 그 계비 정현왕후 윤씨를 모신 선릉과 제11대 중종을 모신 정릉이 있다. 성종은 세조의 손자이며 덕종(추존)의 둘째 아들로 세조 3년(1457)에 탄생하여 13세(1469)때 즉위하고 재위 25년간 학문을 장려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38세(1494)로 승하하였다. 정현왕후는 우상 영원 부원군 윤호의 딸로서, 성종 11년 (1480)에 비로 책봉되고 중종 25년(1530)에 69세로 승하하였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로, 성종 19년(1488)에 탄생하여 1506년에 즉위하고, 재위 39년(1544) 57세로 승하하였다. 사적 제199호인 선정릉은 도시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한적한 편이며,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능을 둘러싸고 있는 철망 울타리를 철거하여 숲이 있는 구간에는 고풍스러운 담장을 쌓아 돌담길을 만들었다.

서울 의릉(경종,선의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의릉(경종,선의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9260     2020-05-29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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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0대 경종(재위 1720∼1724)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무덤이다. 경종은 희빈장씨의 소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이처럼 앞·뒤로 만든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에서 처음 나타났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 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장명등·문무석과 말·양·호랑이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 면적 - 434,386㎡

서울 정릉(신덕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정릉(신덕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1527     2020-05-29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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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묘소이다. 태조는 고려의 풍습대로 향리와 서울에 각각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강씨는 바로 서울에 있는 부인이었다. 고향에 둔 부인 한씨(韓氏)는 태조 등극 전에 죽었고, 등극과 더불어 왕후의 자리에 앉은 것은 현비(顯妃) 강씨로서 방번(芳蕃).방석(芳碩) 두 형제를 낳았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 의해 현비(강씨) 소생의 두 왕자가 죽자 태조는 정사에 뜻을 잃고 태상당으로 있으면서 자주 정릉에 가서 불공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후 능역의 광대함이 의정부에서 논란이 되었고, 태조가 죽은 뒤로는 정릉에 대한 박대가 노골화하였다가, 태종의 뜻대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서울 태릉(문정왕후)과 강릉(인순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태릉(문정왕후)과 강릉(인순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2378     2020-05-29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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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 201호로 지정된 태릉강릉에는 조선왕조 제11대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를 모신 태릉과 13대 명종과 왕비 인순왕후 심씨를 모신 강릉이 있다. 명종은 형 인종의 유언에 따라 12세의 나이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였으며(1545년),그의 모후인 문정왕후는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최근 TV 드라마에서 유명해진 왕후이기도 하다)주변에는 태릉 푸른동산, 육군사관학교 등 둘러볼 만한 곳이 많이 있다.

[공개제한지역 예외관람 안내]
* 태릉 능침 공간
- 관람시기 : 3~6월, 9~11월 / 매주 토, 일요일 10:00, 14:00
- 관람조건 : 해설사 및 관람위원이 동행

파주 삼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파주 삼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8243     2020-05-29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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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릉(恭陵)

조선 제8대 예종(睿宗)의 원비(元妃) 장순왕후(章順王后·추 존) 한씨(韓氏)의 능이다. 장순왕후는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의 딸로 1460년(세조6) 16세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인성대군(仁城大君)을 낳고 이듬해 1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으며 1472년(성종 3)에 왕후로 추존되었다. 공릉은 당초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묘로 조성된 관계로 초석과 난간이 생략되고 봉분앞에 상석(床石)과 8각의 장명등을 세우고 좌우 양 쪽에 문인석 2기를 세웠다. 또, 봉분주위로 석마(石馬), 석양(石羊), 석호(石虎) 각각 2필씩을 두어 능주변을 호위하고 있다. 문인석은 손에 홀(笏)을 쥔 양식으로 옷주름 등이 조선전기 문인석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조각 수법이 서툴러 전체적인 선이 유연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제9대 성종(成宗)의 원비(元妃)인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韓氏)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딸로 공릉의 장순왕후와는 자매지간이다. 1467년(세조13) 11세에 가례를 올렸고 성종즉위와 더불어 왕비가 되었으나 성종 즉위 5년(1474년) 4월 자식없이 춘추 18세로 승하하였다. 순릉은 조선전기의 능 형태를 따르고 있는데 소담한 돌기둥 난간(난간석주·欄干石柱)을 둘렀으며 봉분앞에 상석과 8각의 장명등을 배 치하고 양쪽으로 문인석과 망주석 2기를 두었다. 또 석양(石羊) 석호(石虎) 각각 2필씩을 두어 능을 호위케 하고 있다.

* 영릉(永陵)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맏아들인 효장세자(孝章世子) 진종(眞宗·추존)과 그 비(妃) 효순왕후(孝純王后) 조씨(趙氏)의 능이다. 진종은 1719년(숙종 45)에 태어나 1724년 영조 즉위와 더불어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28년 춘추 10세의 나이로 돌아가 시호를 효장이라 하였다. 1762년 영조는 둘째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폐위한 뒤 사도세자의 아들인 왕세손(훗날 正祖)을 효장의 아들로 입적시켰다. 효장은 정조 즉위후 영조의 유언에 따라 진종으로 추존되었고 능호도 올려 영릉(永陵)이라 하였다. 효순왕후 조씨는 풍릉부원군(豊陵府院君) 조문명(趙文命)의 딸로 1727년 13세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다음해에 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되었다가 1751년 춘추 37세로 돌아가 효장세자와 함께 왕후로 추존되었다. 영릉의 능형태는 왕릉과 왕비릉을 쌍릉으로 하여 2기의 상석을 앞에 놓았으며 그 중간에 사각옥형의 장명등을 배치하고 문인석 2기와 석양(石羊)·석호(石虎)를 각각 2필씩 배치해 능 주위를 호위케 하였다.

* 공릉 - 조선 전기 세조7년(1461)
* 순릉 - 조선 전기 성종5년(1474)

김포 장릉(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7834     2020-05-29

경기도 김포시 장릉로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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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은 사적 제202호로서 조선 16대 인조(1623-1649)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능의 규모와 규격은 조선 중기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고 능 아래는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있으며 조선 21대 영조와 22대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모시던 건물이기도 하다.

파주 장릉(인조,인열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6099     2020-05-29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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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와 부인 인열왕후(1594∼1635)의 무덤이다. 인조는 광해군 때 인조반정(1623)을 통해 왕위에 올랐으나 이괄의 난(1624),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등 시련이 있었고, 백성의 삶이 어려워지자 강원도에 대동법(1623)을 실시하였다.장릉은 인조가 왕위에 있을 때 정한 파주 북운천리에 있었으나, 뱀과 전갈이 석물 틈에 집을 짓고 있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왕과 왕비가 합장된 무덤 형태이다. 전통적인 십이지신상이나 구름무늬가 아닌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진 병풍석이 무덤을 두르고 있다.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돌로 된 등인 장명등에도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 있는데 이는 17세기 석물문양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이다.

* 면적 - 345,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