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송재서재필선생상

송재서재필선생상

3876     2018-12-14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전남 보성 출신으로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건립되었다.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다.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8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 규격 - 동상높이 3.5m, 좌대높이 2.8m
* 건립주체자 - 송재서재필선생동상건립추진위원회, (1990.04.07. 건립)

서울 살곶이 다리

서울 살곶이 다리

31663     2018-12-14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 시대 다리 가운데 가장 긴 다리인 '살곶이다리'는 이 일대가 '살곶이벌'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데서 유래하였는데「한경식략」권량조(橋粱條)에 보면 그 공식 명칭은 제반교(濟盤橋)라 하였다.살곶이벌은 국왕의 군사대열장과 매사냥터로 이름이 났던 곳으로서 이 다리를 통해 태종과 순조가 모셔져 있는 '헌/인릉'과 성종과 중종이 모셔진 '선/정릉'에 갈 수 있어 국왕이 수시로 행차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 후기 흥선대원군이 이 다리의 반을 헐어 경복궁을 짓는 돌로 사용하여 거의 100년 동안 다리가 폐쇄되기도 했다. 1973년에 수리 및 복원이 된 살곶이다리는 교폭 20척(6m), 길이 258척(78m)으로서 조선 세종 2년(1420년)에 착공하여 성종 14년(1483년)에 완공되었다.교각을 횡렬로 4열, 종 열로 22열을 배치하고 3장의 장대로 건너지른 위에 다시 동틀돌을 놓아 청판돌을 받게 되어 있으며 좌우로 교안을 장대석으로 쌓았다. 기둥돌 아래는 네모난 주초가 있고 그것은 물밑 받침돌에 의하여 지탱되도록 하였으며 기둥은 유수의 저항을 줄이기 위하여 마름모꼴로 다듬었다.

암사생태공원

암사생태공원

32889     2018-12-14

서울특별시 강동구 선사로 83-66

암사동 한강변의 콘크리트 인공호안과 자전거 도로를 철거하고 갈대·물억새 군락지, 야생화, 산책로 등을 갖춘 자연형 호안과 생태공원을 조성하였다.
* 면적 : 162,000㎡

느랭이골 자연 리조트

느랭이골 자연 리조트

4502     2018-12-14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토끼재길 119-32

느랭이골 자연 리조트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벌을 뻗어 내리는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며 내장산, 무등산, 조계산을 힘차게 치달려 기나긴 천리 여정에 위풍당당한 마침표를 찍는 최고 높이가 1,751m나 되는 백운산과 섬진강 700리 물길을 갈무리한 백운산 끝자락 남단 중앙부에 우뚝 솟은 해발 450m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광양제철소와 광양항, 망덕포구 그리고 여수 산단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북동쪽으로는 섬진강 700리와 경상남도 하동시내 그리고 지리산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다.

봄에는 매화꽃, 철쭉, 여름에는 녹음, 가을엔 단충, 겨울에는 설경과 함께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편백나무 숲과 아름답게 조성된 생태정원이 관광객에게 언제나 다양한 만족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느랭이골은 백운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풍부한 일조량과 따스한 기후조건 그리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는 지리산과 광양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아 제주도 한라산 다음으로 식물 분포가 다양하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또한 야간에는 1천4백3십만개가 넘는 LED 전구가 어두운 밤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어 아름다움 자연과 불빛의 조화를 연중무휴로 즐기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진 캠핑,야영문화를 주도하는 느랭이골은 해발 450m의 편백숲 자연 속에서 각 40동의 글램핑과 야영장 시설이 완비되어있어 남녀노소 편안하고 안락한 캠핑과 야영을 즐길 수 있다.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40011     2018-12-14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여의도 면적 80만 평 가운데 의사당 대지 10만 평에 건물면적 2만 4,636평을 차지하는 지하 2층 지상 8층의 석조건물이다.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에서 제일 크며, 장차 남북통일이 되고 의회제도가 양원제로 채택 되더라도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6년의 공사 끝에 1975년 8월에 준공되었으며, 현대식 건물에 한국의 전통미를 가미하였다. 의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24개의 기둥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뜻하며, '돔' 지붕은 국민의 의견들이 찬반토론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는 의회 민주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

* 국회의 방청

- 국회의 회의공개원칙에 따라 본회의에서의 국회의원의 국정심의 과정을 일반 국민에게 직접 공개하는 것으로서 의원소개에 의한 방청과 일반방청으로 구분한다.
- 의원소개방청주로 국회의원 지역구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청으로 국회의원의 소개를 얻어 신청한다.
- 국회의 참관 국회의 방청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국회의사당의 각종 시설물과 전시물을 둘러보는 것이다.

도리산전망대

도리산전망대

28756     2018-12-14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

다도해의 섬을 360도를 감상할 수 있는 도리산전망대는 상조도 여미리의 도리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도리산은 해발 210m의 나즈막한 산으로 정상까지 약 3.5km를 걸어야 하는데, 중간 중간에서 약수터, 쉼터, 정자 등을 만날 수 있다.정상에 이르러 나무로 잘 조성해 놓은 전망대에 서면 말 그대로 '일망무제', 새떼처럼 바다 여기저기에 둥지를 튼 다도해의 장관이 눈길을 빨아들인다. 관사도, 주도, 소미도, 맹골죽도 등 조도 부근의 이름난 섬들의 자태가 희뿌연 해무 속에 환영처럼 솟아올라 시야를 황홀케한다. 조도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장관이다. 이 도리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장관이 조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면 눈길을 돌리면 그 자체가 한폭의 산수화처럼 다가오는 곳곳의 바다풍경은 보너스이다.

충익사 의병탑

충익사 의병탑

17870     2018-12-14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

이 의병탑은 충익사 본건물을 짓기전에 이미 이곳에 세워졌던 것으로,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휘하에있던 17장령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72년에 의령군민들의 성금으로 건립한 것이다.탑의 모양은 곽재우 장군과 17장수를 상징하는 18개의 화능을 차례로 포개어 올렸으며 탑의 높이는 지상 27m, 탑명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저도연륙교

저도연륙교

29219     2018-12-14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해양관광로 1872-50

섬의 지형이 마치 돼지가 누워있는 형상과 비슷하다하여 돼지 저(猪)를 써서 저도라 하였다.1987년 완공된 저도 연륙교는 구복리와 저도를 잇는 다리로서 영화 콰이강의 다리와 닮았다 하여 일명 콰이강의 다리로 불린다.다리의 안전문제(콰이강의 다리와 인접새 연륙교 재가설 및 현재 개통 중)로 승용차와 1.5톤 이하의 차량만 통행이 가능하며, 다리의 양쪽 아래에 있는 바위가 바다 가운데로 길게 드리워져 있고, 바다의 수심도 깊지 않아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를 보면 쪽빛 바다가 투명하다. 저도는 34가구가 어업,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해안 갯벌에서는 바지락을 잡을 수 있고 섬 전체가 낚서터여서 가족들과 찾기에 적당하다. 저도의 명물은 횟집, 횟집(8곳)들은 마을 앞 바다에서 어민들이 직접 잡은 고기를 사용한다. 섬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용두산(해발200m)은 등산코스로 일품이다. 연륙교 근처인 윗마을에서 정상을 거쳐 아랫마을로 내려오는데(3km) 2시간쯤 걸리며 산꼭대기에 서면 올망졸망한 남해안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횟집에 식사를 주문한 뒤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먹는 회 맛은 일품이다. 민박도 가능하다.

* 규모 - 길이 170m, 폭 3m, 높이 13.5m

망부상과 정읍사

망부상과 정읍사

18208     2018-12-14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사로 541

* 백제 여인의 망부상을 정읍사의 상징물로 *

정읍에 정읍사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는 백제 여인의 망부상을 정읍사의 상징물로 세웠다. 정읍은 전주의 속현이다. 고을사람이 장사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그 아내가 산의 돌(바위)에 올라 바라보며 남편이 밤에 오다가 진흙탕물 이라도 빠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기다림 속에 안녕을 기원하는 가요 한편을 지어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인 것이며 세상에 전해오기를 고개에 망부석이 있다 한다. 정읍사공원의 맨 위쪽에 자리한 망부상은 허리띠를 두른 백제여인의 의상을 갖추고 있다. 치마저고리가 하얀 색깔이며 아래까지 단이 있는 반코트를 입고 있다. 망부상은 지금도 남편을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듯 정읍 시가지를 바라보며 양손을 모은 채 서 있다.

* 백제의 여인상 망부상과 정읍사 *

1994년에 망부상 서편 기슭에 사우(祠宇)를 짓고, 백제 여인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집을 떠나 장사하러 나아간 지아비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바위)이 되어 버린 망부상이 있고 그 여인을 위한 정읍사 사당이 있어 이곳에서는 해마다 있는 정읍사문화제 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정읍사공원을 초산의 북쪽 기슭에 자리를 잡고 조형물 등을 만든 것은 백제시대에 현은 지금의 "새암바다"이고 거기에서 북쪽으로 10리 이니, 대게 초산의 북쪽 기슭이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정읍사의 발원현장에 6만 7천여 평의 규모로 공원을 조성하고 시의 상징인 백제의 여인상 망부상과 정읍사 사우, 정읍사 노래비를 건립하였다.

모도

18422     2018-12-14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길 12-3

1929년경 김해김씨가 제주도를 가는데 띠풀이 많아 띠섬이라고 불렀다. 띠풀을 이용하여 지붕을 덮은 집이 많이 있다고 하여 띠섬이라고도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여 모도라 하였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 관련 설화]
조선시대 초기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 도중에 타고 가던 배가 풍파로 파선되어 호동(지금의 의신면 회동마을) 앞 바다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촌락을 이루고 그 후손들이 200여년간 살고 있는데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어 피해가 극심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건너편 섬 모도로 황급히 피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다보니 뽕할머니를 모셔오지 못하고 뽕할머니 혼자 회동마을에 남겨졌다. 이 후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해 달라"며 매일 용왕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고, 어느 날 꿈속에 용왕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바다 위에 내릴테니 바다를 건너가라" 말씀 하셨다. 다음 날 뽕할머니는 모도와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를 하니 회동의 뿔치와 모도의 뿔치 사이에 무지개처럼 길이 열리고 모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뽕할머니를 찾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호동에 도착하니 뽕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한이 없다"는 말을 남긴채 기진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를 본 호동마을 사람들은 뽕할머니의 소망이 바닷길을 드러내게 하였고, 모도에서 다시 돌아왔다하여 마을 이름을 회동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때부터 해마다 바닷길이 열리는 이 곳에서 풍어와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영등제를 지내게 되었으며, 회동과 모도 사람들이 바닷길 현장에서 서로 만나 바지락, 낙지 등을 잡으며 보내오던 풍습이 있다. 또한, 모도의 바닷길 시작점에서 출발해 회동으로 걸어나오면 뽕할머니의 조각상이 있다.
* 면적 : 0.21 ㎢, 해안선길이 : 2.5 km

가평학도의용대참전기념비

40611     2018-12-14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문화로 131

가평학도의용대참전기념비는 가평읍 대곡리에 위치하며, 6.25전쟁 당시 북한공산군의 무력침공을 막고자 학생의 신분으로 자진참가하여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전하여 희생한 가평 지역의 학도의용병을 추모하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기념비이다. '가평군학도의용대참전비'라고 새겨진 기념비의 뒷면에는 전사자와 작고한 동지들의 명단이, 참전비 오른쪽에는 '학우여! 전우여! 고이잠드소서'라고 새겨진 추모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생존한 학도병들에 의해 2001년 11월 1일에 건립된 뒤, 매년 이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

기미3.1운동비

14990     2018-12-14

전북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이 비는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전개 되었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당시 산서면 사계리에 있던 지금당 생도들이 사계산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부른 뒤 동화리 장터로 와서 장꾼들과 합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조국 독립에 뜻을 바친 선열들의 일을 기리기 위해 1983년 면민들이 뜻을 모아 동화리 경노당 옆에 기념비를 건립하였다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장수군민 기념사업으로 추진하여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