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강화씨사이드리조트 루지

강화씨사이드리조트 루지

    2019-09-23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장흥로 223-3

수도권 서부 지역의 유일한 루지, 곤돌라, Food Court, 테마 산책로 등을 갖춘 기쁨과 행복과 사랑을 전하는 강화씨사이드리조트!복잡한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 산과 바다를 만나 그윽한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그 곳! 짙은 숲내음을 맡으며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라서면 전망대에서는 낙조가 아름다운 강화도 해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동양 최대 길이의 "루지"는 1.8km 트랙을 통해 다이나믹하게 내려올수 있으며 온가족이 함께 즐길수 있도록 흥미로운 테마로 꾸며져 있다.

서면1번가

서면1번가

32924     2019-09-23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신천대로62번길 61

부산 부산진구 '서면1번가'는 옛 천우장에서 LG서비스센터까지 폭 8m, 길이 330m 구간으로 서면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예술의 거리'로 유명하다.'서면1번가'를 표시하는 대형 입간판을 중심으로 주점, 카페가 밀집해있다. 화려한 네온사인을 밝힌 주점들과 먹거리 골목을 안고 있는 이곳의 분위기는 매우 흥겹다. 젊은 분위기의 카페와 호프집 그리고 값이 싸고 맛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어 언제나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영화관, 공연장, 게임장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위락시설이 가득하다.서면1번가 거리에서는 봄과 가을에 특설무대를 만들어 축제를 여는데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공연을 펼쳐 한층 더 젊음의 열기가 넘쳐나는 명소가 되고 있다. 주말에는 아마추어 거리악단의 공연과 초상화 그리기,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행사가 펼쳐져 국내 및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황령산

황령산

30134     2019-09-23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 산50-1

* 전형적인 도심의 산, 황령산 * 황령산(荒嶺山)은 부산의 전형적인 도심의 산으로 부산진구, 남구, 수영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해발 427m로 금련산맥 중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이다. 대부분 안산암질로 구성되어 있는 산으로 산정이 비교적 평탄하며 곳에 따라 소규모의 성채경관을 나타내는 기반암이 노출된다. 북동쪽으로 금련산이 연결되나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하천의 개석작용에 의해 해체되어 산지로서의 예리한 맛은 없으며 주위에는 곳에 따라 독립구릉이 분포하고 낮은 산등성이도 여러 갈래로 뻗고 있다. 문헌기록인 『동국여지승람(1486)』에는 누를 黃의 황령산(黃嶺山)으로 기록하여 "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하였고, 『동래부읍지(1832)』에는 거칠황 荒의 황령산(荒嶺山)으로 기록하여 "화지산으로 뻗어나 있으며 마하사가 있다." 고 하였다. 황령산은 동래가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에 동래지방에 있었던 거칠산국(居漆山國)에서 온 산 이름으로 보고 있다. 거칠산국에 있는 산이어서 거츨뫼』라 했던 것이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거칠 고개의 황령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산역이 그리 넓지않아 2~3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인근주민들 조기등산지로, 아베크족의 데이트코스로 각광을 받아왔던 동편은 남구에 접하고 서편은 부산진구에 접하고 있다. 북서쪽 산기슭에는 양정동, 중앙에 전포동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산기슭에 부산시민의 휴식처, 청소년의 수련장이 개장되어 있다. 황령산과 금련산은 망미 연산 양정 전포 대연동 등에서 오를 수 있다. 코스 선택은 교통편을 고려해 편리한 곳으로 결정하면 된다.

해남사

해남사

26457     2019-09-23

울산광역시 중구 기상대길 13

울산광역시의 중심인 중구 북정동에 자리한 해남사는 1936년 근대의 고승인 통도사(通度寺)의 구하천보(九河天輔) 스님이 울산지역의 포교를 위해 세운 통도사 울산포교당이다. 당시 우리 국민들이 일제치하에서 갖은 학대를 당하며 망국의 서러움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불법(佛法)으로써 민생을 구제할 것을 서원(誓願)하여 포교당을 열게 된 것이다. 설법보전에 걸려 있는 주련 중 마지막 2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光相所照咸歡喜(부처님 모습 그 빛이 비추는 곳 모두 환희로워)
衆生忍苦悉除滅(중생들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

이것은 바로 구하스님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스님의 뜻대로 포교당을 연 후 많은 스님들이 뒤를 이어 불법의 심오한 진리를 설하는데 힘썼고, 지역사회의 불자들을 교화하여 많은 신행단체가 구성되는 등 활발한 포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 창건배경 및 역사

해남사의 창건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해남사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통도사의 구하천보(九河天輔, 1872~1965) 스님이, 망국의 서러움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을 불법(佛法)으로 구제할 목적으로 세운 포교당이다. 처음 명칭은 통도사 울산포교당(通度寺 蔚山布敎堂)이었으며, 포교사로는 운송스님이 처음 부임한 후 영암ㆍ자운ㆍ홍법ㆍ성공ㆍ청하ㆍ홍언 등 여러 큰 스님들이 머물렀다. 창건 당시 건물은 법당ㆍ요사ㆍ유치원이었는데, 1970년에 홍언스님이 범종각을 보수하고 1972년에 법당을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지용스님이 범종을 조성하고 유치원 건물을 보수하였다. 이후 1999년에 지장전(地藏殿)을 새로 건립하고 2003년에 오래된 법당을 보수하여, 지역사회의 많은 불자들을 교화하는 등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꽃절(화사)

꽃절(화사)

21153     2019-09-23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덕로 330

꽃절(花寺) 천연석굴은 덕정리 사향산 중턱에 있다. 좌측 석굴벽에 花寺(꽃절)이라는 명문이 음각자로 새겨져 있고, 동굴 중앙 석조대좌(石造臺座)앞면의 조각 기법은 원시불교의 세계를 단순하며 투박하게 그려 졌으며, 양 옆면의 조각은 거신광(擧身光)을 나타냈다. 석굴 안에 옹달샘 석정(石井)이 있으며 석굴 앞에 거북 바위(龜石)가 있다.

* 연혁 *

이 꽃절(花寺) 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왔다고 전해지며, 꽃절[花寺]에 대한 기록은≪조선보물고적자료≫≪전국유적목록≫≪문화유적총람≫≪충좌도각읍지도 1777 ,備邊司印方眼止圖(서울대규정각)≫≪조선후기지방지도1872)≫등 고증 문헌자료, 지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1937년에 김승원이 꽃절(花寺)를 청진암(淸眞庵)으로 변경하여 창건하였고, 1981년 신도회에서 청진암(淸眞庵)을 화암사(華庵寺)로 바꾸었다. 2000년도에 화암사(華庵寺)는 덕정리 442-1번지로 이사하여 원래대로 꽃절(花寺)이 되었다.

주산지 (청송 국가지질공원)

주산지 (청송 국가지질공원)

150337     2019-09-23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주산지는 1720년 8월 조선조 경종원년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 10월에 준공한 저수지다. 길이는 200m이고 평균수심이 약 8m인 주산지는 준공이후 현재까지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밑바닥이 드러난 적이 한번도 없다. 주산지에는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라는 치밀하고 단단한 암석이 아래에 있고, 그 위로 비용결응회암과 퇴적암이 쌓여 전체적으로 큰 그릇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비가 오면 비응결응회암과 퇴적암층에서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이처럼 풍부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주산지에는 150여 년이나 묵은 왕버들이 자상하고 있는데, 그 풍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명소다. 암석, 물, 나무가 어우러져 사계절 다른 풍광을 선보이는 주산지는 2013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5호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가 매우 높은 자연유산이다.

<출처 : 청송 국가지질공원>

환선굴 (대이리 동굴지대)

환선굴 (대이리 동굴지대)

250247     2019-09-23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환선로 800

환선굴은 약 5억 3천만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 동굴로, 동양최대의 크기이다. 동굴내부에는 미인상, 거북이, 항아리 등 여러 모양의 종류석, 석순, 석주가 웅장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 환선굴에서 발견된 동물은 모두 47종이며, 이 중에서 환선장님좀딱정벌레 등 4종이 환선굴에서만 발견되거나 환선굴이 모식산지로 기록되어 있다. 2010년 4월부터 환선굴 모노레일 운행을 시작하여 좀 더 쉽게 환선굴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부산 차이나타운특구(상해문.상해거리)

부산 차이나타운특구(상해문.상해거리)

38040     2019-09-23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179번길 1

* 중국과의 외교 창구, 상해문.상해거리 *

동구 초량동 부산역 앞 큰길인 중앙로 맞은편 화교학교를 중심으로 중국영사관(1884년 8월 설치)이 있던 자리를 구한말에는 청관이라 했다. 중앙동의 용두산 주위는 왜관이 있었고, 초량동에는 중국조계지가 설치되어 왜관에 대칭되는 말로 청관이라 한 것이다. 당시 주위에는 중국(청국) 사람들의 점포를 겸한 주택이 형성되었다. 그 점포가 있는 거리를 청관거리라 했다. 그때의 청관거리는 초량 앞바다가 매축되기 이전이어서 청관거리 동쪽인 오늘날의 부산역 자리는 푸른 소나무가 우거지고 흰모래가 펼쳐진 백사청송(白沙靑松)의 바닷가였다. 그 당시는 초량에서 영주동으로 가려면 청관거리를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청관거리 점포에는 비단, 포목, 양복지, 거울, 꽃신 등 중국의 상해 등지에서 수입해온 상품이 많았다. 소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 쌓아두고 지방상인에게 도매도 크게 했다. "비단장사 왕서방 마음이 좋아 띵 호와"의 노래 그대로 영남 지방의 혼수감은 이 청관에서 많이 나왔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 일본세력이 초량까지 밀려오자 청관거리도 그 빛을 잃어갔다.

광복과 한국전쟁이 일어나 미군이 진주하고 중앙동의 텍사스촌이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로 소실되자, 어느새 초량의 청관거리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청관거리란 이름을 잃어가면서 텍사스거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갔다. 그때 여인들은 그 뒤 국제결혼을 하여 이곳을 떠난 사람도 많다. 주둔 미군이 줄어들자,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외국선원과 미국군함의 병사들이 찾아들었다.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관광상품거래의 명소로 바뀌어 갔다. 1990년대에 들어 공산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자 러시아의 선원과 보따리 장수들이 이곳을 찾아 상가는 성업을 이루었다. 이 거리는 청국인에서 미국인, 외국선원, 그리고 이제는 러시아인들, 여러 외국인들을 거쳐 장사로, 환락가 이제는 관광상품의 명소로 역사의 장을 바꾸어가고 있다.

* 상해의 문 건립 배경 *

최근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중국 상해와의 유대를 기념하고 1884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교의 집단거주지인 이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최근 상해의 거리로 명명하고 이전의 문화적 풍류를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새천년을 맞아 부산시와 상해시가 공동으로 "상해의 문"을 건립하였다.

빛가람 전망대

빛가람 전망대

    2019-09-23

전라남도 나주시 호수로 77

나주혁신도시의 랜드마크로 우뚝 선 빛가람전망대는 혁신도시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빛가람전망대와 함께 조성된 4호문화공원(52만㎡) 인공호수등과 다양한 체험시설등이 있어 찿아오는 관광객에 다양한 즐길거리를 만들어주고있다.

북악산

북악산

48368     2019-09-23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42

서울분지를 둘러싸는 내4산(內四山)은 북악산·남산·낙산·인왕산이다. 그 중 가장 높은 것은 북쪽의 북악산(北岳山)으로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이다. 경복궁 북쪽에 솟아 있고 일명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성벽이 능선을 따라 보존되어 있고 4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일명 자하문(紫霞門)이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에 있어 시내 중앙지와 쉽게 연결된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스카이웨이와 남동쪽 산기슭의 삼청공원은 좋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북악산 숙정문

북악산 숙정문

47065     2019-09-23

서울특별시 성북구 대사관로 1

숙정문은 북한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5년(1396)에 완공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그리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평소에는 닫아두었기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 길은 나있지 않다. 1976년 북안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달았다.

소충사

18052     2019-09-23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산성로 725-23

* 많은 참배객이 다녀가는 임실군 대표적 보훈시설 *

소충사는 구한말 정재 이석용장군과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28의사를 배향하는 사우(祠宇)이다. 전북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산130-1번지 일원에 부지 20,300평에 분묘2기, 사당20평, 기념관43평, 관리사 20평 등의 시설을 2,365백 만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1992년∼2002.11월까지 조성하였다. 항일투쟁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순절하신 충의열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시설한 곳으로 항일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으로 많은 참배객이 다녀가고 있는 임실군의 대표적인 보훈시설이다.

지의동(知義洞)과 동룡동(東龍洞)에 있는 28의사의 묘소는 1988년 5월 18일 성수면 오봉리 산1번지로 임시 합장하였다가 1995년 11월 독립유공자를 위해 성역화사업으로 조성한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산 130-1번지 소충사에 안장 하였으며, 정재 이석용장군의 묘도 전남 영암군 월출산에서 같은해 유족들의 천묘로 28의사와 함께 소충사에 안장 되었다.

*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 의병장으로 삶을 살았던 이석용을 기리는 곳 *

정재 이석용의병장은 성수면 삼봉리에서 태어나 17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한 출중한 인물이였다. 을사조약으로 일제가 침략의 야욕을 노골화하자 성수산 골짜기의 상이암에 동지를 규합하여 1907년 8월 28일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장의 동맹단」을 결성하여 의병장으로 추대 되었는데 당시 의병의 수가 5백여명에 이르렀다. 그 후 2년에 걸쳐 진안에 주둔한 왜군을 격파하고 영광, 고창, 용담 등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신식 무기로 무장한 왜군에 당하지 못하고 1908년 4월 임실에서 크게 패하자 의병들을 해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정동석의 배반으로 1913년 일경에 체포되어 1914년 전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37세를 일기로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였다. 정부는 1962년 3월1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매년 7월7일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1957년 7월 이승만대통령의 소충사(昭忠祠)휘호와 이박사 친제의「조의단(弔義壇)28의사 추념문」을 받아 비에 새겨 놓았다.임실군에서는 충.효.열의 정신을 선양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임실군민의날 행사를 소충제라 정하여 매년 개최하다가 사선녀의 아름다운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지역문화행사인 사선문화제와 1999년8월에 통합한 소충. 사선문화제를 매년 양력 10월5일을 전후하여 관촌사선대 및 임실군 일원에서 개최하고 있으며 이때 소충사를 찾아 헌화 분향하고 충의열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