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희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희원

희원

0m    1     2023-02-01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황무로2065번길 221-10

희원은 경기도 이천의 한옥 카페이다. 넓은 주차장과 고풍스러운 한옥과 잔디가 있는 마당이 예쁜 카페이다. 카페 건물과 별관 건물이 있다. 전통적인 느낌의 소품들도 볼 수 있다. 카페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분과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내부에서는 큰 통창으로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룸으로 된 좌석도 있다. 커피와 차, 음료가 다양하며, 많은 종류의 베이커리가 있다.

카페트로이

10.0 Km    0     2024-04-23

경기도 여주시 명품로 142

야외 수영장, 온수풀,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카페&레스토랑이다. 글라스 룸, 캐노피 룸, 플로팅 룸, 방갈로, 썬 배드, 파라솔, 일반 테이블석 등 다양한 좌석이 준비되어 있다. 음료와 식사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음식 걱정 없이 아이들과 편하게 물놀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성수기와 주말에는 이용객이 많으므로 미리 시설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금은모래강변 놀이터와 여주 곤충 박물관, 예크생물원, 여주프리미엄아울렛 등이 가까이 있어 당일 여행 코스로 이용할 수 있다.

이여로제빵소

이여로제빵소

10.1 Km    0     2023-12-28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이여로341번길 1-1

이여로 제빵소는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해 있는 디저트 카페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내부 공간뿐 아니라 디저트, 샌드위치, 쿠키, 케이크 등 다양한 빵 종류로도 유명하다. 신선한 핸드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고 카페 이곳저곳이 모두 포토존이라 할 만큼 잘 꾸며져 있다. 넓은 부지에 지어진 공간답게 내부 또한 여유로워 모임을 하기에도 적합하고 주말 나들이 나온 가족이나 연인들의 휴식 장소로도 알맞은 곳이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화운동기념공원

10.1 Km    3     2023-02-28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30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열사를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으로 경기 이천시 모가면에 있다. 약 42,000㎡ 공간에 기념관, 민주묘역, 유영봉안소, 방문객 휴게소, 관리사무소 등이 있다. 기념관은 휴무일이 있지만, 묘역, 야외 조형물, 민주 광장 등은 연중 개방한다. 전체를 대략 관람하는데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중부고속도로 남이천IC에서 차량으로 1분 거리에 있다.

이천 신대리 백송

이천 신대리 백송

10.2 Km    21885     2023-08-16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로568번길 205-26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한 바늘잎 상록수로서 짧은 가지 끝에 세 가닥의 잎이 뭉쳐나고 끝이 뾰족하며 짧다. 수꽃이삭은 긴 타원형, 암꽃이삭은 달걀 모양인데 5월에 꽃이 핀다. 솔방울은 달걀 모양이며 종자는 조금 큰 편이고 이듬해 10월에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로 인가 부근에 많이 심는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게 자라고 있는 희귀종으로서 발견되는 대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서울 통의동, 원효로, 제동, 수송동 등 네 그루가 있고 밀양, 보은, 예산에 각각 한 그루, 그리고 이천의 백송 등 모두 8그루가 있다. 백사면 신대리 부락 뒷동산에 있는 이 백송도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그 껍질이 약재가 된다는 속설 때문에 몰지각한 사람들이 몰래 껍질을 벗겨가는 등 수난을 받기도 하였다. 나무의 높이는 16m 가량이며 밑둥치에서부터 두 그루로 갈라져 옆으로 잔가지를 늘인 모양이 보기에 좋다. 수령은 220여 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확실한 유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마을 노인들 말에 의하면 전라감사를 지낸 민달용의 묘를 이곳에 안치한 후 그 후손들이 묘 앞에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남여주GC(남여주골프클럽)

남여주GC(남여주골프클럽)

10.2 Km    0     2023-12-01

경기도 여주시 가여로 532

남여주 GC는 남여주 IC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골프 클럽이다. 남여주 GC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대중 골프클럽으로, 총 세 개의 코스와 27개의 홀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위치와 가성비가 좋아 많은 골퍼들이 애용하고 있는 골프클럽이다. 남여주 GC의 코스에는 가람, 마루, 누리 세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순우리말로 강, 정상, 세상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름대로 코스에서는 자연하천과 호수가 이루는 아름다운 조화를 감상함과 동시에 수려한 풍경과 함께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라드라비 아트앤리조트

10.2 Km    4     2023-12-19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진상미로1163번길 220

경기도 이천시 남부에 위치한 라드라비는 인생의 예술에 대한 의미를 기록하는 다양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채운 복합문화공간이자 부티크 리조트다. 라드라비(L’art de la Vie)는 프랑스어로 ‘인생의 예술’이란 뜻으로, 2022년 오픈했다. 1만여 평의 대지 위에 들어선 라드라비 아트앤리조트는 빌리지와 리조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빌리지에는 메인 공간인 아트갤러리를 중심으로 멀티플렉스, 러닝스페이스, 이탈리안 레스토랑, 한식 다이닝, 카페&베이커리, 아트샵 등이 있다. 리조트는 한옥 3채와 빌라 8동, 워크샵빌라(단체숙소) 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정적인 분위기와 이상일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아트 갤러리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방문객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이곳의 멀티플렉스는 프라이빗 웨딩과 파티 공간으로 이용 가능하며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 나온 연진의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다. 아트갤러리는 숙박 또는 식사&카페 이용 시 별도의 입장료 없이 관람 가능하나 미술관만 관람할 경우 입장료를 내야 하며, 1일 2회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총 4개의 전시관이 있고 이상일 작가의 다양한 펜슬 드로잉 대작들과 35년간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며 고객들의 헤어상태를 기억하기 위해 샘플링해 두었던 모발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 [뷰티DNA],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며 장례식장을 표현한 [라스트 뷰티] 등의 대표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영월암

영월암

10.3 Km    0     2023-11-03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388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인 영월암은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있다. 설봉산의 정상 부근에 해당하는 높은 곳에 있어 이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설봉산은 이천의 주산으로 이천 시민을 위한 몸과 마음의 안식처이다. 그래서 산 정상을 이천 시민의 꿈과 희망을 간직한 곳이라 하여 ‘희망봉’이라 부르고 있다. 설봉산 아래에는 2001 세계도자기 엑스포를 거행한 곳으로 관고저수지를 중심으로 이천도자박물관이 있고, 주변으로는 넓은 공원이 형성되어 있다. 편안하고 숲이 우거진 산으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어 이천 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10.3 Km    55180     2024-04-04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 54세로 승하하실 때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태조6년(1397년)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조선조 제3대 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8년 (1408년) 음력 2월11일(양력 3월17일)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같은 해 2월 16일(양력 3월22일) 우부대언 심온의 딸(소헌왕후 심씨)과 결혼하였다.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영릉의 특징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 명하여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세종대왕의 업적
1) 한글창제
대왕은 궁중에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음력) 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익히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글 창제의 더 큰 의의는 한문을 무조건 숭상하던 많은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 학문창달
대왕은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집현전을 부활하여 우수한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하고 옛 제도를 연구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토록 하였다. 우선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농사직설·고려사·삼강행실도·팔도지리지·석보상절·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육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田(전)제)와 세제를 정비하는 등 문물제도를 크게 개건하였다.

3) 과학의 진흥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한 평생을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등 을 만들었다. 또한 측우기를 제작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토록 했으며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수위를 재게하고 외국의 역법(曆法)을 참작하여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리하여 천문·지리 등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4) 외치와 국방
대왕은 역대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를 건너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 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는 한편 3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선진관계를 도모하였다. 북방으로는 최윤덕으로 하여금 평안도의 야인을 평정케하여 4군을 설치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함경도에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시키는 등 국력을 강하하였다.

5) 음악의 정리
조선 초기 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정리하였는 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이었다. 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 효종대왕릉의 형태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고,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사라져 왕릉 배치에 있어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이다.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 대동법과 상평통보, 효종에 대하여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

10.3 Km    2934     2023-08-10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조우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어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에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