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11.0 Km    2295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은 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석불은 200m쯤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서 있는 남녀상이다.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冠) 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이다. 도포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 없이 몇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와 불상을 같은 돌에 새겼는데, 앞면을 약간 깎아 대좌 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다리꼴의 돌기둥 같은 신체나 비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마치 분묘(墳墓)의 석인상(石人像)과 비슷하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불상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로 보인다.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전설로 되어 전해지고 있다.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 상이라고 한다. 불상의 목을 보면 무척 짧게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어깨와 얼굴이 거의 붙어있는데 이러한 형태가 연인의 전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익산제석사지

익산제석사지

11.1 Km    4300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이 터는 백제시대의 사찰인 제석사가 있던 곳이다. 제석사지는 무왕대의 익산 천도설을 밝혀 줄 수 있는 왕궁리 유적과 관련이 있는 절터이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期)에 따르면, 제석사는 백제 무왕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무왕 40년(639)에 벼락으로 불타버렸으나, 탑 아래 넣어두었던 불사리와 금강반야격을 얻었던 칠함이 보존되어 다시 사찰을 짓고 안치하였다 한다. 1993년 일부 지역을 조사한 결과 목탑 터, 금당 터, 강당 터 등의 기단이 확인되었으며, 「제석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출토됐다. 비록 터만 남았지만, 이곳은 몇 개 남지 않은 백제 절터의 하나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은진향교 대성전

은진향교 대성전

11.2 Km    16263     2023-12-08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탑정로427번길 14-1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은진향교는 조선 태조 7년에 은진면 용산리에 있었으나 인조 20년(1642)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앞면 1열은 퇴칸으로 두고, 뒷면 2열은 내부 공간으로 만들어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고주 5량가 구조에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의 경우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내부는 모두 마루 공간으로 꾸몄다. 무고주 5량가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은진향교에는 9인의 중국 선현을 포함하여 27위를 배향하고 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음력으로 2월과 8월 상정일에 유림이 모여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은진향교

11.2 Km    1778     2023-12-08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탑정로427번길 14-1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은진향교는 고려 우왕 6년에 세웠고 조선 광해군 7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교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인 음력 2월과 8월에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향교 인근으로는 익성군 신도비 및 무석, 와야리 벽화마을, 논산 칠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의 산책코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변의 관광지는 김홍신문학관, 충남승마클럽, 은진향교가 있다.

망모당

망모당

11.3 Km    4358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장중길 105-8

이 집은 조선 선조대 문인 표옹 송영구(瓢翁 宋英耉)선생이 선조 38년(1605) 선친을 여의고 지은 곳으로, 이곳에서 우산(紆山)에 있는 선영(先塋)을 망모(望慕)하였다고 한다.망모당이란 편액(扁額)은 중국사신 주지번(朱之蕃)의 친필을 현각한 것이다.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전면의 초석은 기둥모양초석으로 누집 형식을 이루고 있다.기둥위에 첨차를 놓아 굴도리 밑의 장혀를 받친것이나, 난간두겁대의 받침기둥을 계자각 비슷하게 다듬은 것 등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당모당 부근에는 100여명 정도가 앉아서 놀 수 있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밑으로는 왕궁천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있어서 주변의 경치가 매우 좋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1.5 Km    2231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은 마한 시대 도읍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 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 장식이 남아있다.

익산 왕궁리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익산 왕궁리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11.6 Km    24526     2024-03-27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위치한 왕궁리유적은 백제 30대 무왕(600 ~ 641)대에 조성되어 그 후 사찰로 변화했다. 백제 말기 익산 경영과정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왕궁으로 사비(부여)와 함께 복도로 이해하고 있다. 백제 왕궁은 용화산에서 발원한 능선 끝자락의 낮은 구릉 위에 조성되었다. 1989년부터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에 의하면 백제 말기 왕궁으로 조성되어 일정기간 시용된 후 왕궁의 중요 건물을 철거하고 탑과 금당, 강당 등 사찰이 들어선 복합유적이다. 왕궁리유적의 왕궁은 백제왕궁으로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과 내부구조가 확인되어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조성된 백제왕궁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다. 왕궁의 외곽에는 폭 3m의 담장을 동서 245m, 남북 490m인 장방형으로 두르고 있다. 왕궁의 남측 절반은 국가의 중요 의례나 의식을 행하던 건물, 왕이 정사를 돌보던 건물, 왕과 왕의 가족의 생활을 위한 건물들이 4개의 동서석축을 쌓아 구분·배치하였다. 북측 절반은 왕의 휴식을 위한 공간인 정원과 후원, 왕궁의 서북측에는 백제시대 가장 귀중품인 금과 유리를 생산하던 공방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왕궁의 남측에 의례나 의식, 정무, 생활을 위한 공간을 배치하고, 북쪽에 후원을 배치하는 것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 왕궁에서도 확인되고 있어서 당시 고대 동아시아 국가에 문화교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왕궁으로 일정 기간 사용한 후 사찰로 바뀌어 통일신라 후기까지 유지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사역 동남측 일부에서는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출처 : 백제왕궁박물관)

백제왕궁박물관

백제왕궁박물관

11.6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백제 왕궁박물관은 1989년 발굴이 시작된 왕궁리 유적 남측에 건립된 박물관으로 2008년 개관하였다. 백제 왕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출토 유물을 전시하여 문화교육장으로 쓰이고 있다. 백제 왕궁은 고대 동아시아 한국, 중국, 일본과 문화교류 사실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되어 2015년 7월 8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기도 하다. 실내전시와 야외전시, 상설 전시실과 기획 전시실을 통해 금, 유리, 토기류 등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 300여 점을 선정해 전시하고 있다.

익산 쌍릉

익산 쌍릉

11.6 Km    2310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석왕동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무덤으로,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쌍릉이라고 부른다. 무덤 안의 구조는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며, 무덤의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라 하고,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고 부른다. 크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2기 모두 원형의 봉토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다. 1917년 조사할 당시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어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대왕묘 안에서 나무로 만든 관이 일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무관은 바닥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관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무늬가 있었던 것도 확인되었다. 이들 두 고분은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에 의해 발굴된 바 있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고분의 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발굴조사가 2018년(대왕릉)과 2019년(소왕릉)에 실시되었다. 학술발굴조사 결과, 대왕릉의 경우는 사비기 백제왕릉급 무덤으로서 판축 기법을 사용한 봉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석실 끝부분에서는 여태까지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없던 인골 조각이 발견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밀분석 결과 인골추정 나이가 무왕의 사망 나이와 비슷함에 따라 무왕의 무덤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소왕릉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무왕릉과 마찬가지로 석실의 규모와 품격에 있어 왕릉급임을 확인하였다.

나바위 성당(화산천주교회)

나바위 성당(화산천주교회)

11.6 Km    21298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나바위 성당은 조선 헌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 나바위 성당의 볼거리 *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