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흥사(경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안흥사(경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안흥사(경산)

안흥사(경산)

9.2 Km    20201     2020-06-02

경상북도 경산시 남매로 86

경산 안흥사는 경북 경산시 상방동 71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사찰이 어려움에 처해 부득이 옮겨야할 경우가 있다면 전란의 피해 또는 풍수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것은 사찰만이 가지는 종교적 영속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산(慶山)의 안흥사(安興寺) 역시 그러하다. 사찰이 퇴락하고 없어지더라도 이처럼 불가의 인연은 놓지 않아 그 이름을 이어가는 사찰 중 하나이다. 안흥사의 지금 자리는 창건과는 거리 먼 곳이다. 절을 3번 옮겼는데 그것도 한국전쟁 이후에 옮겼다. 그것도 부득이한 여러 이유로 인해 가람을 옮겨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사격이나 사찰의 재정이 떨어지고 신도들도 차츰 떠나가게 마련인데 지금도 안흥사는 불법홍포와 경산지역 포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경산불교회관을 신축해 불자들을 위한 문화공간과 교육공간을 활용해 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신라고찰로 알려져 있지만 3번의 이건으로 인해 특별한 자료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안흥사지만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을 접고 새로운 불국정토 건설에 이바지하는데 노력해 나가고 있다.

동해횟집

동해횟집

9.3 Km    4057     2020-01-22

경상북도 경산시 중앙로17길 35
053-815-7571

※ 영업시간 12:00 ~ 21:30 경산시 중방동에 있는 활어회 전문 음식점이다. 메뉴는 모듬회, 회덮밥, 물회, 생선초밥, 광어, 우럭 등이 있다.

경산장 (5, 10일)

경산장 (5, 10일)

9.5 Km    10351     2019-02-26

경상북도 경산시 중앙로16길 20-1
053-810-5125

경산시장은 1956년 개설되어 지금까지 재래시장의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상권의 변화와 서민의 생활상을 대변해왔다. 장날인 매 5, 10, 15, 20, 25일과 그 달의 마지막 날에는 약 3백여 개의 노점상들이 손님맞이를 하며 하루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 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경산사람은 물론이고 대구 사람도 이곳에서 싸고 신선한 농산물을 많이 사가고 있다. 시장 중앙에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도로가 나있어서 다니기가 편하고, 또 시장현대화가 잘 이루어져 시장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산포교당(보문사)

경산포교당(보문사)

9.6 Km    20202     2019-10-16

경상북도 경산시 장산로26길 20

도심사찰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더구나 전통사찰일 경우 포교와 연관되는 불사의 어려움도 함께 수반된다. 그럼에도 가없는 정진과 함께 포교의 원(願)을 놓지 않는 까닭은 부처님의 자비원력에 대한 숭고한 종교적 약속을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경산 보문사(普門寺)’라는 이름을 함께 쓰고 있는 경산포교당은 전통사찰임에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 많은 방법을 모색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찰이다. 하양포교당과 함께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의 포교당으로는 단 2곳인 이 곳 경산포교당은 도심 빌라 숲에 가리워 신음하고 있다. 또한 하양포교당과 달리 매우 협소한 장소에 위치해 있어 전통사찰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도 전통사찰이라 불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새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가선 주택건물로 인해 전통사찰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경산시 삼북동 어느 동네 골목에 자리한 경산포교당은 지하1층 지상 2층의 단촐한 주택식 건물이다. 입지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경산포교당은 포교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나가고 있으며 어느 누가 사찰을 찾아와도 가족같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아마도 공간이 협소한 까닭도 일조했으리라 여겨진다.이러한 이점을 살려 지난 20년간 어린이법회를 거르지 않고 봉행해와 미래불교의 새싹인 지역 어린이 포교에도 선두를 점하고 있다. 경산포교당은 앞으로도 사찰을 벗어나 지역주민들과 함께 복지사업, 자원봉사 등 뜻깊은 실천운동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갈 예정이다.

혜광사(경산)

혜광사(경산)

9.7 Km    20780     2019-09-18

경상북도 경산시 장산로24길 7

혜광사가 자리한 곳이 ‘연화부수(蓮花浮水)’, 곧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국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비록 도심의 자그마한 도량이지만 부처님 진리자리가 화현한 곳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해탈문이 열리듯 혜광사는 눈 먼 중생들을 위한 포근한 안식처이자 기도처로 손색이 없다. 더군다나 경내 이곳 저곳에 꼼꼼히 가꾸어 놓은 금낭화, 유채꽃, 쑥부쟁이 등으로 단장한 화사한 화단은 마치 연화장 장엄을 해놓은 듯 방문객을 반갑게 맞고 있어 마치 산사의 어느 절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여서 이곳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의 고운 마음 씀씀이를 읽는 듯 하다.

* 창건배경 및 역사

대한불교 법화종에 소속된 혜광사는 1931년 창건됐다. 혜광사의 사찰 건물은 조선시대 자인현 객사(客舍)로 쓰던 건물을 일제강점기 ‘투현(透玄)’이라는 일본승려가 일본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현 위치로 이건해 일본식 사찰로 건축해 운영해왔다고 전한다. 일본승려가 이 곳에 터를 정한 것은 이 곳이 당시 경산의 중심지였으며 풍수적으로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인 ‘연화부수형국(蓮花浮水形局)’의 명당자리였다고 알려져 있다. 해방 후 일본에 거주했던 한국스님인 혜광(慧光) 스님이 이 곳에서 주석하면서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대한불교 법화종단에 사찰을 등록하게 됐다.

이 때부터 주지스님의 법명을 따 ‘혜광사’라 사명을 짓고 지금의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화를 국내 모 사찰에서 모셔와 명실공히 한국불교 법화종 사찰로 사격을 일신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혜광사는 점차 쇠락해져가 거의 폐사직전에 놓였던 것을 1975년 사찰의 주지로 새로이 부임해 지금까지 주석하고 있는 법화종 원로 혜문(慧門) 스님이 인근 부지를 매입해 지금의 대웅전을 중창하고 지금의 사찰 모습으로 변모시키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혜광사는 지난 1962년 전통사찰로 등록 지정됐다.

향촌칼국수

향촌칼국수

9.7 Km    3338     2020-01-30

경상북도 경산시 경안로19길 8
053-811-0984

※ 영업시간 11:30 ~ 22:00 경산 삼남동에 있는 향촌칼국수는 칼국수 전문점이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하여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으며 밑반찬은 따로 구입이 가능하다. 칼국수를 주메뉴로 수제비, 칼제비, 보리밥, 수육·암뽕 , 콩빈대떡, 부추전, 표고전, 콩국수, 콩비지를 제공한다.

충무항

충무항

9.8 Km    3664     2020-01-31

경상북도 경산시 성암로21길 21
053-813-0150

※ 영업시간 11:30 ~ 23:30 경산시 옥산동에 있는 일식 전문점이다. 충무항은 점심특선으로 초밥·우동, 우럭탕, 생대구탕, 물회, 회덮밥, 회정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충무항 스페셜, 가족 특 모둠, 도다리, 돔 등을 메뉴로 제공하고 있다.

경산문화원

경산문화원

9.9 Km    17429     2019-08-01

경상북도 경산시 서상길 75

경산문화원은 1962년 경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리고자 설립되었다.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와 문화강좌 등을 진행한다.

고산서당

9.4 Km    2489     2019-11-27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

고산서당(孤山書堂)은 조선 명종 때에 지방 유생들과 윤희렴(尹希廉)이 재실을 짓고 이황에게 재호(齋號)를 청하여 재(齋)는 고산(孤山)으로, 문(門)은 구도(求道)라고 한 친필을 받았다. 당시 구도라고 쓴 편액은 지금도 남아 있다. 사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5년(선조 38)에 중건하였다. 1607년(선조 40) 정경세가 대구부사로 있을 때 강회를 열었는데, 이때 당(唐)의 도독(都督) 이성삼(李省三)도 수강하였다고 한다. 1690년(숙종 16)에 서원을 창건하여 고산(孤山)이라는 원호(院號)를 사용하고, 이황과 정경세를 배향하였다. 1734년(영조 10)에 강당과 동재 및 서재를 건축하였다. 1789년(정조 13)에는 문루를 세우고 연안인(延安人) 김재구(金載久)가 기문(記文)을 택하였다. 1822년(순조 22)에는 위패를 잃어버려 개조하여 봉안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1879년(고종 16)에 지방 유림들을 중심으로 강학계를 조직하여 옛터에 강당만 다시 중건하여 고산서당이라 편액하였으며 1964년에 중수하였다.

관란서원

9.6 Km    1764     2019-11-25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서원천로 268-21

관란(觀瀾) 이선생(李先生:諱 承會) 문집에 “금학산 아래에 맹구대(盟鷗臺)와 삼회당(三會堂)의 옛터가 있으니 이는 관란 이선생이 강론하던 곳이라고 전하여 오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곳이 지금의 관란서원 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관란서원은 1660년(현종 1)에 지방유림들의 공의로 이언적(李彦迪)의 도덕과 학문을 추앙하여 창건하였다. 그 뒤 1715년(숙종 41)과 1743년(영조 19)에 사당을 중수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0년 맹구대와 삼화당이 있던 자리에 건물을 복원하여 서당으로 활용하였다. 언제부터 서원으로 승격되었는지도 잘 모르나 유림에서 단비(檀碑)를 세우고 해마다 중구일(重九日: 9월 9일)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선생의 향사를 받들고 있다.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

9.9 Km    17258     2020-04-13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금호로 360-29

신월동삼층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가 4.75m이다.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것으로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지니고 있다. 윗기단부의 면석(面石)에는 8부중상(八部重像)이 양각되어 있고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옥개석(屋蓋石) 받침은 4층이고 추녀 밑은 수평을 이루었다. 상륜부는 파손되고 남은 것이 없지만, 오히려 파괴된 상륜부가 전체적인 균형미를 조화롭게 만들고 있으며 화려함이 강조된 무늬는 마모되어 초기의 모습을 잃지 않은 것이 오히려 세월의 풍상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소유자 - 신흥사

신흥사(영천)

9.9 Km    19548     2020-02-04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금호로 360-29

신흥사(新興寺)는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 205-1번지 유봉산(遊鳳山)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절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많은 전란으로 불타 버리고 또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사라진 빈 터에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탑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영천시 금호읍 신월동 삼층석탑도 절터가 논밭으로 변하고 저수지로 변하는 세월을 견디고 홀로 서있다. 영천시에서 금호읍 쪽으로 국도를 따라 조금가면 땀고개가 있고 고개를 넘어서면 금호강변의 평지가 전개되면서 길 왼편에 탑못이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신월동 삼층석탑은 그 못둑 바로 아래, 금호강을 바라볼 수 있는 고개 아래쪽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영천시 한가운데를 감돌아 흘러가는 금호강 300리 물길은 변함없이 흐르고 석탑도 세월의 물길을 흘려보내고 있다. 탑이 속했던 절 이름이 무엇인지, 그 규모는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어떤 유물도 어떤 자료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 얼굴에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읽어낸다. 신월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하대의 석탑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기단은 상층과 하층의 중대석에 탱주가 하나씩 새겨졌으며, 상층기단 면석에는 탱주로 분할된 여덟 개의 면에 팔부중상이 조각되어 있다. 앉은 자세로 표현된 팔부중상은 마모가 상당히 진행되어 조각의 특징이나 우열을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며, 다만 상체에 비해 하체가 약하여 다소 신체의 비례를 잃고 있다는 점 정도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세 개의 몸돌 가운데 제1층 몸돌에는 조작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4면에 모두 문비를 새기고 그 안에 똑같은 모양의 자물쇠와 문고리를 도드라지게 아로새겼다. 보통 몸돌의 앞면 또는 앞뒤 양면에 문비와 자물쇠를 조각하는 경우는 더러 볼 수 있지만 이 탑처럼 면마다 이런 무늬를 같게 새기는 경우는 별로 없으므로 이 부분이 신월동 삼층석탑의 특색이라 하겠다. 지붕돌은 층급받침이 넷으로 줄었으며, 귀마루와 낙수면이 그리는 곡선의 반전도 아주 심한 편은 아니나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의 완성기에 비하면 다소 진전되어 시대의 내려옴을 감출 길 없다. 그러나 아직도 처마선은 일직선을 유지하고 있어 앞시대의 여운이 남아있기도 하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져 3층 지붕돌 위로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현재 3.69m로 크지는 않지만 기단부가 튼실하고 각 부분의 비례도 좋아 바라보는 눈맛이 괜찮은 편이다. 보물 제465호이다. 근년에 신흥사라는 새 절이 생겨 이 석탑을 관리하고 있으며 사찰 내에는 법당 및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는데 석탑은 법당 앞마당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