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Km 2024-12-04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랜드는 겨울에 눈썰매장, 여름 물놀이장을 운영하는 사계절 썰매장이다. 썰매장은 왼쪽이 성인 슬로프 오른쪽이 유아 슬로프로 나뉘어 있고, 유아슬로프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를 안고 탈 수 있다. 성인 슬로프는 오른쪽 무빙워크를 이용하거나 왼쪽으로 걸어서 올라가면 된다. 성인 슬로프 옆에는 눈놀이장도 있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장갑, 모자 등 방한도구는 필수로 챙겨가야 한다. 눈썰매 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바이킹, 미니바이킹, 회전목마 등 소규모 놀이동산이 있다. 간단한 스낵과 편의점, 커피를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도 있으며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야외테라스도 있다.
11.5Km 2024-07-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79-9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에 걸쳐 있는 모악산 산자락에 위치한 캠핑파크는 캠핑과 함께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기사용이 가능하고, 취사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캠핑하기 좋은 곳이다. 주변에는 상가단지, 금산사, 모악랜드 등 다양한 문화 관광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11.5Km 2024-10-0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수성동
전라북도 정읍시의 주산으로, 정읍시가지 북쪽을 감싸고 있다. 고당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칠보산을 거쳐 성황산으로 이어지고, 성황산에서 다시 두락봉로 이어진다. 예전의 산기슭에 성황사(성황당)가 있어 성황산이라고 불렀는데 동국여지승람과 1888년 고종 25년 간행된 정읍 지에는 등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매산 또는 매봉이라고도 하였다. 서쪽 기슭에 충무공 이순신의 사당인 충렬사와 독립운동가 박준승의 묘, 한국전쟁 때 희생된 영령들을 기리는 충혼탑 등으로 구성된 충무공원이 있다. 성황산에는 3가지의 등산코스가 있으며 등산하기 편하도록 나무 데크로 되어 있으며 정상에서는 정읍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산아래 쪽에 용호 약수터가 있다. 성황산은 정읍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 정읍 전통의 음식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주변에 다양하다.
11.6Km 2025-01-03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수성택지1길 13-16
063-533-3404
유기농 야채만을 취급하는 쌈밥 전문점이다. 유황오리쌈밥정식, 유황오리훈제, 유황오리주물럭, 유황오리생구이 등을 판매한다.
11.6Km 2024-08-2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이곳은 녹두장군인 전봉준(1854~1895) 선생이 동학운동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고종 31년(1894) 갑오 동학 혁명 당시 전봉준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 그런데 서편으로 한 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택은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시에서 1974년에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 끝방은 살림살이 등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 천장이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 전봉준의 공초록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갑오년 1월에 봉기한 후 안핵사 이용태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 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를 하면서 해체 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에 무인(戊寅) 2월 26일(고종 15년 1878) 세운 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11.7Km 2024-11-05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창동서원은 정읍시 이평면에 있는 서원으로, 1965년 이곳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 김택술(1884∼1954)을 배향했다. 김택술의 본관은 부안, 자는 종현, 호는 후창이다. 17세 때 천안 금곡에 있는 전우를 찾아가 수학하여 후창이란 호를 받았다. 1906년 최익현의 태인 의병에 참여했으며, 송병선, 김복한과도 사귀었다. 1909년 부모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찢어 환자에게 피를 먹였고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여 효로서 이름을 알렸다. 또한, 왜적 타도의 기회를 엿본다는 뜻으로 불망실을 짓고 후진을 교육하며 철저한 배일사상을 고취하여 항거했고 1954년 세상을 뜬 후, 1975년 사론으로 계양사에 추배되었다. 창동서원의 건물은 사우, 강당, 고직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후창집]을 비롯한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
11.7Km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도계1길 34-13
이희맹·김제민·최안·김지수를 비롯하여 김제안·김흔·김섬·김습 등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희맹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김종직의 제자로 성균관 재학시절부터 문장과 인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성종 23년(1492)에 장원 급제하여 등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다. 김제민(1527∼1599)은 이항의 제자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이 서원은 현종 14년(1673)에 이희맹, 김제민과 더불어 조선 중기 의병장 최안과 조선 중기 문신 김지수를 모시기 위해 세웠다. 그 뒤 숙종 23년(1697)에 김제안을, 헌종 6년(1840)에 김흔을 더하여 모셨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2년에 고쳐 지었는데, 이때 김섬과 김습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현재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사우, 강당인 서당, 동재와 서재, 신문, 고사,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서는 해마다 9월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국가유산청)
11.8Km 2024-12-1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하신경8길 32
063-536-5306
서울반점은 전북 정읍에 위치해있으며 전복으로 요리한 전가복과 전복 짬뽕이 유명한 집이다. 단독 건물로 주차장이 갖춰져 있고, 단품의 요리들도 옛 맛을 느낄 수 있어 많은 단골이 즐겨 찾는 곳이다. 코스요리는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11.8Km 2025-03-12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충정로 228-13
이 사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이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국가와 민족이 위태로울 때, 거북선을 만들어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하는 큰 공을 세운 한국의 가장 위대한 해군 영웅이다. 정읍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구미산 중턱에 위치하며, 이순신 장군이 1589년 정읍현감으로 있다가 1591년 전라좌수사로 이임했는데, 그가 이곳 현감으로 있을 때의 덕을 추모하고 그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공의 탄신일인 4월 28일에 매년 제사를 지낸다.
11.9Km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충정로 228-13
충무공원은 정읍시청 바로 동쪽 성황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원 내에는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는 조선시대 정읍현감을 지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로 범국민적 발의로 1949년 사우건립을 시작하여 1963년 4월 완공했다. 이때부터 공의 탄신일인 1월 28일 탄신제전을 봉행하고 있다. 공은 선조 22년(1589년) 정읍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조 24년(1591년)까지 재임하였고, 동년 2월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영전하였다. 이러한 공의 유덕과 애국충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 신사가 있었던 곳인 이곳에 국민의 정성 어린 성금으로 사우를 건립 영정을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