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인원쌈밥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홀인원쌈밥집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홀인원쌈밥집

홀인원쌈밥집

10.6 Km    0     2023-10-25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당전로 79

홀인원 쌈밥집은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에 소재하고 있는 한식당이다. 여주시가 지정한 여주 쌀밥 전문식당으로 여주 특산물인 여주쌀로 지은 윤기가 흐르는 쌀밥과 구수한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이 여주 홀인원 쌈밥집의 대표 음식이다. 또한, 홀인원 쌈밥집의 콩탕은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으로 속을 가라앉히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별미이다. 주차가 손쉽고 양이 많아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꼽힌다. 가까운 곳에 여주 아울렛, 신륵사관광지, 세종대왕릉 등이 자리하고 있어 가족과 나들이 전후 방문하기에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10.6 Km    0     2024-03-21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반저리2길 42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 있는 반계리 은행나무는 1964년 1월 31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대략 8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약 33m, 줄기의 둘레는 약 16m, 밑동의 둘레는 약 14m에 이르며, 가지는 동서로 37.5m, 남북으로 31m로 넓게 퍼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옛날 성주 이씨의 선조 중 한 명이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길을 지나가던 한 대사가 이곳에서 물을 마신 후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 지팡이가 자란 나무라고도 한다. 또한, 이 나무 속에는 흰 뱀이 살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나무가 다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다고 하여, 나무를 신성시했으며, 가을에 한꺼번에 단풍이 들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오랜 세월을 크고 균형 있게 잘 자란 이 나무는 은행나무 중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전라도정식

전라도정식

10.7 Km    2     2022-12-02

경기도 여주시 가남로 172

전라도 정식은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한정식 전문점이다. 넓은 식당 내부는 쾌적하고 곡성 출신의 요리 경력 30년 주인장이 음식을 직접 만든다. 모든 재료는 국내산을 사용한다. 전라도 정식은 특별히 오전 7시~10시까지 백반을, 오전 11시~오후 2시까지 점심 특선으로 산채비빔밥과 해물순두부를 판매한다. 대표메뉴인 전라도 정식은 제육볶음, 생선구이, 게장무침, 된장찌개, 각종 나물이 돌솥밥과 함께 나온다. 제육볶음은 적당히 매콤하고, 고소하게 구워낸 생선구이는 먹기 좋게 토막 내준다. 된장찌개는 칼칼하면서도 진한 집된장으로 깊은 맛이다. 각종 나물도 정갈하게 나온다. 전라도 정식의 별미는 전채요리로 홍어삼합이 나온다는 것이다. 수육과 홍어, 김치 모두 맛과 질이 좋아 입맛을 돋우기 좋다. 돌솥밥이라 누룽지도 먹을 수 있다. 정식은 조리시간이 30~40분 소요되어 예약하는 것이 좋다. 4km 거리에 프리미엄아울렛, 여주미술관, 달맞이 광장, 금은모래강변공원, 신륵사, 여주도자세상, 세종산림욕장이 있다.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10.8 Km    4     2023-05-30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10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사적 제195호인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있는 경기도 여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영상실, 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 그리고 조선왕릉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세종대왕께서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느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꾸며져 있다.

<출처 : 세종대왕유적관리소>

남여주 배추된장국

남여주 배추된장국

10.8 Km    0     2023-12-28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가남로 151

남여주IC 근처에 위치하여 여주아울렛과 금강 CC에 인접하고 있는 한식 음식점이다. 이른 새벽에 영업을 시작하여 아침 식사가 가능한 음식점으로 간단하고 깔끔한 배추 된장국과 활동 후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정식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숙성 고기 전문점인 남여주 배추된장국에서는 워터에이징으로 차별화 된 숙성 고기를 맛볼 수 있다.

두부고을해마루

두부고을해마루

10.9 Km    0     2024-01-09

경기도 여주시 당전로 113

두부고을해마루는국산 콩 100%으로 가마솥에 직접 만든 두부와 한정식을 결합한 건강식을 제공하는 한식당이다. 매일 두부를 직접 만들고 여주 진상미 계약 농가에서 직접 받아오는 쌀로 밥을 지어 제공한다. 대표메뉴인 해마루 정식과 코다리 정식은 주메뉴를 제외한 모든 상차림이 같다. 해마루 정식의 주메뉴는 제육볶음이다. 고등어구이와 찌개를 포함하여 19가지의 맛있는 반찬이 정갈하게 한상 가득히 차려진다. 음식에 사용되는 콩, 채소, 고기, 고춧가루는 모두 국내산을 사용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콩물 생두부는 손두부에 콩물을 부어 제공하는데, 진하고 고소한 콩물과 두부와의 조화가 특이하고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코다리 정식은 코다리 구이에 채소 가득한 소스가 얹혀 나오며 코다리 맛과 어우러져 인기 메뉴이다. 구수한 두부를 맛볼 수 있는 한정식으로 장년층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세라지오 컨트리클럽

세라지오 컨트리클럽

11.0 Km    0     2023-12-28

경기도 여주시 여양로 530

여주에 위치하고 있는 컨트리 클럽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반영하여 산지와 평야를 모두 아우르는 곳에 위치하여 자연에서만 나오는 아름다움과 편안함과 함께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특히나 세라지오CC의 두 개 코스인 세라코스와 지오코스에는 코스 내에 있는 능선과 호수와의 조화 덕분에 역동감과 생동감이 공존한다. 2016년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 수도권에서 방문하기에도 한층 더 편리해졌다.

동여주배추된장국 숙성고깃집

동여주배추된장국 숙성고깃집

11.2 Km    3     2023-02-01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당전로 249-10

동여주 배추된장국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한식당이다. 스카이밸리, 루트 52 등 골프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아침 일찍 영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라운딩 전 아침 식사가 가능하다. 집밥의 반찬들과 같이 소박하고 평범한 메뉴지만 그 맛은 평범하지 않은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한다. 구수하고 감칠맛이 진한 된장국은 뜨끈하게 몸을 풀어주는 이 집만의 별미이다. 라운딩 후에는 바닥난 체력을 회복하기 좋은 숙성 한우구이와 키조개 관자, 새송이버섯을 곁들여 먹는 장흥삼합이 동여주 배추된장국의 대표적인 메뉴이다.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11.3 Km    55181     2024-04-04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 54세로 승하하실 때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태조6년(1397년)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조선조 제3대 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8년 (1408년) 음력 2월11일(양력 3월17일)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같은 해 2월 16일(양력 3월22일) 우부대언 심온의 딸(소헌왕후 심씨)과 결혼하였다.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영릉의 특징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 명하여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세종대왕의 업적
1) 한글창제
대왕은 궁중에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음력) 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익히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글 창제의 더 큰 의의는 한문을 무조건 숭상하던 많은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 학문창달
대왕은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집현전을 부활하여 우수한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하고 옛 제도를 연구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토록 하였다. 우선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농사직설·고려사·삼강행실도·팔도지리지·석보상절·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육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田(전)제)와 세제를 정비하는 등 문물제도를 크게 개건하였다.

3) 과학의 진흥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한 평생을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등 을 만들었다. 또한 측우기를 제작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토록 했으며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수위를 재게하고 외국의 역법(曆法)을 참작하여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리하여 천문·지리 등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4) 외치와 국방
대왕은 역대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를 건너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 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는 한편 3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선진관계를 도모하였다. 북방으로는 최윤덕으로 하여금 평안도의 야인을 평정케하여 4군을 설치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함경도에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시키는 등 국력을 강하하였다.

5) 음악의 정리
조선 초기 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정리하였는 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이었다. 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 효종대왕릉의 형태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고,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사라져 왕릉 배치에 있어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이다.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 대동법과 상평통보, 효종에 대하여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

11.3 Km    2934     2023-08-10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에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