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호수연꽃단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성호호수연꽃단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성호호수연꽃단지

성호호수연꽃단지

10.4 Km    0     2023-10-25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성호로 354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장천리 성호 호수에 있는 연꽃단지이다. 수 면적 약 320,000㎡의 넓은 성호 호수와 접해 있다. 2007년 이천시에서 연꽃단지를 조성하여 오랫동안 자라온 연잎이 6월이면 초록으로 자라기 시작하여 한여름에 절정을 이룬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분홍색 연꽃이 어우러져 사진작가들을 부르는 사진 명소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서 단지에 도착하면, 단지 가운데 놓인 테크길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파란 연잎 사이로 핀 연꽃을 보며 힐링하기 좋은 곳이다.

호법레포츠공원

호법레포츠공원

10.5 Km    1     2022-12-01

경기도 이천시 동산로395번길 139-38 농어민문화체육센터

호법레포츠공원은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있는 체육공원이다. 잔디구장을 비롯하여 테니스장, 풋살장, 게이트볼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잔디축구장은 각종 행사와 마을 축제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축구 훈련이나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축구장 한편에는 달리기 트랙이 있고, 농구장과 족구장으로 사용하는 다용도 구장도 있다. 풋살장도 천연 잔디 구장으로 되어있으며 특별히 테니스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호법레포츠공원은 시설 관리가 잘 되어있어 깨끗하고 곳곳에 조명탑과 가로등이 많다.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공원 내에서는 금연이다. 식수대, 화장실, 식수대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있다. 특히 화장실은 첨단 비상벨이 설치되어 있어 위험시 벨을 누르면 인근 지구대로 연결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관진산과 연결되어 있어 등산코스도 함께 즐길 수 있고 바로 옆에 논스페이스 갤러리 카페가 있으며, 4km 이내에 우주 별빛 정원 테마파크,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이천 테르메덴, 9km 이내에 설봉공원, 안흥지, 예스파크가 있다.

도깨비셀프바베큐

도깨비셀프바베큐

10.5 Km    2     2022-12-22

경기도 이천시 증신로 336

캠핑 형식의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이색 음식점이다. 캠핑 형식이지만 맨손으로 방문하여도 모든 장비가 구비되어 있어서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다. 원하는 고기를 직접 구매하여 숯불에 구워 먹는 재미가 있다. 야외지만 식사하는 공간은 비닐 천막이 있고 난방기도 준비되어 있어서 춥지 않게 식사가 가능하다. 팀별로 개별 공간이 나뉘어 있어서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천막 앞으로는 잔디밭과 공터가 있어서 아이들과 뛰어 놀며 즐거운 기억을 가져갈 수 있다. 외부음식물 반입은 불가능하다.

설봉서원

설봉서원

10.6 Km    4685     2023-11-22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276

설봉서원은 조선중기 1564년(명종19)에 이천부사 정현이 설립한 서원으로, 이천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 보다 21년 늦은 기호지방 최초의 서원으로 출발하여 1593년(선조26) 관으로 이전되었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로 1871년 훼철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천시에서 전국기초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예산을 지원, 이천의 4대 문중과 함께 2007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지금이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상현사, 명교당, 동재, 서재, 내삼문, 양현문, 양사재(관리사무실), 전사청, 협문 등이 있고, 복천 서희, 율정 이관의, 모재 김안국, 소요재 최숙정, 해화당 서선 성생을 배향하고 있다.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의 가능만 남아 개방, 운영하지 않는 다른 서원과는 달리 월~토요일까지 상시 개방하며 일반인 및 학생 및 다문화, 외국인, 기관 및 사회 단체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인성 및 전통 예절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설봉산 자락의 설봉공원 일원에 위치해 있어 공원 내 이천시립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을 비롯 설봉국제조각공원, 문학동산, 설봉저수지 등을 함께 연계 방문할만하다. *주요 문화재 1) 상현사(사당) 2) 명교당 3) 동재 4) 서재 5) 내삼문 6) 양현문(외삼문)

용학사

용학사

10.7 Km    0     2023-11-01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진상미로1067번길 271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사찰이다. 선덕사라는 이름 없는 절에서, 혜봉 스님이 기도 정진 중에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현몽을 꾼 이후 ‘용학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과 지장전, 산신각, 극락전, 납골 추모관인 목련관, 범종각, 신도회 사무실과 공양실이 있는 방적당, 종무소인 다경실이 있다. 아침과 저녁에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타종이 조용한 산사에 울린다. 주변에 가 볼 만한 곳으로 이천도예촌, 해강도자기 미술관, 온천관광단지, 지산리조트가 있다.

야반

10.7 Km    0     2023-10-31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 2849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위치한 한정식 음식점이다. 고등어구이, 황금 보리굴비, 제주 황게장, 구첩반상, 돌솥밥으로 나오는 야반 2인 상차림이 메인 메뉴이다. 고등어구이 대신 임연수구이나 제육볶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식당 내부나 주차장 공간이 넓게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이나 회식 장소로 좋다. 주말 및 공휴일에는 브레이크 타임이 없이 영업한다.

속초집

속초집

10.7 Km    3     2023-01-17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 2849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위치한 코다리냉면과 직화주꾸미 전문 음식점이다. 불맛을 낸 주꾸미볶음을 콩나물과 밥을 넣어 비벼 먹은 후, 육수를 끓이고, 칼국수와 야채, 들깨가루를 가득 넣어 더 끓이면, 적당히 익은 들깨칼국수를 먹을 수 있다. 코다리 냉면, 동치미 물냉면, 고기 왕만두 등이 메뉴로 있다. 주꾸미 볶음 등 7개 메뉴는 포장이 가능하다. 가까이에 설봉공원과 설봉저수지가 있다.

여주미술관

여주미술관

10.7 Km    2     2023-12-27

경기도 여주시 세종로 394-36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해 있는 미술관이다. 2019년 개관하였으며 미술관 설립자이자 작가인 박해룡의 작품들과 수집한 미술작품 700여 점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깔끔한 외관과 아기자기한 공간 구성으로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장소이며 여주 미술관의 감성을 닮은 카페 돈키호테는 독특한 소품들로 내부를 꾸며놓았다, 미술관 감상 후 조용하고 한적하여 카페에서 잔디정원을 바라보며 휴식하기에 좋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주말 나들이 삼아 방문하기 손색없는 곳이다.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10.8 Km    55180     2024-04-04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 54세로 승하하실 때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태조6년(1397년)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조선조 제3대 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8년 (1408년) 음력 2월11일(양력 3월17일)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같은 해 2월 16일(양력 3월22일) 우부대언 심온의 딸(소헌왕후 심씨)과 결혼하였다.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영릉의 특징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 명하여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세종대왕의 업적
1) 한글창제
대왕은 궁중에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음력) 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익히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글 창제의 더 큰 의의는 한문을 무조건 숭상하던 많은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 학문창달
대왕은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집현전을 부활하여 우수한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하고 옛 제도를 연구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토록 하였다. 우선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농사직설·고려사·삼강행실도·팔도지리지·석보상절·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육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田(전)제)와 세제를 정비하는 등 문물제도를 크게 개건하였다.

3) 과학의 진흥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한 평생을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등 을 만들었다. 또한 측우기를 제작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토록 했으며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수위를 재게하고 외국의 역법(曆法)을 참작하여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리하여 천문·지리 등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4) 외치와 국방
대왕은 역대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를 건너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 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는 한편 3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선진관계를 도모하였다. 북방으로는 최윤덕으로 하여금 평안도의 야인을 평정케하여 4군을 설치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함경도에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시키는 등 국력을 강하하였다.

5) 음악의 정리
조선 초기 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정리하였는 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이었다. 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 효종대왕릉의 형태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고,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사라져 왕릉 배치에 있어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이다.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 대동법과 상평통보, 효종에 대하여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

10.8 Km    2934     2023-08-10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에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