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송강 유적(식영정·송강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정송강 유적(식영정·송강정)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정송강 유적(식영정·송강정)

정송강 유적(식영정·송강정)

0m    20577     2019-11-19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859

* 송강 정철이 머물던 곳, 정송강유적 *

정송강 유적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철(1536∼1593)이 성산에 와 있을 때 머물렀던 곳으로, 송강정과 식영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철은 호가 송강으로, 명종 16년(1561)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뒤로 많은 벼슬을 지내다가 정권다툼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성산에 내려와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의 문학작품을 지었다. 송강정은 앞면 2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에는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옆면에는 ‘죽록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식영정은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송강정과 마찬가지로 팔작지붕이다.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 붙이고 앞면과 옆면을 마루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 정송강유적의 또다른 하나 환벽당 *

환벽당도 정송강 유적에 속하나 지역상으로 광주에 속하여 문화재 지정번호가 분리되었다. 환벽당은 식영정으로부터 약 300m의 거리의 담양과 광주 인접 지역에 있다. 식영정 건너편에 위치한 <환벽당>은 어린시절 정철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한 사촌 김윤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아직도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담양 식영정

담양 식영정

273m    35101     2020-01-21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

* 송강 정철 “성산별곡”의 탄생지, 식영정 *

식영정은 원래 서하당 김성원이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각이라 전하며,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임억령이 지었다. 식영정 바로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서하당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서하당유고』행장을 보면 「경신 공삼십육세 축서하당우창평지성산 위종노계…(庚申公三十六歲 築棲霞堂于昌平之星山 爲終老計…)」란 기록이 있다. 위 기록에 의하면 김성원이 36세 되던 해(1560년) 식영정과 서하당이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에서 공부하던 동문이다. 환벽당은 식영정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촌 김윤제가 기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高敬命),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 송강 정철의 가사 문학이 숨어있는 곳 *

송강 정철은 성산을 무대로 하여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당대의 명유들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 귀봉 송익필 등과 교우하면서 시문을 익혔다. 이곳은 식영정 외에도 풍광이 수려하여 유상지(遊賞地)로도 이름난 곳이 많은데 자미탄(紫薇灘), 견로암(鵑로岩),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부용당(芙蓉塘), 서석대(瑞石臺)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광주호가 생겨 일대가 많이 변형되었으며 부용당 터에 부용당 건물을 최근 새로 지었다. 송강은 이 성산에서 「성산별곡」이외에도 식영정20영을 비롯하여 식영정잡영 10수, 하당야좌(霞堂夜坐) 1수, 차환벽당운 1수, 소쇄원제초정 1수, 서하당잡영 4수 등 수많은 한시와 단가 등을 남겼다. 정각의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 인데 특이한 것은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 붙이고 전면과 측면을 마루로 깔았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전남기념물 제1호
지정연도 : 1972년 1월 29일
시대 : 조선
종류 : 정자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275m    26364     2020-01-21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 한국가사문학의 본관 담양에서 만나는 한국가사문학관 *

담양군에서는 담양의 가사문학관련 문화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해 1995년부터 가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이 있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傘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문학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환벽당·소쇄원·송강정·면앙정 등은 호남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그 전통을 오늘에 있게 하고 있다. 한옥형 본관과 기획전시실(갤러리), 자미정, 세심정, 토산품전시장, 전통찻집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요 전시물은 가사문학 관련 서화 및 유물 1만 1,461점, 담양권 가사 18편과 관계문헌, 가사 관련 도서 약 1만 5,000권 등이다.

* 담양의 가사문학 *

전라남도 북쪽에 위치한 담양은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 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하여, 이곳 담양 일원에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이들은 수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도 앞장섰다.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및 작자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 가사(歌辭) - 고려말엽부터 나타난 3·4조 또는 4·4조의 운문(韻文)으로 된 긴 시가형식

환벽당

환벽당

300m    35594     2020-01-23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

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벽간당(碧澗堂)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遺書石綠)에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2칸,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을 방으로 하여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깐 변형된 형식이다.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후대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있고, 석천 임억령(石川林億齡)과 조자이(趙子以)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환벽당에 관한 시는 정철이 지은 2수가 있는데, 송강속집과 광주목지에 실려 있다. 정철의 4대손 정수환(鄭守環)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사촌 김윤제에 대하여 *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겸춘추관(承文校理兼春秋官)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弘文官校理),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 송강 정철(松江鄭徹 1536~1593)과 서하당 김성원(金成遠)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과 김덕보(金德普)형제는 그의 종손(從孫)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가 있다. 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곳에는 식영정(息影亭)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醉歌亭)이 있다. 인근에는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이 자리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苑林文化)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시가문화유적지

시가문화유적지

301m    19356     2020-01-21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 가사문학의 산실을 따라 떠나는 여행, 시가문화유적지 *

담양에는 가사 문학의 산실인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 소쇄원 등 가사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 앙정은 옛부터 담양의 풍요로움과 빼어난 경관으로 수많은 인재를 불러 들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퇴계 이황, 송강 정철이 있다. 면앙정은 송순의 호이기도 한데, 송순은 이 정자에서 "면앙정가"를 비롯한 수 많은 가사를 지어 이 지방의 가사문학의 맥을 이끌었다. 면앙정은 지방기념물 6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정송강유적, 식영정과 환벽당 *

광주 ~ 담양 국도에서 고서 삼거리를 지나 광주호 쪽으로 올라가면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이 있다. 이곳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탄생했던 곳으로, 원래는 서하당 김성원이 자기의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광주호를 사이에 두고 광주와 담양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식영정>은 정자문화의 산실로 이름이 높다. 식영정 건너편에 위치한 <환벽당>은 어린시절 정철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한 사촌 김윤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아직도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 조선 시대 민간정원 소쇄원과 독수정까지 *

식영정에서 화순온천 쪽으로 약 1km 올라가면 왼쪽으로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소쇄원이 있다. 조선 중엽의 민간 정원 모습으로 남아있는 이곳은 전국에서 으뜸가는 전통 정원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소쇄원에 이르기 바로 전 왼쪽에는 지실마을이 있고, 지실마을 건너편 언덕에는 김덕령 장군의 일화가 남아있는 취가정이 있으며, 소쇄원에서 2km 정도 화순쪽으로 올라가면 고려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지낸 서은 전신민이 조선 건국을 맞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낙향하여 절개를 지켰던 독수정이 있다. 독수정은 정자의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독수정 원림이 아름다운 곳이다.

환벽당 ·조대

환벽당 ·조대

319m    24274     2020-04-10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

* 송강 정철의 설화가 있는 곳, 환벽당 ·조대 *

담양 가사문화권역에 있는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충효 동쪽 높다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다.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벽간당(碧澗堂)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遺書石綠)에 기록되어 있다. 환벽당은 홍문관 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성주를 역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촌 김윤제(1501~1572)가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인데, 송강 정철, 사하당 김성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다.

* 환벽당 및 용소에 얽힌 송강 정철의 전설과 조대 *

환벽당 인근에 위치한 용소는 창계천의 깊은 물 웅덩이를 말한다. 이곳은 송강 정철에 대한 전설이 얽힌 곳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환벽당에서 사촌이 낮잠을 자는데 꿈에 환벽 당 앞 용소에서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이를 괴이히 여겨 하인을 시켜 살펴보라 하였는데 어린 동자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동자가 바로 집안이 역적으로 몰려 피신하는 길에 잠시 쉬고 있던 송강 정철이다. 사촌이 송강을 불러 문답하는 중에 그 영특함에 놀라 자기 슬하에 두고 학문을 닦게 하여 송 강 나이 17세에 그를 외손녀 사위로 삼고 정철의 뒷바라지를 했다. 용소 옆에는 송강이 이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았다는 조대가 있다.

광주호 호수생태원

광주호 호수생태원

323m    44932     2020-08-24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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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 자연 학습의 장, 광주호수생태원 *

광주호(光州湖)의 호숫가 인근에 184,948m²의 부지에 자연관찰원, 자연학습장, 잔디휴식광장, 수변 습지 등 테마별 단지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광주시내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어, 시민들이 찾기가 좋아 2006년 3월에 개장한 후 아이들의 자연생태학습장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 광주호수생태원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 *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는 공원으로, 추운 날씨가 아니라면 꽃이나 동·식물들의 생태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진달래, 개나리, 자산홍, 장미, 철쭉, 수국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 17만 본이 심어진 테마별 꽃단지와 부엽식물원, 수변부 관찰 테크, 암석원, 그리고 때죽나무, 모과나무, 벽도동, 단풍나무 등 3,000여 그루의 나무 등이 볼만하다. 늪지에서 각종 새가 실제로 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메타세콰어이 양편 가로수 사이로 목재계단을 조성하였다.

광주의 예술가거리와 번화한 금남로

광주의 예술가거리와 번화한 금남로

323m    5666     2019-07-31

번화한 광주를 둘러볼 좋은 코스다. 호수생태공원의 아름다움 전경을 거닐고 남도 예술의 진수가 숨 쉬는 예술의 거리, 가장 번화한 젊은이의 거리 금남로 쏘다니기도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겨울이라면 기나긴 지하상가 쇼핑도 좋겠다. 광주는 잘 보존된 한옥가옥이 많다. 최승효 가옥도 그중의 하나다.

호남지역의 유적지 돌아보기

호남지역의 유적지 돌아보기

323m    6526     2016-09-27

유적지를 본다는 것은 그 지역의 땅과 하늘과 숲에 묻힌 역사를 함께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코스는 이야기가 담긴 걷기코스라 할 수 있겠다. 특히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자연생태학습장이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누려보자.

충효동 정려비각

충효동 정려비각

412m    29843     2020-01-29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충장공 김덕령(1567~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 효, 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 [朝鮮國贈左贊成忠壯公金 德齡 贈貞敬夫人 興梁李氏 忠孝之里]가 3행으로 새겨져 있다. 이 면에는 정헌대 부호조판서 서유린이 選하고 全羅道觀察使 서용보가 쓴 음기가 새겨져 있다.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Cm, 기단 높이 110Cm, 비신 높이 171Cm, 비신 너비 68cm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 김덕령 장군 일가에 대하여 *

비문에 나타난 김덕령 일가의 사적은 다음과 같다.김덕령 장군 자는 경수 본관은 光山이며 오계 성혼에게서 글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 형 덕홍이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중임에도 의거하여 담양부사 이경린, 장성현감 이귀의 천거로 종군의 명을 받고 의병을 모아 남원에서 훈련을 마친 뒤 선전관에 임명되어 권율 휘하에서 왜의 호남진출을 막는 데 힘썼다. 1594년 진해, 고성에 나가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하여 왜병을 물리치고 1595년에는 고성에 상륙하는 적을 격퇴하였다. 1596년 도체찰사 윤근수의 노비가 상전의 권세를 믿고 군율을 어기므로 장살하여 한 때 체포되었으나, 왕명으로 석방되자 대신들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때마침 이몽학의 난으로 그와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아 옥사했다. 후에 복권되어 1788년 의정부좌성에 추증되고 충장의 시호를 받았다.

* 흥양이씨 (?~1597) : 김덕령 장군의 부인으로 정유재란 때 왜병의 추격을 받고 순절했다.
* 김덕홍 (1558~15920) : 김덕령 장군의 형이며 호는 성암이다. 우계 성혼의 문인이며 임진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고경명 휘하에 참여하여 의주행재소로 가던 중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전사했다.
* 김덕진 (1571~1627) : 김덕령의 아우이며 자는 자룡, 호는 풍암이다. 효성이 지극했다. 두 형을 잃은 뒤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지리산 백운동에서 난을 피하여 겨우 가계를 보존했다. 난 후에 풍암정을 짓고 독서로 일생을 보냈는데 인조 때 잠시 창릉 참봉으로 나가 있다가 더 이상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1785년에 집의(執義)에 추증되었다.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484m    40371     2019-08-01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광주호 동쪽 호안(湖岸)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의 딸린 갈잎 큰키나무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우리 나라 경기도 이남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 지역, 중국 중부 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충효동의 왕버들 3그루는 모두 광주시 나무로 지정되어있는데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의 상징 조경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 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잘라 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다시 왕버들 2그루를 식목하였으며, 소나무와 매화도 계속 식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옛부터 성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려왔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 나무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1) 높이 9m, 둘레 6.25m, 수관(樹冠)너비 11.5 ×18.9m
2) 높이 10m, 둘레 5,95m, 수관너비 14.0 ×14.0m
3) 높이 12m, 둘레 6.30m, 수관너비 16.6 ×27.0m

호반산장

호반산장

897m    19297     2020-01-31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748
061-382-2000

※ 영업시간 11:00 ~ 22:00 무등산과 광주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메기매운탕과 촌닭매운탕, 별미떡갈비 그리고 닭죽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