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 면작기념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문익점 면작기념비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문익점 면작기념비

문익점 면작기념비

0m    17652     2019-05-15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동부로 2545

* 붓통과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 면작기념비 *

문익점과 문승로의 목화 재파를 기념하기 위해 1935년데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금성산 고분군 입구에 있으며, 기념비 뒤로는 자그마한 목화밭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 태종 때 의성 현령으로 재직했던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땅에 목화씨를 파종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목화는 고려 공민왕 때 삼우당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금주성에서 목면종자를 필관에 넣어 귀국하였다. 그리고 조선 태종 시절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재임하면서 의성군의 지세가 금주성과 흡사하여 제오리에 목화를 재파하였다고 전해진다.

*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가져온 삼우당 문익점 *

문익점은 고려 공민 왕 때 좌정언으로 서장관이 되어 이공수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붓대 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가져온 것으로 유명하다. 장인 정천익과 함께 재배에 성공하였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김해부사록(金海府司錄)·순유박사(諄諭博士) 등을 지내고, 1375년(우왕 1) 다시 전의주부(典儀注簿)로 등용되었다. 1389년 좌사의대부(左司儀大夫)가 되었으며, 공양왕 때 이성계(李成桂) 일파에 의하여 추진된 전제개혁(田制改革)에 반대했다가 조준(趙浚)의 탄핵으로 밀려났다. 1440년(세종 22) 영의정이 추증되고 강성군(江城君)으로 추봉되었으며 세조 때에 사당이 세워졌다.

의성 경덕왕릉

의성 경덕왕릉

216m    19428     2018-09-03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 삼한시대 부족국가 조문국의 왕릉, 경덕왕릉 *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4㎞ 못 미쳐 금성면 대리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군 중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문국이 실재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문헌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옛 조문국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서 봉 아래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능의 둘레가 74m, 높이가 8m이며 능의 정면에는 가로 42㎝, 세로 22㎝, 높이 1.6m의 비석이 서있다. 1725년(영조 원년) 현령 이우신이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하마비 등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왕릉제사를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고, 그후 경덕왕릉보존회가 구성되어 다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묘역은 ‘조문국경덕왕릉’이라고 쓰여진 비석과 문인석·장명등·상석으로 단장되어 있다.

* 경덕왕릉이 발견된 전설에 대하여 *

경덕왕릉이 발견된 배경에 대한 신기한 전설이 조선 숙종 때 <허미수 문집>에 실려있다. 현재의 능지는 약 500년 전에 오극겸의 외밭이었다. 외를 지키던 어느 날 밤 꿈에 금관을 쓰고 조복을 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 “내가 신라시대 조문국의 경덕왕인데 너의 원두막이 나의 능위이니 속히 철거를 하라.”고 이르고는 외직이의 등에다 한줄의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에 놀란 외밭 주인은 일어나 보니 꿈속에 노인이 써준 글이 그대로 자기 등에 씌어 있어 현령께 고하고 지방의 유지들과 의논하여 봉분을 만들고 매년 춘계향사를 올렸으며 지금도 제례행사는 계속되고 있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의성 금성산 고분군

357m    19159     2018-11-27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초전1길

* 조문국의 무덤군으로 여겨지는 곳, 의성 금성산 고분군 *

금성산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소재하며 200여기에 이르는데 출토된 유물은 5~6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15~19m, 높이 3~4m의 대형분과 지름 10~15m, 높이 2~4m의 중형분, 지름 10m 미만의 소형분이 고루 밀집되었으며, 원형봉토분이 대부분이다.1960년에 국립중앙박물관, 1965년 경희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성토의 모양은 봉구를 중심으로 수평단축 상태로 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봉구를 조성하는 데 사용된 흙은 순수한 점토로서 그 양 또한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용된 흙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는 흙과 색깔이 달라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으로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 고분군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통치자에 의해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금성산 고분군과 삼한 조문국 *

금성산 고분군은 삼한 시대에 부족국가인 조문국의 것으로 여겨진다.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문국이 실재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문헌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금성산 고분군은 조문국의 도읍지로 여겨지는 곳으로 의성 지역 지방 세력과 사회구조 및 의성 지역과 신라와의 관계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북기념물 제128호
지정연도 : 1998년 4월 13일
시대 : 삼국시대
종류 : 고분군
크기 : 면적 296,825㎡, 지름 10∼19m, 높이 2∼4m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화석 산지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화석 산지

2.2 Km    29725     2019-02-08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공룡로 179-18

*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발자국 화석,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지 *
지금으로부터 약 1억1500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발자국 화석이다. 1993년 6월 1일 천연기념물 제373호로 지정되었다. 공룡은 중생대의 주라기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군도의 확장공사를 하느라 산허리부분의 흙을 깎아내면서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화석은 4종류에 모두 316개, 발굽울트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큰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대·중·소형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되어 공룡의 서식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 등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있어 당시 공룡의 모습과 생활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공룡발자국에서 전통마을까지 의성에서 즐기는 역사여행

공룡발자국에서 전통마을까지 의성에서 즐기는 역사여행

2.2 Km    3360     2017-05-15

의성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인 소문국과 조문국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고장이다. 뿐만 아니라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 신라시대 석탑으로 전탑의 기법을 모방한 국보 제77호 탑리 오층석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촌 가로숲과 조선시대의 대표적 양반마을인 산운마을이 있어 역사여행으로 제격이다. 풍혈과 빙혈이 있는 빙계계곡의 빙산사지 오층석탑도 빼놓을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의성 산운생태공원

의성 산운생태공원

4.0 Km    21339     2018-11-28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19

* 자연학습의 산교육장, 산운생태공원 *

구 산운초등학교(폐교)를 활용하여 자라나는 세대의 자연학습 및 환경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하였다. 이곳은 자연생태관찰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산교육장으로 의성의 명산인 금성산과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수정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보유수종은 관목류 및 초화류 53종이며, 주요시설로는 생태관 1동, 연못 2개소, 분수, 목교, 관찰데크, 솟대, 쉼터, 산책로 등이 있다. 생태관 내부에는 홍보관(의성군 유래와 특산품, 관광코스 및 지역행사), 전시실Ⅰ(지진과 화산활동, 생명의 기원과 지구의 탄생), 전시실Ⅱ(인류의 진화과정, 동ㆍ식물의 분류별 종류), 전시실Ⅲ(공룡화석,공룡의 연대기), 마을자료관(산운마을의 유레, 지방문화재)등이 있다. 넓은 마당에는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꽃들이 자라며, 연못·분수·나무다리·관찰데크·솟대·장승·쉼터·산책로 등을 조성하였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1 Km    19597     2019-04-29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오층석탑길 5-3

* 의성탑리 오층석탑 *

통일신라시대석탑으로 높이는 9.56m이고 기단 폭은 4.51m인 국보 제77호로 지정된 석탑이다. 부분적으로 전탑(塼塔) 수법을 모방하였고 한편으로는 목조건물 양식을 보인다. 화강석으로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한 이 석탑은 특히, 제1층 탑신에 목조 건물의 수법을 따라 배흘림이 있는 네모기둥을 세우고 남면에 감실을 두었으며 기둥위에는 주두의 형태를 본떠 조각하였다. 각층 옥개석은 전탑의 구조를 본떠서 아래 윗면을 모두 층급형으로 단을 지어 조성하였으며, 맨 윗부분에 장식되었던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다. 장중한 아름다움과 함께 전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일부 목조 건물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경주 분황사 석탑에 다음 가는 오래된 석탑으로 한국 석탑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국보
지정번호 : 국보 제77호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시대 : 통일신라
종류 : 화강석제 5층 석탑
크기 : 높이 9.6m, 기단 폭 4.5m

금성산과 신비한 빙계계곡을 걷다

2.1 Km    2465     2016-09-27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인 의성의 금성산은 그 독특한 모습만큼 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간직한 산이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던 금성산의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경북필승의 하나인 빙계계곡에서 더위를 식히는 것도 잊지 말자.

금성산

3.3 Km    37556     2018-03-19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 다양한 전설이 숨어있는 산, 금성산 *
금성산은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의성의 명산이다. 해발 531m의 높이로 태백산맥 남쪽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백악기의 하양자루형 칼데라를 가진 화산암복합체이기도 하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 시대에 조성한 길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의 경관을 자랑한다. 금성산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석달 동안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운수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 대감마을을 함께 둘러보며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의성소우당[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3.7 Km    5950     2019-05-10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55
054-834-7762, 010-5246-7762

의성소우당은 소우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반에 지은 집. 배치는 한옥의 전통적인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큰 사랑방의 뒤편으로 연결돼 있던 작은 사랑방이 몇 년 전 태풍으로 인해 유실되면서 전체적인 배치가 ㅁ자에서 ㄷ자로 변형됐을 뿐이다. 기단의 높이나 사용한 자재들 역시 소박해 사치와 가급적 먼 거리를 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전통적 유교 사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질 않다. 하지만 서쪽으로 난 협문을 지나면, 그곳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정원에는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궁궐에 정원을 꾸미는 것을 제외하면 보통 반가에서의 정원은 원래 있던 자연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작은 물줄기 옆에 정자를 지어 풍취를 감상하거나 한 칸짜리 초당을 지어 운치를 더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소우당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풍족해진 재화로 인해 새로운 형태로 창조된 정원을 갖고 있다. 따로 담을 두르고 본격적인 별채를 짓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편백나무를 식재했다. 연못 역시 원래 있던 물줄기를 잇지 않고 따로 물을 가져다 채워 넣은 것으로 보이는 게 특이점이다.
별채는 마루가 강조되는 일반적인 사랑채와 달리 살림집의 기능이 더욱 강조되어 방이 많은 구조인데, 이는 이 별채의 주사용자가 집주인과 외부의 남성 손님이 아니라 주인 내외 부부였을 가능성이 더 컸음을 말해준다.
현재의 별채는 숙박객이 머물 수 있도록 내부 공사를 마친 상태. 알루미늄 새시가 그대로 드러난 방은, 비록 밖에서 보는 것만큼의 운치는 없지만 하룻밤을 기거할 사람에게는 꽤나 반갑고 든든한 요소 중 하나. 안채와 사랑채 역시 숙박객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말끔하게 정돈이 돼 있는데, 화장실과 샤워실 역시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해 이용에 불편함을 찾을 수 없다.

수정사(의성)

5.0 Km    18678     2018-10-10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

*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수정사(의성) *

신라 신문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금성산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깊은 골짜기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지어져있다.수정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신라 신문왕 때(681~691) 의상대사가 ‘수량암(修量庵)’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고 하는 구전만 있을 뿐, 조선 중기까지 전하는 사적이 없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수량사(修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18세기의『가람고(伽藍考)』에서는 ‘지금은 수정사(水淨寺)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다. 특히, 조선 선조 25년(1592)의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 유정스님이 머물면서 금성산(金城山)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

그러나 조선 헌종 1년(1835)에 큰 불이 나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전소되었다. 그 뒤에 구담 전홍(九潭展鴻) 스님이 옛터 위쪽인 지금의 자리에 중창하였다. 1965년 이래 6년동안 월산(月山) 스님이 중수하며 요사를 짓고 월영루, 격외선원, 사명영당, 영지, 축대 등을 세웠다. 1973년에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성견(性見) 스님이 대광전과 향각을 중수하였다. 이어 1993년 주지로 부임한 총혜(聰惠) 스님이 명부전과 범종각을 새로 짓고, 산신각과 설선당(說禪堂)을 수리하였다. 1999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고, 2001년에 요사를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 수정사 인근의 볼거리 *

절터에는 대가람지가 있으며 원형 그대로의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수정계곡 마을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마을을 산운이라고 하는 대감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은 영천이씨 집성촌으로 자연지형 경관이 수려하며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볼거리도 풍부하다.문화재로는 지방유형문화재 제 242호 학록정사, 전통건조물 제12호 운곡당, 전통건조물 제12호 점우당과 중요민속자료 제237호 소우당 등의 전통고가옥 30여 동이 현존하며 조선조 이광준(1531∼1609)부사, 이민성 참의, 이의발 판서, 국권침탈 때 애국지사로 건국공훈을 세운 이태식, 그외 많은 후손들이 조정과 향리에 이름을 남겼다.

장대서원

5.5 Km    1688     2019-01-29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1길 34

이 서원은 1610년(광해군 2)에 국란의 극복과 선정을 베푸는데 앞장선 신지제(申之悌)가 후진을 가르치기 위하여 강당을 짓고 강서(講書)하던 곳이다. 장현광(張顯光)이 “藏待取藏 修以待之意也장대취장 수이대지의야”라 하여 장대서당(藏待書堂)으로 이름하였다. 1623년에 신지제가 63세로 돌아간 뒤 인근 지방의 사림들이 그의 덕을 받들어 모시는 곳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672년(현종 13)에 사당을 세워 경현사(景顯祠)라 하고 제향하였다. 1673년에(현종 14)는 정묘호란 때의 좌도의병장 이민성(李民宬)을 병향하였다. 1702년(숙종 28) 장대서원으로 승격하고 김광수(金光粹)와 신원록(申元祿)을 추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던 것을 1987년에 묘우,1996년에 강당을 복원하였다.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하순 천간이 정(丁)으로 된 날에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