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Km 17336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후지리
후지리탑동석불은 전라북도 정읍의 해정사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불상 높이 96㎝의 좌상이다. 석불은 불법의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풍화가 심해 세부 표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머리 부분은 떨어져 나가 형태를 알 수 없으며 두 손은 가슴에 모으고 있다. 빈약한 손과 좁은 무릎이 특징이며, 두 어깨를 모두 가린 승복은 부채꼴 옷 주름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다. 불상 받침대에는 꽃잎이 길쭉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조각 양식과 기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변 관광지로 은선리 삼층석탑, 은선리토성, 운학리고분군, 은선리고분군, 구파백정기의사기념관이 있다.
1.1 Km 1523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매창1길 25
부안 시가지에 위치한 부안문화원은 1987년 설립된 지역 문화원이다. 부안문화원은 부안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발굴 및 계승, 발전, 그리고 지역 문화교류와 행사. 사회교육 등을 통한 지역 문화 창달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위해 향토사 연구 및 자료 수집, 지역 문화행사 개최, 지역 향토 문화와 자료 수집 및 보존, 사회 교육활동,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문화 활동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무형문화재, 어울아띠]를 통해 부안군의 무형문화재를 답사,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학교에서는 서예와 데생, 문예창작 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부안문화원 주변에는 부안향교, 부안자여마당, 고마제, 청호저수지 등이 있으며, 부안종합버스터미널과 멀지 않아 대중교통도 편리한 편이다.
1.1 Km 389 2024-01-24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1길 10
석정문학관은 부안 문화의 전당 인근에 있는 시인 신석정(1907~1974)의 기념 문학관이다. 전라북도 부안 태생인 신석정은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제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하였다. 1939년 첫 시집인 [촛불]을 통해 그는 전원시인, 목가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관은 시인의 약력, 시인의 시 검색 열람 모니터, 생전 거처한 서재와 시인의 유품 전시, 육필 원고 등을 전시한 상설전시관과 신석정 시인의 지인들 사진과 친필 서한 등을 전시한 기획전시실로 조성되어 있다. 세미나실은 시인의 생애 영상물을 관람하고 문학 관련 세미나를 여는 공간이다. 주변으로 신석정 고택, 서림공원, 상소산, 혜원사, 성황사, 부안군청이 있다.
10.9 Km 1911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도는 원래는 작은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화되어 계화면이 되었다. 이곳의 최고봉은 해발 246m의 계화산이며, 정상에 봉수대가 있다. 계화도의 북쪽 끝의 양지마을은 예전에는 [광당(光堂)]이라고 불려 왔으나 구한말 간재 선생이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양지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의 계화조류지는 서해권에서 보기 드문 일출 명소로 둑에 일렬로 늘어선 방풍림 소나무가 뒤로 일출이 아름다워 많은 사진작가가 찾는 곳이다. 계화면 계화초등학교 앞에 있으며 일출을 감상하도록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드넓은 농경지와 갈대숲, 각종 야생조수가 서식하여 조수 보호구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곳이다. 화산과 지진이 활발했던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계화도의 역암 지역은 전북지질명소로 지정되어 있다.
10.9 Km 1540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
부안 계화도 마을에 위치한 간재선생유지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간재 전우(1841~1922)가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전우는 1882년(고종 19)에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순종 4) 경술국치로 일본에 강탈당하자 분개하여, 당시 섬이었던 계화도에 들어가 후학을 양성하고 도학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지금은 1933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세워져 전우를 기리는 사당 계양사와 전우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유물관이 사당 맞은편에 있다. 유지 앞 바닷가 청풍대에는 전우의 숭고한 생애를 기리는 [중류지주(中流砥柱) 백세청풍(百世淸風)]비가 윤용구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주변에는 계화도 외에 계화도 양지항, 새만금, 청호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10.9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21
국립 청소년 농생명센터는 농업 생명 체험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실험과 농업생산기술을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자기가 지구생태계의 일부임을 깨닫고, 이웃과 함께 살아감을 느끼며, 자연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자 하는 청소년 체험중심의 교육장이다. 숙박형, 당일형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는 환경교육은 교과 학습 및 비교과 활동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학습자 스스로 학습 내용을 계획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유사한 학습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융합적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미래를 위한 환경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1.0 Km 1549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창동서원은 정읍시 이평면에 있는 서원으로, 1965년 이곳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 김택술(1884∼1954)을 배향했다. 김택술의 본관은 부안, 자는 종현, 호는 후창이다. 17세 때 천안 금곡에 있는 전우를 찾아가 수학하여 후창이란 호를 받았다. 1906년 최익현의 태인 의병에 참여했으며, 송병선, 김복한과도 사귀었다. 1909년 부모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찢어 환자에게 피를 먹였고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여 효로서 이름을 알렸다. 또한, 왜적 타도의 기회를 엿본다는 뜻으로 불망실을 짓고 후진을 교육하며 철저한 배일사상을 고취하여 항거했고 1954년 세상을 뜬 후, 1975년 사론으로 계양사에 추배되었다. 창동서원의 건물은 사우, 강당, 고직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후창집]을 비롯한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
11.0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180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 속 장소들을 재현한 아리랑 문학마을은 김제를 배경으로 민족의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홍보관, 하얼빈 역사, 이민자 가옥, 내촌 외리 마을, 근대 수탈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보관 1층 벽면에 12권짜리 대하소설 대강의 줄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2층은 죽음도 불사하고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전진했던 김제 출신의 독립투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을 실감 나게 볼 수 있는 하얼빈 역사, 일제의 수탈에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갔던 사람들의 열악한 이민자 가옥, 근대 수탈 기관을 재현해낸 내촌이 재현되어 있다. 외리 마을의 촌락과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의 땅을 빼앗는 데 활용되었을 망원경, 나침반, 카메라, 주판, 등사기 등이 전시된 죽산 면사무소, 주재소(일제강점기 순사가 근무하던 기관), 우체국, 정미소 등도 관람할 수 있다.
11.1 Km 30203 2024-03-26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벽골제관광지 대표전화 063-540-4989, 4838
벽골제관광지 안내실 063-540-3771
벽골제관광안내소(관람 및 해설문의) 063-540-4098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옛 저수지의 중수비와 둑이다.『삼국사기』에는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8백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실제로 만들어진 때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21년(1143)에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 15년(1415)에 다시 쌓았다. 1420년(세종 2년)에 큰 폭우로 유실되었다. 지금 유적에는 일직선으로 약 3㎞ 정도의 둑만이 남아있는데,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이 둑을 농사짓는데 필요한 물을 대는 통로로 고쳐 이용하면서 그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둑의 북쪽에는 조선 시대에 벽골제를 다시 쌓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세운 비석이 있는데, 닳아서 글을 알아보기 어렵다. 1975년에는 저수지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이 있던 자리 2곳을 발굴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대규모의 높은 수준의 측량 기술이 이용된 공사였던 것이 밝혀졌다. 벽골제는 단순히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라는데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이미 이러한 저수지 축조가 가능할 정도의 고도로 발달된 토목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서도 획기적인 사실을 제공해 주는 유적이다. * 면적 - 187,473㎡
11.1 Km 163763 2024-03-2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벽골제로 442
063-540-3172
*하기 축제 내용은 전년도(2023년) 축제 내용으로, 2024년도 축제 내용은 업데이트 중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명예대표 문화관광축제 중 유일하게 전통농경문화를 주제로 개최하는 김제지평선축제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最大) 수리시설인 김제 벽골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평선을 무대로 개최되는 대통령배 전국 농악경연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와 아궁이 쌀밥 짓기, 메뚜기 잡기, 벼 수확 체험 등 각종 농경문화체험프로그램 및 농특산물 태극기 퍼포먼스, 삼색 쌀 가래떡 퍼포먼스와 같은 이슈메이킹 프로그램도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