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Km 2025-12-17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성남길 119
안동 권정생 동화나라는 아이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권정생(본명 경수, 1937~2007) 선생의 문학과 삶이 담겨 있는 곳이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해방 직후 1946년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가난으로 인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점원 일을 하거나 전국을 돌며 걸식을 하다가, 1967년에 경북 안동의 조탑동 마을의 교회 종지기로 정착하게 되었다. 주요 작품집으로 『강아지똥(1974)』,『몽실언니(1984)』,『슬픈 나막신(2002)』등이 있으며,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으로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달한 『엄마 까투리(2005)』도 있다. 동화나라 1층 전시실에는 권정생 선생이 남긴 작품과 유품을 관람할 수 있으며, 1층 복도에는 선생이 살아온 길을 담은 사진이 전시 중이다. 또한 주요 작품의 조형물도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선생의 추억이 깃든 교회 종 모형도 볼 수 있다. 2층에는 단체 관람객을 위한 숙박 시설과 강당도 있다.
15.8Km 2025-12-09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의성길안로 1034
소계당은 남정기가 1800년 경에 지었다고 전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너머에 ㅡ자형 사랑채가 남향으로 있고, 그 뒤로 ㄷ자형 안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트인 ㅁ자형이다. 앞쪽에 있는 사랑채는 건물 가운데에 있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은 집안의 남자 웃어른인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큰사랑이고, 오른쪽은 아들이나 손자가 거처하는 작은사랑이다. 큰사랑과 작은사랑의 지붕 모양은 각각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으로 서로 다르다. 지붕이 더 높고 화려한 팔작지붕을 한 곳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는 곳임을 나타낸 것이다. 안채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안방, 왼쪽에는 상방과 마루방을 두었다. 안방에는 집안의 안주인이, 상방에는 집안의 여자 웃어른인 할머니가 살고 있다. 소계당은 영남 지방 양반들이 살던 집의 일반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주택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15.9Km 2025-06-27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본길 55-11
타양서원은 영조 17년(1741)에 정평공 손홍량(孫洪亮), 상촌 김자수(金自粹), 파산 류중엄(柳仲淹) 선생을 제향 하기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이후 일직 송리 뒷산에 단(壇)을 쌓아 제향을 이어오다가, 1984년 사림(士林)에 의해 복설 되어 매년 3월 중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서원의 사당은 상현사(尙賢祠), 강당은 성경당(誠敬堂), 동재는 진수재(進修齋), 대문은 ‘경앙문(景仰門)’이라 하며, 아쉽게도 서재(西齋)는 마련되지 못하였다.
16.1Km 2025-10-29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긴대골길 10
1812년(순조 12) 의성군 안평면 하평리에 조선 개국공신인 김인찬[金仁贊]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이곡서원[尼谷書院]으로 창건하였고, 의성군 비안면으로 이건 했다가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그 뒤 1926년에 현 위치에 복설, 근성[芹城]으로 서원명을 고쳤다. 경내의 건물은 사우와 강당, 전사청, 내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담장을 둘렀다. 서원의 경내는 매우 경사져서 강당과 사당의 고저차가 많이 난다. 구성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숭의당[崇義堂]이라고 현판을 단 강당이 전면으로 보이고, 강당 뒤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사당영역에 이른다. 한편 강당 우측방 입구 위에는 양직재[養直齋]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당에는 원훈사[元勳祠]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사당영역의 담장 밖 우측에 전사청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서재는 따로 없다.
16.7Km 2024-11-27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죽헌길 24
010-5217-2174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경북에서 입구 “ㅁ”자 형태로는 가장 대표적 문화재이다. 역사적인 정신과 정기가 많이 서려있는 유서 깊은 고택이다.
16.8Km 2025-12-17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천등산 봉정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험하지도 않아 잠시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진 이곳은 우리들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곳이기도 하고 누구나 봉정사에 오면 심신의 피로를 다 잊어버리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등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좋은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 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 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창건 후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 극락전, 국보 제311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448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고려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가기도 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출처 : 봉정사)
16.8Km 2025-06-16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길 222
봉정사영산암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안동 봉정사의 부속 암자이다. 봉정사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극락전(국보)과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웅전(국보)이 유명하지만 경북민속문화재로 등재된 ‘봉정사영산암’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영산암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전각 6동 가운데 자리 잡은 마당 정원은 ‘한국의 10대 정원’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소나무와 배롱나무, 맥문동 같은 화초가 어우러져 정원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송암당 툇마루에 앉으면 아담한 소나무와 배롱나무, 소박한 풀꽃이 아늑하게 보이고 마당 가운데 서서 삼성각 쪽을 바라보면 하늘로 뻗은 소나무 가지와 바닥의 기암괴석이 선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인근에 광풍정과 의성 김 씨 학봉종택의 종가음식 체험, 고려시대 불상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을 함께 둘러보길 추천한다.
17.2Km 2025-12-17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개목사의 원래 이름은 흥국사로 통일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절 뒤에 있는 천등굴에서 천녀(天女)의 기적으로 도를 깨치고 절을 세웠다고 하는데, ‘개목사’라는 절 이름은 조선시대에 바꾼 이름이라고 전한다.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은 개목사 원통전은 1969년 해체·수리시 발견한 기록에 ‘천순원년(天順元年)’이라는 글귀가 있어 세조 3년(1457)에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17.3Km 2025-04-30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선성5길 8
안동호의 절경과 다양한 유교 문화유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길이 91km, 9개 코스의 자연 친화적인 탐방로이다. 코스 내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선성수상길과 함께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비롯하여 고택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천천히 걸으며 힐링 관광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1코스는 도산구곡 중 첫 번째 물굽이인 운암곡 주변을 둘러보는 길이다. 흔히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데, 선성현길에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 하여 군자리라는 이름을 얻은 외내마을부터 선비들이 호연지기로 인의를 기르던 예안향교, 물 위로 늘어진 선성수상길을 지나 한국문화테마파크까지 선성현길에서는 수많은 선인이 우리 앞을 걸어가며 길을 안내한다.
17.3Km 2025-06-27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월천길 437-7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월천서당은 월천 조목(1524∼1606)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조목은 퇴계 이황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명종 7년(155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여러 벼슬을 사양하고 이황을 가까이 모시면서 학문 연구에만 주력한 분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동생 및 두 아들과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여 활동하였고 이황의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도산서원 상덕사에 모셨다. 중종 34년(1539)에 세운 이 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2칸에는 마루를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월천서당’이라는 현판은 이황의 친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