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계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빙계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빙계계곡

빙계계곡

481m    57922     2020-08-05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곳, 빙계계곡(氷溪溪谷) * 빙계계곡은 경북 8승의 하나로 1987년 9월 25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빙계계곡은 빙계(氷溪) 3리 서원(書院)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이다. 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물 제327호 오층 석탑은 높이 8.15m의 대형 탑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된 고려 초의 석탑이 있다. 마을 건너편에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는 1933년 10월 4일 경북도내 경북 8승의 하나로 뽑혔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준다.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도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 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건 임진왜난 때 여기 들른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얘기도 있다. 그 옆에 단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자리잡고 있다. * 여덟 곳의 이름난 비경, 빙계 8경 * 빙계계곡은 깎아 세운 듯한 절벽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물이 흐르며, 여덟 곳의 이름난 빙계 8경이 있다. 빙계 8경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용추(龍湫), 물레방아[水礁], 바람구멍[風穴], 어진바위[仁巖], 의각(義閣), 석탑(石塔), 얼음구멍[氷穴], 부처막[佛頂]이다. 용추는 빙계계곡 물에 패인 웅덩이이고, 물레방아는 주민들이 계곡물을 이용하여 방아를 찧던 것이다. 풍혈과 빙혈은 빙계리 입구에 있는 바위틈으로, 한여름에는 얼음이 얼어 영하 4도를 유지하고 겨울에는 영상 3도를 유지해 훈훈한 바람이 불어 나온다. 인암은 정오가 되면 ‘仁’자 모양의 그늘이 생긴다는 바위이고, 의각은 윤은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부처막은 빙산 꼭대기에 움푹 팬 곳으로 부처와 용이 싸울 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의성 산운생태공원

의성 산운생태공원

4.9 Km    21339     2020-06-10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19

구 산운초등학교(폐교)를 활용하여 자라나는 세대의 자연학습 및 환경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하였다. 이곳은 자연생태관찰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산교육장으로 의성의 명산인 금성산과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수정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보유수종은 관목류 및 초화류 53종이며, 주요시설로는 생태관 1동, 연못 2개소, 분수, 목교, 관찰데크, 솟대, 쉼터, 산책로 등이 있다. 넓은 마당에는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꽃들이 자라며, 연못·분수·나무다리·관찰데크·솟대·장승·쉼터·산책로 등을 조성하였다.

빙계서원

0m    2928     2020-10-26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

신원록(申元祿)이 그의 스승 주세붕(周世鵬)이 우리나라 최초로 백운동에 서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할 때,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백씨인 정은 신원복(申元福) 과 상의하여 인재교육을 위해 장천(長川) 위에다 터를 잡아 서원을 짓기 시작했다. 1566년(명종 11) 장천서원(長川書院)이 의성읍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7년 뒤인 1600년(선조 33) 유림에서 현재 위치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원묘(院廟)를 준공하고 원액(院額)을 ‘빙계(氷溪)’로 고쳤다. 이 때 이언적을 김안국과 함께 제향 하였으며, 1689년(숙종 15)에는 향리의 선비들이 진소(陳疏)하여 의성과 관련이 깊은 유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一), 장현광(張顯光) 등을 추향하게 되었다. 그 뒤 1814년(순조 14)에 원묘(院廟)를 중수하였다. 고종 때 훼철된 후 빈터만 남아 있다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2006년에 복원되었다.

수정사(의성)

4.8 Km    18680     2020-01-28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

*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수정사(의성) *

신라 신문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금성산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깊은 골짜기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지어져있다.수정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신라 신문왕 때(681~691) 의상대사가 ‘수량암(修量庵)’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고 하는 구전만 있을 뿐, 조선 중기까지 전하는 사적이 없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수량사(修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18세기의『가람고(伽藍考)』에서는 ‘지금은 수정사(水淨寺)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다. 특히, 조선 선조 25년(1592)의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 유정스님이 머물면서 금성산(金城山)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

그러나 조선 헌종 1년(1835)에 큰 불이 나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전소되었다.그 뒤에 구담 전홍(九潭展鴻) 스님이 옛터 위쪽인 지금의 자리에 중창하였다. 1965년 이래 6년동안 월산(月山) 스님이 중수하며 요사를 짓고 월영루, 격외선원, 사명영당, 영지, 축대 등을 세웠다. 1973년에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성견(性見) 스님이 대광전과 향각을 중수하였다. 이어 1993년 주지로 부임한 총혜(聰惠) 스님이 명부전과 범종각을 새로 짓고, 산신각과 설선당(說禪堂)을 수리하였다. 1999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고, 2001년에 요사를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 수정사 인근의 볼거리 *

절터에는 대가람지가 있으며 원형 그대로의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수정계곡 마을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마을을 산운이라고 하는 대감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은 영천이씨 집성촌으로 자연지형 경관이 수려하며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볼거리도 풍부하다.문화재로는 지방유형문화재 제 242호 학록정사, 전통건조물 제12호 운곡당, 전통건조물 제12호 점우당과 중요민속자료 제237호 소우당 등의 전통고가옥 30여 동이 현존하며 조선조 이광준(1531∼1609)부사, 이민성 참의, 이의발 판서, 국권침탈 때 애국지사로 건국공훈을 세운 이태식, 그외 많은 후손들이 조정과 향리에 이름을 남겼다.

의성소우당[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5.1 Km    5950     2019-05-10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55
054-834-7762, 010-5246-7762

의성소우당은 소우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반에 지은 집. 배치는 한옥의 전통적인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큰 사랑방의 뒤편으로 연결돼 있던 작은 사랑방이 몇 년 전 태풍으로 인해 유실되면서 전체적인 배치가 ㅁ자에서 ㄷ자로 변형됐을 뿐이다. 기단의 높이나 사용한 자재들 역시 소박해 사치와 가급적 먼 거리를 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전통적 유교 사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질 않다. 하지만 서쪽으로 난 협문을 지나면, 그곳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정원에는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궁궐에 정원을 꾸미는 것을 제외하면 보통 반가에서의 정원은 원래 있던 자연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작은 물줄기 옆에 정자를 지어 풍취를 감상하거나 한 칸짜리 초당을 지어 운치를 더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소우당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풍족해진 재화로 인해 새로운 형태로 창조된 정원을 갖고 있다. 따로 담을 두르고 본격적인 별채를 짓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편백나무를 식재했다. 연못 역시 원래 있던 물줄기를 잇지 않고 따로 물을 가져다 채워 넣은 것으로 보이는 게 특이점이다.
별채는 마루가 강조되는 일반적인 사랑채와 달리 살림집의 기능이 더욱 강조되어 방이 많은 구조인데, 이는 이 별채의 주사용자가 집주인과 외부의 남성 손님이 아니라 주인 내외 부부였을 가능성이 더 컸음을 말해준다.
현재의 별채는 숙박객이 머물 수 있도록 내부 공사를 마친 상태. 알루미늄 새시가 그대로 드러난 방은, 비록 밖에서 보는 것만큼의 운치는 없지만 하룻밤을 기거할 사람에게는 꽤나 반갑고 든든한 요소 중 하나. 안채와 사랑채 역시 숙박객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말끔하게 정돈이 돼 있는데, 화장실과 샤워실 역시 얼마 전 새롭게 단장해 이용에 불편함을 찾을 수 없다.

금성산

5.3 Km    37556     2020-03-26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 다양한 전설이 숨어있는 산, 금성산 *

금성산은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의성의 명산이다. 해발 531m의 높이로 태백산맥 남쪽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백악기의 하양자루형 칼데라를 가진 화산암 복합체이기도 하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 시대에 조성한 길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의 경관을 자랑한다. 금성산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석 달 동안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운수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 대감 마을을 함께 둘러보며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수태사(군위)

5.4 Km    16982     2020-10-20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지호2길 202

수태사는 경북 군위군 의흥면 지호리 456번지 선암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우리는 예부터 여염집에서 궁궐을 짓기 이르기까지 늘 풍수의 영향을 받아왔다. 더구나 사찰을 짓는데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정도로 풍수와 지리를 중요시여겨 온 것이 사실이다. 풍수와 지리뿐이랴. 지명, 전설, 연원 등 무형의 유산도 모두 감안되어 하나의 사찰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선호되어왔던 조건을 꼽는다면 아마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늘 산은 뒤에 있고 물을 바라보고 있어야 명당의 조건 중 한가지에 부합된다. 그만큼 풍수에 있어 물과 산의 조건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얽혀 묘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

선암산(船巖山) 수태사(水泰寺)는 이름에서 엿보이듯 물과의 돈독한 관계 속에서 탄생한 사찰이다. 이름부터 풀자면‘ 배바위산 큰물절’이다. 마치 배처럼 생긴 이 산이 물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겠거니와 실제로 물이 귀한 산이라 물이 풍족하게 나올 것을 염원하는 뜻도 담아내야 할 것이다. 수태사는 이런 특이한 정황 속에서 태어났다. 신라시대 의상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졌지만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석탑 1기가 묵묵히 옛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뿐 조선시대 이전의 사적이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는 절이다. 수태사의 입지 그리 높지 않은 터에 자리했지만 인가에서 상당히 깊숙이 들어가 있다. 덕분에 전쟁이 나 이 곳 수태사로 피신하면 모두가 무사했을 만큼 은밀한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수행처로 그만인 사찰이다. 현재는 원통전과 산신각, 요사 만이 남아 수태사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덕양서원(의성)

6.4 Km    1333     2019-11-26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101

덕양서원은 김문기(金文起)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625년(인조 3)에 세웠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48년 지방유림이 복원하였다. 원래 덕양서원은 충청남도 공주에 위치하던 요당서원(蓼塘書院)이었다. 서원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고, 공주지방 유림과 본향 사림들이 협조하여 1948년에 현재의 김녕김씨 문중 종가(宗家) 곁으로 이건 복원하게 되었다

압곡사(군위)

6.6 Km    17399     2020-10-19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현리낙전길 836-144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압곡사는 선암산 품안에 안겨 있는 새집과 같은 사찰로 그윽한 솔향기와 함께 선암산의 겹겹이 포개진 골짜기가 일품이다. 군위군 고로면 소재지에서 조금 올라가면 마치 사천왕의 모습을 한 ‘가암’이 보이는 가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압곡사 안내표지를 따라 의성 춘산방면으로 낙전리 마을을 따라 조금 올라간다. 산허리를 따라 나있는 산길에 압곡사(鴨谷寺)를 알리는 표지판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 길은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정도로 비좁으나 포장이 되어 있어 오고가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넘실거리는 산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낙전리 마을의 넉넉하고 평화로운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압곡사(鴨谷寺) 좁은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빛 바랜 나무에 매달린 시 한 수가 목압(木鴨)이 골짜기에 떨어져 생긴 절을 찾은 이들을 먼저 반긴다. 북적이는 좁은 마당을 지나 작은 법당 앞 툇마루에 앉아 산 아래를 바라보면 겹겹이 펼쳐지는 골짜기에서 발산하는 기운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압곡사가 자리한 선암산(船巖山)은 군위의 명산 가운데 하나로, 태백산정상에서 뻗어 나온 지맥이다. 선암산 골짜기 깊은 곳에 나무오리도 그 기운을 느끼고 내려 앉은 것을 보면 분면 선암산 압곡사가 자리한 곳이 범상치 않음이 분명하다. 비록 절간에 잘 갖추어진 법당 하나가 없지만, 세상의 온갖 번뇌망상(煩惱妄想)을 떨쳐버리고 파도치듯 펼쳐져 있는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를 도반(道伴)으로 삼아 조용히 참선과 기도의 힘으로 진리에 눈 뜰 수 있는 도량으로 손색이 없다.

창건 이후 53지식인이 낳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예로부터 압곡사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었는데, 물맛이 뛰어난 샘(泉)과 보물급 탱화, 아홉 분의 선사영정(禪師影幀)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 탱화는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도난당했으며,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수월당대선사(水月堂大禪師), 의상조사(義湘祖師), 사명당대선사(四溟堂大禪師) 등 9분의 선지식(善知識) 영정이 모셔져 압곡사의 기운을 더하고 있다.

의흥향교

6.7 Km    1349     2020-04-07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읍내길 89-5

조선 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이곳 유림 손돈암(孫遯巖)이 위패를 선암산(船巖山)으로 피난시켜 병화를 면하였으며, 이로써 경상도에서 오직 이 향교만이 당초 그대로의 위패를 보존하고 있다.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고 1614년(광해군 6)에 읍 서편으로 이건하였다가 1641년(인조 19)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950년 6·25사변으로 삼성재(三省齋)·노사(奴舍) 등이 소실되었으며, 1968년에 광풍루(光風樓)를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성전, 정면 4칸, 측면 2칸의 광풍루, 4칸의 사물재(四勿齋), 신문(神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금성산과 신비한 빙계계곡을 걷다

7.0 Km    2465     2016-09-27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인 의성의 금성산은 그 독특한 모습만큼 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간직한 산이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던 금성산의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경북필승의 하나인 빙계계곡에서 더위를 식히는 것도 잊지 말자.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7.0 Km    19596     2020-10-28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오층석탑길 5-3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높이는 9.56m이고 기단 폭은 4.51m인 국보 제77호로 지정된 석탑이다. 부분적으로 전탑(塼塔) 수법을 모방하였고 한편으로는 목조건물 양식을 보인다. 화강석으로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한 이 석탑은 특히, 제1층 탑신에 목조 건물의 수법을 따라 배흘림이 있는 네모기둥을 세우고 남면에 감실을 두었으며 기둥 위에는 주두의 형태를 본떠 조각하였다. 각층 옥개석은 전탑의 구조를 본떠서 아래 윗면을 모두 층급형으로 단을 지어 조성하였으며, 맨 윗부분에 장식되었던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다. 장중한 아름다움과 함께 전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일부 목조 건물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경주 분황사 석탑에 다음가는 오래된 석탑으로 한국 석탑 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국보
지정번호 : 국보 제77호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시대 : 통일신라
종류 : 화강석제 5층 석탑
크기 : 높이 9.6m, 기단 폭 4.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