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향토민속자료전시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진천향토민속자료전시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진천향토민속자료전시관

진천향토민속자료전시관

0m    15273     2019-06-26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323

진천 향토민속자료 전시관은 조상의 얼이 담긴 각종 문화 유물과 생활민속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하여 군민과 자라나는 학생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함은 물론 우리 군 고유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군민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자 건립했다.

진천 길상사

진천 길상사

711m    23839     2020-01-13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길상사는 진천 도당산에 있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흥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사당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진천현 산천조와 사묘조에 "신라진평왕시 만로군태수 김서현처만명 임신 20월생 자왈유신 장태어현15리 화위신 인위태령산 자신라시 치사우춘추강향축행제 고려잉지지 본조 태조 8년 시정지 영소재관치제"라하여 신라 때부터 장군의 태가 묻힌 태령산 아래 사당을 건립하고 국행제를 지내오다가 조선 태종 8년부터 관행제로 치제하였다. 그 뒤 임진 병자양란시 병화를 입어 폐허가 된 것을 철종 2년(1851) 백곡 가죽리에 죽계사자리에 계양묘를 건립하였으나 1926년에 도당산에 길상사를 재건하고 1959년에 개축하였는데 1975년에 정화하여 길상사를 전면 신축하였다.

본전은 "흥무전"으로 콘크리트조 와즙, 정면 5간, 측면 2간, 주심포 8작집인데 그 안에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바깥 뜰에는 1957년 세운 "흥무대왕신성비" 이선근이 글을 만들고 김만희 씀와 안뜰에는 1976년에 세운 "김유신장군사적비" 이 은상 글 김충현 씀 그리고 입구에는 같은 해에 세운 "길상사중건사적비"조건상 글 이상복 씀가 있다. 김유신은 만로군 태수 김서현의 아들로 진천에서 출생. 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이 되었고 진덕여왕 때는 백제 12성을 함락하여 상주행군대총관에 오르고 무열왕 7년 상대등으로 당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당 연합군의 대총관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하고 태대각간이 되었으며 한수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 삼국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였고 흥덕왕 때에는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관리 - 진천군

대흥사(진천)

대흥사(진천)

763m    20617     2019-10-1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300-80

진천은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또한 맑은 물과 기름진 너른 벌판이 있어 하늘이 내린 곳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진천을 한눈에 굽어보고자하면 봉화산 중턱에 자리한 대흥사가 제격이다. 대흥사는 고려시대의 절터로서 조선후기에 참의 벼슬을 하던 조중우(趙重愚)가 창건하고 영은암이라 했던 것을 1907년에 다시 조창호(趙昌鎬)가 중건한 사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흩어져 있는 대부분의 작은 사찰들이 그러하듯이 근래까지도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으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람을 일신하고 있다. 옹색했던 터전은 넓직한 도량으로 변모를 했고,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의 법당과 당우(堂宇)는 아름다운 처마곡선을 뽐내고 있다.

진천향교

진천향교

1.3 Km    18021     2020-01-15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화5길 30

조선 태조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804년(순조 4)에 명륜당과 동재(東齋)·서재(西齋)를 중수하고 풍화루를 건립하였으며,1816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그 뒤 1851년,1873년,1935년,1942년,1959년,1966년,1967년,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의 위패를, 동무·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진천문화원

진천문화원

1.7 Km    19379     2019-05-16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화로 79

지역고유문화의 계발·보급·보존·전승 및 선양 등 향토사의 발굴·조사·연구 및 사료의 수집·보존 등 지역문화행사 개최, 주민과 함께 하는 사회교육활동, 환경보존 등 문화의 창달을 위한 행사와 크고 작은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진천 중앙시장

진천 중앙시장

2.2 Km    10692     2020-10-1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중앙서로 29-1
043-533-8966

옛 양조장 골목으로 불렸던 진천군의 재래시장으로 진천읍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양한 상점들로 형성되어 있어 생활 용품 구입에 편리한 시장이다.

백곡저수지낚시터

백곡저수지낚시터

2.6 Km    25034     2020-08-18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043-539-7646

진천의 3대낚시터(백곡, 초평, 덕산)중의 하나로 84년 제방증축공사로 수면적이 384,000평에서 704,000평으로 늘어났다. 교통이 편리하고 잉어의 입질이 좋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포인트의 분포가 협소하고 가뭄에 약해서 조황이 계절적으로 차이가 심하다. 강우량이 풍부한 해는 여름에도 포인트 형성이 좋으나 가뭄때에는 수위가 중류이하로 줄기 때문에 좌대가 아니면 낚시가 어려울때도 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수질도 좋아 겨울철 빙어 잡이가 일품이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수상스키도 즐길 수 있다.

진천 종박물관

진천 종박물관

2.7 Km    24866     2020-10-15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2

진천종박물관은 한국 종의 연구, 수집, 전시, 보존은 물론 기획전시, 교육 및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한국 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5년 9월 개관하였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조사된 진천 석장리 고대 철생산 유적지가 있는 진천에 건립되어 그 의미가 깊다. 진천 석장리는 한국최초로 4세기대로 편년되는 고대제철로의 실례(實例)가 발견되었다는점을 들 때 금속공예의 제작도 가능하였음을 의미한다. 진천 인근 지역인 청주 운천동에서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범종이 출토되었고, 고려시대의 용두사지 철당간도 남아있다.고대 유적 가운데 최대규모의 제철로를 소유했던 진천에 금속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범종의 문화를 기리는 종박물관의 건립은 필연적 인연이라 하겠다.

우리의 종과 판화를 찾아서, 진천 여행 [웰촌]

우리의 종과 판화를 찾아서, 진천 여행 [웰촌]

2.7 Km    2613     2018-05-02

진천종박물관은 한국 종의 연구, 수집, 전시, 보존은 물론 기획전시, 교육 및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한국 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5년 9월 개관하였다.

대한성공회 진천성당

2.0 Km    17665     2019-12-0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화3길 72

충북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전형적인 한옥 성당이다. 1908년 설립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된 후 헐어내고 1923년 다시 건립하였다. 1970년 도시계획에 의한 소방도로 개설로 대지 내에서 다시 원형대로 이건되었고, 2003년 현재의 위치로 또다시 이전 복원되었다. 건축구조는 정면 4칸, 측면 8칸의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동쪽에 출입구, 서쪽에 제단을 두었으며, 내부는 두 개의 열주에 의해 신랑(身廊, Nave)과 측랑(側廊, Aisle)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진천성당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한옥성당으로써 건축사적, 교회사적 의미가 높아 등록문화재 8호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진천장 (5, 10일)

2.6 Km    19481     2020-08-20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남산10길 27
043-539-3376

진천장은 진천대교를 건너 백곡천 둔치 주변과 진천시장 동쪽 장터에서 열린다. 장날은 5일과 10일이며 장날이 되면 상인들은 물론 시골 할머니들이 산이나 들에서 직접 캐온 봄나물을 들고 찾아든다. 상인은 5백~6백명 정도로 상당히 큰 장이라 할 수 있다. 조치원장과는 비슷하고 음성장보다는 크다 한다. 구경하는데 족히 2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충청도의 특산물이라는 올갱이(다슬기)도 볼 수 있다. 가축시장에는 강아지며, 새끼오리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가축시장 옆의 잡곡시장에는 20여가지의 곡식 보따리가 펼쳐져 손님을 맞이한다. 장터 한쪽면으로는 순대국밥의 먹을거리가 죽 늘어서 있다. 진천장은 시골 장터의 풍경들이 많이 보인다. 동창회 모임인 양 할아버지들이 한쪽에 모여 앉아 시끌시끌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모습, 약장수의 만병통치약 선전에 귀를 쫑긋 기울이는 사람들, 할머니들이 캐온 봄나물을 앞에 놓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옆 할머니와 인생살이 얘기를 하는 모습, 뻥튀기 아저씨의 ‘뻥’하는 소리들이 옛 시골장의 흥을 돋구어 준다. ※ 시장유래 - 진천읍 일원 도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전래된 5일장의 명맥을 이어 오던 중 1976년 부지내에 장옥 등을 건축하여 노점상을 유도하고, 농수산물 거래 및 생필품 구매장으로 활용

서한순 효자문

2.6 Km    24486     2020-01-15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이 효자문은 조선 헌종 14년(1848)에 태어나 순종(純宗) 3년(1909)에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일생을 마친 서한순의 효행을 길이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71년 6월 6일에 건립한 효자정문(孝子旌門)이다. 목재를 이용한 기와집 형태로 규모는 9.9174㎡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서 공(徐 公)은 본관이 달성(達成)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예절바르고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평생을 부모에 대한 효성으로 보냈다.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 마저도 거르는 때가 많았으나 부모님에 대한 봉양은 게을리 하지 않고 부친이 병상에 눕게 되자 갖가지 약을 구하여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으니 혹한도 아랑곳 않고 매일 목욕 재계하고 하늘에 치성을 드리며 시탕(侍湯) 간병한 결과 20여일만에 완쾌되니 인근에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후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매일 성묘하고 곡(哭)을 하며 시묘(侍 墓) 3년으로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후 지방의 유림(儒林)들의 건의로 효자문을 세우도록 품신(稟信)하였으나 조선조 말엽의 혼란과 외세침략으로 정려(旌閭)의 은전(恩典)을 입지 못한 채 내려오다 1971년에서야 지방 유림들이 당시의 감사(監事), 현감(縣監)등의 표창장을 자료로 효자정문(孝子旌門)을 세우게 되어 많은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