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청주 흥덕사지

청주 흥덕사지

31317     2018-09-21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

*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의 거점, 흥덕사지 *

양변산 동남쪽 기슭의 옛 연당리 마을에 있는 흥덕사지는 1985년에 한국토지공사에서 시행하던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 중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공사를 중단하고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된 고사지이다. 사찰의 창건 연대와 규모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의 간기에 고려 우왕 3년 (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음을 명기(明記)하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으로 1972년 "세계도서의 해"에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것이다. 그러나 흥덕사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던 중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청동금구와 청동불발에 "서원부 흥덕사"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이곳이 바로 흥덕사지임을 입증하게 된 것이다. 발굴 결과 남북 일직선 상에 중문과 탑, 금강, 강당이 배치되고 주위에 회랑이 돌아간 신라의 전통양식인 단탑가랍식(單塔伽藍式)으로 밝혀졌으며, "대중삼년(大中三年)" 명와(銘瓦)가 출토되어, 신라 문성왕 11년(849년)에 이미 이곳에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발굴 완료 후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어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개년에 걸쳐 43억 원을 투입하여 40,992m²(12,400평)의 부지 위에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발달과정을 살필 수 있는 고인쇄박물관과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금당(金堂)과 3층 석탑(三層石塔)을 복원하고, 1992년 3월 17일에 개관하였다.

* 불조직지심체요절에 대하여 *

흥덕사지에서 인쇄된 《불조직지심체요절》은 1440년에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세계심판》보다도 63년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유일하게 프랑스 파리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어은돌해수욕장

어은돌해수욕장

35987     2018-09-21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연들길 92
041-670-2114

어은돌해변은 좁은 모래사장으로 영화드라마에 나오는 전통적인 해변을 연상시킨다. 특히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좋으리라 생각되며 가족단위로 민박을 이용하면서 쉴 수 있는 곳이다. 해변 길이는 1㎞, 폭은 250m 정도이며 해변 형태는 자갈모래로 되어 있다. 해안의 끝으로 보이는 석양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마을입구엔 10여가구의 민박집이 있으며, 물에서 막 끌어올린 어획물을 바로 공급할 수 있는 횟집이 있다.

김해 구지봉

김해 구지봉

29336     2018-09-21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157번길 31-16

* 김수로왕 탄생설화의 중심지, 구지봉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龜山洞)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로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기념물 제5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3월 7일 사적 제429호로 변경되었다. 가야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이 탄강(誕降)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원래는 거북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하여 구수봉(龜首峰)이라 하였는데, 지금 수로왕비릉(首露王妃陵:사적 74)이 있는 평탄한 위치가 거북의 몸체이고, 서쪽으로 쭉 내민 봉우리의 형상이 거북의 머리 모양 같다고 하여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정상부에는 기원전 4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남방식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은 5∼6개의 짧은 받침돌 위에 지름 2.5m 정도 되는 덮개돌이 덮여 있고 그 위에 한호(韓濩)가 쓴 것이라 전해지는‘구지봉석(龜旨峰石)’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가야 건국신화와 관련하여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 김해김씨의 시조, 김수로왕 탄생 설화 *
『삼국 유사』 「가락국기」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서기 42년인 신라 유리왕 19년 3월의 어느 날, 이 곳 마을 사람들은 북쪽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곳에 가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산꼭대기 흙을 뿌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소리만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그 말에 모두 기뻐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자,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땅에 떨어졌고, 거기에는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합 (金盒)이 있었다. 그 뚜껑을 열자 황금빛 알이 6개가 있었는데, 후에 거기에서 아기가 나와 6가야국의 왕이 되었으며, 그 중 가장 처음 태어난 아기가 김수로 왕이다. 이처럼 구지봉은 비록 야트막한 구릉지에 불과하지만, 가야의 시조 탄생 설화의 주무대로서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구지봉을 관통하는 도로공사로 거북의 목부분이 끊겼는데,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 하여 도로 위에 인도를 놓아 끊어진 목 부분을 연결하였다.  

설악산국립공원(남설악)

설악산국립공원(남설악)

53043     2018-09-21

강원도 양양군 서면 약수길

산중미인 설악산. 한반도의 중추인 태백산맥 중에 가장 높은(대청봉 1,708m) 설악산은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봄에는 철쭉 등의 온갖 꽃과 여름의 맑고 깨끗한 계곡물, 설악제 기간을 전후한 가을 단풍, 눈 덮인 설경 등 사시사철 어느 때나 찾는 이의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한계령과 미시령을 경계선으로 동해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이라 부르며, 한계령 이남 오색지구를 남설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남설악 지역은 옛날부터 오색약수와 온천이 유명하고 주전골 일대의 용소폭포, 십이폭포, 여신폭포 등이 대표적인 경관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다. 점봉산(1,424.2m)도 남설악구역에 속한다. 남설악 지역에서는 오색-대청 코스, 한계령-끝청-대청 코스 등이 대표적 등산 코스이다. 오색 코스 길목은 그린야드호텔 위편, 국도변의 국립공원 매표소이고 한계령 코스 길목은 한계령휴게소 옆 설악루 계단이다.

민둥산 증산초교지구

민둥산 증산초교지구

97751     2018-09-21

강원도 정선군 남면 민둥산로 12

가을 억새산행지이자 철도산행지의 대표적인 산이 정선 민둥산이다. 민둥산은 해발 1118.8m로 억새산이라고 할 만큼 온통 억새로 뒤덮혀 있다. 산 7부능선까지는 관목과 잡목이 우거져 있고, 정상부분은 나무가 거의 없다. 산세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끝없이 둘러친 가을 억새군락지는 많은 등산객들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하다. 민둥산 억새는 거의 한 길이 넘고 또 매우 짙어서, 길이 아닌 일부 지역은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오르기 쉽다.
정상에는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전망은 정선군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동쪽으로 함백산, 지장산 남쪽으로 두위봉 백운산, 서쪽으로 가리왕산 백석봉 북쪽으로 상원산, 노추산, 상정바위, 괘병산, 고적대, 멀리 두타 청옥산, 태백산 등이 조망되며. 화암약수터로 이어져 화암팔경과 연계, 1박 2일 코스의 휴양을 겸한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국립임실호국원

19644     2018-09-21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호국로 420

* 호국영령을 기리는 공간 *
국립임실호국원은 임실읍내에서 순창, 강진방면으로 약12km지점, 백련리에 있다. 국립임실호국원은 6.25전쟁시 조국수호를 위해 신명을 바치셨던 참전용사와 자유우방을 돕기 위해 월남에 참전했던 월남참전용사 그리고 국가유공자들의 고귀한 업적과 공적을 기리며 이분들의 위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 백련리 551번지 일원에 부지 10만 6천평에 묘역 22,798평(2만기안장), 현충탑 26m, 현충관 318평, 충렬관 636평(3만기안치), 관리사 170평 등의 시설을 98년 8월에 착공하여 3년 3개월의 긴 공사 끝에 2001년 11월에 완공하였다. 2002년 1월에 개원한 은 국가유공자 및 참전유공자들의 호국정신을 계승하는 호국성지로서만이 아닌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호국문화의 메카역할을 수행함은 물론, 지역민과 학생들의 안보교육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연간 3만 여명에 이르는 내방객 및 참배객이 방문하고 있는 주요 보훈시설이다.

* 국립임실호국원의 주요 시설 *
국립임실호국원은 현충탑, 현충문, 충렬관, 현충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충탑/현충문은 유가족과 참배객을 위한 시설로서 호국영령들의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고자 중앙에 높이 26m의 탑이 세워져 있고 좌우측에 호국영령의 승천을 기원하는 비천상과 자유와 평화를 기리는 군상부조가 있다. 현충관은 호국영령들의 안장식을 거행하는 행사장으로 1층은 168석의 합동안장식 행사장과 임시 봉안실이 마련되어 있고, 2층은 호국안보전시관으로 우리민족의 전쟁역사를 한눈으로 볼 수 있으며, 호국용사들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충렬관은 2001년 1월 1일 이전에 사망하신 호국영령들을 안치하는 곳으로 지하 1층과 지상2층에 총 3만기를 안치할 수 있으며, 1층에는 안치전 가정의례를 지낼 수 있는 16개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어 삼우제나 참배시 이용할 수 있다.

순화리삼층석탑

15542     2018-09-21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295-11

* 백제시대 옥천사의 절터였던 것으로 추측 *
순창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탑이 서 있던 터에서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당시의 옛 절터로 추측된다. 원래 탑을 세울 당시에는 기단(基壇)이 2층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이 땅속에 묻혀 위층 기단만 땅위로 드러나 있고, 그 위로 3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이 쌓여 있다. 지금 이 3층 석탑은 북동쪽으로 약 7도 가량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탑이 세워진 지반의 한쪽이 침하되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전 옥천사(玉泉寺)경내에 건립되었던 것이라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이 탑 주위에서 백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조각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이곳에 옥천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 화려하지는 않으나 매우 정교하고 수준 높은 작품 *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기고,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얇고 넓다란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느린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각 지붕돌 윗면 꼭대기에는 윗돌을 괴기 위한 높은 단을 두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이 보이고 있다. 고려 초기에 만든 이 탑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매우 정교하고 수준 높은 작품이다. 이중으로 된 받침대가 넓고 제 1층의 몸체는 웅장하고 크다. 그러나 2층부터는 그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 날렵한 느낌을 준다. 옛 백제지역에 서 있는 고려 전기의 탑으로서, 백제 양식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가 느껴진다.

강증산 탄생지

17327     2018-09-21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신송길 34-2

* 증산교의 시조 강일순 *
강일순(姜一淳)은 진주강씨(晉州姜氏)이고 이름은 일순(一淳)이며 자는 사옥(士玉)이며, 호는 증산(甑山)이다. 1871년 9월 19일고부군 답내면 서산리에서 아버지 흥주(興周)와 어머니 권씨(權氏)의 아들로 전북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신송마을 438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신흥종교의 비조(鼻祖)라 칭하는 증산은 30세가 될 때까지 조선 8도를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고 1901년7월 5일 모악산 대원사에서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증산의 종교사상은 최수운(崔水雲)의 동학사상과 함께 우리나라 근세사회의 사상의 효시이다.

* 동학사상과 천지공사 사상 *
동학사상은 인내천으로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라는 인간존엄 사상을 자각시켰으며 후천개벽으로 지상선경을 이룬다는 것으로 현실의 기존질서를 타파하고 혁명적 의식을 고취시켰다. 이것이 갑오동학혁명으로 발전한 것이고, 증산사상은 이보다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발전했다. 증산 사상의 핵심은 천지공사라는 형태로 구체화 되고 있다. 이는 옥황상제의 만능의 권능으로 천, 지, 인의 삼계를 모순된 선천에서 후천으로 뜯어 고친다는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 *
천지공사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이니 인간은 가장 존귀한 것이다. 사람의 노력에 의하여 자연, 문화, 사회가 재조될 수 있다 하였으니 자연생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인위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909년6월 24일 동곡리 김형렬 집에서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증산교가 성지라고 하는 모악산 금산사를 중심으로 18개의 교단이 집결되어 있다.

순평사금동여래좌상

15770     2018-09-21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금산로 66

* 우아하고 귀족적인 모습의 금동여래좌상 *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순평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전체 높이 104㎝, 상호높이 30㎝, 어깨너비 42㎝이며, 우아하고 귀족적인 모습을 보인다. 대좌나 광배가 없고 단지 불신만 있으나 거의 원형으로 잘 남아 있다. 자세는 결가부좌 한 오른발을 왼다리 위로 올리는 길상좌의 자세이다. 가사의 착의법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의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통식으로 나타난 것과 같고, 승각기의 상단은 일자형으로 고려 후기에 약간 호형(활처럼 굽은 모양)을 이룬 것과는 대조적이다.

*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을 이어받은 *
고려 후기 대부분의 불상 치레장식 안에는 화문이나 당초문 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불상의 치레장식 안에는 이러한 문양들이 생략되어 있다. 수인은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손은 따로 만들어 팔목에 끼우는데 이 불상의 손은 석고로 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원래의 손이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후기에는 두 가지 형식의 불상이 조성되었는데 하나는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을 이어받은 우아하고 귀족적인 모습의 불상들이고, 또 하나는 라마계 양식의 불상들이다. 이 금동불좌상은 바로 전자의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조성 시기는 14-1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구전에 의하면 전에는 남원에 있는 어느 사찰에 있었고, 1945년 후에 전라남도담양의 어느 개인이 소장했다가 전라남도 담양군 양각리의 백양사 포교당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거의 완파 지경에 이르러 있던 것을 순평사에서 수습하여 중수개금불사하고 대웅전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옥천암(진안)

17291     2018-09-21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주용로 227-164

*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흘러 *
전북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천태산(天台山)에 자리 잡고 있는 옥천암(玉泉唵)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절 입구의 계곡에는 항상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흘러 옥류천, 혹은 옥폭동이라 해서 예로부터 유명했는데, 절 이름은 아마도 여기에서 유래한 듯하다. 원래는 용담현 소재지에 있어 그 규모가 컸던 것 같으나 일본강점기 이후 용담댐 건설 때에 사유(寺有)토지가 없어지며 이전, 현 위치에 있었다.

* 진성왕 때 정현선사가 창건한 사찰 *
절의 창건은 892년(진성왕 6) 정현선사(定玄禪寺)에 의해 이뤄졌다. 정현 선사의 정확한 활동 시기는 알려지지 않지만 [삼국사기]에 보면 894년 고운 최치원(催致遠)이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 은둔할 때 현준(賢俊) 스님 등과 셋이서 함께 도우(道友)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다.그 뒤의 연혁은 알려지지 않고, 조선 후기인 1798년(정조 22) 옛 용담현의 군수인 김이례(金履禮, 1740~1818)에 의해 중창되었다. 김이례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군 재직 당시 고을을 잘 다스려 덕망이 높았고, 1810년(순조 10) 첨지중 추부사오위장(僉知中樞附事五衛將)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1898년 군수 김우식(金宇植)이 퇴락한 절을 중수했다. 이 같은 내용은 관음전 마루에 걸린 [옥천암재차수리기]를 통해 알 수 있다. 1928년 관음상을 보수하고 독성탱화를 봉안했으며 이듬해부터 1929년까지 칠성탱화, 신중탱화, 아미타극락회도 등을 조성했다. 최근에는 1980년 삼성각을 새로 지었다.

자천대

23276     2018-09-21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자천대는 서해안에 위치하여 지형은 넓고 평평하며 샘과 돌이 가히 즐길만 하다. 세상에 전하기는 최치원이 놀던 곳이라 한다" 고 전해진다. 군산의 유일한 2층 누각 정자인 자천대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2층 누각 팔각지붕 형태인데 조선후기의 누각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다. 자천대는 옥구현 서쪽에 위치한 하제 포구 인근 바닷가에 있던 바위산의 이름 이었다고 한다. 바위산 옆 연못의 빛깔이 항상 붉어 붉은 연못가의 바위산 이라는 뜻에서 자천대라고 불렀으며 일제강점기 1934년 비행장 확장공사로 석공들이 부쉈는데 그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천대의 2층 누정을 당시 유림들과 옥구군수였던 최학수 씨가 나서서 일본군의 군장비를 동원하여 옥구향교로 이전하였고 이때부터 경현제 혹은 자천대로 불렀으며 1967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다. 자천대는 “소년 시절의 최치원이 신라의 무관으로 내초도에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와 같이 살았는데, 이 곳 정자에서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까지 들려 사신이 건너와 그를 데리고 갔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하자, 자천대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한다.

성덕암(창원)

20369     2018-09-21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서7길 32-16

성덕암은 마산 합포구 추산동에 위치한 조계종 제14교구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마산의 가장 중심지역인 무학산의 남쪽 기슭에 돌출한 낮은 야산인 환주산의 서남쪽 골짝을 둘러싼 산등성이에 있으며 남쪽으로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창원지역이 바라 보이는 곳에 있다.
무학산지가 마산의 서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여러 갈래 중 무학연봉의 동쪽 능선을 따라 뻗어 내리다가 성호동 뒤에서 솟아 다시금 남쪽 추산동 뒤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뻗어 있는 환주산 지형이라 수려한 경관은 물론이고 도심과의 동선 또한 그리 멀지 않다. 석축을 의지삼아 경내로 들면 높직한 보광전(普光殿)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남해 바닷바람에 물결치고 있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밀집된 도심의 절묘한 조화가 확보되고 마산근대역사의 현장인 환주산 자락이 병풍처럼 외호하는 성덕암은 1933년 창건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숭배의 대상을 갖고 있다. 산신이나 용왕 등이 그 대표적 예인데 이곳 성덕암의 발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로부터 환주산 일대 사람들은 산제당이라 불리는 성덕암 옛터에서 환주산을 주관하는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냈는데 이러한 민간신앙이 후일 불교와 습합하여 이루어진 형태로 볼 수 있겠다. 현재 성덕암 경내에는 응애나무라 불리는 거대한 고목이 있고 그 고목 밑에 산제당이라는 조그마한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약 200∼300년 전쯤 될 것이라 추측할 수 있으며 부녀자들이 장수식재를 빌며 산신에게 제사하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성덕암에는 산제당 자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나 산신을 모신 산령각은 창건 당시 새로이 조성하여 바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시멘트로 볼품없이 지어진 이 산제당 자리에는 신도들이 배를 타고 나가는 어부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모신 석조 불상 이십여기가 부조형태로 봉안되어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 가정 원불 모시기 풍습을 엿볼 수 있는 흔치않은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