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6.1 Km    90247     2018-02-19

광주광역시 북구 서림로 10
070-7686-8000

국내 최초 개방형 야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최신, 최고의 시설로 미래를 만드는 꿈의 구장이다.

말바우장 / 말바우시장 (2, 4, 7, 9일)

말바우장 / 말바우시장 (2, 4, 7, 9일)

6.1 Km    15917     2018-02-19

광주광역시 북구 서방로81번길 27
062-262-4082

광주 북구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말바우시장은 말 발자국 모양의 바위(말바우)가 있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시장이다.  5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말바우시장은 조선중기 무등산을 배경으로 활약했던 의병 김덕령 장군이 활을 쏜다음 말을타고 화살보다 빠르게 달렸는데 그때 말의 발자국이 바위에 찍혔다고 한다. 현재 그 말바위는 없어지고 건물들이 들어섰는데 그 건물 사이 골목을 중심으로 장터가 형성되었다. 2005년 광주시 북구청으로 부터 인정시장으로 등록되어 담양, 장성, 곡성, 순창 등에서 찾아올 정도로 전통과 명성이 깊은 시장이다.장날은 2,4,7,9날이다.

담양 송강정

담양 송강정

6.3 Km    18599     2019-05-07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송강정로 232

송강 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정쟁으로 물러나와 죽록정을 중수하여 송강정이라 일컬었다.(선조18년- 1585년)송강은 여기에서 사미인곡 등을 지었다. 1955년 후손들에 의하여 중수되었으며, 사미인곡 시비가 세워져 있다. 송강 정철은 선조17년(1584)에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동인들이 합세하여 서인을 공박함이 치열해지자 마침내 양사(兩司)로부터 논척(論斥)을 받아 다음해 조정을 물러나자 이곳 창평으로 돌아와 4년 동안을 평범한 인간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조용한 은거생활을 했다. 여기서 그는 사미인곡을 썼던 것이다.『송강별집(松江別集)』권7 기옹소록에「前後思美人曲 在此鄕(昌平) 時所作不記某年 似是丁亥戊子年間耳」라는 기록을 보면 양사미인곡(兩思美人曲) 제작은 창평으로 돌아온 해로부터 2∼3년 뒤가 된다.『사미인곡』은 제명(題名) 그대로 연군지정(戀君之精)을 읊은 노래이다. 그 수법은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사모하는 정을 기탁해서 읊은 것인데 송강 자신의 충정을 표현한 노래라 하겠다. 심각한 실의에 빠져 있었던 때이라 송강은 이때 세상을 비관했고 음주와 영탄으로 이곳에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골기와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재실(中齋室)이 있는 구조이며 정면엔 송강정(松江亭) 측면엔 '죽록정(竹綠亭)'이란 현판을 가지고 있다.

금강식육식당

금강식육식당

6.6 Km    3117     2019-07-31

광주광역시 서구 천변우하로 373
062-514-9111

※ 영업시간 11:00 ~ 22:00 광주에 위치한 한우전문점이다. 특히 직접 한우농장을 운영하여, 보다 좋은 품질의 한우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넓은 인테리어와 분위기 있는 실내로 가족, 회식, 단체모임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완도청정바다

완도청정바다

6.7 Km    19032     2019-05-16

광주광역시 북구 태봉로 67
062-524-9900

신안동에 위치한 완도청정바다는 저렴한 가격에 자연산 활어회는 물론 모듬회, 전복삼계탕, 낙지볶음 등 맛깔스런 해산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다. 심야영업도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찾기 좋다.

에덴모텔

에덴모텔

6.8 Km    25420     2019-03-06

광주광역시 서구 무진대로963번길 7-1
062-362-2332

광주 서구 광천동에 위치한 에덴모텔 주변에는 광주신세계백화점, 상록플라자, 광주김치체험장,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문화예술회관, 광주북구문화원, 중외공원 문화벨트, 광주 프랑스 문화원, 현대백화점,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금호평생교육관, 광주서오층석탑 등이 있다.

취병조형유허비

취병조형유허비

6.8 Km    21696     2019-05-27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 취병 조형선생을 기리는 비, 취병조형 유허비 *

취병선생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위치한 작은 공원 내에 있다. 비(碑)의 형식은 화강석 1매에 비(碑)의 지붕과 몸체[碑身]를 함께 조성하였고 기단은 별개의 돌이다. 특징은 높이보다 너비가 긴 가로형태의 양식인 점이다. 즉 비의 총높이 95cm, 너비 120cm, 두께 28cm이며 문기(文記)는 모두 346자(字)로 음각문(陰刻文)이다.

* 한일관계사의 주요 자료 부상일기의 조형 선생 *

조형(趙珩)(1606∼1679년)은 조선시대 현종(顯宗)때의 문신으로 자(字)는 군헌(君獻), 호(號)는 충정(忠貞)이며 본관(本貫)은 풍괴(豊壞)이다. 1630년(인조8년) 명경관(明經科)에 급제하여 사국(史局)에 재임할 때 허목(許穆)의 사건에 관련되어 부여(扶餘)에 귀양갔다. 1655년 대사간 겸 통신상사(通信上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병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도승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1675년 장열대비의 복제문제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楊洲)에 추방되었다.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부상일기(扶桑日記)》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7세기 한일(韓日) 관계사의 중요 자료이다. 현재 하남의 안청동에는 풍양 조씨는 살고 있지 않으며 조형 선생의 후손은 없고 경기도에 친, 인척이 있다고 하지만 유허비는 방치되어 왔다. 광주 출신으로서 여러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도 흔치 않고, 또한 광주시 일원에는 학술적 가치를 가진비는 더욱 없으므로 이 비는 취병선생에 대한 연구와 지방사 연구(地方史 硏究), 금석학(金石學)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소유자 - 국유
* 수량 - 1기
* 시대 - 1873년(조선 고종 10년)

서방시장

서방시장

6.8 Km    9798     2019-02-07

광주광역시 북구 동문대로 6
062-410-8725

광주 최초의 '싸전' 서방시장이 문을 연 것은 1966년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담양, 곡성, 화순, 함평, 멀리서는 순창에 이르는 교통의 길목이었던 이곳에 각 지방의 미곡상 등이 모여 서방시장은 시작되었다. 처음 이곳은 주변이 모두 논밭이어서 허허벌판 가운데 판자촌처럼 목재를 지어 천막을 씌운 형태로 미곡상이 32곳, 그들을 위한 중개업소 10여군데 그외 갖가지 한물을 파는 60여 점의 점포를 포함하여 모두 100여 점에 달하는 2천 평 규모의 제법 큰장이었다. 그 당시엔 큰장, 작은 장 형태로 2, 4, 7, 9일에만 장이 서는 형태였고 정식가게에 입주해 있던 미곡상 몇 곳만이 매일장을 열었다. 또 양동시장이나 대인시장 다음으로 큰 장이었던 1967년경 서방시장은 광주시내 유일한 미곡 전문장으로 미곡이 정부 양곡허가제도하에 있던 70년 초까지 최고의 호황기를 맞았다.

영광오리탕

영광오리탕

6.8 Km    20363     2019-02-13

광주광역시 북구 경양로119번길 18
062-524-0443

광주 현대백화점 뒷 골목은 예전부터 오리탕으로 유명한 골목이다. 광주 오리탕은 오리고기에 들깨를 갈아만든 국물을 듬뿍넣어 끓이므로 그 맛이 구수하고 담백하다. 같이 곁들여 나오는 묵은 김치가 일미다.

풍영정

풍영정

6.9 Km    23991     2018-10-18

광주광역시 광산구 풍영정길 21

* 강변과 어우려져 경관을 만드는 곳, 풍영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선창산(仙滄山)과 극락강(極樂江)이 마주치는 강변의 대지 위에 있다. 광주와 광산 일대에 있는 100여 개의 정각 중 대표적인 것이다. 풍영정은 명종 15년(1560년) 승문원(承文院) 판교를 끝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김언거(金彦据)가 지은 정자이다. 여기서 그는 7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여년 동안을 김인후(金麟厚), 이황(李滉), 기대승(奇大升) 등 이름난 문인들과 교우하며 지냈다. 풍영정에 남아 있는 이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은 이때의 흔적이다. 또한, 여기에는 〈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는 편액(扁額)도 걸려 있는데, 이는 명필 한석봉(韓石奉)이 쓴 것이다.김언거(1503∼1584)의 본관은 광산, 자는 계진(季珍), 호는 칠계(漆溪)이다. 김정(金禎)의 셋째 아들로, 1525년(중종 20) 사마시(司馬試), 1531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옥당(玉堂)에 뽑혀 교리(校理)·응교(應校)·봉사시정(奉史侍正) 등의 내직(內職)을 거쳐 상주(尙州)·연안(延安) 등의 군수를 지냈다. 승문원 판교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 풍영정에 얽힌 전설 *

김언거는 덕망이 높아 낙향을 하자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12채나 되는 정각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풍영정 이외의 11채의 정각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풍영정만 소실을 면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다른 정자들이 다 타버리고 풍영정이 불길에 휩싸이자 현판 글자 가운데 앞의 풍〉자가 오리로 변하여 극락강 위로 날아올랐다. 기이하게 느낀 왜장이 즉시 불을 끄도록 하자 극락강의 오리가 현판에 날아들어 다시 글씨가 또렷이 되살아났다. 현재 정각에 걸린 현판의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풍자와 영정의 글씨체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이 전설이 생겨난 까닭이 아닌가 여겨진다.

* 소유자 - 광산 김씨 문중
* 규모 - 정면 3 칸, 측면 2 칸, 골기와 팔작지붕
* 시대 - 조선시대

두암사

6.2 Km    2754     2018-11-02

광주광역시 북구 면앙로170번길 12-17

두암사(斗巖祠)는 장열사(壯烈祠) 옆에 있는 사우로 1850년(철종 1) 우치동에 건립되어 김해 김씨 京파의 중조이신 고려조 삼중대광 금녕군(金寧君) 김목경(金牧卿)과 문민공(文愍公)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망헌 김광립(望軒 金光立)의 삼위를 봉사하였다 그러다1977년 장열사에서 독립해 두암사라 하여 김목경을 추배하고 있다. 김목경은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하여 조정에서 ‘금녕군’의 호를 받았으며 후일에 세속을 떠나 속리산으로 들어갔다. 그의 후손들이 묘를 찾지 못하여 장열사에서 제단을 쌓고 함께 제를 올렸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33년 전 우연히 지석을 발견해 금녕군의 묘를 확인하고 후손이 장열사에서 따로 모셔 두암사를 짓고 모시게 됐다. 두암사 건물은 장열사를 중건하면서 뜯어낸 건물을 그대로 옮겨서 다시 지은 것 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3일과 9월 13일에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1998년에는 양력 11월 1일에 제사를 지냈다.

임계서원

6.3 Km    2581     2018-11-02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대로87번길 23-12

삼현의 발상지는 경상북도청도에 소재한 자계서원(紫溪書院) 인바 이 서원은 조선 제18대 현종대왕(顯宗大王) 때 (서기 1660년 : 가락1615년)에 下賜한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臨溪書院은 경상북도 청도의 紫溪 書院 을 본따 湖南에 居住하는 후손 들이 三賢先祖의 神位를 모시고자 서기 1985년 7월에 착공 ~ 서기 1986 년 9월 에 준공하여 매년 봄. 가을 ( 봄 : 음력 3월 25일 . 가을 : 음력 9월15일) 2차례 의 제례를 봉향, 정신적인 구심 처로 삼고자 祭禮를 치르는 祠宇(祭閣)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