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승부역(봉화)

승부역(봉화)

    2020-03-27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길 1162-5

승부역은 1949년 4월 영암선(영주-철암)이라는 이름으로 일대 철도와 역이 착공됐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휴전 이후 다시 진행돼 1955년 12월에 완공. 1956년 1월 1일 영암선 첫 열차가 운행했지만, 이용객이 적었던 승부역은 보통역에서 간이역으로, 간이역에서 신호장으로 격하됐고 여객 취급을 하지 않는 신호장임에도 하루 6번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특이한 역으로 기능했다. 1999년 눈꽃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으로 발전했다.

봉화 산타마을

봉화 산타마을

    2020-03-27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49

봉화 산타마을은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의 시발점인 분천역에 백두대간이라는 자연 자원과 낙동강의 비경, 동심을 자극하는 산타클로스 이미지를 접목해 1년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여름과 한겨울 등 연 4회 산타마을을 운영해 방문객 33만 명을 유치하고, 32억 원이 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낸 겨울 대표 관광지다. 겨울에 가보고 싶은 국내 여행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혜사(전주)

정혜사(전주)

23121     2020-03-27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외칠봉1길 36

전주의 정혜사는 보문종 계열의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불교대학이다. 즉, 계룡산에 동학사가 있듯이 이에 버금가는 곳으로서, 전주에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대학이자, 기도하는 사찰이 정혜사인 것이다. 때문에 전주 시내 한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혜사는 산사의 절집 느낌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그만큼 사찰의 분위기가 조용하고 고즈넉한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따로 위치한 산사와 달리 불법수행에 열심인 비구니스님들의 청정한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흔치 않은 곳이다. 이러한 정혜사에 가면 비구니사찰의 이미지처럼 연꽃을 비롯한 각종 꽃이 깔끔하고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고 아울러 10여 동 이상의 전각이 배치되어 꽤 큰 규모를 지니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정혜사는 1899년 창건되어 110년 된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정혜사는 원래 이곳의 본사 원장스님인 명주스님의 외조부께서 칠성각을 짓고 득남발원을 위하여 시작된 사찰이기 때문이다. 그후 정명주 노스님께서 주지를 역임하면서 정혜사 불사를 하였고 백혜명스님과 정례일스님이 거듭 중창불사를 하여 현재 13동의 전각을 갖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역사

정혜사는 1899년에 최향관선생이 득남발원을 위하여 완산 아래 이곳에 조그만 칠성각을 건축하게 한 후 불상을 모시고 그 옆에 십여간 되는 초가집을 사서 사찰을 만들고 절이름을 정혜사라고 하고 기도불사를 진행하였다. 그때의 본사 소재지는 동명이 안행동(雁行洞)이기 때문에 본사의 이름을 ‘안행사’라고 부르기도 하고, 발음이 와전되어 ‘안양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정혜사라고 이름 지은 정(定)은 선리(禪理)를 연구하고 혜(慧)는 교리를 널리 알려 정혜쌍수를 실천하자는 취지라고 하겠다. 1921년 정명주 스님이 불교 포교의 원력을 세우고 보광전 15칸, 용화전 1칸을 건축하였으며 명부전, 나한전, 완산선원, 사대천왕문과 아울러 요사채를 건축하여 수행과 포교에 전력을 다했으며, 강원을 설치하여 도제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후 백혜명스님과 현 주지인 정혜일스님이 중건, 중창불사를 거듭하여 지금의 정혜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 연혁

1899년 본사 주지 정명주(鄭明珠) 스님의 부친인 고견(古見) 정원명(鄭圓明) 거사와 모친 최정명 보살과 장성우 보살이 함께 보리심을 발하여 완산 밑 서쪽에 한칸짜리 법당을 건축한 후 불상을 모시고 그 옆에 삼간초가를 사서 절을 창건하고 절 이름을 ‘정혜사’라 불렀다.

천보사(경기)

천보사(경기)

21443     2020-03-27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45

* 자연적으로 보살의 모습이 보여지는, 천보사 *

불암동 입구에서 불암산을 바라다보면 서쪽 편 정상부가 커다란 암벽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송낙을 쓴 부처님 같은 이 바위산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보궁이 있어 대자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 예로부터 기도영험이 많은 사찰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천보사 천연보궁(天然寶宮)도 그와 같다. 현재 천보사 뒤 병풍을 두른 듯 펼쳐져 있는 암벽에는 바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하게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그러나 천보사가 천연보궁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있다. 보는 위치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천보사 뒤 커다란 암벽은 코끼리 모습을 하고 있다. 매끄럽게 내려오는 암벽의 굴곡은 언뜻 보기에 세 분의 부처님이 서 있는 듯 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산삼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옆에는 동자가 서 있는 듯 하다. 또한 다른 면에는 보살의 옆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이렇듯 자연적으로 불, 보살의 모습이 이루어진 곳은 그리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천보사를 천연보궁이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여 감응(感應)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고 자연의 조화로 불?보살이 몸을 나투신 천보사는 사찰의 이름처럼 하늘아래 가장 보배로운 사찰이다.

* 천보사의 역사 *

천보사의 창건과 연혁은 오랜 세월 속에 묻혀버려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사찰에 세조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즉 세조(世祖)가 이 일대를 유람하다가 불암산의 수려한 모습에 감동하여 ‘천보산(天寶山)’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그때 천보산 중턱에 천보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문종실록(文宗實錄)』의 문종1년(1451) 3월 병진일(丙辰日)에 의정부(議政府)가 원유(園?:왕실의 사냥터)의 혁파를 건의하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리는데 그 상소문 안에 “천보사 인근의 산들”이라고 천보사가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1451년 당시까지도 천보사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천보사에 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현재 사찰에 전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오층석탑인데, 그 조성년대가 조선말기의 양식을 띠고 있다. 이로보아 조선말기에 중창이 있은 듯 하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천보사는 다시금 폐허가 되었다. 그러던 것을 해방직후에 동훈스님이 새로이 중창을 하여 현재의 천보사로 기틀을 마련하였다. 근래에는 지한(志閑)스님이 2002년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며, 2005년에는 불교대학을 개설하여 신도교육과 가람 중흥에 매진하고 있다.

태봉사(익산)

태봉사(익산)

18541     2020-03-27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150

* 백제시대 삼존불상이 있는 사찰, 태봉사 *

태봉사는 백제시대의 삼존불상이 있는 사찰이다. 사찰을 찾아가는 길도 쉽고 편안하다. 거의 평지에 위치한 대웅전은 뒤쪽의 야트막한 구릉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과 같다. 그 대웅전 안에 그 유명한 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화강암 위에 두꺼운 호분이 칠해져 있어 부처님이 짓고 있는 온아한 백제의 미소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또한 현세의 때가 끼어 웃음을 잃은 사람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는 것이 즐거워 웃음이 절로 나오는 사람의 눈에 백제의 부처님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생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못 보는 것은 보는 이 자신의 탓인 것을....운 좋게 태봉사의 스님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되면, 원응료 안에 들어가 따근한 차 한잔과 함께 그 안에 모셔진 여러 부처님을 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오래된 불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안온함이 배어 있는 불상과 보살상이 여러 구 모셔져 있다. 합장하는 우리에게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갈 길 바쁜 나그네는 그 이야기를 다 못 듣고 만다. 백제시대 불상이 있는 태봉사. 여유를 가지고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있는 여러 곳도 들르면서, 이 곳 태봉사에도 머물면서 불상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게 되길 바란다.

* 태봉사의 창건 및 걸어온 길 *

태봉사가 언제 창건되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문헌이나 금석문 자료를 통해서도 전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백제시대 양식의 삼존석불이 발견되었으며, 또한 백제 와당편이 수습되었다고 전하고 있어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판단될 따름이다. 좀더 확실하게 말하면 백제 무왕이 익산에 궁성을 짓고 미륵사를 창건하는 등 무왕이 익산을 경영하던 시기였던 7세기 전반 무렵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 할 수 있다. 창건 뒤의 사적도 전혀 알 길이 없다. 현재의 사찰을 중창한 것은 근래에 들어와서 바로 이곳에서 삼존석불(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호)이 발견됨에 따라 연유한다. 석불의 발견 및 중창 경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 태봉사의 창건주이며 주지의 어머니인 청송 심씨 묘연화 여인이 전한 바에 의한 것이다. 그녀는 1931년에 익산시 삼기면 연동의 본가에서 삼대 독자인 현 주지의 수명장수를 위해 산신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때 산신님의 현몽으로 안내를 받아 이곳에 오니 뜻밖에 삼존석불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계기로 삼존석불이 있는 지점에 작은 규모의 불당을 짓고 절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석불을 옮기려고 땅을 팠더니, 이 때 서기 6~7세기 무렵의 중국 동경이 출토되었다. 이 동경은 현재 공주국립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그 뒤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1947년에 요사 4칸을 지었고, 1955년에 묘연 화보살의 아들인 박제공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절이름을 지금의 태봉사라 부르게 되었다. 1957년에는 지금의 대웅전을 다시 짓고 이곳에 삼존석불을 옮겨 봉안했으며, 1962년에 칠성각을 지었다. 이 칠성각은 1982년에는 대웅전을 지금처럼 5칸으로 늘려 지었으며, 현재는 삼성각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1996년에 선방과 요사를 새로 지었으며, 앞으로 현재 대웅전 앞에 있는 객사겸 식당용 임시 건물을 새로 지은 요사 뒤편으로 옮겨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는 박제공 노스님에 이어 1990년부터 혜안 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혜안 스님은 현재 무형문화재인 영산회상작법 전승자로 지정되어 있다.

진원리오층석탑

진원리오층석탑

15461     2020-03-27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장성군

이 탑은 원래 진원리 뒷산 탑동이라는 곳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불법반출해 가려 한 것을 주민들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고 현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지대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하였으며 그 위로 기단부 면석이 이어지고 있다. 면석은 중앙의 탱주와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었는데, 그면은 벽판석이고 다른 2면은 따로 만들어 끼워놓았다. 갑석은 2매 판석인데 상·하 수평이며 하면의 부연(副椽)이나 상면의 각형 괴임대를 생략하였다. 몸체부는 몸체와 지붕돌이 각 1석씩인데 현재는 4층 이상의 몸체와 지붕돌이 유실되고 없다. 1층 몸체는 각면에 모서리 기둥이 표출되었으며 2층부터는 체감을 보여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너비와 높이가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평박한 편으로 물 흐르는 면은 급경사이며 처마는 중앙에서 수평을 이루고 전각(轉角)에 가까워지면서 경쾌한 반전을 이루었다. 층급 받침은 각층마다 3단이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이 석탑은 옮기면서 각부재가 뒤틀리는 등 제대로 결구되지 않아 몸체부가 곧고 반듯하지 못하다. 또 갑석의 상·하면에서 일부 조각이 생략되었으며 탑 전체가 가늘고 긴편으로 안정감이 없다. 조성 연대는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신흥사(설악산)

신흥사(설악산)

50237     2020-03-27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신라 진덕여왕 6년 (652년)에 자장율사가 세워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다. 그 후 여러차례 불에 탄 것을 조선 16대 인조 22년(1644년)에 영서(靈瑞), 연옥(蓮玉), 혜원(惠元)의 세 스님이 똑같은 꿈을 현몽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신의 계시를 받고 세웠다 하여 신흥사라 했다. 이 절에는 창건 당시 주조한 1400년 된 범종과 조선 순조께서 하사하신 청동시루, 극락보전(지방문화재 14호), 경판(지방문화재 15호), 보제루(지방문화재 104호), 향성사지 3층석탑(보물 제443호) 및 삼불상, 명부전, 선제루, 칠성각 등이 남아 있다.

카페 테일

카페 테일

20     2020-03-27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가진길 40-5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테일은 피크닉매트를 제공하여 바다를 바로 마주하며 차 한잔의 여유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계절의 바다를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애견 동반도 가능한 이색카페이다.

분천역(봉화)

    2020-03-27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49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위치한 분천역은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의 기착지가 되면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명소다.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맞아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 하면서 분천역의 외관도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단장했으다. 체르마트역은 스위스 빙하특급열차가 출발하는 역으로, 백두대간 협곡을 달리는 V-train이 서는 분천역과 쌍둥이처럼 닮았다.산타열차(O,V-Train), 산타눈썰매장, 풍차놀터, 산타레일바이크, 당나귀꽃마차, 산타우체국, 산타슬라이드, 이글루 소원지, 삼굿구이 등 다양한 체험도 즐 길 수 있다.

신흥사(임실)

16894     2020-03-27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상월로 889-19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상원리 사자산(獅子山) 북쪽의 40리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 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이다. 신흥사에 가면 야트막한 산과 어울리는 작고 나지막한 대웅전이 편안하게 맞이해준다. 지붕의 선도 자연스럽고, 처마 아래 다포집도 요란하게 자랑하지 않고, 단청도 번잡하지 않으며, 문살도 알맞춤하게 정갈하고, 자연석을 쌓은 기단이 정겹기까지 하다.

연화사(세종)

23206     2020-03-27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연화사길 28-1

* 아미타불의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 연화사 *

연화사는 조치원읍에서 서쪽으로 약 2km 지점에 낮은 구릉을 등지고 서향하고 있다. 연화사는 1988년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으며, 1897년 보호각을 건립하고 1999년에 오층석탑과 석등을 조성했다. 가람 배치는 무량수전, 삼성각,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법당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구조로 안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우측 무인명석불상부대좌, 좌측으로 칠존석불상 외에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아미타후불탱화·관음탱화·지장탱화·신중탱화가 있다. 삼성각 안에는 칠성탱화·독성 탱화·산신 탱화가 있다. 현 위치는 고대 사원지와는 관련이 없다. 다만 와즙 1동의 법당이 있었으나 보물 제 649호로 지정된 무인명석불상부대좌가 발견됨에 따라 문화재 관리국의 지원을 받아 한식와즙으로 개량하였다. 무인명석불상부대좌는 장방형인 돌로 측면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 형태를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보물 제650호 칠존석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이 불상은 비암사 석상, 정안면 석상과 함께 고대미술의 판도를 새롭게 정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現 연화사의 창건자인 홍문섭씨의 꿈에 현몽이 있어 그곳을 파보니 두개의 석불이 나와 석불을 모셔다가 사찰을 건립하였다 한다. 1988년에 전통사찰로 지정되었으며 1987년에는 보호각이 건립되었다. 사찰 주변에는 복숭아, 배 과수단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 연화사의 창건 설화에 대하여 *

연화사의 창건시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해지는 창건 설화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말, 참선수행을 하던 수행 승려들이 나라의 공역에 동원되어 스님들이 안심하고 수도할 수 있는 사원이 없어 여기 저기 만행 생활을 하다 운주산에 인연이 되어 머물면서 아미타 100일 기도를 하였다. 수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인연터를 발원하였는데 100일 기도 마치는 날, 어느날 꿈 속 부처님께서 어느 한 곳을 정해주시고 그곳을 파보라고 하여 파보니 땅속에서 아미타불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 무인명석불상부대좌(戊寅銘石佛像附臺座:보물 649)와 칠존석불상(七尊石佛像:보물 650)이 있었다. 그 후 무인명석불상부대좌를 모시고 수행한 곳이 연화사가 되었다.

유학사(의령)

25714     2020-03-27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여배로5길 2

* 무학대사의 설화가 있는 곳, 미타산의 유학사 *

미타산(彌陀山, 높이 662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약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고찰(古刹)이다. 조선 개국 직후 왕사를 지낸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가 1399년(정종 1년) 창건하였다. 무학대사는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寺)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금의 유학사 자리에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극락전을 중심으로 맞은편에 만세루, 극락전 왼쪽에 종각, 극락전 오른쪽으로 요사 두 동이 아래·위로 배치되어 있다. 칠성각은 요사 뒤쪽의 계단 위쪽에 있다. 주법당인 극락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내부 불단에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원래 오동나무로 만든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다가 1980년대에 어디론가 이운되었다 한다. 그때 삼존불 중 주존불을 본떠 석고상으로 남겨 두었는데 2002년 새로 조성한 현재의 주존불은 그 석고상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만세루(萬歲樓)는 루(樓)의 입지 즉 사찰의 정문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지만 실제 누각 형식의 건물이 아니다. 단층 건물인 데다 누문도 없으며, 툇마루가 달린 요사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 뒤편에 걸려 있는 편액도 유학사(留鶴寺)라고 되어 있지만 사찰에서는 만세루라고 부른다. 이 건물에는 1900년 이태현(李泰鉉)이 지은 ‘법당중수기’ 등 유학사의 연혁을 알려주는 현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 무학대사와 유학사의 이야기 *

원래 유학사는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조선초기 때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를 지낸 무학대사가 이 유학사에 들려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절을 옮겨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에 무척 밝았기 때문에 당시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개국과 함께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니, 유학사의 전설 또한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것으로 믿어진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부근의 형세가 마치 날아가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예전에 유학사가 있던 자리는 그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였다하니 학의 머리에 절이 앉아서는 아니되고 지금의 위치에 사찰이 있어야만 학이 마치 절을 품고 있는 형상이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이름도『학이 절을 품은 채 머무른다』는 뜻으로 유학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때가 조선초기 정종2년(1399년)이라 알려지고 있으며 그 뒤 무학대사는 오랫동안 이 유학사에 머물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말은 지금에 와서 상고할 길이 없고, 다만 그러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록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