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정강왕릉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주 정강왕릉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경주 정강왕릉

경주 정강왕릉

1.5 Km    18519     2020-02-05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정강왕은 신라 제50대 왕이다. 릉은 남산 동남록 송림 속에 있다. 봉토 밑에는 삼단의 호석(護石)이 있는데 모두 가공한 장대석으로 축조하였다. 하단은 한층 넓게 쌓고 그 위에 2단의 석축은 밑은 넓고 위는 좁게 쌓았다. 전면에는 1매 석상이 놓이고 그 주위에 얇은 석단이 있으며 조금 떨어져 일렬 장대석이 있다.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다음해 7월에 훙어하였다. 이 왕릉의 형식은 선왕 헌강왕릉과 같으나 별로 치적(治積)이 없음에도 전왕(前王)과 같은 형식의 왕릉을 만들었음은 태평성세의 여세를 따라 그의 형의 왕릉형식을따른 듯하다. 보리사 동남에 장사 지냈음도 모두 전왕(前王)의 뒤를 따른 듯하다.

* 연혁(유래)

이 능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 제50대 정강왕( 재위 886∼887, 김황)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의 높이 4m, 지름 15m로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분이다. 봉분 하단에는 둘레돌을 돌렸는데, 최하단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장방형 깬돌(割石)을 2단으로 쌓았다. 바로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 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수석정

수석정

1.5 Km    22832     2020-01-28

경상북도 경주시 내리길 41
054-748-0835, 5069

경주에서 처음으로 한정식을 시작한 수석정은 15년동안 전문 한정식만을 고집하고 있다. 경주의 대표적인 한정식집이며, 일본 관광객은 물론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집이다. 수석정의 내부에는 한국 고유의 멋을 살린 액자와 병풍, 수석들로 가득차 있다. 음식은 잔 멋보다는 맛을 중요시 여기는만큼 그맛을 인정받아 오고 있다. 손님 대접이나 각종 가족모임, 행사모임에 적합하며, 탁트인 전원을 배경으로 길게 뻗은 국도변에 위치하여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특히 봄에는 도로변을 따라 피는 벚꽃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도 즐길 수 있으며, 아늑한 작은 크기의 방도 구비하고 있다.

통일전(경주)

통일전(경주)

1.6 Km    26159     2020-05-08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고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자는 뜻으로 건립된 만큼 초중등학생들의 이념 교육장 형태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학여행의 필수코스인 듯 하다. 특별히 볼 것은 없으나 삼국통일 당시의 전투장면 등이 여러 개의 액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며, 남산 답사 도중 잠시 호국영령을 참배하고 다리쉼을 원하면 너른 잔디밭에서 쉬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규모 - 면적 82,645m²(25,000평)
* 조경수목 - 57종 5,500본
* 건물
1) 본전(47평)
영정3점 (29대 태종무열왕, 30대 문무대왕, 태대각간 김유신장군)
※ 영정제작 - 무열왕 문무왕(김기창), 김유신(장우성)
2) 회랑(205평) - 기록화 17점
3) 시설물 - 삼국통일기념비, 사적비(무열왕,문무왕,김유신장군), 삼국통일무명용사

김호장군고택(경주 월암종택)

김호장군고택(경주 월암종택)

1.7 Km    0     2019-09-03

경상북도 경주시 식혜골길 35
010-4308-0852

역사의 깊이가 있는 고택이다.

경주 서출지

경주 서출지

1.8 Km    28046     2020-02-05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
문화관광과(관광홍보) 054-779-6079 관광안내소(경주역) 054-772-3843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 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 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사람은 평민이고 한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 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 수량 7,021㎡

신라의 화려한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신라의 화려한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2.0 Km    4446     2017-05-15

경주는 신라시대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답사 여행은 에밀레종으로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이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신라의 역사를 차분히 훑어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야경이 아름답고,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경주 일성왕릉

1.2 Km    18755     2020-02-05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경주 남산 서쪽 약간 경사진 지점에 위치하며 하단에는 석축을 쌓았다. 봉분 전면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호석으로 보이는 석열이 있고 봉분 주위에도 그러한 돌을 돌렸던 듯하다. 석상은 후세에 설치한 것이다. 신라 7대 일성왕(134∼154)은 유리왕의 장자 혹은 유리왕 형의 아들이라고도 하나 미상이다. 왕은 농토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였으며 민간에서 금, 은, 주옥의 사용금지를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치에 주력하였다. 봉분은 높이 7m, 직경10m이며 주위 면적은 34,557㎡(10,472평)이다.

* 연혁(유래)
이 능은 신라 제7대 일성왕(逸聖王, 재위 134∼154)을 모신 곳이다. 경주 남산의 북쪽인 해목령에서 뻗어내리는 능선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일성왕의 성은 박씨(朴氏)인데 삼국사기에는 제3대 유리왕의 맏아들로, 삼국유사에는 제3대 유리왕의 조카 혹은 제7대 지마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왕은 농사짓는 땅을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였으며, 백성들이 금은주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왕릉의 봉분은 지름 15m, 높이 5m인데 둘레의 돌이나 주위 환경으로 보아 내부 구조는 돌방(석실)으로 추정된다. 이 능은 조선 영조 6년(1730) 이후에 알려지기 시작한 왕릉이다. 한편 이 왕릉은 삼국사기에 남산 해목령에 장사지냈다는 경애왕릉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경주능지탑지

1.6 Km    19543     2020-02-05

경상북도 경주시 능말길 38-6

경북 경주시 남산에 흐트러져 있던 탑의 재료를 새로 맞추어 놓은 것으로 예로부터 능지탑 또는 연화탑이라 불려왔다고 한다. 원래는 기단 사방에 12지신상을 새긴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연꽃무늬가 있는 석재를 쌓아올린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은 임종 후 10일 내에 왕궁 밖 뜰에서 검소하게 화장하라고 유언하였는데, 탑 주변에서 문무왕릉비 조각이 발견되고 사천왕사, 선덕여왕릉, 신문왕릉과 이웃한 것으로 보아 문무왕의 화장터로도 추정되고 있다.

이상복경주빵

1.6 Km    11     2019-12-11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3619

신라천년문화를 느끼고 꿈을 키우며 추억을 만드는 경주 최대의 체험장

신라 천년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경주의 대표브랜드 이상복경주빵은 50년 전통 방식으로 빚어낸 명품 수제빵으로 이상복 장인과 함께한다. 경주빵만들기 체험은 장인정신과 열정을 느끼는 값진 추억이 될 것이다.

경주 효공왕릉

1.7 Km    16594     2020-02-05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원형 토분(土墳)으로, 봉토(封土) 밑에 드문드문 자연석이 보이는데, 이는 무열왕릉(武烈王陵)에서와 같은 성격의 둘레돌[護石]의 일부로 추측된다. 그 밖에는 아무런 표식물(表飾物)이 없이 평범하다.《삼국사기》에는 사자사(師子寺) 북쪽에 장례지냈다 하였고,《삼국유사》에는 사자사 북쪽에서 화장하고 유골을 구지제(仇知堤)의 동산(東山) 옆에 묻었다고 하여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현재의 위치가 사자사터로 전하는 지점의 북쪽에 해당하므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지정면적 3만 7994㎡, 무덤의 지름은 21.2m, 높이 5m, 912년경 조성

월암재

1.8 Km    0     2020-03-25

경상북도 경주시 남간안길 5-10
010-3570-1950

월암재는 신라 천년의 정기가 서려있는 남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호 장군의 재실을 고쳐 사용하고 있는 고택이다. 건물 뒤로는 솔숲이 있고, 대청에서 밖을 보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신라 최초 왕궁터인 창림사지와 남산이 보입니다. 경주의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된 월정교에서 삼릉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 있다.

양산재

1.9 Km    16969     2020-02-05

경상북도 경주시 남간길 37-10

양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이 재각 건물은 6부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6부 촌장은 신라가 건국하기 전 진한 땅에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활산고야촌의 여섯 촌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기전 57년에 알천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고허 촌장 소벌도리가 추대하여 신라의 초대 임금이 되게 하니 이 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년이 되었다. 그후 신라 제3대 유리왕이 6부촌장들의 신라 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기 성을 내리게 되니 바로 앙산촌은 이씨, 고허촌은 최씨, 대수촌은 손씨, 진지촌은 정씨, 가리촌은 배씨, 고야촌은 설씨이다. 이로써 신라 초대 여섯 성씨가 탄생되었고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다. 이 사당은 1970년 이들 6촌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