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Km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만경로 600-92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소재에 위치한 남산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순조 때 남궁제(南宮濟)를 배향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 산문인 경의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13.8Km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범득골길 187-22 (갈공동)
백석서원은 조선 효종 3년(1652년) 승반산에 세워졌던 하나의 사당이다. 유집(柳楫)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02년 지금의 자리에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한식 목조기와집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3.8Km 2025-03-19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잼버리 공원은 정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변산바다로 1822에 위치하고 있는 공원이다. 세계잼버리가 열렸던 야영지를 비롯해서 새만금 3 구역 현장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하서면에서 새만금 방면으로 향하는 도로 옆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게 특징이고, 잼버리공원과 경관 쉼터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특이한 형태의 조형물과 잼버리공원이라는 현판이 달린 정자를 볼 수 있다. 조형물은 스카우트 항건을 서로 엮은 형태로, 스카우트 대원들 간의 끈끈한 형제애와 결속을 나타내며, 청소년들이 세계연맹의 휘장을 높이 들며 함께 꿈꿔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또한 공원 우측에는 세계스카우트가 열렸던 새만금 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초록빛 싱그러운 자연으로 물든 모습을 보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듯한 곳이다.
13.9Km 2025-10-30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장산리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사무소에서 익산 방향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김제평야의 농업 관개용 중심 저수지로 능제저수지라 부른다. 동국여지승람의 만경현조에도 능제라고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저수지이다. 본래는 주변 구릉지의 물을 가두는 재래지였으나, 1930년 확장 공사를 시작하고 그해 12월에 준공되어 운암호의 물을 받아 저장하는 저수지가 되었다. 현재 능제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가 관리하고 있으며 화려한 연꽃이 아름다운 곳이며 낚시터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14.0Km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14.0Km 2025-08-20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노적길 25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청림천문대청소년수련시설의 천문관이다. 8m 완전 개방형 돔과 1000㎜ 나스미스식 반사망원경(국내 최대)을 이용하여 행성과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고 천체 3D관람 및 태양 관측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곳의 시설은 천문관을 포함해 교육관, 생활관, 풋살장, 족구장, 운동장, 무대 시설, 목조 데크 무대 시설, 쉼터, 별자리 파고라 등 부대 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알찬 일정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야간 관측을 위해 생활관에서 숙박 예약을 진행 중이며 숙박하는 경우 더욱 편하게 별자리 관측을 할 수 있다. 천문대에서 보유한 관측장비는 달, 행성, 태양 흑점 등을 관찰할 수 있는 굴절망원경, 쌍안경, 반사망원경, 반사굴절망원경이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변산반도국립공원, 부안누에타운, 부안청자박물관, 새만금전시관, 채석강, 적벽강이 있다.
14.3Km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영원로 596-31
정읍시에 위치한 남복리오층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편편한 4매의 돌로 짜 맞추고, 위층 기단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기단 맨 윗돌 위에는 높은 괴임을 두었는데, 이곳에 난간모양을 새겨놓아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4면에는 중앙을 직사각형모양으로 얕게 파내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14.5Km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16
성산공원은 김제시 도심에 있는 성산에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김제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 및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공원이다. 공원 안의 교동 성산성지는 누가 언제 어떻게 쌓았는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제시대에 김제의 주성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서·북쪽에 토성으로 쌓은 흔적만 남아 있다. 성산공원에 설치된 체육 시설로는 모래씨름판, 등허리 지압기, 온몸 노젓기, 하늘 걷기, 평행봉, 허리돌기대, 철봉대, 팔굽혀펴기대, 윗몸일으키기 운동대, 배드민턴 코트 2곳 등이 있으며 쉼터, 지압보도블록,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성산타워 1층에는 매점과 휴식 공간이 있고, 2층은 김제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3층은 예전에 레스토랑으로 이용하다 현재는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성산공원 안에는 충혼탑, 반공희생자 위령비, 이상운 학생 순의비, 서해안 방조제 순직비, 반공투사 고(故) 최주일 추모비 등 다양한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또한 최학규 선생 시비를 비롯한 우란회 시비 등이 세워져 있다.
14.5Km 2025-10-30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16
벽성서원은 1965년 김해 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건물의 구성은 외삼문인 어덕문, 정면 네 칸과 측면 세 칸 규모의 팔작지붕 구조의 강당, 내삼문인 경의문, 정면 세 칸과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사당 충인묘로 구성되어 있다. 벽성서원에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낸다. 이곳에는 신라 김유신을 중심으로 고운 최치원, 죽강 김보, 도산 김선, 모암 김극일, 숙재 허주, 점필재 김종직, 안경공 김영정, 탁영 김일손, 갑봉 김우항 등 기묘명현들과 신진 사류들을 모시고 있다.
14.7Km 2025-10-27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동헌4길 46-1 (교동)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로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이다. 현종 8년(1667)에 외아와 함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숙종 25년(1699)에 수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차례의 수리와 개축을 거쳐 최근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원래는 안채, 안행랑채, 안측간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만이 복원되어 있다. ㄷ자형의 평면으로 조선시대 일반적인 중, 상류 계층의 주택건축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대청마루 등에 굵은 두리기둥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일반 민가보다는 격식을 차리고 있는 점으로 두드러진다. 한단의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과 두리기둥을 섞어서 세웠으며 홑처마의 소로수장집이다. 거의 모든 주간(柱間)에 두 짝의 세살문을 달았다. 전체적으로 간결한 외관을 갖추었으며, 동헌의 내아 건물로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유구 중의 하나이다. 내아의 바로 앞 남쪽에 외아가 있다. 앞면 7칸, 옆면 4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의 오른쪽 6칸에 대청이 있고 왼쪽 4칸은 온돌방이다. 외벽은 사방 전체에 같은 형태의 문이 달려있으며, 앞면 가운데 1칸과 뒷면 왼쪽에 출입문을 달았다.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앞면을 7칸으로 꾸며 위엄 있는 건축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관아건축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