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관광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신륵사관광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신륵사관광지

신륵사관광지

2.6 Km    26038     2020-01-17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 역사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신륵사관광지 *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고,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 신륵사를 일명 "벽절" 이라 부르게 한 다층전탑이 묵묵히 여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나옹선사의 당호를 딴 정자 강월헌(江月軒)에서는 그 옛날 시인 묵객들이 시 한 수를 읊고 있는 것 같다. 신륵사는 남한강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유물 등 볼거리를 기반으로 1977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고 있다.

신륵사(여주)

신륵사(여주)

2.7 Km    54118     2020-04-02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 다양한 유물이 숨쉬고 있는 고찰, 신륵사 *

신륵사는 여주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남한강 상류 봉미산 기슭에 있는 오래된 전통 사찰로,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전한다.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 1858년 헌종의 조모인 순원왕후(純元王后)가 호조판서 김병기(金炳冀)에게 명하여 절을 크게 중수토록 하였는데 이때부터 영릉의 원찰로서 의미가 약해지면서 다시 신륵사라 부르게 되었다. 근. 현대사에 있어 신륵사의 활동은 크게 알려지지 않으나, 1925년 열반당 14칸을 새로 짓고, 1929년 강성인(姜性仁) 스님이 주지 재임시 김인주(金仁柱)가 화주(化主)로 명부전을 중건하였다.

* 신륵사의 유래와 전설 *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났는데, 이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 신륵사의 다양한 문화 유물 *

신륵사 인근 강가쪽 암반 위에 벽돌로 쌓은 다층 전탑이 있어서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고도 불렸다. 나옹화상이 이 절에서 입적을 했고, 그의 보제존자석종은 1379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말의 대표적인 부도 양식을 띠고 있다. 성종 옆에 있는 석종비문은 목은 이색이 썼다. 역사가 깊고 규모도 웅장하며 주위의 경관도 뛰어난 사찰로 경내엔 화려한 극락전을 비롯, 조사당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전탑, 석종, 대장각기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점을 보유하고 있다.

[문화재 정보]
1) 신륵사 조사당(보물 제180호)
2)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3)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4)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
신륵사 조사당 근처의 구릉에는 석종 하나가 그에 딸린 비 및 석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이것은 고려 말 공민왕 때에 왕사를 지낸 보제존자 나옹화상(1320∼1376)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종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석종으로 불린다. 이곳에 석등까지 세워져 있는 것은 나옹화상의 위상이 그만큼 높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려말의 대표적인 석종 부도로서, 이전의 팔각원당형 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의 선구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석종형 부도는 통도사·금산사·용연사·봉암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은 계단탑 형식을 한 통도사·금산사의 양식과 비슷하다. 석종의 높이와 지름은 각각 1.9m와 1.1m이다.
5)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
6)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7)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앞 석등(보물 제231호)
8) 신륵사 극락보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썬밸리호텔

썬밸리호텔

2.8 Km    5990     2019-03-21

경기도 여주시 강변유원지길 45
031-880-3889

여주 남한강변에 위치한 썬밸리호텔은 영동고속도로, 제2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을 있는 비즈니스 및 레저 공간이다. 서울과 수도권, 대전과 충청권에서 1시간 거리 이내의 위치이다. 국보 고달사지 승탑, 천년고찰 신륵사와 사적 세종대왕릉 등 문화유산이 있으며 도예체험장과 황학산수목원, 여주 강변유원지 등이 있다.

여주 황포돛배

여주 황포돛배

3.3 Km    40816     2019-09-06

경기도 여주시 강변유원지길 105

※ 우천 또는 결빙 등 기상악화시 운항 중지
※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하고, 승선신고서 작성하여야 탑승 가능

황포돛배는 말 그대로 누런 포를 돛에 달고 그 바람의 힘으로 물자를 수송했던 배이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의 상류지류인 남한강을 끼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색으로 인해 조선시대 4대 나루 중 이포와 조포나루를 보유하고 있다. 이포와 조포나루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물자교역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주는 물자 교역이 번성하였던 중심 상업도시로서 가치가 있는 고장이라 할 수 있다.

황포돛배는 대부분 0.4t에서 0.5t 정도의 작은 배로 어업이나 물자 수송 등에 쓰였다. 몸통은 스기나무로 만들고 노는 쪽나무로 만들며, 돛대는 죽나무와 아주까리나무로 만든다. 돛대는 6m 정도로 길게 세우고, 황토를 물들인 기폭을 매단다. 가로 2m 50㎝, 세로 6m의 기폭을 황톳물에 담가서 물을 들인 후에 잘 말려서 사용한다. 황톳물은 두세 번 반복하여 들인다. 한번 마련한 기폭은 2~3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생가

4.8 Km    43308     2020-01-30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 명성황후 생가에 대하여 *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 명성황후 기념관에 대하여 *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하였으며 명성황후(明聖皇后, 1851~1895) 생가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전시실은 면적 520㎡로 명성황후와 고종의 어진 등의 유물·같은 시기에 활약하였던 여흥 민씨들의 유물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한다.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당일 일본인이 사용했던 일본도(복제품), 시해장면을 재현한 매직비젼 영상물 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옆에 있는 161석의 공연장에서는 명성황후와 관련된 영상물을 단체 관람객들에게 상영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명성황후의 개화사상과 민족 자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명성황후 조각공원을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가 옆에 “명성황후탄강구리”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어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옆에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 선생의 신도비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우측 산쪽 150m 지점에 그분의 묘가 있다.

명성황후숭모제 2019

명성황후숭모제 2019

4.9 Km    6124     2019-10-22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031-881-9730

우리역사의 한시대를 장식했던 명성황후의넋을 위로하고 왜곡된 명성황후의 올바른 인식과 업적을 재조명함으로써 찬란하고 뿌리깊은 우리 민족문화의 얼을 되살려 전통문화를 함께 느끼며 계승, 발전시키고, 민족적 자긍심의 회복과 가치관을 정립코자 매년 11월 17일 탄신일을 기념하여 숭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

2.5 Km    4253     2016-09-27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에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누린다.

여주컨트리클럽

3.4 Km    21618     2019-06-13

경기도 여주시 월평로 78
031-883-7000

여주컨트리클럽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명문 코스로 총면적 380,810평에 코스전장 9,444m로 라이트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페어웨이가 넓어 장타를 구사할 수 있는 웅대한 국제 수준의 명문 골프장이다.
페어웨이가 넓어 장타를 부담없이 칠 수 있으며 대체적으로 거리가 짧고 경사가 완만하여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부담이 없는 코스이다.

명성황후 기념관

4.8 Km    21400     2019-08-01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 민비 명성황후를 만나자, 명성황후 기념관 *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하였으며 명성황후(明聖皇后, 1851~1895) 생가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전시실은 면적 520㎡로 명성황후와 고종의 어진 등의 유물·같은 시기에 활약하였던 여흥 민씨들의 유물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한다.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당일 일본인이 사용했던 일본도(복제품), 시해장면을 재현한 매직비젼 영상물 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옆에 있는 161석의 공연장에서는 명성황후와 관련된 영상물을 단체 관람객들에게 상영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명성황후의 개화사상과 민족 자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명성황후 조각공원을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가 옆에 “명성황후탄강구리”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어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옆에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 선생의 신도비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우측 산쪽 150m 지점에 그분의 묘가 있다.

기념관 주변에는 주차장과 공중화장실·연못 등 편의시설이 있고, 앞마당에는 명성황후의 자주정신과 개화사상을 추모하기 위한 조각공원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의 생가 *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시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숙종 13년) 왕의 장인 민유중의 묘막(墓幕)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있는 것은 안채 뿐이었으나,1995년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으며, 명성 황후가 어렸을 때 공부했다는 방이 있었던 자리에 탄생을 기념해 세운 "명성황후 탄강구리 (明成皇后 誕降舊里)"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 이라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다. 생가 앞에 기념관이 건립되어 각종자료·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161석 규모의 공연장(문예관)이 있어 명성황후에 대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매산서원

4.9 Km    2206     2019-11-27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능서로 94-8

세조 때에 경상남도 거창과 산청지방 유림의 공의로 문익점(文益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이색(李穡)을 추가 배향하고 ‘매산(梅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병자호란 때 문익점의 후손인 문겸(文謙)이 현재의 소재지로 이건하였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1952년에 여주경찰서장으로 취임한 문상규(文相圭)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매산사(梅山祠), 12칸의 강당, 내신문·외신문 및 동·서 협문 등이 있다. 사우인 매산사에는 문익점과 이색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며, 제품(祭品)은 6변(籩) 6두(豆)이다.

한강 문화관

5.0 Km    3210     2019-05-10

경기도 여주시 신단1길 83

강물따라 이야기가 흐르는 곳
한강문화관은 물 부족과 환경재해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자 설립되었다. ‘오천년 풍류를 누리다’를 주제로 한강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옛사람들과 강변의 풍류를 나누는 감성체험, 물방울로 소통하는 율리어스 포프의 미디어아트 등 물과의 환상적인 만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목아박물관

5.2 Km    42440     2020-04-20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이문안길 21

목아박물관은 한국의 전통 목공예와 불교미술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사립 박물관이다. 무형문화재 제108호(목조각장)인 박찬수 선생이 설립하였다. 1989년 2월 착공해 이듬해 전시관을 완공한 후 전통공예관으로 개관한 뒤, 학예연구실·소반정사·야외전시관 등 부속건물을 조성하였다. 1993년 야외전시장에 미륵삼존대불을 점안하면서 정식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야외조각공원과 지하 1층, 지상 3층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불상, 불화, 불교 목공예품 등의 유물과 더불어 목아 박찬수 관장의 불교 목조각과 목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야외 조각공원에는 미륵삼존대불, 비로자나불, 백의관음, 삼층석탑 등이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