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지중해마을

지중해마을

0     2019-06-14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탕정면로8번길 55-7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조성된 지중해마을은 이국적인 유럽풍 건물이 모여 지중해의 작은 시골 마을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마을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서쪽은 붉은 지붕의 성곽 형식이 두드러진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풍으로 꾸며져 있고, 남동쪽은 원형의 파란 지붕과 하얀 벽이 화사한 그리스 산토리니를 모델로 했다. 지중해마을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포토존이다. 천사의 날개, 등대 모양의 빨간 우체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디자인과 색감이 독특한 건물들을 구경하고, 아기자기한 골목을 걷는 즐거움이 크다. 카페, 소품점, 옷가게 등 여러 매장이 있고, 주말이면 유럽식 물물교환장터인 '블루마켓'이 격주로 열려 물품 구매와 공연 관람까지 할 수 있다. 블루마켓에서 지역 농산물, 특산물, 수공예 창작품 등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독특한 마을 축제와 게스트하우스도 눈길을 끈다. 지중해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므로 인근의 곡교천과 현충사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곡교천변 은행나무길

곡교천변 은행나무길

0     2019-06-14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송곡리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로 선정된 충남 아산의 명소다. 현충사 입구의 곡교천 충무교에서부터 현충사 입구까지 2.2㎞ 길이의 도로에 조성되어 있다. 35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일제히 노란 빛을 내는 가을이면 평일에도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휴일이면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현충사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꼭 들러야 하는 필수 여행코스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 노란 은행나무길은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사진으로 남겨두기에 적격이다. 봄이면 유채꽃이 피어 또 다른 멋을 선사한다.

제주 벚꽃길 드라이브

제주 벚꽃길 드라이브

0     2019-06-1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대학로 102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벚꽃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제주도이다. 서귀포에서 제일 먼저 개화한 벚꽃은 3월 말에서 4월 초쯤이면 절정에 이른다. 제주 시내를 조금 벗어난 외곽에는 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벚꽃길이 있다. 제주시청을 지나 1131번 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제주대학교 진입로가 나타난다. 이곳부터 제주대학교 입구까지 1km 남짓한 도로변에 벚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벚꽃이 길 위 하늘을 덮을 정도로 만개할 때 이곳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면 '꽃 터널'을 지나는 듯 환상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벚꽃이 절정을 이루다 못해 하늘거리며 땅 위로 떨어지고 있어 마치 눈이 내린 설경(雪景)을 보는 것만 같다. 한창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빼곡하게 들어찬 꽃 눈송이 사이로 푸른 하늘이 펼쳐지며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곳은 도로가 넓고 통행량이 많지 않아 슬슬 차를 몰아가며 드라이브 기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주말에는 나들이 나온 제주 시민들로 북적대기 때문에 한적한 분위기를 맛보려면 평일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자만마을 벽화갤러리

자만마을 벽화갤러리

0     2019-06-14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자만벽화마을은 전주 한옥마을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언덕에 고즈넉이 자리한 곳이다. 승암산 능선 아래 무수히 많은 가옥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이곳은 원래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형성한 평범한 달동네였으나, 2012년 녹색 둘레길 사업의 일환으로 골목길 40여 채의 주택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면서 유명해졌다. 골목이나 담장별로 꽃, 동화, 풍경 등을 테마로 한 다양한 스타일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지루하지 않게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용히 산책하다 보면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살았던 곳을 표시한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와 푸른 하늘과 함께 전주 시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벽화마을의 명소 '옥상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식당도 있으며, 대략 30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오목대와 이목대가 있어 문화재 탐방코스로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전주 동문예술거리

전주 동문예술거리

0     2019-06-14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현무2길 38

전주 동문예술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영 예술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연장과 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원래 이곳은 시청, 전주MBC, 홍지서림 등이 들어서 주요 상가를 이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전주문화재단에 의해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문을 연 창작지원센터 1호는 회화나 조각 같은 시각예술의 전시를 무료로 제공하며, 2호는 젊음과 열정이 넘치는 음악 거리의 산실로 역할 한다. 예술가들의 공동체인 '두레공간 콩'은 지역 미술가 5명이 모여 만든 작업·전시 공간으로 기획전과 대관을 통해 작품 전시를 하고 있다. 예술거리를 걷다 보면 ‘사진공간 목화’, ‘나비늘꽃’ 등 수많은 갤러리도 만나볼 수 있다. 예술거리 거점공간인 시민놀이터는 1층 이야기놀이터, 2층 소리놀이터, 3층 창작놀이터로 구성돼, 전주시민의 여가를 책임진다. 콩나물국밥집에서 먹는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10월 동문거리축제가 열리며, 남쪽으로 향하면 경기전과 태조로, 전주한옥마을이 가까이 있다.

삼강서원

삼강서원

1776     2019-06-14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1길 32-9

낙동강가 민씨 오우정(五友亭) 안에 있는 서원으로 연산군, 중종 때 학자인 민구령(閔九齡), 민구소(閔九韶), 민구연(閔九淵), 민구주(閔九疇), 민구서(閔九敍) 등 5형제를 배향하였다. 삼강서원은 조선 연산군·중종 때의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였던 민구령(閔九齡)이 1510년(중종 5)경에 삼랑루(三郞樓)가 있던 자리에 정자 하나를 짓고, 아우인 민구소(閔九韶), 민구연(閔九淵), 민구주(閔九疇), 민구서(閔九敍)와 더불어 5형제가 베개를 나란히 하여 기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실천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출천(出天)하여 향도에 그 평판이 자자하였다. 1547년(명종 2)에 당시의 경상도 관찰사 임호신(任虎臣)이 그 명성을 듣고 이곳을 찾아와 사실을 확인한 다음 조정에 벼슬을 천거하는 한편 오우정(五友亭)이라는 현판을 써서 걸었다. 그 뒤 1563년(명종 18)에 이곳 향중의 사림들이 민씨 5선생의 우애와 덕행을 추모하고 정자 안에 오우사(五友祠)를 지어 병향(幷享)하였으며 경내에 따로 기사비(紀事碑)를 세웠다. 후에 오우사는 삼강사(三江祠)로 바뀌었고 다시 삼강서원으로 승격하여 조두(俎豆)의 위의를 더욱 갖추었다. 정자와 사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가 그 뒤 자손들에 의하여 복원되었고, 이후 수백년 동안 여러 차례 흥폐를 거듭해 오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1897년(고종 34)에 후손인 민영지(閔泳智), 민영하(閔泳夏) 등이 문중의 의논을 주도하여 사당에 있던 자리에 큰 집을 새로 짓고 오우정의 현판을 걸어 보존하였다. 1904년에 일부를 중건하였으며, 1979년에 14세손 민병태(閔丙兌)의 주선으로 후손들이 협력하여 정자의 규모를 확충하고 사당을 다시 지어 향중 유림들의 공의로 삼강서원의 현판을 걸고, 향사림의 주관으로 서원 향사를 받들고 있다.

석골사

석골사

20568     2019-06-14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3길 167

* 오래 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로 이름난 사찰, 석골사 *

석골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운문산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12) 비허(備虛)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혜공왕 9)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寶壤)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한때 석굴사(石窟寺)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도 불렀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含花)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산신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석탑 재료 등이 전한다. 이 중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 석골사에 전하는 전설 및 이야기 *

석골사에는 주지와 상좌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주지와 상좌가 이 절에 머물렀는데, 상좌의 인품과 학덕이 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주지는 지팡이로 마법을 걸어서 상좌를 강철이로 변하게 하였다. 강철이란 독룡(毒龍)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초목이 말라죽는다는 괴물이다. 강철이로 변한 상좌는 억울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 1년 뒤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하늘로 오르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화를 내고 몸부림을 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박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인근의 농작물이 죽었고, 이후 매년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강철이가 몸부림을 쳐서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상운암 인근에는 제2의 얼음골이라 불리는 자연동굴이 있는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 이곳에서 자신의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석골사가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석굴사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곳은 오래 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법사

대법사

18986     2019-06-14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 사명대사의 전설이 밴 사찰, 대법사 *

경남 밀양 일대는 사명대사의 영험한 전설이 구석구석 밴 곳이다. 땀 흘리는 표충비, 사명대사 생가 유적지 등 사명대사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이 대법사가 위치한 무안면 일대에 남아 있다. 땀 흘리는 표충비에서 8km 정도 떨어진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50대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직접 심었다는 설도 있음)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그루가 대법사 경내 보광전 앞 마당에 서 있다. 높이가 2m20cm, 굵기는 3m20cm로 나무 밑둥이 어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우람하다.

이 사찰은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후 900년이 지난 어느날 부터 사명대사가 10여년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한데, 열반 후 그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表忠詞)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원래의 이름을 뺏기고 말았다. 초창 당시 학 3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해서 백하암(白霞庵)이라는 사명으로 불리던 이 사찰은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랜 세월 국가의 관심 속에서 중건을 거듭해 왔느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현 조실 지혜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사격을 갖게 되었다.

* 대법사에 전해오는 모과나무 설화 *

사명대사의 정신이 깃든 이 대법사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한편이 전해지니 바로 모과나무에 관한 설화이다. 해발 6백m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대법사의 중창불사가 한창이던 더운 여름, 사명대사의 지팡이 나무라고 알려진 모과나무가 대웅전을 지으려는 자리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어 모과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나무 옮기는 것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스님은 1주일간 기도까지 드려가며 공사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인부들이 일하러 오기로 한 그날 새벽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요사채에서 잠을 자던 지혜스님은 갑자기 산천이 울리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적막하기만 한 산중에 갑자기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이내 잠잠해져 다시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음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내가 4백년을 지켰는데 네 마음대로 하려느냐. 나는 절대 안간다." 지혜스님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목소리는 분명 모과나무쪽에서 들려왔다. 후닥닥 밖으로 나가보았더니 8월 한여름철인데 모과나무에서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토록 기이한 일을 겪게 된 스님은 새벽 6시 공사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나무 옮기는 일을 취소시켰다. 바로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1993년 8월 10일의 일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그냥 무시해버리기에는 현재의 대법사 구조가 참으로 이상하다.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선방이 들어섰고 모과나무는 그대로 놔둔 채 주전각인 대웅보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을 들여 대규모 불사를 하면서 본존불을 모시는 주전각을 경내중심에서 뚝 떨어진 곳에다 짓는, 전통사찰 건축양식에서 보면 크게 어긋나는 불사를 한 대법사의 이야기는 사명대사의 원력이 작용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궁색하다. 사명대사의 혼을 잇고 있는 경남 밀양 대법사는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지혜스님에 의해 불자들이 본분을 깨닫게 하는 청정수행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홍제사(밀양)

홍제사(밀양)

20928     2019-06-14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비각을 보호하는 수호사찰, 홍제사 *

홍제사는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사당 수호사찰이다. 불교를 배척하던 조선시대에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 선 사명대사의 비가 이곳에 자리한 것은 무안지방이 그의 탄생지라는 인연 때문이다. 원래 서산ㆍ사명ㆍ기허대사의 진영을 모신 표충사당이 있었으나 18세기 후반 재약산으로 옮겨져, 현재 삼비문(三卑門) 안에는 1742년에 조성된 표충비와 향나무, 비각 수호사찰인 홍제사만이 남게 되었다. 근래 사명대사의 성역화작업으로 가람이 정비되어 공원화되었으며, 밀양을 찾는 이들이 사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방문을 빠뜨리지 않는 호국도량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특히 표충비각 안에 있는 표충비(表忠碑)는 나라에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신비한 비석으로 유명하다. 이를 자연현상의 하나로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으나, 지역민들은 나라의 우환을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여기고 있다. 따라서 이 비는 ‘땀 흘리는 비(汗碑)’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는데, 땀이 비석의 전면(全面)에 흐르지 않고 비신의 글자 획 안에서만 흘러나오기도 하여 과학적으로 풀지 못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 홍제사의 창건과 역사 *

홍제사는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사당 수호사찰이다. 그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나 이곳 무안에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이기도 하며 사명대사가 창건한 백하암(白霞庵)이 있던 곳으로, 홍제사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뒤 백하암에 세웠던 표충사(表忠祠)의 후신이다. 백화암은 병자호란으로 그 내부에 있던 사당이 퇴락하자 1710년(숙종 36) 밀양부사 김창석이 사명대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을 짓고 사당을 정비하였다. 이후 표충비각의 창건주로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泰虛堂) 남붕선사(南鵬禪師)가 나라로부터 ‘表忠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현재의 터에 표충비각을 세우고 백화암에 있던 사당을 홍제사터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사당 수호사찰로 명맥을 유지다가 1838년(헌종 4)에 표충서원이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천유대사(天有大師)의 주도로 재약산 아래 영정사(靈井寺)로 옮겨지면서, 비각을 독자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자그마한 원당과 삼비문(三碑門)을 형성하여 현재의 가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비각의 관리는 표충사 승려가 번갈아 파견되어 담당하다가일제 때에는 대처승이 허물어진 원당과 요사를 헐고 현대식 법당과 요사를 지어 포교당으로 삼고 비각을 보존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구연운(具蓮耘) 화상이 비각의 관리를 맡아 비각과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그뒤 거의 폐허가 된 표충비만이남게 되었다. 177년에는 창건주 한월(漢月) 동조선사(東照禪師)가 홍제사라는 이름으로 재창건하여 국가의 지원으로 표충비각을 중수하면서 현재의 가람을 이룩하였다. 1978년에 표충비를 보호하는 보호각을 건립하고 그 주위로 담장ㆍ삼비문과 비각을 수호하는 인법당 등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연경장엽(蓮耕壯曄) 선사가 경충당을 건립하였고, 1981년에는 현재 요사로 쓰고 있는 인법당을 축대 아래로 내려 현재의 설법보전을 신축하였다.1981년부터 수년간 홍제사 2대 중창주인 정상(淨相) 스님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도움으로, 주법당인 설법보전과 사적비ㆍ범종각ㆍ경충당ㆍ요사 등 현재 홍제사의 가람 기틀을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는 표충비각의 수호사찰로 밀양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명대사 성역화작업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의 중대사나 위기 때마다 표충비에서 땀이 흘러 ‘땀 흘리는 비’를 지키는 사찰로 전국에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무봉사

무봉사

19794     2019-06-14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

* 봉황이 춤을 추던 성지, 무봉사 *

무봉사는 밀양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밀양 최고의 명소 영남루와 인접한 탓에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밀양강 상류 쪽 절벽 위에 아랑의 전설이 깃든 아랑각이 있고 계단을 올라서면 우리나라 3대 누각중의 하나인 훤칠한 영남루와 무봉사가 있다. 이곳에 가면 무봉사 참배 후 영남루와 밀양 박물관, 아랑각, 박시춘 생가지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강 아래로 펼쳐지는 대나무 숲과 강가 맞은편 공원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전통의 도시 중심부에 우뚝 솟아 밀양의 상징이 되고 있는 영남루는 에워싸듯 흐르고 있는 밀양강과 함께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평온한 풍치를 자랑한다. 보물 제493호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는 무봉사는 밀양강의 흐름을 산 아래에 두고 그 강 언덕에 우뚝 솟은 영남루와 함게 그림같은 호산경색을 이루어 오랜 옛날부터 중국 악양루의 풍광으로 비유되면서 운치있는 사찰로서 시인묵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신라시대 때 법조선사가 당시 신라의 5대 명사 중에 하나였던 영남사에 주석하다 대낮에 큰 봉황새가 춤을 추며 이곳으로 날아와 앉아 상서로운 성지라 하며 법계로 삼았다는 이야기와 신라 혜공왕이 법조스님으로부터 받은 불은(佛恩)을 갚기 위해 영남루 자리에 가람을 짓고 무봉암으로 했다는 사적이 전해내려 온다. 강 언덕에 우뚝 솟은 영남루와 밀양강과의 조화로 그림같은 풍경을 지닌 사찰 무봉사는 경내에 보물 제493호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어 그 역사에 걸맞는 사격과 운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 무봉사의 대표 유물,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의 모습을 보면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였다. 머리는 나발(螺髮)로 보발(寶髮)이 굵은 육계(肉?)를 갖추었고, 양미간에는 백호(白毫)가 있으나 최근 수정하여 새로 만들었으며, 목에도 삼도(三道)가 있다. 얼굴의 풍만함과 길게 늘어진 두 귀는 잘 조화되어 존엄한 상호를 보이고, 법의(法衣)는 통견의로서 그 옷무늬가 유려하고 가슴에 군의(裙衣)를 갖추었다. 전체적으로 손상이 없는 신라 말기의 우수한 불상으로, 광배는 주형광배(舟形光背)로서 화불이 배치된 화염이중윤광(火焰二重輪光)이며, 하부에는 구름모양의 문양이 있다. 특히, 광배에는 5구의 화불이 장식되어 있고, 이 화불도 주형광배에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과 합장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또, 광배 뒷면에도 앙련화(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에 결가부좌한 여래상이 양각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부은암(밀양)

부은암(밀양)

18127     2019-06-14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천태로 451-94

* 아버지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세운 사찰, 부은암 *

부은암은 밀양시 삼랑진읍 천태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국 제2대 거등왕(居登王)이 부왕인 수로왕(首露王)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200년 무렵에 세웠다는 가야 고찰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860년(철종 11)에 동화사 승려 학송이 옛 부은사지에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오래도록 부은암(父恩庵)으로 불렸으나 근래에 부은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가야불교의 3대 사찰 중의 한곳으로 알려져 있는 부은암은 밀양시 삼랑진 천태산 중턱에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부은암이 있는 천태산은 가락국 왕족의 탯줄을 묻었다는 곳으로 지금도 부은암 인근에는 1~3세기 무불상시대의 불교를 상징했던 2기의 장방형 돌무더기 스투파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신비로움을 준다.

부은암은 천태산에서 발원한 맑은 계곡물이 주위에 흐르고 이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커다란 암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 바위에 새겨진 이상한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 시대에 어느 장군이 타고 온 말의 발자국이라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삼랑진을 공약하기 위하여 작원관지(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침입하였으나 의병들의 막강한 저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천태산을 넘어서 오다 부은암이 있어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부은암은 조선 말경 1860년(철종11년)에 동화사 학송스님이 옛 부은사지에 부은암을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부은암 뒤 폭포의 바위에 통천도장(通天道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천’이라는 글은 가야불교의 절터에서만 나오는데 신어산 은하사에 올라 가다보면 종각 옆 바위에 새겨진 신어통천과 무척산 정상에 통천사와 같은 맥락의 의미로 가야불교를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천불보전 뒤에 있는 지름이 78cm나 되는 맷돌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 돌은 인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요니(여자의 음부)를 상징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천태산 정상의 기둥바위를 남자의 남근으로 보고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 요니에 떨어지게 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은 불자들이 이곳에 와서 출산 및 득남기도를 했다고도 한다.

* 거등왕의 효심이 있는 부은암과 모은암 *

‘신비의 나라’ 가야에 신비로운 불교의 꽃이 2000년 전에 피었다.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뱃길로 가야로 와 김수로왕과 인연을 맺으면서 우리나라에 불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허왕후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온 것에 감사하여 세운 김해 분산의 해은암(海恩庵),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세운 무척산의 모은암(母恩庵), 가락국 2대 거등왕이 부친 수로왕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세운 부은암(父恩菴)까지 가야의 사찰은 왕족의 인연과 항상 함께 하였다. 거등왕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왕족의 절 부은암은 모은암과 더불어 가야가 부모님의 큰 은혜를 특별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영등동 유적

16593     2019-06-14

전라북도 익산시 궁동로 57

* 익산시 향토유적 제1호 영등동유적 *

영등시민공원 안에는 2002년 5월 30일에 익산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영등동유적이 자리해 있다. 영등동유적지는 영등동택지개발 과정에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청동기시대 장방형집터 3기와 원형집터 2기 등 총 5기의 집터가 남아 있던 곳이다. 이중에서 장방형집터 1기는 본래의 영등유적지에 있었고, 나머지 4기는 조금 떨어진 주변지역에서 이전해온 것들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평면 형태에 따라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구분되는데 장방형 주거지는 전기무문토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내부에 노지가 설치되었고, 방형과 원형 주거지는 중기무문토기시대의 송국리형(松菊里型) 주거지와 같은 유형이다.

* 마한시대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 *

영등동 택지조성 전에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마제석부와 무문토기편, 화살촉과 돌도끼 등이 수습되었으며, 1995년부터 1996년까지 3차에 걸쳐 조사한 결과 3개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주거지 장방형집터 7기, 방형집터 5기, 원형집터 12기와 원삼국 마한시대의 주구묘 5기가 조사되었다.
영등동유적에서 마한시대의 수장급 묘로 보이는 주구묘 1구가 조사됨으로써, 익산지역 마한시대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