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귀신사(김제)

귀신사(김제)

25005     2020-01-23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

귀신사는 금산사에서 모악산 서쪽 고개를 통하여 전주로 넘어가는 길 옆에 있는 청도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의 이 절은 대한 불교 조계종에 속해 있는데 처음 세워질 때에는 화엄종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절은 의상대사(義相大師)가 문무왕(文武王) 16년(676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귀신사에서 이 절에 관하여 여러가지 조사를 하고 있는 박희선(朴熙善)씨는 백제 법왕(百濟 法王) 때 왕실의 내원사(內願寺)로서 처음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써 귀신사 경내에 있는 석수(石獸)의 남근석(男根石)을 들고 있다.

* 석수
석수의 몸길이는 158cm이고 높이는 62cm이다. 등에 올려진 석주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이 72cm, 윗부분이 40cm이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다. 돌짐승상은 삼층 석탑이 서있는 방향과 달리 서 있다. 멀리 보이는 규봉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다. 이곳은 모악산 봉우리들로 둘러 싸여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 멀리 규봉이 남의집 담을 기웃거리듯 살짝 들여다보는 형상이라 이 돌짐승을 세웠다 한다. 한편 그 돌짐승상들은 '석등'을 올려놓은 짐승이였고, 석등과 석주는 그 모양이 완전히 파손되어 현재의 모양으로 남아서 그 의미가 잘못 전해지고 있다.

이 절의 이름은 국신사(國信寺), 귀신사(鬼神寺), 구순사(狗脣寺) 또는 귀신사(歸信寺) 등으로 불렸는데, 각각의 이름이 어느 시기에 그렇게 불렸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절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인 3층석탑을 비롯하여 지방유형문화재 제64호인 석수와 지방유형문화재 제63호인 부토(浮屠) 등의 석조물이 있으며, 건물로는 보물 제 826호인 대적광전(大寂光殿), 명부전(冥府殿) 그리고 한 채의 공양 집이 있다.

관음사(제주)

관음사(제주)

35811     2020-01-2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록북로 660

제주시 아라동 한라산 동북쪽에 기슭에 있다.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다. 조선 숙종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이 제주에 잡신이 많다고 하여 사당과 함께 절 5백동을 폐사시켰을 때 폐허가 되었다. 그 뒤 1912년 비구니 봉려관이 다시 창건하여 법정암이라고 했다. 봉려관은 원래 떠돌이무당이었으나 1901년 비앙도로 가던 중 우연히 풍랑을 만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었다.이에 감응하여 비구니가 되어 이 절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 한 때 주민의 반대로 한라산으로 피신을 했는데, 1912년 승려 영봉과 지사 도월의 도움으로 법정암을 창건했다. 그 뒤로 신도가 늘어나자 절 이름을 관음사로 바꿨다.조계종의 제 23교구 본사로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1964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한라산 등산의 기점 지역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원주 법천사지

원주 법천사지

23996     2020-01-23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 주변에 문화재가 많은 폐사지, 법천사지 *

원주시 부론면 오봉산 기슭에 위치한 법천사의 옛터이다. 1982년 11월 3일 강원도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8월 31일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66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7만 1,338㎡이다. 사지에는 법당 등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은 없으며, 석조물로 고려 선종 2년(1085)에 건립된 높이 5.54m의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 59호) 1기와 법천사지 당간지주(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 현재 경복궁 경내에 있는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4호), 그 밖에 석탑재. 파불 등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옛 법천사 경내였을 것으로 믿어지는 주변일대에는 민가가 들어서고 대부분 농경지로 변했으며, 곳에 따라 부락의 민가 안에 장대석 석축을 볼 수 있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한 사찰로서, 고려 중기 불교의 양대교단이었던 법상종과 화엄종중 법상종(유식종)계의 사찰이었다. 특이 지광국사 해(984~1070)이 초년에 수학하고 말년에 입적한 곳으로 이때가 전성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 초기 학자인 태제 유방선이 이 절에서 강학을 하니 학업을 받으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며, 권람, 한명회, 강효문, 서거정 등의 학자들이 이 곳에 모여 시를 읊어 시문을 남겼다고 한다.

*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에 대하여 *

법천사지에 있었던 부도탑인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4호)은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으며, 현재는 경복궁 경내에 있다.사적 제466호인 법천사지에 있으며,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워진 5.54m 높이의 이 석비는 고려시대 석비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는 걸작품으로 조각 또한 정교하다. 귀부는 넓은 지대석 위에 놓였고 밑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백련사(강화)

백련사(강화)

35518     2020-01-23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고려산로61번길 270

고구려 장수왕 4년 병진(서기416)에 고려산을 답사하던 천축조사가 이 산 상봉 오련지(5개의 연못)에 오색연화가 찬란히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오색 연꽃을 채취하여 공중에 날려 그 꽃잎이 떨어진 곳마다 가람을 세웠다. 이곳은 그 중 백련이 떨어진 곳에 세운 절이다.조선 순조 6년 병인년(1806년) 3월에 서산대사 제 6대손 천봉후인 의해당 처활대사의 사리비와 부도탑이 건립되었다. 조선 고종 광무 9년 (서기1905년) 을미년 봄에 인암화상이 화주 박보월과 함께 본가람을 중건하였다. 서기 1967년 정미년 봄에 비구니 한성탄이 극락전과 삼성각을 중수하였다.철불아미타불 좌상은 보물994호 지정되었으나, 도난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이한때 이곳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국형사

국형사

21564     2020-01-23

강원도 원주시 고문골길 155

* 신라 경순왕 때의 사찰, 국형사 *

신라 경순왕 대에 무착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고문암(古文庵)이라 하였고 무착대사는 이곳을 호법대도량으로 하여 불도에 정지하였다고 한다. 창건연대가 신라시대라고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당시의 유물, 유적은 현재 남아있지 않는 형편이다. 조선조 태조(太祖)가 이 절에 동악단(東岳壇)을 쌓아 동악신을 봉인하고, 매년 원주와 횡성, 영원, 평창, 정선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조선 정조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을 얻자,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정종(政宗)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도 있다.1907년 벽하(壁河)와 응송(應松)이 중창하였으며 1945년 자항(慈航)이 1974년에는 김용호가 각각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무애당, 관음전, 요사 등이 있으며, 진암당대선 사영주탑과 그 옆에는 망실된 부도 1기가 있다.그리고 봄과 가을에 호국대제를 봉행하는 동악단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관음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8작집이다. 이 건물의 대부분은 보영(普英) 주지 스님이 최근에 중창한 것이다.

* 국형사 동악제단에 대하여 *

동악제단은 현재 원주시 행주동 국형사 (98번지) 근처에 자리해 있다. 동악단에는 조선 정종 때 공주의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려 동악산 신령의 가호에 의해 완치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건물은 근년에 신축한 것으로 토단만 남아있어 동악단을 지었지만 2001년 7월 뇌전으로 불에 탄 이후 10월부터 복원작업에 들어갔다.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맛배집으로 좌우에는 방풍판이 있고, 주변을 돌담으로 에워싸 신단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 가장 오래된 부도 국형사 잔암사부도 *

잔암사 부도는 국형사 경내에 자리해 있다. 국형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부도로써, 석종형으로 전체 높이 1.74m의 중형부도이다. 탑신 표면에는 '진암당대선사영주탑' (晋庵堂大禪師靈珠塔)이라는 글자가 왼쪽에는 '승정삼기미사월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부도가 진암당대사의 묘탑이며 조선 정조 23년(1799)에 건립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불곡사(창원)

불곡사(창원)

25565     2020-01-23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암로 55

불곡사는 935년 고려 태조 18년 진경이 창건했다. 그 뒤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29년 우담 화상이 옛날 절터에 드러나 있던 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6호) 을 파내어 비로전에 모시고 다시 세웠다. 중창전 불곡사 뒤쪽은 가음정과 대방동, 사파정을 왕래하는 길이 있었는데 이곳 길가에 불상과 무수한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어 이곳을 "부처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불곡사는 비로전을 비롯하여 일주문(지방유형문화재 제133호)과 탑재, 광배전, 이건비, 남무하미타불비 등이 있다. 일주문은 원래 창원부 객사 3문 중의 하나로서 웅천 향교에 있던 것은 1943년 우담이 이 절로 옮겨 온 것이다.

* 불곡사의 건립 배경과 걸어온 길 *

불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비음산(飛音山)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그러나 불곡사의 창건 연기를 알 수 있는 사료는 거의 없다. 창원 지역에서 구전되는 설화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인 917~923년에 국사 진경(眞鏡, 854~923)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한국불교사찰사전』에는 935년 진경이 창건했다고 전한다).그리하여 인근에 있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일파인 봉림산문(鳳林山門)의 봉림사(鳳林寺)와 돌북을 치면서 법담(法談)을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불곡사의 창건자로 전해지는 진경은 봉림산문의 개산조인 심희(審希)로, 보물 제363호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의 주인공이다.

따라서 불곡사도 봉림사 창건과 비슷한 시기에 진경국사에 의해 창건되어, 두 사찰을 왕래하면서 법담을 나누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봉림사 폐사지에서 불곡사까지의 거리는 대략 4㎞ 정도이므로 거리나 시간상으로 볼 때 그러한 사실이 충분히 뒷받침된다. 또한, 이러한 추측을 더욱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현재의 불곡사지에서 발굴된 창원시의 유일한 지정 보물인 통일신라시대의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佛谷寺石造毘盧舍那佛坐像)을 들 수 있다.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반에 조성되었다고 추측되는 이 석불좌상은 진경국사가 활동했던 시기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된다. 따라서 구전되는 창건 연기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자운암(서울)

자운암(서울)

51642     2020-01-23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자하동이라고 불리웠던 서울대학교 신공학관 뒤에 있는 골짜기 중턱에 위치하며 무학대사가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창건한 절이다. 남허 스님이 남긴 자운암 기록에는 영조 13년(1734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성종이 어머니를 위해 만든 위패가 아직까지 전해오고 있다. 현재의 자운암은 1976년 보륜스님이 자운암에 들면서 대웅전, 칠성각 산신각을 세우고 비로소 사찰다운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자운암의 대웅전은 원래 관음보살만 모셨기 때문에 관음전이었으나, 어느날 보륜스님이 석가로부터 계시를 받고 석가모니 불상과 그 좌우에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누각 이름도 대웅전으로 고쳤다고 한다.

북한산성

42003     2020-01-23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75

북한산성은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할 때 도성을 지키는 북방의 성으로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축성되었다. 이 때 백제의 주력군이 이 성에서 고구려의 남진 세력을 막았다. 그 후 근초고왕의 북진 정책에 따라 북정군의 중심 요새가 되었다.그러나 개루왕 21년(475)에 강력한 고구려군이 북한산성을 7일간 공격하여 치열한 공방전 끝에 성이 함락되자 백제의 도성도 유린되어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군에 잡혀 살해당했다.이 싸움으로 인하여 백제는 공주 웅진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연합 전선으로 막았다. 진흥왕 14년(553)에 신라는 백제의 영토였던 한성 지역을 신라의 영토로 빼앗았다. 진평왕 25년(603) 8월 고구려 장군 고승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포위공격하자 신라 진평왕이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였으며 무열왕 8년(661) 5월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말갈 장군 생개와 더불어 북한산성을 20일간 포위 공격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이때 북한산성 성주 동타천은 성 내 주민을 합한 2,800명의 인원으로 필사 결전을 감행하여 이 산성을 방어하였다.

* 주요문화재
1)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터(사적 제 228호)
2)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 215호: 종로구 구기동),
3) 마애석가여래입상(보물 제 657호: 은평구 진관내동)
4)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제 611호: 고양시 북한동)
5)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제 749호: 고양시 북한동)
6) 탕춘대성(지방문화재 제 33호: 종로구 신영동, 홍제동)
7) 연산군묘(사적 제 362호)

임포마을

25542     2020-01-23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다도해를 조망하는 천하제일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무술목을 지나 천하절경을 좌우로 살피면서 닿는 곳이 향일암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여수의 대표적인 어촌 임포마을이다. "금거북이 등에 올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천하제일의 명소"란 뜻인 금오산 향일암에서 보는 남해 일출이 장관이며, 바다에 비치는 달빛 또한 관광객의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준다.

화산천주교회(나바위 성당)

21298     2020-01-23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나바위 성당은 조선 현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이러한 역사성과 건축양식으로 인해 나바위 성당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318호) 로 지정되어 있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수 있는 곳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 나바위 성당의 볼거리 *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돌산도

44433     2020-01-23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1984년 12월 15일에 준공된 돌산대교를 통해 여수반도와 이어져 있다. 길이 450m, 폭 11.7m의 사장교인 돌산대교는 주변의 아름다운 해상풍경과 멋진 조화를 이뤄 그 자체가 관광명소가 되었다. 돌산도에는 돌산공원, 무술목전적지, 전라남도수산종합관, 방죽포 해수욕장, 향일암, 은적암 등의 명승지와 유적지가 있으며,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해안 일주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다. 특히 근래에는 관광식당, 민박집 등의 편의시설이 늘어남에 따라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돌산도는 자동차를 타고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여행지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일주하는 거리는 대략 60㎞ 정도로 1~2시간 소요된다. 돌산대교 아래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활약한 거북선의 실물 모형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인근에는 갖가지의 싱싱한 생선회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해안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돌산공원(대교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여수시의 전경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고견사(거창)

21174     2020-01-23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

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7년에 의상과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고견사 뒤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터로 알려져 의상봉이라 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이 보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장군봉과 별유산, 비계산, 미녀봉, 박유산의 산세가 빼어나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밭 150결을 주어 대궐의 향을 내려 해마다 2월과 10월 수륙재를 지내게 한 사찰이다. 또, 이 절에 고운 최치원이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최치원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의상대사가 도를 닦을 때 날마다 대사와 상좌가 먹을 만큼 쌀이 나왔다는 쌀굴도 있다.

* 주요문화재 - 고견사석불(경남 유형문화재 제263호)고견사동종(경남 문화재자료 제1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