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흥사(상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용흥사(상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용흥사(상주)

용흥사(상주)

0m    20144     2020-10-16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223-35

경북 상주시 지천동에 있는 용흥사는 신라 문성왕 원년(839)에 진감 선사(眞鑑禪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용흥사가 위치한 갑장산(甲長山)은 일명 연악산이라고도 하며, 용흥사 창건 이후의 사실에 대하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05년에 지은 중수상량문(重修上樑文)>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당시 나옹 화상이 시창(始創) 한 후 인조 25년(1647) 에 법심 인화(法心印和)대사가 초영(初營), 숙종 6년(1680) 사유 홍흡(思裕弘洽)대사가 2중수(二重修), 숙종 33년(1707) 사준 도인(思俊道仁)대사가 3중수(三重修), 순조 6년(1806) 4중수(四重修), 1967년 주지 중덕 스님에 의하여 5중수(五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경내에는 극락보전, 나한전, 삼성각, 선방 등이 있다. 극락보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작지붕이며, 총 25평이다. 나한전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집이며, 총 14.6평이다. 삼성각은 정면 3간, 측면 1간이며, 총 4평이다. 내부에는 칠성탱(142 X 160cm, 1984년), 독성탱 (142 X 117cm, 1974년), 산신탱(142 X 116 cm, 1984년)을 봉안하고 있다. 극락보전은 좌측에 자리잡은 백운선원(白雲t禪院) 은 1983년에 착공하여 다음해 5월에 완공된 건물이다. 건물의 형태는 정면 6간, 측면 4간, 총 49평에 달하는 팔작지붕이다. 요사는 ㄷ자형으로 정면 5간, 측면 5간의 총 47.6평의 맞배지붕이다.

지천식당

지천식당

2.1 Km    3879     2020-01-30

경상북도 상주시 남상주로 1460
054-532-1715

[경북 상주시 양촌동에 있는 원조지천식당]
원조지천식당은 남상주IC 부근에 있는 석쇠구이 한식당이다. 대표적인 메뉴로는 돼지 양념석쇠구이가 있으며, 이외에 우리밀칼국수, 냉콩국수, 된장씨래기국, 돼지수육을 메뉴로 하고 있다.

승곡마을

승곡마을

3.9 Km    23389     2019-11-01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1길 34

상주시 낙동면 승곡마을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의성군, 구미시와 인접하고 있으며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국도 25호선이 지나가고 있어 접근성이 매우 용이하다.(서울 2시간, 부산 2시간 30분, 대구 40분, 구미 20분) 예로부터 낙동강의 최상류에 위치하여 비옥한 농토와 맑은 물로 농사를 지은 상주쌀이 유명하며 최근에는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사과, 배, 고추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특히 상주의 대표적인 농산물인 감을 이용하여 사육되고 있는 “상주 감먹는 한우”의 본고장이며 전국적인 브랜드 명성과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우리민족의 얼과 전통이 깃든 문화재로 양진당, 추원당, 옥류정, 오작당 등이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매년 전통문화체험과 종가체험으로 사자소학, 천자문, 예절교육, 다도, 서예, 전통음식만들기 등을 도시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깨끗한 물과 자연 그대로의 농촌경관을 보유하고 있어 토종 곤충과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69호인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구상화강암이 있다.

존애원

존애원

4.6 Km    17365     2020-04-07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율리1길 5

* 조선 시대 사설의국, 존애원 *

존애원(存愛院)은 임진왜란 뒤 질병퇴치를 자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으로 세워진 사설의국이다. 김각(金覺) 성람, 이전, 이준, 강응철, 김광두, 정경세 등이 중심이 되어 1599년 (선조 32년) 설치하였다. 1599년은 상주에 두 계가 있었던 것을 기해낙사계로 합사(合社)한 해로 13개 문중의 계원은 24명이었는데 합계한 자리는 존애당(存愛堂)이었다. 이로써 보면 존애원 창설은 1599년이요 건물완성은 1602년이라 볼 수 있다.

* 존애원의 의의 및 가치 *

존애원은 미증유의 전화를 입고 질병 앞에 무방비 상태였던 상주민의 고통을 스스로 덜어주기 위해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설의료국(私設醫療局)인 점에서 그 정신도 높이 살 일이지만 그 유래도 전국에서는 희귀하다 하겠다. 존애원은 의료활동만 한 의국이 아니라 낙사계의 회합 자리가 되어 각종의 행사도 치렀는데 특히 1607년 이후부터 갑오경장(1894년)에 이르기까지 경로잔치였던 백수회(白首會)를 개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1607년의 존애원백수회(存愛院白首會)때는 송량, 김각, 정이홍, 윤전 등의 어른을 정경세, 이준, 김지복, 김지덕 등의 자질이 모시었다. 낙사계는 1797년(정조 21년)왕으로부터 대계란 칭송을 받고 1906년 한광(韓匡)이 아들의 관례(冠禮)할 때 존애원에서 <대계백수회>를 가진 바도 있다. 한마디로 존애원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상주 선비들의 박애정신에서 탄생한 사설의료국이었음과 동시에 향토 사랑을 실천한 낙사계원들의 모임터였다고 하겠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북기념물 제89호
지정연도 : 1993년 2월 25일
시대 : 조선
종류 : 의료기관
크기 : 면적 714㎡

상주오작당

상주오작당

5.4 Km    17256     2020-04-06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선상서로 1975

* 양진당의 원초형인 조선시대 가옥, 오작당 *

오작당은 양진당 주변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조성덕씨 소유로 양진당보다 25년이나 앞서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오작당(梧昨堂)은 일명 구당이라고도 하는데 검간(黔澗) 조정(趙靖) 선생의 종가로 처음은 선조를 추모할 목적으로 지은 집이다.1601년(선조 34년) 검간선생이 요포(현재의 양진당 자리)의 옛터에 지었다가 1661년(현종 2년) 조대윤 선생이 은천의 새터(新基, 승곡리 자연부락)로 이전하였다. 이전 당시는 내사 외사 모두 40여 칸이었으나, 1781년(정조 5년) 중수시 겹집과 흩어짐이 공존하는 건물이 되었으며 양진당의 원초형이다.

* 중후한 멋을 자아내는 오작당의 구조 *

겹집과 홑집이 공존하는 건물로, 중후한 감을 느끼게 한다. 부재(部材)의 세장한 조각, 기둥의 모접과 격자창 등은 고식의 중후감을 더한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보이나 양편이 익사처럼 된 지붕으로 용마루 모양이 ‘H’자형을 이루고 있다. 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 등 3동이 남았다 오작당은 처음 이건한 입재(立齋) 조대윤(調大胤)선생은 문명(文名)을 얻은 선비였으며 특히 일가의 친목을 도모하려면 목연(睦姸)이란 계를 조직하여 가문의 흥창을 도모한 선비이기도 하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민속자료
지정번호 : 경북민속자료 제32호
지정연도 : 1982년 2월 24일
시대 : 조선
종류 : 가옥

상주 양진당

상주 양진당

5.7 Km    19064     2020-04-08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27-4

* 조선시대 건축형식을 알 수 있는 가옥, 양진당 *

양진당은 조선시대 문신 검간(黔澗) 조정(趙挺)이 1626년(인조 4) 안동 임하 천천동에 있던 처가 문중의 99간 가옥을 옮겨지은 것이다. 검간(黔澗) 조정(趙靖)선생의 연거소로 양오진(養五眞)의 뜻을 취하여 당명(堂名)을 삼은 것이라 하겠다. 1807년(순조 7)에 중수하였고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는 쓰러져 버렸다.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아 안채 23칸만 남은 것을 1981년에 전면 해체·복원하였다. 건물의 구조를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정면은 9칸이나 되고 승제하게 된 고상형으로 남방 다습 지역의 주거형인 우란에 유사하다. 원래는 口字型 이었으나 지금은 좌우가 약간 다른 ㄷ字型으로 남았으며, 좌측은 창고로, 우측은 방을 만들었고 정면의 좌측3칸도 방이며 우측은 마루,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원래 이 건물은 검간 선생의 처가인 안동 임하면 천전동에서 이건해 온 것으로 그때의 규모로 99칸이었다고 전한다. 정침은 방을 두 줄로 배치한 겹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면은 누각형, 뒷면은 일반형인데 이다. 이는 한겨울 차가운 공기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북방식 구조이며, 이처럼 남방식과 북방식의 특징을 고루 갖추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 우리나라 가옥의 다양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양진당의 유래 및 역사 *

양진당은 여러 번 중수를 거듭하였는데, 1981년 11월에 해체하는 과정에서 종도리(宗道理)에서, "숭정후(崇禎後)180년 丁卯 11月 18日 乙卯상택주(上宅主) 조술겸(趙述謙)"(1807년 순조 7년)이란 기록과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천계 6년 병인(天啓六年 丙寅) 12월 28일 병진(丙辰) 상감훈(上籃薰) 조기원(趙基遠) 이란 기록이 있어 이때는 1626년(인조 4) 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보면, 양진당은 1626년에 건립하고 1807년에 중수하였으며, 1980년에 건물을 해체하고 1981년에 다시 복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양진당은 건립 이후 존모(尊慕)의 현장으로 강학(講學)의 현장으로, 문회(文會)의 현장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문화재 정보]
지정번호 : 보물 제1568호
지정연도 : 2008년 7월 10일
소장 : 풍양조씨 장천파 문중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가옥

연악서원

1.6 Km    1396     2020-04-07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49

갑장(甲長)의 산이 힘차게 동쪽으로 뻗어나와 좌우로 펼쳐져 한 구역을 이루니 이를 연악(淵嶽)이라고도 한다. 열악(列嶽)이 서북으로 둘러있고 대천(大川)이 동남으로 감아돌아 수석(水石)이 맑고 기이하며 계류구곡의 탁영담(濯纓潭)과 영귀암(詠歸巖)이 이 산에 좋은 경치이다.(淵嶽書院重建記 中)산명으로 서원에 이름을 한 중심적인 서원으로 상산지(尙山誌)에는 주남(州南) 양산리에 있으니 1553년(명종 8)에 목사 신잠(申潛)이 상주에 세운 서당 17개소 중의하나이며 직접 친히 연암서원이란 네 글자를 크게 현판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서당과 현판이 모두 불타 버렸다고 한다. 그 후 1601년 (선조 34)과 1658년(효종 9)에도 중건하여 1702년(숙종 28)에 서당에서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이때 박언성(朴彦誠), 김언건(金彦健), 강응철(康應哲)을 배향하였으며 1726년(영조 2)에 김각(金覺), 조광벽(趙光壁), 강용량(康用良)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13년 단소(壇所)를 설립하고 1974년 강당을 중건하였으며, 1986년에는 사당을 복원 고유하였다.

갑장사(상주)

1.7 Km    20349     2020-03-18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동

* 상주 4장사 중 하나인, 갑장사 *

갑장사는 경북 상주시 지천동 갑장산(연악산) 정상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고려 공민왕 22(1373)년 나옹(懶翁)선사가 창건한 갑장사(甲長寺)는 연악산(淵嶽山)의 상봉에 있는 작은 암자이다. 상주의 옛 지명은 상산(尙山)이며 상산지(尙山誌), 고적조(古蹟條)에는 상주의 성 밖 사방에 남장, 북장, 갑장, 승장, 4개의 큰절이 있어 4장사(四長寺)라 불렀다. 이 가운데 갑장사는 4장사(四長寺)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절이란 뜻에서 갑장사라 했다고 한다. 1988년에 기록한 갑장사 복원문에 따르면 갑장사는 1373년(고려 공민왕 22) 나옹(懶翁)스님이 창건하였는데, 절 이름은 사장사 가운데 으뜸이라는 의미에서 갑장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진묵 일옥(震? 一玉 1562-1633) 대사가 중건하면서 많은 선지식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797년 (정조 21) 연파(蓮坡) 스님이 중건했다. 근대에 와서 금봉(錦峰)스님이 중건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985년 6월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 때 소실된 대웅전은 1797년 연파 스님이 중건한 건물로, 당시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대웅전과 요사를 겸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불단에는 청동 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었으며, 1809년(순조 9)에 조성한 후불탱과 1897년(광무 1)에 조성한 신중탱이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청동 관음보살좌상에서는 1689년 (숙종 15)에 기록한 연악산갑장암과 거주상중수발원문이라는 복장 발원문이 발견되었다. 이렇듯 중요한 문화재가 뜻하지 않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 비와 안개가 품어 아름다운 산, 갑장산 *

상주는 3악(三岳)이 있어 산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남쪽의 연악산(淵嶽山), 서쪽의 노악산(露嶽山), 북쪽의 석악산(石嶽山)이 있다. 이 산들은 모두 속리산의 지맥이며 주봉에서 장장 100리를 뻗어 내려와 있다. 갑장사에 올라보면 산 자체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물론 연꽃모양을 이룬 암봉들의 수려한 모습에 오랫동안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갑장산은 비와 안개가 품어 안아 촉촉이 젖어 있는 산이다. 갑장산 최고의 절승인 백길바위, 나옹바위,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떨어질 것 같은 상사바위는 온몸이 전율이 돋는 천야만야의 아찔함을 실감나게 한다. 예로부터 뛰어난 경승을 자랑했던 이곳에는 소도(蘇塗)가 있어 옛 상주사람들은 가뭄이 심하면 갑장산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 그 연유는 바로 연악의 형상이 연못처럼 생겨 수신(용)과 통하기 때문이다. 법당 앞 처마에 걸려 있는 도우연악유계 현판은 그간의 일을 잘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갑장산

1.7 Km    38546     2020-11-03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215-187

* 고려 충렬왕이 ‘영남 으뜸산’으로 칭했던 산, 갑장산 * 백두대간이 쥐라기의 화강암 산지로 솟구친 소백산맥 줄기의 하나이다. 상주삼악을 연악(淵岳) 갑장산, 노악(露岳) 노음산(露陰山:725m), 석악(石岳) 천봉산(天鳳山:435m)이라 하며 갑장산이 제일명산이다. 높이는 물론 신령스런 기운이 맑고 밝아 해마다 홍수나 가뭄 때 여기서 기도하거나 제사를 올리면 그 응함이 빠르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이 승장사에서 잠시 쉬었다 가며 “영남의 으뜸산” 이라하여 갑장산이라고도 하며 갑장사 절의 이름을 따서 갑장산이라고도 한다. 갑장산은 정상 동북 670m의 샘 구룡연(九龍淵)에서 비롯된다. 갑장산은 동으로 장천(長川)과 선산 무수골계곡, 서로 병성천(남천 또는 이천), 남으로 산태백이재, 북으로 성골고개까지다. 좁게는 동 장천, 서 병성천, 남 돌티, 북 굴티가 된다. 넓게는 남으로 조산(祖山) 수선산(683m), 동남으로 복우산(508m), 삼봉산(448m), 나각산(240m)까지 뻗쳐 낙동강에 멈췄다. 북으로 굴티재, 백원산(523m)을 세우고 식산(503m)으로 내달려 산정의 봉황대에다 기를 모으고 계속 병성산(366m)까지 맥을 뻗쳤다. * 산세가 부드럽고 볼 것이 많은 갑장산 추천 산행 * 갑장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정상 부근에 사찰인 갑장사와 상사바위, 백길바위, 시루봉, 바람문, 나옹바위 등이 산재해 있고 상주시 내에서 가까워 주말이면 시민들이 즐겨찾는 휴식장소로 활용되며, 다양한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다. 일반적인 코스는 용흥사 주차장에서 용흥사 또는 임도를 따라서 갑장사 경내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산 아래에는 각종 자생식물과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 백길바위가 있고, 남쪽으로는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기이한 암석이 있는데 이를 시루봉이라 하며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른다. 갑장산 정상부에는 갑장사가 있고, 산허리에 용흥사 및 휴게시설(식당, 주차장 등)이 심산유곡산을 찾는 이들을 맞이한다.

상주 신앙 고백비

4.7 Km    18476     2020-05-11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삼괴리

* 천주교 순교자를 기리는 비, 상주 신앙 고백비 *

경북 상주시 청리면 일대에는 옛날 박해시대부터 많은 교우촌이 형성돼 있었다. 이곳 석간산(石壇山) 아래 현재의 청리면 삼괴2리 안골짝의 커다란 바위에는 자신의 신앙을 명백히 하기 위한 한국 교회 유일의 신앙 고백비가 서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상주군에는 1785년 을사 추조 적발 사건 당시 문중의 박해로 서울서 낙향한 서광수 (徐光修) 에 의해 처음 복음이 전파된 후 많은 사람들이 입교해 천주교를 믿어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해 1827년 정해박해 등 역대 박해 때마다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특히 신앙 고백비가 서 있는 청리면 삼괴2리 부락에는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김해(金海) 김씨 집안 김복운(金福云)의 아들 4형제가 열심히 천주교를 믿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중 차남인 삼록(三錄, 도미니코, 1843-1932년) 은 특히 신앙이 돈독해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이 신앙 고백비가 공식적인 교회 사적으로 고증된 것은 이제 겨우 10년을 넘어섰다. 김삼록은 신앙 고백비를 세운 뒤 교난을 피하기 위해 고백비 앞에 포플러나무, 미루나무 등을 많이 심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도록 가려 두었다. 그 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의 손자인 김순경(당시 79세)이 나무들을 베어 냄으로써 비로소 신앙 고백비 앞이 훤하게 트이게 되었다. 1982년 당시 상주 서문동 본당 이성길 신부가 우연히 김순경의 둘째아들을 만나 신앙 고백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교회 안에 처음 알려지게 되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84년 오기선 신부의 답사와 함께 신앙 고백비에 대한 확실한 고증이 이루어지게 됐다.

바위 위에서 의젓한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고백비에는 천주님과 교황, 주교, 신부, 교우를 위한 기도가 새겨져 있다. 비롯 공식적인 박해는 끝났다 하나 아직 지방에는 사사로운 박해가 끊이지 않고 있던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앙 고백을 이렇듯 감대하게 했다는 점에서 신앙 고백비가 오늘 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고백비의 역사적 유래 *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른 형제들은 모두 박해의 서슬이 두려워 신앙을 버렸으나 김삼록은 끝까지 천주교를 믿어 하릴없는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박해의 악랄한 손길을 피해 목숨을 구한 그는 1866년 한불 수호 조약으로 공식적인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94년부터 1900년 초 그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표징을 단단한 바위 위에 새겼다. 자신과 집안의 문중이 살고 있던 석단산(石壇山) 아래 높이 127센티미터,폭 39cm, 두께 22cm, 두께 22cm의 신앙고백비(信仰告白碑)를 건립한 것이다.

봉강서원

5.7 Km    1746     2020-02-03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1길 30

1817년(순조 17) 강세백(姜世白)이 고려절신인 강회중(姜淮仲)과 갑자사화 피화인강형(姜詗을 배향한 경덕사(敬德祠)를 봉대(鳳臺)에 창건하였으며, 이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하였으나, 1976년 옥동서원의 발의로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중건하였으며, 1998년 경덕사(景德祠)를 중건하였다.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장천서원

5.7 Km    2241     2020-04-07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59-15

추원당은 1759년(영조 35년)에 목조와가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배치는 묘우, 강당, 내외삼문, 전사청, 고직사 등 전형적인 재사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선조 · 인조 때의 학자인 정구 · 김성일의 제자였던 검간 조정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이다. 조정선생은 임란 시 창의하여 의병활동을 주도하였고 특히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임진란 기록"은 보물 제100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임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강당은 비록 1952년에 이건한 건물이지만 인근에 있는 양진당(지방유형문화재 제85호)과 같은 고상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출처 : 한국학자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