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장 (5, 10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여주장 (5, 10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여주장 (5, 10일)

여주장 (5, 10일)

0m    25591     2019-02-08

경기도 여주시 여흥로11번길 53
031-887-2272

여주장에 대하여 옛 문헌에 기록된 것은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시장이 없는 곳에 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여주장의 시작이다. 당시에는 생활필수품을 거래하게 되었고 쌀, 금, 은 등이 화폐의 대행을 이루는 물물교환이 성행하였다. 그 당시 여주의 생산처로서 지금의 대신면 지역에 등신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정확한 위치나 생산품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초 농본정책이 중시되고 상업이 억제되었으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사행상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지방의 시장도 수효가 증가하였다. 이후 점차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한강의 이용수단이 생기게 되었고 그에 따라 관선, 병선, 사선이 생기게 되었다. 세종대왕 때에 들어오면서 여주 양화군에는 정조 250석 적재 적량의 조선이 15척, 그 이하 사선 포함 20여척이 있어 이때 이미 상공업이나 교통이 고도로 발달했던 것으로 유추된다. 한강을 이용한 상선들은 주로 농산물, 임산물을 수송해 가고, 올때는 해산물(생선, 새우젖, 소금)을 외지에서 수입해왔다. 이것이 여주 최초의 시장인 양화장이다.

조선시대에 여주의 시장분포 사항을 살펴보면 여주장, 천령장(천양장이라 부름)과 억억장(후에 흥천장)이 제일 먼저 생기고 가장 번성하였다. 그 다음으로 안평장(후에 청안 리로 옮김) 곡수장, 궁리장(금사면 궁리)등이 생겼고, 그 후에 다시 태평리장이 생겼다. 해방 후에는 대신장, 북내장, 주암장, 상품장 등이 생겼으나 해방 후에 생긴 시장은 몇 년 후에 폐장되었다. 이곳에서 외지로 수출되는 수출품은 도자기 이외에 가내공업품으 로 한지, 자리, 약초류에 불과하였다. 1965년도에는 시장수가 11개였고 70년대 이르러 여러 종류의 잡화를 다루는 도매업 소매업 등의 상점이 늘어나 시장 수가 줄어 현재의 가남장과 대신장, 여주장만 서고 있다.

청심정

청심정

176m    5145     2018-11-12

경기도 여주시 강변로 60
031-886-2580

여주 남한강을 내려다 보며 즐기는 참숯장어구이, 복분자양념장어구이, 참숯오리훈제, 한방오리백숙 전문점이다. 직접 농사지은 대왕님표 여주쌀로 정성스럽게 지은 영양돌솥밥과 계절반찬으로 특색있는 장어, 오리요리를 맛볼 수 있다. 100% 국내산 장어와 고창 복분자가 어우러진 복분자양념장어구이는 청심정만의 대표 메뉴이다. 주문이 들어가면 장어를 손질하여 불판위에서 꼬리가 살아 움직이는 장어를 맛볼 수 있다. 식사 후 강변도로를 따라 남한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종국악당

세종국악당

585m    20886     2018-12-28

경기도 여주시 영릉로 125

* 주민의 문화예술 생활의 조력자, 세종국악당 *

여주시가 군민들의 문화예술 생활을 증진시키고자 1990년 건립하였다.국악당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시설로는 499석을 갖춘 대공연장(1,320㎡)과 30평 규모의 전시장,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대공연장에는 각종 조명 시설과 면막(綿邈), 영사스크린 등 첨단 무대·음향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예술작품의 공연, 강연회·전시회, 문화예술 행사 등을 개최할 수 있다.

여주쌀밥집

여주쌀밥집

740m    26380     2019-01-22

경기도 여주시 강변로 126
031-885-9544

돌솥정식을 주문하면 고추장아찌, 콩자반, 조개젓갈, 오이무침, 버섯볶음, 청경채무침, 겉절이, 샐러드, 잡채 등 20여가지의 반찬과 돌솥밥과 장을 포함하여 나온다.

여주선

여주선

862m    18034     2018-11-14

경기도 여주시 강변로 134
031-885-2616

유유히 흐르는 여강 뒤편에서 2대째 30여년의 가업을 이어온 전통의 쏘가리 매운탕집이다.

민지감자탕

민지감자탕

1.1 Km    16881     2018-12-11

경기도 여주시 세종로79번길 17-3
031-881-1533

여주 터미널 인근에 자리잡은 민지감자탕은 작은 규모의 평범한 식당이다.
이곳에서는 임산부에게 좋다는 족탕을 맛볼 수 있는데 얇게 썬 돼지족발에 감자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음식이다. 족탕을 다 먹고 난 후에는 밥을 볶아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한편 간단하게 맛볼 수 있는 뼈해장국은 돼지 등뼈가 아닌 갈비뼈를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뼈해장국의 진한 국물은 맛이 얼큰한 편이다.

하이텔모텔

하이텔모텔

1.1 Km    16467     2019-01-23

경기도 여주시 강변북로 69
031-884-3677

하이텔모텔은 다양한 문화유적이 살아 숨쉬고 있는 여주에 위치하고 있다. 도자기의 고장인 여주에서는 다양한 도자기 감상과 함께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 그리고 신륵사는 여행지로 유명하다. 또한 4대강 새물결로 다시 태어난 남한강의 이포보와 여주보를 감상할 수 있고 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에서는 자연을 느끼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여주향교

여주향교

1.2 Km    4351     2018-10-16

경기도 여주시 향교1길 24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원래 여주향교는 여주읍 상리 마암(馬巖) 근처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에 타버린 후 1685년 여주읍 홍문리의 잣나무 고개에 다시 건립하였다. 그런데 그후부터 부락 주민이 자주 괴질에 희생되고 풍수학상 불길하다 하여 교리(校里)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내삼문(內三門), 각 8칸의 동무와 서무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한아름쌀밥

한아름쌀밥

1.2 Km    28198     2018-12-10

경기도 여주시 세종로79번길 18-9
031-885-7117

공간 마다 사장님의 손길이 가득담긴 실내 분위기가 정말 아기자기한 곳이다. 음식은 첫번째 전과 보쌈, 두번째 돌솥밥이 나오며, 세번째 수정과 및 커피로 마무리. 그리고 된장찌개 맛이 옛날 시골에서 먹던 장맛을 느낄수 있어 일품이다.

여주 현충탑

여주 현충탑

1.6 Km    29479     2018-12-18

경기도 여주시 주내로 13

경기도 여주시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현충탑이다. 1959년 6월에 건립하였으나, 시설 규모가 작고 부지가 좁아 2005년 6월 1일 다시 세웠다. 원래 1959년에 군민 성금으로 착공해 제막하였다가, 1980년에 개축하였다. 그 뒤 시설 규모가 작고 부지가 협소해 현충일 추도행사 등 참배에 불편하다는 여론에 따라 2004년 2월부터 전면 재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현충일에 제막식을 가졌다. 현충탑은 조각가 이경순(李慶順)의 작품이다. 여주 도자기의 곡선미를 살리고, 여기에 여의주를 문 용의 몸짓을 소총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현충탑 뒷면에는 호국영령들의 위패벽이, 좌우에는 호국용사상이 설치되어 있다. 탑을 다시 세우면서 14위를 추가해 총 958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해마다 1월 1일 아침과 현충일에 군민 추도 및 참배 행사가 열린다. 부지 면적은 500평이다.

강한사

219m    3096     2018-10-16

경기도 여주시 청심로 113

1785년 정조가 영릉(寧陵:효종의 능)에 행차하다가 생전의 송시열이 여주에 머물 때마다 이곳에서 영릉을 바라보고 효종을 기려 통곡하며 후진들에게 북벌(北伐)의 대의를 주장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우를 짓도록 하고 친히 비문을 지었다. 건물이 지어진 그 해에 사액(賜額)되었는데, 그 때는 송시열에 대한 존칭 ‘대로(大老)’의 명칭을 붙여 ‘대로사’라 하였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과 사우를 철폐할 때 전국에 있던 송시열의 서원 ·사우 44개소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강한사로 이름을 바꾸어 대원군이 남겨놓은 47서원의 하나가 되었다.

여주시

597m    20318     2017-01-19

경기도 여주시
031-883-2114

경기도의 최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강원도 원주시, 서쪽은 이천시, 광주시, 남쪽은 충청북도 음성군과 충주시, 북쪽은 양평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면적은 607.9㎢이며 인구는 109,469명(2013년 9월 기준)이다. 2013년 여주군에서 여주시로 승격되었다.

* 자연환경
북쪽에는 양자산의 산지가 동서로 뻗어, 광주군과의 경계에 천덕봉이,양평군과의 경계에는 고래산, 파사산 등이 솟아 있다. 한강은 강원도와의 경계에서 섬강, 남서부 평지를 흐르는 청미천, 양화천, 복하천, 북부 산지에서 발원하는 금당천 등을 합치며 북서방향으로 군의 중앙부를 관류하며 여주시를 강남과 강북으로 나눈다.

* 역사
고대 - 초기에는 백제의 요충지였다. 광개토대왕 때 잠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다시 백제에 속하기도 하였으나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475년 (장수왕63) 고구려의 영토에 속하여 골내근현이 되었다. 그 뒤 신라의 영토에 속하였다가 경덕왕 때에는 황효라 불렸다.
고려 - 940년(태조23) 황려현으로 고쳐졌고,1018년(현종9) 강원도 원주 임내에 속하였다가, 1031년 (현종22) 다시 경기도로 복구되었다. 고종 때 영의로, 1305년(충렬왕31) 여흥으로 고치고 현에서 군으로 승격되어 지군사를 두었다. 1388년(우왕14) 군에서 부로 승격되어 황려라 하였다가 1389년(공민왕1) 여흥군으로 강등되었다.
조선 - 1401년(태종1) 다시 부로 승격되었고, 음죽현의 어서이촌이 여흥군에 병합되었다.1413년(태종13)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469년(예종1) 여흥에 병합되면서 목으로 승격되었다.천령현은 1018년(현종9) 광주에 예속되어 감무를 두었다가 1413년(태종1) 현으로 되었고, 1469년(예종1) 고을을 없애 면서 여주에 병합되었다.
근대 - 1895년 목에서 군으로 강등,충주부의 속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로 환원되어 3등군으로 되었다. 1914년 원주의 지내면과 서면이 여주시에 편입되었고, 주내면이 여주면으로 개칭되면서,북내, 강천, 흥천,능서, 금사, 개군, 가남, 점동, 대신등 10개 면이 되었다. 1941년 여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현대 - 1963년 개군면이 양평군에 편입되었고 1970년 금사면 산북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산북면으로 승격 분리되었다.

* 문화
문화재 - 세종의 업적과 얼을 기리기 위하여 행해지는 세종문화 큰잔치는 1960년 한글학회에서 한상억의 제의로 결정된 뒤 여주, 수원, 인천 등지에서 한글 백일장, 시화전, 서예전, 여주 영릉능전 기념식 등이 거행되어왔다. 행사 내용은 전야제인 원찰의 밤과 본행사인 길놀이 '가장행렬'로 나뉘어진다.

민속 - 흔암리쌍룡거줄다리기, 여주답교놀이, 해촌 낙화놀이 등이 있는데, 그 중 쌍룡 거줄다리기는 흔암리, 강천면 굴암리 등 12개 마을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에 모여 줄다리기를 하며 그 해의 풍년과 태평성제를 기원하는 것이다.또한 이 놀이는 수로 교통의 요충지였던 시절 도처에서 몰려온 뱃사람들이 얼어붙은 강물이 풀리기를 기다리면서 이 마을에 머무를 때 행하던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였다.

동제 - 흥천면 내사리와 점동면 처리 등지에 산신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흥천면 효지리와 금사면 이포리 마을은 지금도 매년 10월 상달에 날을 가려서 낭당에서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무사 태평과 풍년에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