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고양 서오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양 서오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6434     2021-04-1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공지사항
※ 내용 : 제한적 운영 (2020. 11. 24.(화) ~ 별도 해제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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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이란 조선 왕조의 다섯릉 즉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을 일컫는 말이다. 오릉 이외에도 명종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의 순창원이 경내에 있고, 영조 후궁 영빈 이씨(사도세자의 생모)의 수경원이 있으며, 최근 숙종의 후궁인 장희빈의 대빈묘도 이곳으로 이장 되었다. 위치상 서울 시내와 다름없을 만큼 가까워서 산책이나 조깅 코스로 좋다.

* 서오릉 약사(사적 제 198호)

1) 경릉 - 덕종(추존)과 비 소혜왕후(추존) 한씨의 능이다. 덕종은 세조의 원자로 태어났으나 20세에 돌아가시고(1457) 뒤에 그의 아들 성종이 즉위 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서 월산대군과 성종형제를 두었으나 성종이 즉위한 뒤 왕비로 추존되면서 소혜왕후라 일컫게 되었다.

2) 익릉 - 숙종의 원비 인경황후 김씨(1661-1680)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서 현종 12년(167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숙종 즉위와 함께 왕비로 책봉되었다. 숙종 6년(1680) 경희궁에서 20세에 승하하였다.

3) 창릉 - 예종과 그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1498)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세조3년(1457)에 왕세자로 책봉되고 세조 14년(1468)에 즉위하였다. 안순왕후는 우의정 청주부원군 한백륜의 딸로서 예종 즉위년(1468)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4) 명릉 - 숙종(1674-1720)과 그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 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분으로 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 언덕에 배치된 형식이다. 숙종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8년(1677) 세자로 책봉되었고 예론이 한창 일어나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 등 업적을 남겼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태어나 숙종 7년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 15년 왕자 균(뒤의 경종) 책봉 문제에 장희빈의 무고로 폐위당하였으나,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1694)뒤 35세로 승하하였다.

5) 홍릉 - 영조(1724-1776)의 비 정성왕후 서씨 능이다. 정성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서 경종 원년 (172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왕후는 소생이 없이 영조 33년에 경복궁에서 승하하였다.

6) 수경원 -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산소이다. 영빈 이씨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으며 영조 40년 69세로 승하하였다.

7) 순창원 - 명종(1545-1567)의 원자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산소이다. 순회세자는 명종 12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승하했고, 공회빈 윤씨는 윤옥의 딸로서 선조 25년(1592년) 3월 3일 승하했다.

8) 대빈묘 -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1701)의 묘이다. 숙종은 궁녀 장소의에게서 숙종 14년에 왕자 균(경종)을 얻어 이듬해 균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장소희를 희빈으로 대하였다. 그후 왕비 인현왕후를 폐비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이를 후회하고 숙종 27년(1701)에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희빈은 사사되었다. 원래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 있었는데 1969년 6월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지리산치즈랜드

지리산치즈랜드

0     2021-04-15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산업로 1590-62

1979년 젖소 두 마리로 착유를 시작했던 초원목장은 30여 년 간의 경험을 바탕삼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낙농산업과 우유를 알리기 위해 201년 체험목장 지리산치즈랜드를 건립 하였다. 지리산치즈랜드에서는 수제 치즈와 요구르트를 유통하고 있으며, 체험장에서는 모짜렐라 치즈 만들기, 송아지 우유 먹이기, 풀 썰매타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푸른 초원목장에 130여두의 젖소를 방목 하고 있고, 호수가 인접해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지리산치즈랜드의 특별함은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풍경, 꽃 그리고 초지가 어우러진 눈부신 푸르름과 향기가 그 특별함이다.

포항 장기읍성

포항 장기읍성

23768     2021-04-15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56

포항시 장기면은 경주시 감포읍과 어깨를 맞댄 고장이다. 동해 바닷가 쪽에 양포항,대진해수욕장 등의 여행명소가 있으며, 그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북으로 올라가면 구룡포항과 장기곶에 닿는다. 장기면 읍내리, 동악산(252.5m) 동쪽 자락에 자리한 장기읍성(사적 제 386호)은 일제강점기 때 수난을 당한다.일제강점기 당시 이 읍성 내의 모든 관아 건물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단지 향교만이 이 고장 주민들에 의해 복원 유지되고 있을 뿐, 잡초에 묻힌 성벽은 허물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이 성은 일찍이 동해안을 지키는 다른 읍성과 함께 장기 지방의 지리적인 형국으로 보아 중요한 군사기지로서 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장기읍성은 고려시대 이전의 고성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한편, 이곳은 벽지로 취급되어 유배지로서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특히 송시열을 기리는 죽림서원이 세워져 이 고장은 글을 읽는 마을이 되었고 정치, 경제, 사회적 특징이 있는 곳이 아닌, 오로지 국방의 일익을 담당한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고장이라 할 수 있다. 영일 장기읍성이 포항 장기읍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화엄사

화엄사

63589     2021-04-15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는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4km 떨어진 곳,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로 544년(백제 성왕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하여 절의 이름을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과 대웅상적광전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1년)에 도선국사가 또 다시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년)에 완성하였다.

사찰 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꺽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놓은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고 보제루는 다른 절에서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절내에서는 동.서 두개의 탑이 사선 방향으로 보이며 동측탑의 윗부분보다 한단 높은 더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탑의 윗부분에는 각황전이 위치하고 있다.

경내 건물중 각황전은 국보 제 67호로 지정된 매우 유명한 건물이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한 외양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각황전 앞 뜰에 서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 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통일 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보 제 12호로 지정되어 있다.각황전 왼편 효대라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4사자 3층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국보 제35호이다. 각황전 내부 후편에 위치하고 있는 영산회 괘불탱은 국보 제301호로 1997년도에 지정되었다.

화엄사 경내 보물 가운데서도 대웅전 양편에 서있는 5층탑은 뛰어난 조형성과 섬세한 장식이 눈길을 끄는 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제132호와 133호로 지정돼 있다. 또한 이곳의 대웅전은 보물 299호로 조선시대의 우수한 예술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훌륭한 경관을 배경으로 곳곳에 명소와 절경이 산재해 있다. 한편 하동에서 화엄사에 이르는 19번국도변(약 35㎞) 에는 가로수로 벚꽃나무가 심어져 매년 4월 벚꽃이 만개할 때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인근에는 섬진강매화마을, 고소성 군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쌍계사등 많은 관광지가 있어 수많은 상춘객이 몰리는 곳이다.

* 문화재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국보 제35호),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화엄사 영산회괘불탱(국보 제301호),화엄사 동,서 5층석탑(보물 제132호,133호),화엄사 대웅전(보물 제299호),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화엄사의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 화엄사 보제루(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화엄사 구층암 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봉서정

봉서정

32724     2021-04-15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수부촌길 35

봉서정은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수부말마을 내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정자이다. 원래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 광주 이씨 문중이 1995년 지금의 위치에 2층 누각으로 중수한 것이다.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단청을 화려하게 채색하였으며, 정면엔 이형재(李衡載)가 쓴 “봉서정(鳳棲亭)” 현판이 걸려 있다.봉서정은 고려말의 학자, 둔촌(遁村) 이집(李集, 1314~1387)이 이포(梨浦)로 낙향해서 세운 정자이다. 이집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호연(浩然)으로 1349년(충목왕 3)에 과거급제해서 관직에 진출하였고 포은 정몽주(1337~1392), 목은 이색(1328~1396) 등과 교유했다. 1368년(공민왕 17) 신돈(辛旽, ?~1371)의 전횡을 비판하여 미움을 받자,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경상도 영천의 천곡(泉谷) 최원도(崔元道) 집으로 피신하여 4년간 은둔하였다. 1371년 신돈이 주살되자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판전교사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의 천령현(川寧縣, 지금의 이포 일대)으로 내려가 봉서정을 짓고 논시강학(論詩講學)하며 주경야독으로 소일하였다. 정몽주가 봉서정으로 이집을 심방(尋訪)하여 국정의 자문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이색의 침류정(沈流亭)과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1338~1284)의 육우당(六友堂)도 이웃에 있었다고 전한다.

군지촌정사

군지촌정사

16836     2021-04-15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제월군촌길 53

'군지촌정사'는 조선 후기의 건물로 사랑채의 이름이다. 군지촌정사는 사랑채와 안채, 대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18세기 중엽에 건축되었다고 하나 안채는 19세기 초 정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一'자형으로 서쪽부터 2칸의 부엌이 위, 아래에 있으며, 그 옆에 큰방이 있는데앞, 뒤에 툇마루를 깔았다. 전면에 2칸의 대청이 있고, 뒷쪽에는 도장과 작은방이 있다. 큰방과 도장 앞은 문시설 없이 개방되었고, 작은방 앞은 문을 달아 가로막았다. 건물은 높이 쌓은 대 위에 있고, 방 앞쪽에는 큰방의 굴뚝시설로 연기가 나가는 구멍이 있다. 안채의 마당 앞에 있는 행랑채의 동쪽에 사랑채이면서, 동네사랑인 군지정사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동네서당으로 쓰였다고 하며 앞뒤로 담장이 없어서 접근하기 쉽게 하였다. 서쪽부터 사랑방이 위, 아래로 있으며, 그 옆에 대청이 놓여 있는데 개방되었다. 방, 앞,뒤로는 모두 마루가 깔려있다. 대문간채는 '一'자형으로 안채보다 훨씬 늦게 지었으며, 대문간을 중심으로 동쪽에 2칸 방이 있고 서쪽에는 외양간과 헛간이 있다. 집 앞 언덕 위에는 같은 시기에 지은 '함허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 소유자 : 심해섭

안성 봉업사지

17737     2021-04-15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봉업사는 언제 창건되고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어 ‘매곡리 폐사지’라 불리기도 했으나 1966년 경지정리작업시 출토된 유물에서 이곳이 봉업사였음을 말해주는 명문이 발견되어 비로소 봉업사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절의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비봉산 아래의 봉업사’가 바로 이곳임을 밝혀주는 것으로, 사찰의 중요성이 증명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조의 진영을 모셨다는 것은 이곳이 진전사원이었다는 의미인데 진전사원이란 왕실의 의지에 따라 죽은 왕의 진영을 모시고 위업을 기리며 명복을 비는 사찰로 태조의 진전사원은 전국의 이름난 사찰(개성의 봉은사,논산 개태사 등)에 두었던 것으로 보아 봉업사가 결코 만만한 사찰이 아님을 밝혀주는 것이다.

이 곳의 5층 석탑은 기단부의 둔중감, 1층탑신이 높은 점 등에서 고려시대 초기 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경기도 내의 탑들 중에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특히 1968년 복원공사 때는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이 죽산리 사지의 석불입상인데 죽주산성 아래 쓰러져 있던 것을 옮겨와 세웠다고 하는데 고려초기에 유행했던 지방불상 양식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몸체를 약간 뒤로 젖히고 가슴을 내밀어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매우 당당하다. 삼층석탑은 밭 한가운데 서 있는데 기단 면석아래는 땅에 묻혀 온전한 모습을 알기 어렵고, 혜소국사와 연관이 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마을 사람들은 석불과 삼층석탑을 기자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듯 하니, 근거리의 태평미륵과 함께 곳곳이 기자신앙의 흔적인 셈이다.

조해영가옥

16686     2021-04-15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8

조해영가옥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고가이며 1986년 9월 8일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안채 1동과 별채 1동 그리고 변형된 문간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상량문에 ‘대정(大正)7년’이라 명기되어 있어 1918년에 건축된 것으로 보여진다. 별채는 안채보다 조금 늦은 1922년 또는 그보다 조금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가옥은 정남향에 가까운 남남서향이며 건물들의 전체적인 배치는 알 수 없다. 안채와 별채는 모두 남북으로 길게 서로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남쪽으로, 별채는 서쪽으로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안채의 난간은 상당히 훼손되었으며 모든 건물의 기와가 퇴락하였다. 또 일부 건물은 누수공사가 필요한 곳도 있어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나쁘다. 안채와 별채가 둘러싸인 공간을 제외하고는 뒷담이 없이 거의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래의 대문은 없어지고 좁은 문이 남아 있는데, 보존상태가 불량하다. 별채 동편 울타리 밖으로 가까이에는 김육(金堉)의 선정비가 있다. 울 안에는 한말 사람의 것으로 추측되는 비 2개가 가로 놓여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이 근방에 비석군(碑石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조해영가옥에서 아름다운 ‘꽃담’을 만나다 *

조해영가옥의 대문채 안쪽으로는 화려한 담장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 새롭게 보수한 담장이 ‘ㄱ’자로 꺾여 있다. 담장은 붉은 벽돌로 쌓고 그 중앙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네모나게 흰 회칠을 하고 돋아나게 그린 그림 속으로 학, 사슴, 구름, 연꽃과 산삼 등 십장생이 보인다. 그 뒤쪽에 소담스런 항아리가 엉덩이를 붙이고 백년 가까이 버티고 있다. 담장 뒤로 돌아가면 그림이 있는 부분을 돌로 쌓아둔 것이 보인다. 담장의 구조로 보아 집을 지을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담장은 단순한 담장이 아니라 대문을 들어서 만나는 바람벽의 기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제4땅굴

36639     2021-04-15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이현리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공지사항
※ 내용 : 임시휴관 (2020.02.24 ~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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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땅굴은 북한의 새로운 침투 방법으로 모색되어 굴설된 땅굴로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 지 12년 만인 1990년 3월 3일에 양구 동북쪽 26㎞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군사분계선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 규모는 높이와 폭이 각 1.7m, 깊이가 지하 145m이며, 총 길이는 2,052m로서 지난 1974년 고랑포 동북쪽 8km지점에서 발견된 제 1땅굴의 높이 1.2m, 폭 0.9m, 길이 지하 46m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육군 백두산 부대는 땅굴 발견 이후, 1992년 2월까지 37억 원을 들여 안보기념관과 기념탑을 세우고 갱도 및 갱내시설을 설치해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땅굴 출입구에는 발견당시 땅굴을 수색하던 중 북한군이 설치한 수중지뢰에 의해 산화한 군견을 위로하는 충견비가 세워져 있고, 땅굴 내부에는 투명유리 덮개로 덮인 15인승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어 앞서 발견된 1,2,3 땅굴에 비해 매우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으며, 전동차에는 방송시설과 좌석별 헤드폰을 부착해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또한, 땅굴 내부에 화강암층을 통해 흘러내리는 비무장지대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수를 마실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서해안 바람공원

0     2021-04-15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애향갯벌로 311

고창 서해안 바람공원은 빨간풍차와 바람개비 등 시원한 바닷바람과 서해안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휴식을 하기에 좋은 곳으로, 광장, 산책로, 전망대,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다.

합천향교

1828     2021-04-15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향교길 17-3

조선 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1843년(헌종 9)에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81년(고종 18)에 수해로 인하여 합천군청이 야로면으로 이전되자 향교도 같이 이건되었다. 1967년에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의 보수와 번와작업(飜瓦作業)이 있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7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무와 서무, 5칸의 영귀루(永歸樓),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담당하고 있다.

괴산 수월정

16647     2021-04-15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315-38

괴산호 가운데 산막이 마을 안에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인 노수신(1515∼1590)이 유배생활을 하던 곳이다,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 하였다. 노수신은 중종 38년(1543)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이황과 같이 학문을 연구하다가 정권다툼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순천, 괴산 등지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선조 즉위 후 다시 관직에 올라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원래 다른 자리에 있었으나 괴산댐 건설로 인해 수몰위기에 처하게 되자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괴산호의 멋진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연하구곡의 하나인 병풍바위가 잘 보인다. 산막이 옛길을 통해서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