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종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학봉종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학봉종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학봉종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0m    6242     2020-11-27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30-6
054-852-2087, 010-5263-8365

의성 김씨의 종가인 학봉구택은 학봉 김성일의 8세손 김광찬(金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m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의 자리에 옮겨지었고 현재의 학봉구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다 1964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원래 ㅁ자였던 본채는 한쪽에 증축을 하여 巳 자 형태가 되었고 안채의 오른쪽 6칸을 대청으로 꾸몄으며 왼쪽에는 안방 2칸을 두고 끝에 부엌을 놓았다. 부엌은 천정 높이를 낮추고 상부에 고방을 두어서 세간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대청이 집의 규모에 비하여 넓은 것은 제사가 많은 종택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고택들과 비교했을 때, 마당에 심어놓은 푸른 잔디밭이 인상적인데 학봉구택은 일제강점기 이후 위치를 이전하여 다시 건축하는 과정에서 매우 현대적인 모습의 정원을 도입했다. 덕분에 잘 가꾸어진 나무와 기암괴석을 넉넉한 풍경과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정원에서는 정기적으로 고택 음악회도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면면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혹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의 음덕은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여전한 밝기로 빛나고 있다.

원주변씨간재종택 및 간재정

원주변씨간재종택 및 간재정

1.2 Km    18635     2020-02-03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720-30

* 간재 선생의 혼이 묻어있는 곳, 원주변씨 간재종택 *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위치한 간재종택과 간재선생이 강학을 하던 간재정, 사당, 정충효문 등은 16~18세기에 걸쳐 창건 및 중수된 건물로서 원형이 잘 보전되고 있다. 그리고 관련인물이 고려충신의 후예이자 임진왜란의 공신이였다는 역사적 측면과 건물들의 독특한 공간 배치로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간재 종택과 정자는 마을 입구에서 924번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홍살문을 통과하면 골의 맨 아래쪽에 남서향으로 향한 종택이 크게 일곽을 이루고 그 뒤편 우측에 사당 일곽이 놓여있다. 서당 좌 측편 골 맨 위쪽 전망 좋은 곳에 간재정이 호젓이 앉아 있다.

간재종택과 부속건물이 위치한 자연환경을 보면 작은 산이 병풍처럼 골짜기를 이룬 자리에 정침 및 별당, 사당, 정자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자연지형에 순응하면서 각각 적합한 곳에 터를 잡은 것이 사대부가의 공간영역을 갗춘 이런 단독 종택은 동성마을의 유형으로 발전한 한국 종가사에 흔치 않은 곳으로서 조선선비들의 입지 및 정주관을 살펴 볼 수 있는 주요 가거지로 써 가치가 있으며 현재 이곳에는 30가구 90여명이 살고있다. 전통문화 보고,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러지는 안동문화권, 그 중에서도 간재종택과 정자는 하회, 내앞마을 등과 함께 또 하나의 작은 문화권을 이루며 양반유림의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우리민족의 중요한 문화유산중의 하나이다.

* 간재종택의 구조와 배치 *

종택은 정침과 이 정침 앞마당 좌우에 각기 -자 대문과 별당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1763년에 창건되었으며 1949년에 중수하였다. 사랑채는 덤벙초석 위에 정면 모두와 우측면의 앞쪽 1개소는 원주로 나머지는 네모 기둥을 세웠다. 원주는 누상주인데, 그 밑에는 팔각형으로 다듬은 누 하주를 받쳤다. 이처럼 기둥의 모양새를 달리 한 것은 '천원지방'이라는 동양의 우주관에 따른 조형원리를 건물 조형에 구현한 것으로 선조들의 정성어린 조형사상을 읽을 수 있다. 안채는 안마당 폭을 가득 매운 3칸 안 대청이 중앙에 자리잡고 그 좌.우측에 각기 앞 뒤 2칸 통씩 안방과 상방이 놓여있다.

간재정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 규모의 일자형 집이다. 가운데 1칸 대청을 놓고 그 좌우에 각 1칸씩 온돌방을 두었으며 16세기 후반 간재선생이 강학을 위해 지었으며 1934년에 중수기가 남아있다. 정충효문은 종택에서 전방으로 50미터 길목 좌측에 소재하며 간재의 충효를 기려 정려 하였으며 숙종의 어명으로 1686년에 건립되고 1847년에 중수하였다. 간재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인데. 3칸 배면에 신위를 모신 감실이 벽장식으로 돌출 되어 있다. 별당인 무민당(無憫堂)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인데, 좌로부터 2칸 통의 온돌방과 1칸 대청이 차례로 놓여있다. 2004년 중수하였다.

예닮

예닮

2.6 Km    0     2020-09-03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귀여리길 78-28
054-842-3131

한국 미식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이다. 대표메뉴는 간고등어 정식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밥잘하는집

밥잘하는집

2.8 Km    0     2020-12-01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귀여리길 31
054-852-0010

여러가지 한국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소불고기이다.

안동고택 이상루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안동고택 이상루 [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2.9 Km    16467     2020-12-11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3193-6
054-843-3328, 010-3522-1542

오랜 가문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경상북도 안동은 그 이름만으로도 고즈넉한 한옥이 떠오르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천등산 자락에 있는 안동고택 이상루는 고려 태조 때의 공신이며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시조인 김선평(金宣平)의 단소(壇所)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으로 250년이라는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위엄을 지키고 있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이상루를 마주하게 된다. 이상루는 밟을 리(履)에 서리 상(霜)자를 써서 ‘서리를 밟고 서 있는 위풍당당한 루(樓)’라는 뜻이 있다. 이상루는 다락집 형태의 2층 목조 누각으로 이름의 뜻만큼이나 무게 있는 위엄을 자랑한다. 하늘을 향해 날개를 뻗은 듯한 기와지붕의 곡선은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옆면으로 보면 여덟 팔(八)자로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안동고택 이상루는 숙박동인 태장태사(台庄齋舍)와 이상루가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이상루 아래층 중앙에는 밖으로 통하는 큼지막한 문이 있다. 이 문을 열면 햇볕이 은은하게 들어오는데, 문밖으로 소나무 숲과 연못, 만개한 야생화들이 보여 더욱 아름답다. 안동고택은 1750년에 건축한 곳으로, 세월의 흔적을 멋스럽게 간직한 나무 기둥과 반듯하게 다듬은 돌담, 난간의 목조 조각이 고택 내부에 운치를 더한다. 겨울에는 방에 아궁이에 불을 때고, 여름에는 모기장이나 텐트를 치고 이상루에서 잘 수 있어서 도시에서만 지내온 여행객들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지켜왔으며, 2013년에는 대대적인 보수를 통해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손봤다. 덕분에 방의 벽지와 바닥이 깔끔하다. 이곳은 도로에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창한 숲 가운데 있는 것처럼 주변에 오래된 수목들이 많다. 집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가 있는데, 소나무 숲에는 소박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그네도 달려 있다. 집 앞에는 수련과 백련이 피는 연못이 있고, 집 주변으로 맥문동, 옥잠화, 벌개미취, 쑥보쟁이 등의 야생화가 철을 따라 아름답게 핀다. 안동고택 이상루는 안동 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문중 회의를 하던 곳인 만큼 규모가 크고, 방이 많아서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누각은 각종 음악회나 세미나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전통을 알리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다도 체험'', ''탈춤 배우기'', ''천연 염색'', ''한지 공예'', ''효 교육'' 등 다양하다. 아침 식사로는 각종 나물로 차린 양반식 밥상을 경험할 수 있는데, 250여 년 된 유서 깊은 고택에서 주변의 자연들을 벗 삼아 먹는 밥은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체험이 있는 안동고택 이상루는 아이들과 함께 전통문화를 체험하려는 가족이나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 여행을 떠나려는 이들, 한옥의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하기 원하는 외국인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특히 이곳은 안동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 주변 관광을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 있는 봉정사가 바로 3분 거리에 있고, 인근에 2시간 코스의 둘레길도 있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옹천21세기찐빵

옹천21세기찐빵

3.0 Km    0     2020-11-26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경북대로 959-7
054-859-7058

저렴한 가격으로 독특한 찐빵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대표메뉴는 찐빵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3.2 Km    23366     2020-11-25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이 불상은 원래 연미사(燕尾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위치하며 근래에 제비원이라는 암자가 새로 들어서 일명 '제비원 석불'이라고도 불리는 마애석불이다. 서쪽을 향한 높은 암벽에 조각된 불신(佛身)위에 불두(佛頭)를 따로 제작하여 올린 특이한 형태의 마애불로 머리 뒷부분이 일부 손상된 것 이외에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불두佛頭는 큼직한 육계가 표현된 소발(素髮)의 머리와 얼굴을 각각 다른 돌에 새겨서 조립하였는데 미끈한 얼굴의 질감과는 달리 거칠게 표면 처리한 머리를 이마 위에 얹어 놓아 멀리서 보더라도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풍만한 얼굴의 미간(眉間)에는 白毫(백호)를 큼직하게 돋을 새김하고, 수평으로 길게 뜬 눈 위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깊게 파인 눈썹이 날카롭게 우뚝 솟은 코의 윤곽선에 이어져 있다.

붉게 채색된 도톰한 입술은 굳게 다물어 강한 윤곽으로 표현된 얼굴과 함께 장중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삼도(三道)가 뚜렷한 목에는 특이하게 연주문(連珠紋)을 돋을 새김한 장식이 표현되었으며, 강한 각선으로 조각된 환조의 머리와는 달리 장대한 신체는 선각으로 처리하여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에서 완만하게 흘러내린 옷주름이 오른쪽에서 수직으로 드리워진 법의 자락과 교차되어 접히고, 넓게 트인 가슴 밑으로 내의(內衣)의 띠가 수평으로 표현되었다. 수인(手印)은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은 복부에 대고 왼손은 손등이 보이도록 가슴 위로 올려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을 취하고 있으며, 불상의 발 밑에는 큼직한 단판연화문을 음각하여 대좌로 삼고 있다.

불두를 따로 제작하여 불신이 새겨진 암벽 위에 얹는 형식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는 형식이며, 얼굴의 강한 윤곽이나 세부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11세기 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미사는 경북 안동시 오도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한국의 정신적인 문화의 고향인 안동은 예부터 유교적인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왔다. 그러나 안동은 이전부터 불교문화가 꽃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안동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봉정사를 위시해 여타 지역과는 차별되는 수많은 사찰들이 산재해 있다.

연미사는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燕口寺)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燕子樓)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燕尾寺), 법당이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구사라 불렀다.

[문화재 정보]
- 분 류 : 불상
- 지 정 : 보물 115호(1963. 1. 21)
- 시 대 : 고려시대

연미사(안동)

연미사(안동)

3.2 Km    20154     2020-03-18

경상북도 안동시 제비원로 672

* 이촌동 석불로 유명한 사찰, 연미사 *

연미사는 경북 안동시 이천동 오도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한국의 정신적인 문화의 고향인 안동은 예부터 유교적인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왔다. 그러나 안동은 이전부터 불교문화가 꽃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안동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봉정사를 위시해 여타 지역과는 차별되는 수많은 사찰들이 산재해 있다. 연미사는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燕口寺)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燕子樓)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燕尾寺), 법당이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구사라 불렀다.

* 연미사의 보물 ‘이천동 석불’ *

연미사에 있는 보물 제115호인 ‘이천동 석불’의 잔잔한 미소는 안동의 상징적인 얼굴로 잘 알려져 있다. 속칭 ‘제비원 미륵불’이라고도 불리는 이 석불은 바로 연미사의 오랜 역사에서 홀로 남은 고마운 부처님이자 우리 불교사에서도 몇 되지 않는 대표적인 미륵불이다. 연미사라는 이름은 원래 조선시대 여행객이 쉬어가는 숙소인 연비원(燕飛院), 속칭 제비원이라 불렀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당시 연미사 석불에는 제비 모양의 누(樓)가 덮고 있었으며 법당은 제비의 부리에 해당된다고 해 연미사라 지어 불렀다고 전한다. 또한, 이 석불은 대표적 민요인 ‘성주풀이’에도 나올 만큼 민초들이 오랜 세월동안 뿌리내리려 한 신앙의 대상과도 닿아 있다. 때문에 연미사가 사찰로써는 매우 작은 규모이긴 하나 저 미륵불이 담고 있는 미술적, 민족적 유산은 그 어느 것보다 값진 보배라고 할 만한 것이다. 또한 비록 이 불상이 고려시대 유행하던 불상의 한 형태일 뿐 이라고 하지만 알 듯 모를 듯한 저 넉넉하고도 묘한 미소는 우리 민족의 정한(情恨)을 부처님에 기대어 표출시키고자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한국 불교는 단지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라기보다 내부에서 키워지고 융합된 정신적인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의성김씨학봉종택

14m    21053     2020-04-24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30-6

* 학봉 김성일이 살았던 가옥, 의성김씨 학봉종택 *

의성김씨 학봉 종택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살았던 가옥이다. 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자주 된다며 학봉의 8세손 광찬(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고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위치로 이건되었다.학봉은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의 고제(高弟)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27세에 사마시, 1568년(선조 1) 중광문과 병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77년(선조 10)에는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1590년(선조 23)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나 임란때에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병사하였다.

*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는 곳, 운장각 *

학봉종택 외에 운장각이 있다. 운장각은 조선 선조 때의 명신이며 학자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을 보관한 곳이다. 선생께서 남기신 서적·물품·친필기록 제초고 및 선조전래의 전적·문서와 후손들의 유품을 영구히 보존코자 건립하였다. 운장각에는 현재 선생이 남긴 서적, 유품, 친필기록, 고문서 56종 261점(보물 제905호), 제초고 및 선조 전래의 전적문서(보물 제906호)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0여점의 유적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안동독립운동사 51년을 걷다

19m    5470     2019-02-22

나라사랑·겨레사랑! 1926년 육십만세운동 총 기획자 권오설선생기적비,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 서간도 독립군기지 개척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거룩한 순국지사 향산 이만도, 항일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 이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깃든 사적지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교육 코스다.

광풍정

589m    17708     2020-01-15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85-23

* 300여 문인이 찾던 유서 깊은 정자, 광풍정(光風亭) *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성리학자요 김성일ㆍ유성룡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아 영남학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바 있는 경당 장흥효(敬堂 張興孝 1564∼1633)선생이 1630년대에 초당으로 건립한 누각이다. 조선 중기 대학자 경상 장흥효 선생이 300여 문인에게 강학(講學)하던 유서 깊은 정자다. 정자 뒷편의 자연 암석은 경당 선생께서 제월대라 명명했고 능주목사 김진화가 표면에 ′경당선생제월대(敬堂先生霽月臺)′라는 휘호를 남겼다.

* 환경친화적으로 지어진 정자 *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와가로 우측협칸을 통간 마루로 놓아 건물 밖의 협문을 들어서서 우측 마루위의 판문을 열고 오르도록 되어있다. 어칸의 온돌방 전면 1칸은 마루칸으로 하여 우측 협칸의 통간 마루와 함께 어칸의 1칸 온돌방을 애워싼 형태를 하고 있다. 좌측 협칸은 1칸반을 온돌방으로 꾸미고 전면의 반칸은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동북향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마루공간과 온돌방이 대각선으로 구성된 듯한 독특한 정자건축이다. 이는 하절기의 외부환경을 최대한 배려한 환경친화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료되며 주목할 부분이다. 전면의 루하주는 막돌기단위에 큼직한 덤벙주초를 놓고 팔각주를 세웠으며 루상주는 그 위에 원주를 세웠으나 나머지 기둥은 방주를 사용하였다. 5량가의 납도리집으로 대량위의 동자주는 판대공에 첨차ㆍ소로 놓고 중도리와 종량을 결구하고 그 위에 판대공 없이 첨차ㆍ소로 놓고 마루도리와 장혀를 받치게 하고 있다. 천장은 제고물반자로 치장하고 마루는 우물청판을 깔았다. 주두에 결구된 평방위에는 소로를 얹어 주심도리와 장혀를 받치게 하고 있다.

[문화재 정보]
- 분 류 : 누(정)·각
- 지 정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22호
- 지정일 : 1996. 12. 5

경광서원

1.5 Km    2052     2020-11-04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3길 131-24

1686년(숙종 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배상지(裵尙志)·이종준(李宗準)·장흥효(張興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1873년에 단소(壇所)를 설립하여 향사를 지내왔다. 그 뒤 1972년 유림에 의해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6칸의 경현사(景賢祠), 8칸의 숭교당(崇敎堂), 신문(神門)·주소(廚所) 등으로 되어 있다. 경현사에는 배상지·이종준·장흥효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숭교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마루는 원내의 여러 행사와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며 협실은 향사 때 헌관실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에만 열어 제원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9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대지 500평, 전답 4,000평, 임야 5정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