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M 2024-11-11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
신원록(申元祿)이 그의 스승 주세붕(周世鵬)이 우리나라 최초로 백운동에 서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할 때,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백씨인 정은 신원복(申元福) 과 상의하여 인재교육을 위해 장천(長川) 위에다 터를 잡아 서원을 짓기 시작했다. 1566년(명종 11) 장천 서원(長川書院)이 의성읍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7년 뒤인 1600년(선조 33) 유림에서 현재 위치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원묘(院廟)를 준공하고 원액(院額)을 ‘빙계(氷溪)’로 고쳤다. 이때 이언적을 김안국과 함께 제향 하였으며, 1689년(숙종 15)에는 향리의 선비들이 진소(陳疏) 하여 의성과 관련이 깊은 유성룡(成龍), 김성일(誠一), 장현광(張顯光) 등을 추 향하게 되었다. 그 뒤 1814년(순조 14)에 원묘(院廟)를 중수하였다. 고종 때 훼철된 후 빈터만 남아 있다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2006년에 복원되었다.
325.8M 2024-12-26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빙계계곡길 51
빙계 얼음골 야영장은 경북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의성군청을 기점으로 21km가량 떨어져 있다. 자동차를 타고 군위금성로와 금성현서로를 차례로 거치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분 안팎이다. 4인용과 6인용으로 구분된 카라반이 각각 7대와 5대, 데크와 파쇄석으로 이루어진 오토캠핑 사이트가 각각 15면과 18면, 개인 카라반 사이트 16면이 마련되어 있다. 오토캠핑 사이트 면적이 넓어 대형 텐트를 설치하기에 무리가 없다. 카라반 내부에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비품을 들어차 있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비롯해 잔디광장, 매점, 놀이터, 세족대, 정자 등이 갖추어져 있다.
481.1M 2024-12-03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경상북도 의성군 빙계3리 서원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빙계계곡은 경북팔경(경북팔승)의 하나로 1987년 9월 25일 군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이다. 깎아 세운 듯한 빙계계곡에는 절벽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물이 흐르며, 여덟 곳의 이름난 빙계팔경이 있다. 빙계팔경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용추, 물레방아, 바람구멍, 어진바위, 의각, 석탑 등이 있다. 이중 용추는 개울을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 시냇물이 굽이치는 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는데 현재는 메워졌다. 부처와 싸운 용의 머리가 부딪쳐 파인 데라 한다. 그리고 어진바위 인암은 옛날 서원터 앞에 자리한 너비 1.2m, 높이 2.4m가 넘는 큰 바위다. 바위 전면에 햇빛으로 인해 정오가 되면 [어질 인] 자 모양의 그늘이 나타나 세상인심을 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4.8Km 2024-11-11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
수정사는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 있는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대사는 금성산 깊은 골짜기 울창한 송림 사이에서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고 하여 ‘수정사’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어 중건하였다. 1835년 화재로 대광전 외에 모든 것이 손실되었다. 그 뒤 옛 절터 위쪽인 지금의 자리에 중창되었다. 현재의 수정사 아래 옛 절터에는 대가람지가 있으며 원형 그대로의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1965년 이래 6년 동안 요사채, 월영루, 격외 선원, 영지, 축대 등을 세웠다. 경내 주요 건물로는 사찰의 본전인 대광전, 역대 고승들의 진영(초상화)이 모셔져 있는 사명 영당, 격외 선원, 월영루, 산령각 등이 있다.
4.8Km 2024-11-06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19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반촌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영천이씨(永川李氏) 집성촌이다. 마을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을 뒤에, 비봉산을 옆에 두고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금성산의 마을 쪽 골짜기에는 저수지가 있어 골짜기를 따라 논이 펼쳐져 있다. 또한 마을의 남쪽에는 쌍계천이 흐르고 있어 주변에 농경지가 발달하여 있다. 풍수지리적으로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선녀가 거울 앞에 않아 머리를 빗는 절묘한 형국’이라고 말한다. 산운마을의 이름은 신라시대 불교가 융성할 적에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산운(山雲)’이라 하였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이후 광해군 때 승지를 지낸 경정 이민성, 현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운곡 이희발 등이 살았다. 이 마을에는 학록 정사, 의성 운곡당, 의성 소우당, 의성 점우당 등 지정 문화재와 전통가옥이 많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이다. 또한 전통한옥마을에서 한옥체험을 해 볼 수 있으며 산운생태공원과 연결되어 있어 함께 관람하기 좋다.
4.9Km 2024-06-05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19
의성 산운생태공원은 2006년 산운 초등학교(폐교)를 활용하여 자라나는 세대의 자연학습 및 환경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위해 건립된 곳이다. 주요 시설로는 생태관 1동, 연못 2개소, 분수, 목교, 관찰데크 등이 있으며 넓은 마당에는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 꽃들이 식재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지진과 화산 활동, 생명의 기원과 지구의 탄생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고 있고, 제2전시실에서는 인류의 진화 과정과 동식물의 분류별 종류를 알 수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공룡 화석과 공룡의 연대기를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의성군의 유래와 특산품,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생태관과 산운마을의 유래를 전시하는 마을 자료관 등이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금성산, 수정사, 조문국 사적지, 빙계계곡 등이 있다.
5.1Km 2025-01-17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55
054-834-7762, 010-5246-7762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에 자리한 소우당은 금성산과 창이들 들판과 어우러진 전통 한옥으로, 국가민속문화유산이다. 소우당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별채와 정원이 어우러져 있는데, 특히 연못과 작은 숲을 둔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객실은 사랑방, 안채, 별당에 총 6개가 있고, 일부 객실은 현대식 화장실을 갖췄다. 별당 마루에서는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수려한 정원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5.6Km 2025-06-30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금성산은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의성의 명산이다. 해발 531m의 높이로 태백산맥 남쪽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백악기의 하양자루형 칼데라를 가진 화산암 복합체이기도 하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 시대에 조성한 길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의 경관을 자랑한다. 금성산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석 달 동안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운수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 대감 마을을 함께 둘러보며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6.4Km 2024-06-19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101
덕양서원은 백촌 김문기(1399~145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625년에 세웠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에 훼철되었다가 1948년 지방 유림이 복원하였다. 백촌 김문기는 1426년 문과에 급제한 조선시대 문신이다. 병조 참의, 형조 참판 등을 지냈으며 1455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공조판서 겸 삼군도진무로 있으면서 은밀히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김질, 정창손의 밀고로 계획이 발각되자 김문기를 비롯하여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은 체포되었으며, 유응부는 자결하였다.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상충사와 경의당이 있다. 상충사는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고, 경의당은 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건물이다. 이 외에도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숙소로 사용되는 동재와 서재 그리고 관리인이 생활하는 주소 등이 있다.
6.6Km 2025-03-15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현리낙전길 836-144
677년(신라 문무왕 17년)에 현 압곡사에서 서북쪽으로 5km 지점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나 장소가 협소하여 현 사찰에서 남으로 8km에 있는 아미산 봉우리에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하늘을 향해서 던지니 현재의 압곡사에 앉아 압곡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원래 이 골짜기에는 물이 없었는데 나무오리가 앉은 뒤부터 깨끗한 물이 흘러내린다는 전설이 있다. 솜씨가 뛰어나고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없는 탱화가 있었으나 1988년에 도난당했고 소장하고 있는 선사영정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압곡사에 보관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며, 모두 표구되어 유리로 덮인 액자 속에 잘 보관되어 있다. (출처 : 군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