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사(김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망해사(김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망해사(김제)

망해사(김제)

14.4Km    2025-11-10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10길 94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있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망해사는 754년(경덕왕 13) 통장 법사가 창건한 후 왕조의 부침에 따라 성쇠를 거듭하다가, 조선 시대 억불 정책으로 폐허가 되었고 1609년(광해군 1) 진묵 대사가 중창하였다. 그 후 승려 관준[1850~1919]이 다시 중창하고 수도하였으며, 1915년 계산이 중창하였다. 1933년 주지 김정희가 본전을 중수하고 보광 명전과 칠성각 등을 신축하였다. 1977년 남파가 요사채와 망해대를 새로 짓고 보광 명전·낙서전·칠성각 등을 복원 중수하였다. 그 후 1984년 보광 명전과 칠성각을 허물고 그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그 후로 몇 차례의 신축과 중수,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24년 6월엔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진봉산 고개 넘어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 위에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 있어 이름 그대로 망해사이다. 절이 서해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서해의 아름다운 일몰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정화네 불한증막

정화네 불한증막

14.6Km    2025-09-0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덕신강길 148-4

정화네 불한증막 힐링캠프는 동학 농민 혁명으로 유서 깊은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담한 캠핑장이다. 캠핑을 즐기실 수 있는 기본 장비가 모두 준비돼 있으며 바비큐 테이블과 화로대, 의자가 포함되어 있다. 또 전통 소나무를 사용하는 불한증막과 물놀이장, 노천 족욕탕도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벽제서원)

14.7Km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백석서원

백석서원

14.7Km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범득골길 187-22 (갈공동)

백석서원은 조선 효종 3년(1652년) 승반산에 세워졌던 하나의 사당이다. 유집(柳楫)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02년 지금의 자리에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한식 목조기와집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산서원(김제)

남산서원(김제)

14.7Km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만경로 600-92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소재에 위치한 남산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순조 때 남궁제(南宮濟)를 배향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 산문인 경의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정읍 신태인시장

정읍 신태인시장

14.7Km    2025-09-0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시장2길 14
063-571-7040

신태인은 일제강점기에는 호남 지방에서 곡물 거래량이 가장 많은 도시로 손 꼽혔다. 신태인 시장은 1910년대부터 5일장으로 열리고 있으며, 2008년 12월 30일 시장 현대화 사업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개장되었다. 신태인 시장의 특징은 수산물 가격이 대체적으로 저렴하게 형성되고 있으며, 고추 주산지로 좋은 고추와 신태인 농협 청결 고춧가루 가공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고춧가루를 구입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증산 강일순 탄생지

증산 강일순 탄생지

14.8Km    2025-04-2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송길 64

이 터는 구한말의 대종교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이 태어난 곳이다. 탄생지인 신월리 신송마을은 진주 강씨 집성촌을 이룬 곳이며, 그의 호인 증산(甑山)은 마을 뒷편 시루산[시루 증, 甑]에서 유래하였다. 증산이 활동하던 시기는 대외적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 속에서 여러 약소민족이 제국주의 침탈에 신음하고, 대내적으로 삼정(三政)의 문란 등 부패한 지배층의 학정(虐政)에 시달리며 이 땅의 민중들이 고통받던 때였다. 증산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원만하고 남달리 총명하였으며, 지극히 작은 곤충도 해치지 않을 만큼 호생(好生)의 덕이 두터웠다. 그는 일찍이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를 목도한 후, 1897년부터 3년간 전국을 두루 돌아보며 민중들의 참혹하고 암담한 현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무도병(無道病)에 빠진 세상의 혼란을 극복할 방법은 오직 하늘과 땅의 질서를 새롭게 고치는 일이라고 보아, 1901년부터 1909년까지 9년간 해원상생(解冤相生)의 진리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며 많은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는 상생과 인존, 평화 사상을 주창하였고, 이후 증산의 가르침은 일제강점기 그를 신봉했던 무극도(無極道), 보천교(普天敎) 등 민족종교와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학자들의 심층적인 연구 결과 이곳 436번지가 증산의 생가터임이 확인되었고, 그에 대한 역사ㆍ문화적 평가가 반영되어 2021년 정읍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 종교문화유산(1호)으로 선정되었다. (출처 : 정읍시 문화관광)

능제저수지

능제저수지

15.0Km    2025-10-30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장산리
063-540-3601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사무소에서 익산 방향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김제평야의 농업 관개용 중심 저수지로 능제저수지라 부른다. 동국여지승람의 만경현조에도 능제라고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저수지이다. 본래는 주변 구릉지의 물을 가두는 재래지였으나, 1930년 확장 공사를 시작하고 그해 12월에 준공되어 운암호의 물을 받아 저장하는 저수지가 되었다. 현재 능제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가 관리하고 있으며 화려한 연꽃이 아름다운 곳이며 낚시터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부안청자박물관

부안청자박물관

15.0Km    2025-07-09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청자로 1493

부안청자가 천년 세월을 넘어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2011년 4월에 부안군(扶安郡) 보안면(保安面) 유천리(柳川里) 유천초등학교 자리에 청자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보안면 유천도요지(柳川里陶窯址)(사적 제 69호)는 지난 1993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11~14세기 가마터 40여 곳을 확인 하였으며, 그 중 5기가 1999년 발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박물관에는 고려청자 가마와 유천(柳川)·우동(牛東)·진서리(鎭西里)에서 출토된 청자 및 조각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다양한 체험과 고려시대 명품 상감청자(象嵌靑瓷)를 만나볼 수 있다.

동죽서원

동죽서원

15.1Km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학전길 32-57

정암 조광조를 중심으로 덕촌 최희정을 기리고 있는 서원으로 1960년 지방 유림이 지었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사림파의 중심이 되었으며 급진적인 개혁을 실행하였다. 이를 반대하는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유배되어 기묘사화(1519) 때 희생되었다. 최희정은 조광조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 중종 11년(15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때 함경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광조가 추천하여 적을 크게 물리쳤다. 중종은 그 공로로 현재 서원이 있는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