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안터선사공원

안터선사공원

18135     2019-04-19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안터1길 36

안터선사공원은 옥천의 선사시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안터선사공원에는 고인돌 1기, 선돌 1기가 있다. 석탄리 고인돌은 안터마을에 있던 3기의 고인돌 중 1977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안터1호 고인돌이다. 덮개돌이 거북 모양이며, 판돌 4매를 짜 맞춰 무덤방을 지상에 축조한 탁자식 고인돌이다. 발굴 당시 X 모양을 새긴 돌, 얼굴 모양의 예술품, 가락바퀴, 그물추 등이 출토되어 고인돌에 묻힌 이가 여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과 짝을 이루는 선돌은 아랫부분에 쪼으기 수법으로 지름 90cm의 원을 새겨 전체적으로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안터1호 고인돌에 묻힌 사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기능과 무덤 수호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옥천향교

옥천향교

3428     2019-04-19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8길 8-5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중에 소실되었다가 그뒤 중건되었다. 1954년에 유림총회에서 황폐한 향교 재건을 결의하고 1961년에 복원하였으며, 1966년과 1974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10철(十哲)·송조6현(宋朝六賢)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 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장도서는 판본 15종 58책, 사본 11종 26책이 있으며, 이 중 『유안(儒案)』·『청금록(靑襟錄)』·『청금속록(靑襟續錄)』·『선안(仙案)』·『교안(校案)』·『향교중수사실(鄕校重修事實)』 등은 조선 후기 향교연구와 이 고장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지도향교

지도향교

2063     2019-04-19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서촌길 54-11

1438년(세종 2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외삼문·사마재(司馬齋)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맡고 있다.

대전 회덕 동춘당

대전 회덕 동춘당

30597     2019-04-19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80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 선생의 별당으로 보물 제209호에 지정된 문화재이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지 6년째 되는 해인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이 공원에는 연못 3개소와 민속 그네, 팔각정과 화장실, 간이체육시설, 벤치, 음수대 등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매년 이곳에서는 갖가지 문화행사가 열린다. 4월에 열리던 동춘당 문화제는 2011년부터 10월에 구민 축제를 겸해서 열리고 있다. 동춘당 문화제는 동춘당 유학학술세미나, 숭모 제례, 휘호 대회, 한시백일장, 투호 놀이, 그네뛰기 등 우리 고장 유학자인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학풍과 인격을 기리고, 주민화합과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백련리도요지

19457     2019-04-19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사기아름길 80

백련(白蓮)리 새미골 도요지는 16.17세기 조선 자기의 본류인 분청,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으로 전통 막사발의 본고장이자 일본 국보 찻잔인 이도다완(井戶茶碗) 생산지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하얀 연꽃이 어우르진 이곳 백련리 도요지에서 투박하면서도 새의 붉은 혓바닥과 이슬을 머금은 듯한 독특한 문양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눈박이 사발과 도공을 강탈해 가 자기네 국보로 둔갑시켜 숭앙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1974년 경상남도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어 옛도공의 후손들이 조선 막사발의 명성을 재현하고 있으며 2002년 국내영화사상 최초로 칸느 영화제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취화선의 촬영장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하동군은 매년 5월 25일 차의 날을 전후해 이곳 백련리 도요지에서 도예(淘藝)와 백련지(白蓮池)를 주제로 찻 사발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아름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도예 체험과 연지 산책 등 농촌 테마형 문화체험이 가능하도록 각종 편의시설과 테마시설을 지속 확충 중에 있다.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

29480     2019-04-19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6

거창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에 황고(黃皐) 신수이가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로,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귀에는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폭 5m 이상, 높이 15m 이상의 수령 600년에 달하는 고목이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이 고목을 안정좌(安亭座)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을은 대체로 평탄하며 마을 동측에 흐르는 호음천을 중심으로 큰땀과 동촌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규모와 형식면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시도민속자료 제17호 ‘거창 황산마을 신씨고가’ 등의 지정문화재는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마을 전체는 약 50여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한 마을 전체가 모두 기와집으로 무리지어 있는 것은 이른바 씨족부농촌으로 소작마을을 별도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담장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雨水)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자연석으로 메쌓기 한 위에는 하부의 자연석보다 작은 20㎝ 내외의 돌을 담 안팎에 사용하여 진흙과 교대로 쌓아 올렸고 대부분 담장 상부에는 한식기와를 이었으며 또한 근년에 쌓은 담장은 기존 담장과 달리 엇쌓기를 하였다. 마을의 시한당 앞 연못은 일반적인 한국 전통의 연못양식인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이 아닌 원지방도형(圓池方島形)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전통고가와 어우러진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 담장 - 토담길이 약 1,200m의 돌담, 하부가 돌담 구조인 토석담
* 마을형성 - 600년전 형성
* 문화재 - 거창 대정리 신씨고가(경상남도 민속자료 17호) 등 3건

거창 무릉리 정씨고가

16120     2019-04-19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3길 19-16

신수정은 숙종 12년(1686)에 장사랑을 지낸 산수정 정형초가 건립한 것으로 현재의 건물은 1924년에 중수한 것이다. 건물구성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으로 되어 있고, 안사랑채는 헐리고 일부 변경된 구조로 남아있다. 건물 배치는 경사지에 기단을 높게 축조하여 대지의 안쪽 높은 곳에 안채, 바깥쪽 낮은 곳에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안채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 평면의 3량구조 맞배지붕의 홑처마이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에 양끝 협칸을 앞으로 돌출시켜 ‘ㄷ자형’ 평면을 만들고 있다. 사랑채는 익공계 3량 구조로 'ㄱ자형' 평면에 정면은 팔작지붕이고 측면은 맞배지붕으로 처리하였고, 앞으로 돌출된 대청은 누마루형식으로 하부는 개방되어 있고 상부는 대청의 외부에 마루를 두르고 계자난간(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건물 주인의 호를 따라 산수정이라 칭했으며, 약간의 변형이 있긴 하지만 18세기 건축 수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대문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솟을 대문으로 대문의 좌우에 방과 광을 1칸씩 두었다. 건물은 높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데, 언제나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도록 만들어서 사대부 가문의 권위적 위압감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현재 후손이 기거하면서 관리, 보존하고 있다.

옥천 경율당

1852     2019-04-19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종미3길 120

* 학문을 공부하는 서당, 경율당 *

충북 옥천군 안남면에는 경율당이란 작은 한옥이 있다. 조선 영조 11년(1735)에 문인 전후회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서당이다. 경율은 그의 호다. 평소 율곡 이이를 존경하여 호를 경율이라 하고, 서당 이름을 경율당이라 했다.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사방으로 툇간을 달았고, 뒷면 창고방에는 서책을 보관하던 누락이 설치되어 있다. 용마루에 얹은 장식기와에 ‘옹정30년을유’라는 글귀가 있어 1735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청산향교

2225     2019-04-19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교평2길 18

1581년(선조 14)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효종 때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966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맞배지붕의 대성전과 명륜당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어 있고 소장전적은 모두 산실되어 거의 없는 상태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담당하고 있다.

옥산서원

1865     2019-04-19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옥산서원길 61-7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715년(숙종 41) 영일정씨 후손들이 시조인 정습명(鄭襲明)과 포은 정몽주를 비롯한 6명의 선조에게 향사를 올리기 위해 이곳에 세덕사(世德司)를 지었다. 그 후 1830년(순조 30)에 서원으로 바꾸면서 정몽주의 위패만 모시고 봄가을에 향사를 올렸다. 정몽주가 1374년(공민왕 23)에 영남안렴사(嶺南按廉使)로 진주에 와서 이곳 비봉루에서 하루를 묵은 인연으로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의 사림들과 그 자손들이 예조에 주청하여, 옥산서원을 진주 비봉산 비봉루에 세웠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그 자리에 영당을 지어 정몽주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965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서원을 복원하고 사당을 신축하여 문충사(文忠祠)라 이름 짓고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월봉서원

4080     2019-04-19

경상남도 김해시 덕정로77번길 11-12

유학자 월헌 이보림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그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선생의 사후 12년 뒤인 1984년에 유림의 공의로 월봉서당 오른편에 명휘사를 건립하여 그 위폐를 모셨다. 장유면 관동리 덕정마을에 위치한 이 서원은 매년 음력 3월 20일을 영정하여 향례를 올리고 있다. 김해지역 유림의 정신적 중추 구실을 하고 있는 이 서원은 지금도 제향의과 전통적 서당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적 서원의 규모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서원중에 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화재 선생은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으로 이어지는 영남 기호학맥의 후예로, 평생 고향에서 월봉서원을 지키면서 한학을 가르쳤다. 또한 2005년 5월에는 성리학 관련 글과 한시, 금석문 등을 정리한 '화재문집(華齋文集·전27권)'을 출간하는 등 4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막내아들인 준규(38·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씨를 통해 월봉서당을 6대째 운영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화재 선생의 이 같은 업적과 정신을 기려 유족과 월봉서원, 유림 등은 지난해 화재 선생의 장례를 학문과 덕망이 높은 유학자가 타계했을 때 행해지는 유림장 형태의 유월장(踰月葬)으로 거행했으며 3년상을 치렀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

17661     2019-04-19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대동로450번길 4-20

* 가야 문화 연구에 중요한 김해 예안리고분군 *

김해 예안리 시례마을 주변에 있는 가야 무덤들이다. 여러차례 발굴조사 결과 가야 때의 각종 무덤 형태가 중복되어 나타났으며 무덤에서 사람 뼈가 많이 발견되었다. 총 212기가 조사되었으며 그 중 널무덤(토광묘) 64기, 구덩식장방형돌방무덤(수혈식장방형석실묘) 108기, 독무덤(옹관묘) 24기, 앞트기식방형돌방무덤 (횡구식방형석실묘) 16기가 발견되었다. 널무덤은 예안리 무덤들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널(관)의 사용은 불분명하다. 구덩식장방형돌방무덤은 4벽을 만든 상태나 바닥 시설로 보아, 만든 시기의 선후 관계를 나눌 수 있다. 독무덤은 길쭉한 2∼3개의 항아리를 연결하여 만든 것으로 전체 길이가 1m 미만이다. 구덩식장방형돌방무덤에 인접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상호간 친근관계에 있는 어린아이용 무덤으로 보고 있다. 앞트기식방형돌방무덤은 거의 파손된 상태라 전체적인 구조파악은 어려운 상태이다.

* 김해 예안리고분군 출품 유물 *

출토 유물은 토기 ·낫 ·도끼 ·화살촉 ·큰칼 ·가위 ·덩이쇠 ·꺾쇠 ·환두대도(環頭大刀) ·호박구슬 ·대롱옥 ·오수전(五銖錢) ·골각기(骨刻器) 등이다. 특히 수십구(軀)의 완전한 인체 유골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가야인의 인체 연구에 귀중한 학술자료를 제공하였다. 비교적 신분이 낮은 부족(部族) 집단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다양한 이들 무덤의 유구(遺構)가 지하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장식품으로 금·은제 귀고리와 유리·호박제 구슬류들이 출토되었다. 무덤 형태나 출토 유물로 보아 가야 전기에서 후기까지의 오랜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