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Km 2025-09-22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21
600년 역사를 지닌 경북 안동시 군자마을에서는 고택 숙박 체험을 운영한다. 조선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마을이다.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영화 <관상>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이름은 조선 중기 대사헌을 지낸 한강 정구 선생이 ‘마을에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 산기슭을 따라 200~500년 된 국가민속문화재 고택들이 늘어서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 줄기가 흐른다. 이 모습은 1970년대 중반 안동댐이 건설되며 수몰될 위기에 처한 군자마을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조성한 것이다. 숙박 장소로 개방된 공간은 예안파 종택의 별당인 후조당과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산남정, 규수방, 군자방, 송죽방 등이다. 후조당과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산남정은 고택으로 화장실이 외부에 있다. 규수방, 군자방, 송죽방은 새로 지은 한옥으로 숙박객의 편의를 위해 강당과 샤워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퇴계 이황이 쓴 현판을 단 후조당은 툇마루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뒤편으로 소나무숲이 우거져 머무는 내내 솔향기가 은은히 풍긴다. 읍청정은 조선 중기 학자인 김부의 선생의 호를 따 지은 정자로 스승인 퇴계 선생이 이름 지었다. 이 외에도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탁청정이 마을 안에 있다. 우아한 팔작지붕 아래 있는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고, 마루에는 퇴계 이황 등 여러 학자의 시판(시를 새겨 넣은 판)이 걸려 있다. 가문 출신들이 남긴 고서와 문집, 교지 등 각종 고문서를 전시한 숭원각은 요청하면 둘러볼 수 있다. 10인 이상 주문 시 1인당 9000원에 반가의 아침상을 맛볼 수 있다.
16.6Km 2025-09-17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1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에 이덕홍(李德弘)이 학문 연마와 심신수련을 위해 건립한 「오계정사」의 후신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燒失)되었으나, 1595년(선조 28)에 쌍계(雙溪) 언덕으로 이건(移建) 하였고, 1636년(인조 14)에 홍수로 유실되는 등, 여러 차례 이건과 중건을 거쳤다. 사림의 공론으로 1665년(현종 6) 10월 2일에 도존사(道存祠)를 建立하고 이덕홍(李德弘)의 위패를 봉안한 후 1691년(숙종 17) 오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서원이 침수 피해가 있자 1711년(숙종 3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724년(경종 4)에 그의 장자 이시(李蒔)를 배향하였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19년에 복향하였고 1978년에 道存祠를 재건하였다.
16.8Km 2025-08-26
경상북도 봉화군 예봉로 1573-33
비진숲커피의 ‘비진’이란 ‘마음과 힘을 있는 대로 모두 씀’을 의미한다.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이 만들어낸 공간, 고즈넉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숲 속에 의외의 공간이 풍경과 어우러져 있는 그곳에 바로 비진숲커피가 위치해 있다. 대표 메뉴는 비진 라떼, 비진에이드, 엄마의 에이드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다양한 음료와 구움 과자가 준비되어 있다.
16.8Km 2025-12-30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 19-18
성암재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고즈넉한 한옥이다. 독립유공자 의재(宜齋) 강필(姜泌)의 아들 성암 강승원의 가옥으로 1915년 금강송으로 건립된 전통 한옥이다. 성암 강승원의 손자 부부가 귀향하여 고택 유지 및 보존을 통해 완성된 특별한 고택체험, 안채에는 'ㅁ'자의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대청마루를 비롯한 2개의 방과 곳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부터 가꾸어진 독특한 고택 정원이다. 웰컴 커피/ 티를 제공한다. 또한, 조식으로 샐러드, 빵, 떡, 커피 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다도체험, 전문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커피, 투호놀이 등 다양한 체험이 있다. 봉화 춘양목 군락지(외씨버선길9코스),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 낙동정맥트레킹, 청량산, 무섬마을등 다양한 명소가 주변에 위치해있다. 3분 거리에 수질이 좋은 대중목욕탕이 있다.
16.8Km 2025-10-28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산정길 202-17
구양서원은 1914년 처음 백산 변경회와 봉은 변극태 선생을 봉향하는 사당을 건립하고 세덕사라 이름 지었다. 1924년 후손들에 의해 묘우, 강당, 서재 등을 신축하고 사림의 뜻에 따라 구양이사로 승격됐다. 1984년에는 후손 변교우가 자비로 중수할 때 규모를 확장하여 묘우, 전사청, 동재, 서재, 삼문, 문루, 기타 부속건물을 신축했다. 이후 서원으로 승격하여 대은 변안렬 선생을 주벽으로 삼고 변경회, 변극태 선생을 배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로는 사당인 숭절사, 정당인 염수당과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대은 변안렬 선생은 고려 말 홍건적을 평정했고, 1380년 도체찰사로 운봉, 인월 등의 지역에서 왜구를 대파해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고려 말 새 왕조에 항거하다가 1390년 유배지인 한양에서 타계했다.
17.3Km 2025-06-26
경상북도 봉화군 낙천당길 39
권진사댁은 조선시대의 학자 성암(省菴) 권철연(1874~1951)의 호를 따 ‘성암고택’이라 불리기도 한다. 원래는 건너마을에 살고 있었으나 188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고, 지은 지 130여 년이 되었다. 대지 1,300평에 본채 56칸, 별채 3칸, 대문채 9칸으로 형성된 웅장한 고택이다. 건물은 춘양목(금강송)으로 만들었으며, 높다란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가로로 넓게 뻗은 사랑채를 중심으로 왼편으로는 공부를 위해 사용되던 서실(현재는 새사랑방)이 아담하면서도 정갈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안채가 자리 잡고 있다. 큰사랑방 빼고는 모든 방에 장작으로 보온을 하기 때문에 고택에서의 옛 정취가 물씬 난다.
17.6Km 2024-12-10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원촌길 8-14
춘양중학교 안에 동·서로 마주 서있는 2기의 탑으로 쌍탑형식을 띤다. 같은 규모를 갖고 있으며 양식과 기법이 동일한 신라식 일반형 석탑이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각부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9세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2기의 석탑은 각각 동탑 3.9m 서탑 3.97m의 작은 탑으로, 대작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비례와 정제된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단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탑이 몹시 기울어져 있어 1962년 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는 사리함을 넣었던 공간이 발견되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었다. 석탑 앞 석불 1구 외에는 근처에 절터로 추정할 만한 유적이 없으나, 신라의 옛 사찰인 남화사의 옛터로 알려져 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이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17.7Km 2025-10-28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예봉로 1840
조선 중기 문신인 김종걸(1628∼1708)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건물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에서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병들자 소태산에 올라가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뒤에 이조 참판으로 추대되었다. 정조 17년(1793)에 세운 이 사당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폐쇄되었다가 1925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관실(祭官室)이 딸린 문간채와 一자형의 본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앞쪽에는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17.8Km 2025-09-09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다덕로 539
고향집식당은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에 있다.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모닝와이드> 등 여러 방송에 소개된 바 있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외관과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대표 메뉴는 구수한 청국장과 손수 만든 순두부를 맛볼 수 있는 청국장+순두부이며 모두부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풍기 IC에서 가깝고 주변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문수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18.0Km 2025-09-09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55
* 조지훈의 주실마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속하는 주실 마을은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 마을은 전통마을이면서도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주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 경상북도 기념물) 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고, 옥천종택(玉川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월록서당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조지훈 생가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조지훈은 경상북도 영양 출신으로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선생은 박목월·박두진과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 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과 선(禪) 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 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가옥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한 것을 끼워두었고 집 주위는 고풍스러운 담을 둘렀다. 이 집은 이 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조선 중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조정형이 지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이곳은 조지훈 선생 외에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조승기 선생과 선생의 조부인 조인석 선생 등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주곡동 옥천종택 한양 조 씨 옥천 조덕린 선생의 옛집으로 살림채인 정침과 글 읽는 별당인 초당, 가묘인 사당으로 구성된 17세기말 양반 주택의 대표적인 예이다. 살림채는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ㅁ자 집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앞면 5칸의 가운데에 대문을 달고 왼쪽에 안사랑방을 두고 있다. 오른쪽에는 마구간을 고친 온돌방이 있고 부엌·고방이 있다. 살림채의 몸채는 양옆에 꺾여서 위치하는 부분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안마당을 향하여 개방된 6칸 대청이 있다. 대청의 오른쪽부터 도장방·안방이 접해 있고, 안방을 마루 쪽으로 1칸 더 내어 2칸으로 꾸몄다. 경상북도에 분포되어 있는 ㅁ자집 중에 대청과 안방의 윗머리에 도장방이 놓여있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이곳처럼 도장방의 바닥이 온돌이 아닌 마루로 깔려있는 예는 흔하지 않다. 초당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지은 것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노인이 머무는 곳이다. 이 지역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며 있으며,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가운데 칸이 좀 넓다. 안채의 오른편 뒤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을 두르고 있다. 안동지방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안방이 동쪽으로 오고 사랑방이 서쪽으로 배치된 점이 다르다. 이러한 형식은 18세기부터 안방과 부엌이 서쪽으로 배치되는 평면구성으로 통일된다. * 월록서당 후학들을 교육하고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월하 조운도(1718∼1796) 선생이 의견을 내고 한양 조 씨·야성 정 씨·함양 오 씨가 주축이 되어 조선 영조 49년(1773)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를 가진 한 일자형 건물로 전망이 좋고 한적하여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만들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은 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른쪽은 ‘극복재(克復齋)’, 왼쪽에는 ‘존성재(存省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