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산김준연선생기념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낭산김준연선생기념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낭산김준연선생기념관

낭산김준연선생기념관

7.2Km    2025-07-02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영암로 1498

낭산 김준연선생 기념관은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곳으로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초대 국회의원을 지낸 낭산 김준연(1895~1971)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낭산 김준연선생은 영암의 대표적인 위인으로 항일운동에 힘쓰시고, 대한민국 헌법 제정과정에도 기여하셨다고 한다. 기념관은 기념관 건물과 사당, 묘비석, 생가,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김준연 선생의 업적과 투쟁 과정들을 전시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지역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고 관광객들에게는 산책코스 및 숲 속 공원 휴식처를 제공한다.

녹동서원(영암)

녹동서원(영암)

7.3Km    2025-03-17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낭산로 10-41

녹동서원은 인조 8년(1630)년에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어, 숙종 39년(1713)에 ‘녹동’이란 사액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에는 창건당시 연촌 최덕지(1384∼1455)만을 모시고 있었으나, 그 뒤 최덕지의 손자인 산당 최충성(1458∼1491), 문곡 김수항(1629∼1689), 농암 김창협(1651∼1708) 등을 차례로 모셨다. 녹동서원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암녹동서원소장목판및고문서류’가 보관되어 있다. 대표적인 고문서로는 원생들의 명단을 적은 「서원청금안」25책, 「서원서재유안」2책, 「심원록」5책, 「합경재보노안」3책 등을 비롯하여 통문, 완의, 노비기증문서 등의 낱장 문서가 있다. 또한 목판으로는 「연촌유사」, 「문곡집」, 「산당집」등 모셔진 인물들의 문집 목판과 인근지역의 인물의 「석천집」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녹동서원의 연혁, 조직과 운영, 경제기반, 유생들의 명단 등 종합적이고 다각적인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영암향교

영암향교

7.3Km    2025-03-16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 73

영암향교는 조선 세종 2년(1420)에 처음 지어졌다. 이후 임진왜란과 1918년 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세웠지만 한국전쟁으로 또 한 번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1951년에 대성전, 1963년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1969년에 명륜당을 다시 세웠고, 나머지 건물들은 이후에 차례로 지은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교육 공간과 제사 공간을 동·서로 나란히 배치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소박하게 단장하였다. 그 외에 두 공간을 구분 짓는 내삼문이 있고 네모반듯한 연못을 볼 수 있다.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강진 백운동별서정원

7.3Km    2025-09-16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聃老, 1627~1701)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조영(造營)한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배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며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별서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약사암과 백운암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월출산 능선의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보이는 이곳에 전형적인 호남전통원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마침 이곳길도 해남부터 시작하는 삼남길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다산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 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호남의 유서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하게 되었다. 이담로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워 아홉 굽이 유상곡수를 만들고 정자를 앉혔는데,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운동 계곡은 강진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 등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으며 조선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출처:강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다산이 사랑한 쉼터

7.3Km    2023-08-09

강진에 위치한 백운동별서정원은 가을에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호남의 3대 민간정원으로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가 조영하여 은거했던 별서 정원이다.

토담골랜드

토담골랜드

7.4Km    2025-11-13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길 80

토담골랜드는 영암 월출산 인근에 있는 야외 물놀이장이다. 한옥과 장독대가 있는 농촌 전원마을 내에서 시원한 천연 지하수를 사용하는 야외 물놀이장으로 성인 풀장과 어린이 풀장을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수영장 내에는 워터슬라이드, 폭포수 등이 있어 더욱 즐겁게 물놀이를 할 수 있다. 물놀이장 이용 시에는 취사가 가능한 평상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내부 음식점에서는 닭백숙, 삼겹살, 파전, 도토리묵, 떡볶이 등의 음식을 판매한다. 음식점 외에는 단체노래방, 매점 등이 있다. 숙박시설도 연계 운영하는데 성수기에는 글램핑장, 비수기에는 민박을 운영한다. 주변에는 월출산국립공원, 흑석산 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동락식당

7.7Km    2025-03-17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문로 10
061-473-2892

한우와 낙지로 만든 갈낙탕은 영암의 별미로 8시간 동안 우려낸 쇠갈비 국물에 산낙지를 넣어 살짝 끓여내 맛이 시원하면서도 깊다. 주인이 무산 갯벌에서 직접 가져온 낙지를 즉석에서 조리해 맛이 신선한 것도 특징이다. 살아 있는 세 발 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먹는데,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창젓(전어), 토하젓(민물새우), 파래무침 등 남도 특유의 젓갈과 반찬도 푸짐하게 나온다.

금릉경포대

금릉경포대

7.7Km    2025-08-08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설악산 및 청송 주왕산과 함께 3대 암산으로 꼽히는 월출산은 주능선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은 영암군, 남쪽은 강진군에 속해 있다. 월출산이 거느린 여러 계곡 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것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있는 금릉경포대 계곡이다. 금릉경포대는 월출산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시작하여 물줄기로 흐르는 모습이 무명베를 길게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를 맑은 물이 굽이치며 흐르는 이 계곡은 월출산의 다른 계곡들에 비해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고, 계곡물이 차가워서 여름철 피서지로도 안성맞춤이다. 경포대 탐방 지원 센터에서 경포대 계곡을 따라 바람재에서 천황사에 이르는 코스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주변에는 설록 다원 강진과 차밭과 백운동 정원이 있어 같이 둘러보아도 좋다.

영암 집영재

영암 집영재

7.8Km    2025-08-11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길 18

서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집영재의 상량문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헌종 5년(1839)에 지은 것으로 조선 후기 인근의 세 성씨 문중이 연합하여 세운 서당이다. 당시 참여한 문중은 해주 오씨, 제주 양씨, 순천 김씨였다. 영암 지역에서는 단독으로 서당을 세운 사례로는 장흥의 위씨 문중이 세운 장천재, 화순 양씨 문중이 세운 삼지재 등이 있다. 집영재는 H자형 단층 팔작집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몸체에 앞면 1칸·측면 3칸 반의 날개채가 몸채보다 1칸 내밀어져 H자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누마루는 규모가 작으면서 위풍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정대칭 구조의 단순한 평면이지만 공부하는 대청, 휴식하는 누, 잠자는 온돌방이 다 갖춰진 학사로 볼 수 있다. 서원이나 향교와 달리 온전한 형태의 서당이 남아 전하는 예가 매우 드물어 집영재는 조선 후기 서당 건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암 수성사

영암 수성사

7.8Km    2025-08-06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문밖길 9

60세 이상의 전직 관리와 학자들의 수양처로 인의예지신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수양처로 일종의 경로당과 같은 기능을 한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영암 원로들의 고견을 모으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수성사라는 액호는 1655년 향토 주민의 귀감이 되는 장소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고 원래 성안에 있다가 성밖의 성황사 쪽으로 이전했다고 하나 모두 확실하지는 않다. 현재의 장소는 원래 조선시대 때 단군과 영암을 수호하는 신령을 모시는 부군당으로 보이는데 1953년에 이곳에 세워졌다. 2005년 4월 낡은 건물을 헐고 다시 지었다. 수성사 뒤로는 단군성전이 있어 매년 개천절에 단군제를 봉행하며, 부군당에 지내는 제사도 조선시대 때는 이곳에서 주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성사에는 팽나무 5본, 은행나무 2본 등 모두 7본이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수령은 300살이 넘는다. 수성사 사장은 영암 사포계장을 겸임하는 전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