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23309     2019-12-13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선사로225번길 54

부여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를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네모꼴 집터는 30㎝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집터 안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무문 토기와 붉은 토기(홍도), 검은 간토기(흑도)가 나왔다.무문토기는 납작한 밑,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 토기와 달라 송국리식토기라 불린다. 돌칼, 돌화살촉, 방추차, 돌도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석기들도 출토되었다. 그 밖에 많은 양의 불탄쌀과 벽체에 세웠던 판자가 불탄채로 나오기도 하였고, 청동도끼 거푸집(동부용범)이 출토되었다. 청동도끼 거푸집은 부채날형 청동도끼의 틀로서 요령지역의 것과 닮은 것이다. 집터 서쪽에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송국리집터에서 나오는 유물은 출토유물로는 서까래의 흔적을 비롯,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붉은간토기 ·민무늬토기 ·돌도끼 ·대팻날 ·끌 ·돌낫 ·돌검 ·숫돌 등 다양하다. 이러한 유물을 토대로 기원전7∼6세기전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 되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부여 산직리지석묘

부여 산직리지석묘

18352     2019-12-13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의 ‘바우재’ 또는 ‘쇠울’이라 불리우는 구릉에 동서로 2기의 고인돌이 나란히 있다. 동쪽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5.8m, 너비 3.7m의 크기이며, 하부구조는 모두 파헤쳐져 알 수 없으나 바둑판식으로 추정된다. 현재 동쪽과 북쪽 받침돌이 노출되어 있으며, 일부는 파괴되어 다른 곳으로 운반된 듯하다.서쪽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약 5.8m, 너비 약 4.2m이며 받침돌은 보이지 않는다. 덮개돌이 수평을 유지하고 있고 하부에 매장구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제사를 드리는 제단(祭壇)의 기능을 가졌던 고인돌로 추정된다. 이곳에 있는 두 개의 지석묘는 우리나라 선사시대(先史時代)에 속하는 청동기대(靑銅器時代)에 살았던 사람의 무덤 형식 가운데 하나이다.이 지석묘는 후대에 와서 덮개돌인 개석(蓋石)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석묘의 하부 구조에는 여러가지 형식이 알려져 있다. 즉 땅을 시체(屍體)가 안치될 수 있도록 적당히 판 토광(土壙), 돌로 짜서 만든 석관(石棺) 등 다양하며 출토되는 유물에는 돌칼(石劍), 돌촉(石鏃), 대롱 처럼생긴 구슬(管玉) 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때도 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부여 세탑리오층석탑

부여 세탑리오층석탑

18273     2019-12-13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금백로 909-70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백제탑의 양식에 따라 2층 이상의 탑신(塔身)이 1층에 비해 높이가 급격히 낮아진다. 높이 2.2m이다. 탑이 서 있는 터 주변에는 청량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곳곳에 절을 이루는 건물에 쓰였던 돌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탑의 둘레에 높이 1m 가량의 석축을 쌓아 기단부(基壇部)는 거의 보이지 않아 맨윗돌만 드러나 있고, 그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이 올려져 있다. 탑신의 각층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 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데, 후대에 만들어 보충한 것이다. 위로 오를수록 탑신의 몸돌 높이를 낮게 하고 지붕돌의 너비는 조금씩 줄어들어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기단부가 땅에 묻혀 있는데, 지붕돌이 두껍고,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다. 지붕돌의 폭에 별다른 변화가 없어 좁고 긴 일직선 모양을 하고 있다. 1층 몸쳇돌에 비해 2층부터 그 높이가 점차 줄어드는 점 등은 부여 정림사탑을 많이 닮았다. 주변에 고려시대 기와의 특징인 어골무늬를 가진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조선시대의 연호인(順治)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도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절이 있었던 듯하다.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23668     2019-12-13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남해대로 3829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사적 제232호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제232호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용연서원

용연서원

17716     2019-12-13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로72번길 1-13

용연서원은 1691년(숙종 17)에 이사상(李師相) 등 남인계 유생들의 주도로 이덕형(李德馨)과 조경(趙絅)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이듬해인 1692년(숙종 18)에는 용연(龍淵)이라는 사액을 받았는데, 포천의 명소인 연못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용연서원은 경기도 내에서 유일하게 남인세력의 근거지에 설립되었으며, 이덕형이 임진왜란 때 세운 공로가 인정되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사우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986년 이후 사당·내삼문·강당·외삼문·홍살문 등을 복원하였으나 동재와 서재는 복원되지 않았다. 포천은 이덕형의 외향(外鄕)이었다.

남해 척화비

남해 척화비

18722     2019-12-13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 29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 각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낮은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맨 위에 지붕돌을 올려놓아 다른 척화비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당시 대원군의 명으로 척화비를 곳곳에 세우자, 이 지역의 관청에서 그것을 본 떠 세우면서 양식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척화비를 일제히 세우던 고종 8년(1871)에 함께 세운 것으로,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된 후 세계 각국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비들이 철거되었으나,이 비처럼 몇기의 비들이 여전히 남아 그 속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창선대교타운

창선대교타운

23965     2019-12-13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동부대로2964번길

남해안 한려수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창선면 대벽리 일원에 조성되어 있는 『창선대교타운』 2003년 4월 28일 총연장 3.4Km인 『창선·삼천포대교』의 개통과 아울러 대교 입구에 조성하였고, 총 면적 204,100㎡를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하여 공용주차장 조성, 공중 화장실, 오수 처리시설 등의 공공시설을 설치하여 관광객의 편의제공과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창선대교타운은 창선대교의 "백만불의 야경"과 함께 범선 모양의 활어 위판장, 고급 레스토랑, 활어회센터, 특산물 판매장, 자동차 극장 등 다양한 시설이 완비돼 있고, 특히, 창선대교 타운 내에 위치한 창선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승선하게 되면 창선도 주변의 아름다운 비경을 만끽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진주 음악분수대

진주 음악분수대

43196     2019-12-13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542

진주의 역사와 남강의 수려한 경관이 이루는 남강둔치에 설치된 음악분수는 아름다운 음악선율에 맟춰 춤을 추고 있는 듯 천년도시 진주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음악분수의 연출방식은 음의 고저에 따라 입력되어 있는 값이 나오는 단순한 음악 분수가 아닌 음악에 맞추어 수동으로 분수 모양을 조합하여 조명과 각종 효과들을 연출함으로써 연출가의 뛰어난 음악에 대한 해석과 예술성이 요구되는 종합창작 예술품이다.

백제 오천결사대 충혼탑

21434     2019-12-13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싸워 죽은 백제시대 오천결사대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탑으로 백제문화제 행사에 오천결사대 충혼제를 지내는 곳이다. 매년 백제문화제시 오천결사대의 위국 충절을 기리는 오천결사대 충혼제가 이곳에서 거행된다. 주요 조형물은 백제의 문(18m), 오천결사대출정상(8.8m)이 있으며 조성기간은 1998년 ~2002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계백장군과 오천결사대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충절교육의 장으로 구국충혼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상징성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부여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인(仁), 의(義), 신(信), 충(忠)인 백제정신의 계승발전과 부여지역만의 자긍심 고취와 애향심을 유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조형물 개요]
* 조성 기간 - 1998년 ~ 2002년
* 주요조형물 - 백제의 문(18m), 오천결사대출정상(8.8m)

문경 오미자체험마을

24915     2019-12-13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여우목로 2371-5

문경시 동로면은 오염원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기후는 일교차가 큰 산간 고냉지의 기후특성을 가지고 있어 약용작물이나 과수 재배에 유리하고, 일조량 역시 약용작물 재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강수량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하며 약용작물인 오미자 재배에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었다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전국 최대 오미자 생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오미자는 특유의 맛과 향, 선명한 붉은 색깔, 탁월한 약효 등으로 좋은 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문경 오미자는 친환경 농법에 의한 약이되는 오미자 생산과 더불어 오미자와인, 오미자 음청류, 오미차 초컬릿 등 다양한 오미자 음식이 개발되고 있으며, 오미자 체험장 운영 및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오미자 축제 등으로 다양한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즐길거리로는 생달리마을 주민들과 함께 떡, 오미자 청, 두부 만들기 체험이 있다. 체험후 에는 주민들과 풍악놀이를 하며 흥겨운 잔치가 벌어진다.

마을의 이름이 생달(生達)인 것은 곧 백두대간의 산 정기를 받고 맑은 물과 공기로 인해 누구나 ‘생(生, 삶)이 왕성하게 막힘없이 통한다(達, 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마을 근처에는 우리나라 100대 명산이 5개소나 있다. 바로 황장산, 주훌산, 대야산, 희양산, 월악산이다. 이 가운데 희양산(曦陽山)은 태양(太陽)이면서 남자이고, 월악산(月岳山)은 달(月)이면서 여자이다. 또한 마을을 둘러싼 산줄기는 견우와 직녀가 만남을 이루는 오작교 지형이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한 쪽 끝에는 오정산(烏井山)이 있고, 마을 바로 뒤쪽에 황장산이 있는데, 황장산의 옛 이름이 작성산(鵲城山)으로, 이 두 산이 이루는 산줄기가 바로 까마귀(烏)와 까치(鵲)가 합심하여 만든 오작교(烏鵲橋)인 것이다.

마이산 신제

18409     2019-12-13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세계적으로 특유한 음양봉으로 이에 얽힌 숱한 전설을 간직한 마이산은 영산으로서 산신이 있다고 믿어온 이 고장에 해마다 산신제를 지내는 마이 문화제가 있다. 이 산은 조선 건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바 조선 태종이 1413년 10월 12일 마이산에 와서 산제를 올렸던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하여 10월 12일을 진안군민의 날로 정하고 동시에 마이 문화제도 열리는데 마이산 아래에 있는 은수사 제단에서 엄숙한 산신제를 지내는 것을 비롯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으로부터 조선 삼한을 다스리라는 계시와 함께 받았다는 금척을 주제로 한 금척무를 공연한다. 한편 향토의 부부 시인인 삼의당을 기리는 백일장대회, 사생대회, 좌도농악공연, 향토미술인 초대전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곁들여 마이산이 지닌 뜻을 간직해오고 있다. 유래세계적으로 특유한 음양봉으로 이에 얽힌 숱한 전설을 간직한 마이산은 영산으로서 산신이 있다고 믿어온 이 고장에 해마다 산신제를 지낸다.

고성유람선

24373     2019-12-13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공룡로 3083

경남 고성읍 남포항에 위치한 고성유람선은 고성을 찾는 관광객들이 백악기시대(1억년전)의 공룡화석과 공룡발자국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남해안 한려수도의 중심부인 호수 같은 고성만과 자란만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해상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