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강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노들강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노들강변

노들강변

0m    27805     2020-01-21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1144
061-383-1145

※ 영업시간 10:00 ~ 22:00 연천 가사문학관을 지나고 화순 온천 방향 1km 지나 좌측에 위치해 있는 전통 레스토랑으로, 깊고 푸른 광주호와 어머님 치맛자락처럼 포근한 병풍산이 반기는 기슭 아래 연천리 노들강변이 자리 잡고 았다. 아름다운 정경과 넓은 주차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농촌의 서정적인 산, 들, 강변을 소재로 한 그림 등을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감미롭고 정겨운 음악과 신속하고 친절한 서비스, 깨끗함에서 묻어 나오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실내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목재와 물레방아를 통한 한국적인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 다양하게 나오는 맛깔스러운 음식과 전통차, 음료, 주류(칵테일), 식사를 하면서 생음악을 즐길 수 있어 다른 레스토랑과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다.

광주 평촌마을

광주 평촌마을

1.6 Km    3266     2019-11-12

광주광역시 북구 평촌길 15

평촌마을은 무등산 북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동림, 담안, 우성, 닭뫼 4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된 아담하고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마을 들녘에는 평무뜰이 있어 친환경 우렁이쌀을 재배하고 있으며,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풍암천에는 도심에서는 이미 자취가 사라진 반딧불이와 무등산의 깃대종인 수달(천연기념물 330호)이 서식하고 있어 우수한 자연생태를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평촌마을이 분청사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남도의 예술적 혼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 마을에 있는 평촌 도예공방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 길목에는 무돌길 쉼터와 반디민박이 있어 마을을 지나는 이들과 무등산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담양 소쇄원

담양 소쇄원

1.7 Km    77934     2020-01-21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 양산보가 지은 조선시대 별서정원, 소쇄원 *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전원(前園)은 대봉대(待鳳臺)와 상하지(上下池),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愛陽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五曲門)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光風閣)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臺下)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內園)구역은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堂)과 오곡문(五曲門)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五曲門) 옆의 오암(鼇岩)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 소쇄원의 구조 *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桃塢)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霽月堂), 광풍각 (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光風閣)은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가적(道家的)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鰲岩), 도오(桃塢), 대봉대(待鳳臺) 등 여러 명칭이 보인다.

* 소쇄원에 대한 다양한 정보 *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있으며, 1755년(영조 31) 목판에 새긴「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서 김인후 (河西 金麟厚)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 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瀟灑亭卽事)』에는 간접적인 기사가 있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李德裕)가 경영하던 평천장(平泉莊)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高敬命)이 쓴 『유서석록(遊瑞石錄)』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 규모 - 정원 일원(4,958.7m²)
* 시대 - 조선 중종(1530년대)

가사문학의 향을 따라가는 가사문학로드

가사문학의 향을 따라가는 가사문학로드

1.8 Km    5751     2017-05-15

담양은 조선시대의 가사문학 본향으로 한국의 전통정원의 대명사인 소쇄원을 시작해 식영정, 명옥헌원림, 송강정, 면앙정 등 자연을 그대로 끌어안은 옛 선비들의 청빈한 삶과 문학의 향을 느껴볼 수 있는 여정이다. 담양 삼지내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슬로시티로 마을 곳곳에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골의 정취를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2.5 Km    26364     2020-01-21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 한국가사문학의 본관 담양에서 만나는 한국가사문학관 *

담양군에서는 담양의 가사문학관련 문화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해 1995년부터 가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이 있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傘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문학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환벽당·소쇄원·송강정·면앙정 등은 호남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그 전통을 오늘에 있게 하고 있다. 한옥형 본관과 기획전시실(갤러리), 자미정, 세심정, 토산품전시장, 전통찻집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전시물은 가사문학 관련 서화 및 유물 1만 1,461점, 담양권 가사 18편과 관계문헌, 가사 관련 도서 약 1만 5,000권 등이다.

* 담양의 가사문학 *

전라남도 북쪽에 위치한 담양은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 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하여, 이곳 담양 일원에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이들은 수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도 앞장섰다.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및 작자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 가사(歌辭) - 고려말엽부터 나타난 3·4조 또는 4·4조의 운문(韻文)으로 된 긴 시가형식

환벽당

환벽당

2.5 Km    35594     2020-01-23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

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벽간당(碧澗堂)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遺書石綠)에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2칸,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을 방으로 하여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깐 변형된 형식이다.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후대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있고, 석천 임억령(石川林億齡)과 조자이(趙子以)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환벽당에 관한 시는 정철이 지은 2수가 있는데, 송강속집과 광주목지에 실려 있다. 정철의 4대손 정수환(鄭守環)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사촌 김윤제에 대하여 *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겸춘추관(承文校理兼春秋官)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弘文官校理),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 송강 정철(松江鄭徹 1536~1593)과 서하당 김성원(金成遠)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과 김덕보(金德普)형제는 그의 종손(從孫)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가 있다. 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곳에는 식영정(息影亭)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醉歌亭)이 있다. 인근에는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이 자리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苑林文化)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환벽당 ·조대

환벽당 ·조대

2.5 Km    24274     2020-04-10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

* 송강 정철의 설화가 있는 곳, 환벽당 ·조대 *

담양 가사문화권역에 있는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충효 동쪽 높다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다.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벽간당(碧澗堂)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遺書石綠)에 기록되어 있다. 환벽당은 홍문관 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성주를 역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촌 김윤제(1501~1572)가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인데, 송강 정철, 사하당 김성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다.

* 환벽당 및 용소에 얽힌 송강 정철의 전설과 조대 *

환벽당 인근에 위치한 용소는 창계천의 깊은 물 웅덩이를 말한다. 이곳은 송강 정철에 대한 전설이 얽힌 곳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환벽당에서 사촌이 낮잠을 자는데 꿈에 환벽 당 앞 용소에서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이를 괴이히 여겨 하인을 시켜 살펴보라 하였는데 어린 동자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동자가 바로 집안이 역적으로 몰려 피신하는 길에 잠시 쉬고 있던 송강 정철이다. 사촌이 송강을 불러 문답하는 중에 그 영특함에 놀라 자기 슬하에 두고 학문을 닦게 하여 송 강 나이 17세에 그를 외손녀 사위로 삼고 정철의 뒷바라지를 했다. 용소 옆에는 송강이 이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았다는 조대가 있다.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2.6 Km    40371     2019-08-01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광주호 동쪽 호안(湖岸)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의 딸린 갈잎 큰키나무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우리 나라 경기도 이남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 지역, 중국 중부 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충효동의 왕버들 3그루는 모두 광주시 나무로 지정되어있는데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의 상징 조경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 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잘라 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다시 왕버들 2그루를 식목하였으며, 소나무와 매화도 계속 식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옛부터 성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려왔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 나무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1) 높이 9m, 둘레 6.25m, 수관(樹冠)너비 11.5 ×18.9m
2) 높이 10m, 둘레 5,95m, 수관너비 14.0 ×14.0m
3) 높이 12m, 둘레 6.30m, 수관너비 16.6 ×27.0m

충효동 정려비각

충효동 정려비각

2.6 Km    29843     2020-01-29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충장공 김덕령(1567~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 효, 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 [朝鮮國贈左贊成忠壯公金 德齡 贈貞敬夫人 興梁李氏 忠孝之里]가 3행으로 새겨져 있다. 이 면에는 정헌대 부호조판서 서유린이 選하고 全羅道觀察使 서용보가 쓴 음기가 새겨져 있다.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Cm, 기단 높이 110Cm, 비신 높이 171Cm, 비신 너비 68cm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 김덕령 장군 일가에 대하여 *

비문에 나타난 김덕령 일가의 사적은 다음과 같다.김덕령 장군 자는 경수 본관은 光山이며 오계 성혼에게서 글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 형 덕홍이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중임에도 의거하여 담양부사 이경린, 장성현감 이귀의 천거로 종군의 명을 받고 의병을 모아 남원에서 훈련을 마친 뒤 선전관에 임명되어 권율 휘하에서 왜의 호남진출을 막는 데 힘썼다. 1594년 진해, 고성에 나가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하여 왜병을 물리치고 1595년에는 고성에 상륙하는 적을 격퇴하였다. 1596년 도체찰사 윤근수의 노비가 상전의 권세를 믿고 군율을 어기므로 장살하여 한 때 체포되었으나, 왕명으로 석방되자 대신들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때마침 이몽학의 난으로 그와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아 옥사했다. 후에 복권되어 1788년 의정부좌성에 추증되고 충장의 시호를 받았다.

* 흥양이씨 (?~1597) : 김덕령 장군의 부인으로 정유재란 때 왜병의 추격을 받고 순절했다.
* 김덕홍 (1558~15920) : 김덕령 장군의 형이며 호는 성암이다. 우계 성혼의 문인이며 임진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고경명 휘하에 참여하여 의주행재소로 가던 중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전사했다.
* 김덕진 (1571~1627) : 김덕령의 아우이며 자는 자룡, 호는 풍암이다. 효성이 지극했다. 두 형을 잃은 뒤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지리산 백운동에서 난을 피하여 겨우 가계를 보존했다. 난 후에 풍암정을 짓고 독서로 일생을 보냈는데 인조 때 잠시 창릉 참봉으로 나가 있다가 더 이상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1785년에 집의(執義)에 추증되었다.

정송강 유적(식영정·송강정)

정송강 유적(식영정·송강정)

2.7 Km    20577     2019-11-19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859

* 송강 정철이 머물던 곳, 정송강유적 *

정송강 유적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철(1536∼1593)이 성산에 와 있을 때 머물렀던 곳으로, 송강정과 식영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철은 호가 송강으로, 명종 16년(1561)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뒤로 많은 벼슬을 지내다가 정권다툼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성산에 내려와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의 문학작품을 지었다. 송강정은 앞면 2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에는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옆면에는 ‘죽록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식영정은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송강정과 마찬가지로 팔작지붕이다.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 붙이고 앞면과 옆면을 마루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 정송강유적의 또다른 하나 환벽당 *

환벽당도 정송강 유적에 속하나 지역상으로 광주에 속하여 문화재 지정번호가 분리되었다. 환벽당은 식영정으로부터 약 300m의 거리의 담양과 광주 인접 지역에 있다. 식영정 건너편에 위치한 <환벽당>은 어린시절 정철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한 사촌 김윤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아직도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광주의 예술가거리와 번화한 금남로

광주의 예술가거리와 번화한 금남로

2.8 Km    5666     2019-07-31

번화한 광주를 둘러볼 좋은 코스다. 호수생태공원의 아름다움 전경을 거닐고 남도 예술의 진수가 숨 쉬는 예술의 거리, 가장 번화한 젊은이의 거리 금남로 쏘다니기도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겨울이라면 기나긴 지하상가 쇼핑도 좋겠다. 광주는 잘 보존된 한옥가옥이 많다. 최승효 가옥도 그중의 하나다.

무등산수박마을

2.8 Km    26653     2019-12-20

광주광역시 북구 송강로 236-3

무등산 수박마을은 광주 무등산 수박마을은 광주 북구 석곡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곡마을과 충효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광주의 진산이며 광주인들의 삶의 터전인 무등산은 날카로운 암봉이나 수려한 계곡을 품고 있진 않지만 산세가 부드럽고 의젓하여 후덕한 느낌을 주며 울창한 숲은 깊고 그윽한 멋을 풍긴다. 산기슭에 증심사, 원효사, 약사암, 금봉암 등 크고 작은 사찰들이 불법의 등을 밝히고 있고 많은 약수터들이 산재해 있어 광주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기도 하다. 마을의 팜스테이 참여 농가는 모두 7곳이다. 농가 모두 숙박시설 및 취사시설, 샤워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수박 따기, 수박 안고 달리기, 수박씨 뱉기 등 재미있는 이벤트와 무등산 등반과 삼림욕 등 휴양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산세가 유순하고 가파르지 않아 푸근한 느낌을 갖게 하는 무등산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곳이 바로 마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생화나 자연림 등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마을 입구엔 400년 이상 된 왕버드나무가 세 그루 서있다. 왕버드나무는 희귀한 모양새를 지닌 거목으로 그 형태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마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