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인왕동 사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주 인왕동 사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경주 인왕동 사지

경주 인왕동 사지

2.0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경주 인왕동 사지는 인용사의 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용사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629~694)의 안녕을 비는 절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까지 정벌하려 하면서 당에 머물고 있던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귀국을 기원하며 관음도량을 열었으나, 효소왕 3년(694)에 김인문이 귀국하던 중에 죽자 그의 극락왕생을 빌며 미타도량으로 바꾸었다. 인용사는 신라에서 승려나 왕이 아닌 개인을 위해 세운 최초의 사찰로서 당시 신앙의 형태를 보여준다. 2002년~2011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4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신라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로, 유례가 드문 亞자형 건물 터를 비롯하여 탑지,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연지와 우물 등이 확인되었다.

경주 월성

경주 월성

2.0Km    2025-09-11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이곳은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월성의 성은 돌과 흙을 섞어 싼 토석축성인데 길이가 1,841m이며, 성내 면적이 193,585㎡이다. 동에는 동궁과 월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첨성대가 있으며 남에는 남천의 시내가 하나의 방위선 역할도 하게 되어 있다. 기록에는 문으로 남문, 귀정문, 북문, 인화문, 현덕문, 무평문, 존례문과 임해문이 있었으며 누각으로 월상루, 망덕루, 명학루, 고루가, 전으로는 조원전, 숭례전, 평의전, 남당, 월정당, 우사록관, 좌사록관, 영각성이 있었으며 궁으로는 내성, 영명궁, 월지궁, 영창궁, 동궁, 내황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월성지하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부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 건물초석 등이 깔려 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회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昔脫解王)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 후 파사왕(婆娑王) 22년(101)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

왕에게 가다

왕에게 가다

2.2Km    2023-08-09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종이 보인다. 경덕왕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성덕대왕신종이다. 신라의 황금 같은 문화유산을 보기 좋은 코스로 각 유적지마다 담긴 이야기를 주시해 돌아보면 뜻 깊은 체험 여행이 될 것이다.

별사이

2.2Km    2025-10-23

경상북도 경주시 노하길 27-11 (서악동)

경주 별사이에서는 북적이는 곳에서 벗어나, 경주의 옛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조용한 마을 속 별사이에서 진정한 휴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희 별사이는 WOORI, BYEOL, SAI 세 개의 독립적인 독채 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스의 파란 문에서 영감을 받아 유럽 시골 마을에 온 듯한 아늑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담았습니다.

도봉서당

2.2Km    2024-11-26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4길 58

도봉서당은 김유신 장군의 누이 보희, 문희의 꿈 이야기 배경 장소인 선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성종 때 학자였던 황정 선생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추보재라는 재실을 수리하여 사용하고 있는 고택이다.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 동궁과 월지

2.2Km    2025-12-02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과 오리 압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렸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고 삼국 통일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 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보상화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고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소사이어티나귀

소사이어티나귀

2.2Km    2025-09-15

경상북도 경주시 임해로 127

소사이어티나귀는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에 있다.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외관과 모던한 분위기의 내부가 눈에 띈다. 피자와 파스타 맛집으로 유명해 늘 사람이 많다. 대표 메뉴는 얇은 도우에 치즈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요거트소스가 올라간 두더지피자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피자다. 이 밖에 공작파스타, 나귀크림파스타, 몰치킨커리, 감바스 알 아히요 등을 맛볼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인정한 안심식당이다. 경주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황성공원, 첨성대,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이 있어 연계 관광하기 좋다.

경주 서악동 고분군

경주 서악동 고분군

2.3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경주 서악동 무열왕릉 바로 뒤편의 구릉에 분포하는 4개의 대형 무덤을 가리킨다. 고분의 모양은 모두 원형이며 주위에 별다른 구조물이 없다. 봉분 가장자리에 둘렀던 둘레돌이 일부 노출되어 있는데, 모두 깬돌을 사용했다. 대부분 냇돌을 쓴 대릉원 일원의 고분들과 차이를 보인다.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들보다 작은 고분들이 주변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모두 굴식돌방무덤이다. 이들 무덤이 분포한 지형은 선도산에서 서남으로 뻗은 능선상에 있고, 뒷산과 동서의 계곡 건너에 있는 능선 등을 종합해 볼 때, 풍수지리사상의 영향하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무덤의 주인에 대해 첫 번째 무덤은 법흥왕릉, 두 번째 무덤은 진흥왕릉, 세 번째 무덤은 진지왕릉, 네 번째 무덤은 문흥대왕릉 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터폴

인터폴

2.3Km    2025-07-30

경상북도 경주시 태종로 446-2 (충효동)

경주 인터폴 카페는 단순한 커피숍을 넘어, 예술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공간과 인공 폭포 등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한 각 층마다 다른 콘셉트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

2.4Km    2025-10-28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하여 만들기 시작하여 그 아들인 혜공왕에 의해 771년에 완성되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뉴와 음통이, 몸에는 위로부터 보상당초무늬를 새긴 문양띠, 그 아래는 4개의 유곽, 4구의 비천상, 2곳의 당좌, 맨 아래에는 보상당초와 연꽃 문양띠가 양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형태와 화려한 장식,아름답고 여운이 긴 종소리 등 우리나라의 종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