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시민문화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빛고을시민문화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빛고을시민문화관

101.2607551846321m    18621     2023-10-31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338번길 7

빛고을시민문화관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새로운 복합문화시설로서 시민 정서 함양과 지역 문화예술의 창달을 위해 시민본위의 공연·전시, 쾌적하고 친숙한 문화예술공간 제공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옛 구동체육관 부지에 2008년 11월 착공해 2010년 2월에 개관했다.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14,049㎡ 규모이며, 공연장(715석), 전시실, 다목적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연·전시 등 각종 문화행사와 각종 문화강좌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며, 광주문화재단에서 관리·운영한다. 이외에도 문화관 안에는 미디어 놀이터 5G네와 100000센터가 있다. 이름처럼 신기한 놀이터 스페이스 5G네는 VR영상으로 아름다운 정자, 수족관, 광주시민회관 콘서트 등 광주의 명소들을 360도로 실감 체험하고 디지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미디어 놀이터 체험공간이다. 함께하는 문화, 서로 나누는 문화 문화보둠 10000센터는 광주 문화발전을 위해 매달 1만원 씩 기부하는 시민참여 문화메세나 『문화보둠 10000운동』 참여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간단한 미디어아트 전시도 있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소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송호영당

송호영당

10.1 Km    22528     2023-04-03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46

* 눌재 박상과 사암 박순을 모시는 곳, 송호영당 *

송호영당은 눌재 박상(朴祥)과 사암 박순(朴淳)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1728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박상의 출생지인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었으나 후에 현 위치로 옮겼다.이곳은 1995년 12월 22일부터 1996년 4월 16일까지 사당, 담장, 진입계단의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97년 10월 12일부터 1998년 1월 16일까지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1998년 9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사우석축을 보수하였다.이 영당의 기단은 시멘트 기단위에 중앙은 영정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뒤쪽 벽에는 창방소로 장혀위에 납도리를 걸쳤고 전면에는 단청을 하였으나 퇴락하였다. 창호는 분합문이며 빗살(교살) 창살으로 되어있고 주두위의 포작은 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담징을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 눌재 박상과 사암 박순에 대하여 *

눌재 박상(1472∼1530)은 연산군 7년(1501)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중종 24년(1529)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년간 조정에 몸담았다. 사암 박순(1523∼1548)은 그의 조카로 조선중기의 문인학자이다. 사암은 명종 8년(1553)에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예문관전적을 시작으로 약 35년간 조정에 있었다. 송호영당에는 사암과 눌재의 문집도 보관되고 있다.

그린그린해

그린그린해

10.1 Km    2     2022-04-06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로15번길 62
010-8620-6592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카페다. 대표메뉴는 자몽에이드이다.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즐길 수 있다.

경장각

경장각

10.1 Km    16808     2023-10-31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경장각은 조선 인조 대 문신인 이신의(1551~1627)를 배향하는 재각이다. 재각은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 이신의를 배향하기 위하여 1754년 지어진 유애서원이 1868년 서원 폐지령으로 훼철되자 1901년 서적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금서재가 세워졌고, 이후 금서재를 철거하고 1919년에 경장각을 건립하였다. 2000년 경장각 후면에 단청 사우를 마련하여 이신의를 배향하게 되었다. 이 곳에는 이신의의 유물로 선조왕 친필병풍과 거문고가 보존되어 있다. 병풍은 인조가 그의 충절을 가상히하여 선조왕 친필을 하사한 것이며, 거문고는 석탄이 평소 애용하던 거문고이다. 의병장이자 학자인 석탄 이신의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적지는 경기도 고양에는 위치한 도래울석탄공원, 이신의선생기념관이 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의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경칙이고 호는 석탄이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군 300명을 거느리고 적과 싸운 공으로 사옹원직장에 올랐으며, 이어 사재감주부·공조좌랑·고부군수 등을 지냈다. 1617년(광해군 9) 이항복·정홍익·김덕함 등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광해군의 폭정에 대해 극간하다가 유배되자, 이신의도 분연히 항소를 올렸다가 이듬 해회령으로 유배, 위리안치되었다. 그 해 가을 북로의 경보가 있어 변경 일대가 불안하자 흥양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풀려 나와 형조참의·광주목사를 역임하고, 1626년 판결사를 거쳐 이듬 해 형조참판에 올랐다. 이 해 정묘호란으로 왕을 호종해 강화로 가던 도중 병이 나 인천에 머물다가 수원마정리에서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양의 문봉서원과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저서로는 『석탄집』이 있다.

유애서원

10.1 Km    2771     2023-10-31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유애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신의(1551~1627)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으며, 삼문 양편에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담한 공간이다. 1754년 이신의의 충절을 기려 호남 유림이 건립했다가 1868년 훼철됐다. 이어 1919년 경장각을 짓고 2000년 사우를 마련해 서원으로 성균관에 등록했다. 유애서원의 경장각에는 서적과 석탄금(거문고), 선조가 쓴 당 오언시를 목판에 새겨 찍은 여덟 폭 병풍(인조의 하사품) 등 유품을 보관했으며,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한 130여점의 고문서는 광주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는 한성에서 태어나 고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원손이며, 어머니는 정종의 현손이다. 일찍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도라산 숲속에 서실을 지어 공부하는데 물이 바위를 굽이쳐 흐르는 것을 보고 여울의 탄을 넣어 호를 석탄(石灘)이라 했다. 서경덕의 문하인 초당 허엽과 행촌 민순을 사사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탄은 의병 300여명을 결집해 고양에서 창의했다. 고향을 지키려는 이 작은 부대는 왜적이 쳐들어오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596년 서얼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 고을 수령들이 줄줄이 도망해 여러 현이 함락됐다. 이 와중에 석탄은 천안군수 정호인과 8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어 괴산·임천 군수, 홍주·해주목사를 거쳐 광주목사를 역임하면서 목민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1617년, 영창대군이 참살당한 이후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하기 위해 문무백관의 의견을 듣는 수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항론을 올린다. 이 일로 이듬해 2월 함경도 회령으로 유배를 간다. 1623년 광해군의 폭정에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키니 인조반정이다. 석탄은 5년의 귀양을 마치고 형조참의로 조정에 복귀한다. 광주목사에 이어 형조참판에 오른다. 1627년 정묘호란때 석탄은 노구를 이끌고 인조 호종을 위해 강화도로 향했다가 병을 얻어 77세에 수원의 어느 여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우국일념이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이다. 고양의 문봉서원, 괴산의 화암서원, 그리고 광주의 유애서원에 제향됐다.

연경

10.1 Km    1     2023-11-22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대로 87 (하남동)

대만 화교가 운영하고 요리하는 전통중화요리 전문점으로 1987년에 개업하여 2대째 운영중인 곳이다.

규봉암(화순)

10.2 Km    22573     2023-12-10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작은절 이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신라 애장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조선시대 상당한 사세를 갖추고 있던 규봉암은 17~18세기에 폐사되었다가 1729년 연경에 의해 다시 세우게 되었고, 6·25 전쟁으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대웅전과 함께 당우 3동을 지으며 현재에 이른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광석대와 규봉암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늦가을은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규봉암 주변으로 광석대를 포함 설법대, 은신대, 풍혈대, 삼존석, 송하대 등의 바위들이 사찰을 둘러싸고 있어 그 경관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규봉암에 가는 길은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서 오르는 탐방로와 주로 이용되는 증심사 코스, 그 반대편의 원효사 지구에서 오르는 3개의 코스가 있다. 영평리 도원 탐방센터에서 규봉암까지는 약 한 시간쯤 산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광산문화원

광산문화원

10.2 Km    22100     2023-10-31

광주광역시 광산구 상무대로 265

광산문화원은 1965년 2월 25일 창립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원이다. 광주광역시 전체면적의 46%에 해당하는 광산구는 광주광역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혜의 경관으로 도시와 농촌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3개층의 생활문화센터는 1층에 카페테리아, 갤러리, 아트숍이 2층에는 작은도서실, 동아리실, 세미나실, 연습공간이 있고 3층은 공연장이다. 생활문화센터는 문화예술 활동을 지역사회로 연결하고 지역생활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광산문화원은 문학제, 미술제, 향토문화제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문화강좌, 동아리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광산구가 낳은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용아 박용철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사상과 문학 정신을 통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용아 박용철 전국 백일장 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회화, 서예 및 문인화의 두 분야에 공모전을 개최하여 숨은 인재들을 발굴 육성하고, 자기 계발을 통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동신어등미술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향토문화제로는 향토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등골 문화』 와 『어등의 맥』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어등골 문화』의 경우 광산문화원의 사업 안내와 소식을 전달하고, 문화 동호인들의 작품 기고를 통하여 광산구의 문화예술활동을 안내 및 홍보하는 발간지이다. 이는 매년 상하반기 연 2회로, 약 1,200부 발간하고 있다. 『어등의 맥』은 광산구의 향토사 조사 연구 및 사요 수집 보존을 목적으로 하여 매년 1회 발간하고 있다. 약 600부 발간하여 광산구 관내 기관 단체와 전국 문화원에 배포되고 있다. 『어등의 맥』은 2021년 2월 기준 제 16집 [황룡강 물길따라]까지 발간되었다.

용아생가

10.2 Km    26271     2024-01-30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

이 곳은 우리나라 현대 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초창기 시단을 빛낸 시인 용아 박용철(1904∼1938) 선생의 생가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새로운 문명을 소개하고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용아의 생가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시멘트 기와와 슬레이트 등으로 개량하였으나 1995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실시, 다시 초가지붕으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 등이 남아 있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높다란 막돌 기단 위에 세웠다. 왼쪽은 부엌이며, 중앙 2칸은 방인데, 4개로 나누어 열리는 문을 갖고 있다. 나머지 2칸은 2개로 열리는 정자 살문이다. 사랑채도 5칸인데 오른쪽부터 부엌, 방, 마루의 차례로 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행랑채는 4칸으로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이 집은 용아의 고조부가 지었다고 전해지나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 박용철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안윽한 이 항구인 들 손 쉽게야 버릴 거냐…- - - - 가수 김수철이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두야 간다]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용아 박용철의 시 「떠나가는 배」에 곡을 붙인 것이다. 질식할 것만 같은 식민지 땅에서 울분을 가슴에 품고 희망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의 마지막 작별의 시는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찡한 감동을 안겨준다. 광주가 낳은 서정시인 용아 박용철은 영랑 김윤식과 함께 한국 시문학의 새 지평을 연 개척자다. 박용철 선생은 광주 공립 보통학교와 서울의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동경 청산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김영랑과 사귀게 되었다. 졸업 후 다시 외국어학교 독문과에서 수학한 후 연희전문학교를 수학하고 고향에 돌아와 문학활동에 전념하였다.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변영로 등과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문예월간」을 창간하여 외국문학을 소개하였다. 1931년에는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시 전문지인 「시문학」을 발간하여 창간호에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등을 발간하였고, 극예술연구회의 동인으로 신극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외 시의 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광주광역시에서는 [박용철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고, 광산구에서는 1992년부터 박용철 선생 추모 전국백일장대회가 열리고 있다. 용아의 후배들이 다니는 송정중앙초등학교는 용아축제 한마당을 열고 있으며 교정에 진달래와 개나리, 산수유가 피는 [용아동산]을 만들었다.

5.18 숭고한 넋을 되새겨보는 여행

5.18 숭고한 넋을 되새겨보는 여행

10.2 Km    4447     2023-08-10

5.18민주항쟁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여행이다. 5.18민주묘지는 5.18 민주항쟁 당시 사망한 열사들과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행불자들의 묘역이 함께 있는 곳이다. 민주항쟁의 성역으로 숭고한 넋을 기리는 공간이다. 광주호생태공원과 충장사를 둘러 본 후 5.18기념공원에 이르는 동안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되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