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서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창동서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창동서원

창동서원

10.8 Km    15498     2019-12-05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되었다. 1965년 이곳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 김택술(金澤述:1884∼1954)을 배향했다. 건물은 사우(祠宇)·강당· 고직사(庫直舍)·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후창집(後滄集)》을 비롯한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 김택술의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종현(鍾賢), 호는 후창(後滄)이다. 17세 때 천안 금곡에 있는 전우(田愚)를 찾아가 수학하여 후창이란 호를 받았다. 1906년 최익현(崔益絃)의 태인(泰仁) 창의(倡義)에 참가했으며, 송병선(宋秉璿)·김복한(金福漢)과도 사귀었다. 1909년 치환으로 열지(裂指: 손가락을 찢어 환자에게 피를 먹이는 것)했고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하여 효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평면 불망실(不忘室)에서 후진을 교육하며 철저한 배일사상을 고취하여 항거했고 1954년 사론(士論)으로 계양사에 추배되었다.

계화도

계화도

11.0 Km    19108     2019-01-04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로
063-582-1119

계화도는 원래 섬이었으나 1963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 돈지-계화도-문포간에 9,254m에 달하는 제2호 방조제를 쌓아 예전에 바다였던 곳을 지금의 광활한 평야로 만들었다. 그 유명한 "계화도간척지 쌀"은 이렇게 조성된 계화도간척지에서 생산된다. 동쪽은 동진면(東津面), 남쪽은 행안면(幸安面)·하서면(下西面)과 접하고, 북쪽과 서쪽은 황해에 면한다. 5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1976년 9월 계화도(界火島)가 계화리가 되고, 행안면에 계화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계화출장소가 계화면으로 승격하였다.

원래 면적 2.5㎢, 해안선길이 약 7,000m의 작은 섬이었으나, 1963년 시작된 동진강(東津江) 하구의 대규모 간척공사로 육지와 이어졌으며 이 공사로 조성된 경지는 약 46㎢에 이른다.

문화재로는 간재선생유지(艮良齋先生遺址:전북기념물 23), 쌍조석간(雙鳥石竿:전북민속자료 17) 등이 있다.

조정래 아리랑문학관

조정래 아리랑문학관

11.4 Km    20111     2019-06-26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1길 24

대하소설『아리랑』은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았던 작가 조정래의 작품으로, 문학성이나 대중성으로나 사회 각계 각층으로부터 확고한 검증을 받아낸 바 있으며, 작가는 5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이 작품을 위해 바쳤던 점에서 육필로 써낸 우리의 민족사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렸던 모든 사람들의 숨결을 뜨겁게 느끼고 지역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하여 정보기술을 이용, 가상체험을 통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민족적 역량을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는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 개관일 : 2003년 5월 16일

고부구읍성

고부구읍성

11.7 Km    18131     2020-01-13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정읍시는 갑오동학혁명의 시발지이자 주요 무대로 덕천면의 황토현 전적지를 중심으로 고부 관아터, 만석보터, 말목장터, 전봉준장군고택 등 많은 관련 유적이 있다.높이 132m의 성황산(城隍山)에 쌓여진 고부의 옛 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이다. 성안에서 발견되는 각종 그릇과 기와조각으로 미루어 보아서는 삼국시대 백제가 이미 성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이미 둘레 460보(步)의 돌로 쌓은 읍성이 있었다 하였으며, 문종실록에 의하면 문종 원년(1451)경에 더욱 넓혀 쌓아 둘레 1,803척(尺) 높이 9척이었고, 성벽 위에 높이 3척의 여장(女墻)을 더 쌓았으며 2개의 문이 있었으나, 옹성(擁城)과 적대(敵臺)는 없었다고 하였다. 성 안에 우물 4개와 하나의 작은 연못이 있었다.동국여지승람에는 규모가 더욱 큰 읍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성터는 동서방향으로 길쭉한 타원형이며 둘레는 1,050m에 이른다. 성 안에 객사(客舍)터를 비롯한 건물터가 있다.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원형을 알기 어려우나, 북쪽에 돌로 쌓았던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고 흙으로 묻힌 성벽의 아랫부분은 마치 흙더미가 이어진 듯 완만한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정읍 전봉준 유적

9.9 Km    18513     2019-12-12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이 건물은 일명 녹두장군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東學運動)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전봉준 선생은 조선왕조(朝鮮王朝) 철종(哲宗) 6년(1855)에 이 지방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고종(高宗) 27년(1890) 동학에 입도하였으며, 서당(書堂) 훈장(訓長)으로 있었다.당시 전국의 농촌은 일부 탐관오리(貪官汚吏)의 학정(虐政)으로 농민들의 원성(怨聲)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이곳 고부현(古阜縣) 역시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만석보(萬石洑) 수세(水稅) 강제징수 등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하고 원성이 높았다. 이 때 선생은 고부현의 동학 접주(接主)로 분노에 찬 농민들과 동학교도의 조직을 이용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保國安民)의 구호를 내세우고 동학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고종 31년(高宗 1894) 갑오 동학(甲午 東學) 혁명(革命) 당시 전봉준(全琫準 1854~1895)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그런데 서편으로 한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택(古宅)은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시에서 1974년에 국비와 군비로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출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끝방은 방(房)으로 보다는 살림살이 등 속을 넣어두는 도장으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공간으로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連動) 천장이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草家)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村老)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陽橋里 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갑오년(甲午年 1894) 1월에 봉기한 후 안핵사 이용태(按 使 李容泰)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 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補修)를 하면서 해체(解體)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上樑文)에 무인(戊寅) 2월 26일(高宗 15年 1878) 세운 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廢屋)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 규모 - 정면 4칸
* 면적 - 225㎡

후지리탑동석불

10.3 Km    17337     2019-06-21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후지리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후지리 해정사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불상 높이 96㎝의 좌상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양 손은 가슴에 모으고 있는 비로자나불 *

머리가 없어진 상태이며, 풍화가 심해 세부표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양 손은 가슴에 모으고 있어 비로자나불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작고 가느다란 손과 양팔을 몸에 바짝 붙여 움츠린 자세, 빈약한 하체 등, 이 불상 역시 지권인의 여래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팔과 신체 사이의 조형이 유기적으로 조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 섬약한 안상 무늬의 형식 등에서 조성 시기는 고려 초로 *

4각형 대좌(臺座)의 아래와 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당당함을 잃은 밋밋한 상체와 좁고 낮은 하체, 위축된 지권인의 신체 조형, 잎 끝이 예리하게 반전하는 복판 연화문의 형식 그리고 섬약한 안상 무늬의 형식 등에서 조성 시기는 고려 초로 추정된다.현존하는 전라북도 지방의 석불들은 통일신라 후기의 것은 적고, 후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것이 많다. 그리고 여래상은 일반적인 통인(通印)이나 설법인(說法印)의 입상이 대부분이다.이 석불은 비록 머리가 없지만 전라북도 지방에서도 지권인(智拳印)의 여래형 비로자나불이 조성되었음을 알려 주는 귀중한 예이다.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10.8 Km    17004     2019-06-27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43

* 백제계 양식의 고려시대 석탑 *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6m. 보물 제167호. 현재 원위치에 원형대로 남아 있는 석탑이나 이 탑이 소속하였던 사찰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은선리삼층석탑(隱仙里三層石塔)은 백제시대 고사부리군의 고을터였던 은선리에 있는 백제계 양식의 고려시대 석탑이다.이색적인 형태를 가졌으며 단층 기단 위의 3층 사각형 석탑으로 넓은 부정형(不定形) 지대석 위에 4석으로 된 하대석이 놓였으며, 특별한 장식은 없다.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 문짝을 단 유래는 매우 희귀 *

기단(基壇)은 낮은 1단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같은 양식이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여러 장의 돌로 이루어졌다. 1층의 몸돌은 대단히 높아 기형적인 인상을 주고, 각 면 모서리에는 희미하게 기둥모양을 본떠 새겨놓았다. 2층 몸돌은 높이와 너비가 급격히 줄었으며, 남쪽 면에 2매의 문짝이 달려 있는데, 이는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설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은 벽면에 본떠 새기기만 하는데 이렇듯 양측에 문짝을 단 유래는 매우 희귀하다. 3층 몸돌은 더욱 줄어들고 다른 꾸밈은 없다. 지붕돌은 평평한 돌을 얹어 간결하게 구성하였다. 꼭대기에는 또 하나의 평평한 돌이 놓여 있으나 이것이 탑의 머리장식의 일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 백제양식의 탑이 전파된 경로를 알 수 있는 *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측된다. 기단과 지붕돌에서 백제 석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고려시대에도 옛 백제 땅에서는 백제양식의 석탑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층 몸돌이 지나치게 높아진데다가 기단, 몸돌이 모두 너비가 좁아서, 높을 뿐 아니라 안정감도 줄어들어 우수작이라 볼 수는 없지만, 일부 특이한 양식을 지녔고 백제양식의 탑이 전파된 경로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계양서원

11.0 Km    1438     2019-05-13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

1908년 부안군 북왕등도에 구인암을 세우고 학생등을 가르치다가 1909년 신시도로 옮겨 안양서실과 완고당을 세웠다. 1912년 다시 계화도에 정착하여 계양서원과 간재정사를 짓고 1913년 이주하였으며 1934년 계양사를 짓고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간재선생유지

11.0 Km    15400     2019-12-11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전우(1841∼1922)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선생은 임헌회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배웠으며, 고종 19년(1882)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강탈되자 선생은 통분해하며 스스로 귀향하여 도학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의병을 일으키지 않고 도학만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1922년까지 이곳에서 도학을 가르치며 항일정신을 고취하여 민족정기를 진작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서 전우의 신위가 배향되어 있다.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

11.5 Km    3154     2019-05-09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신재생에너지로 10

놀면서 익히는 에너지 원리, 두 번 세 번 즐겁다
쓰레기, 돼지똥, 소똥이 전기가 된다고? 이 아름다운 변화를 말로 설명하기엔 벅차다.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는 재생에너지, 수력, 화력, 태양열 등 머리로만 이해하던 에너지 원리를 만지고, 움직이고, 게임하며 알게 되는 곳이다. 가치 있는 지식을 재미있는 놀이에 담아,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가족 나들이 코스이다.

말목장터와 감나무

11.7 Km    17439     2019-04-26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두자리

말목장터는 만석보에서 서쪽으로 약 2km 가량 떨어져 있는 이평면 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말목은 말 두(斗), 못 지(池)자이다. 그러나 요즘은 말목의 뜻이 변화되어 말의 목부분 형상을 뜻하는 말목이라 한다. 1894년 1월 10일 농민 수천 명이 고부 관아로 가기 전에 모였던 곳으로,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의 중요한 거점지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오가는 세 갈래의 길목에는 그 날을 기념할 만한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장터의 한 귀퉁이에 한 그루의 감나무만이 가지를 흔들고 있을 뿐이다. 그 옆으로는 1994년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정부에서 세운 말목정이라는 정자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장문리오층석탑

11.7 Km    16231     2019-06-25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

* 경쾌한 느낌의 백제 석탑의 양식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창문리에 있는 창문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지정되었으며, 이 석탑은 백제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5층 석탑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헌칠하게 높고 2층 이상은 급격히 낮아졌으나, 지붕돌의 크기가 거의 일정하여 안정감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각 탑신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은 5단의 층급받침이 조각되었으며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고 네 귀의 추녀 끝이 위로 약간 쳐들려 있어 날씬한 아름다움이 있다.이 탑의 높이는 6.5m인데 정상의 상륜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노반만 남아 있지만 대체로 원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석탑이다.

* 지방색이 강했던 시대상을 반영 *

이 탑은 고려 초인 것으로 추정되나 그 작풍(作風)이 부여 정림사지탑과 상통함으로써 백제탑 양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는 지방적 특색을 보이고 있다. 옛 백제 지역에 세워 놓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곡선미 등이 백제 석탑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지방색이 강했던 당시 시대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