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원숭이학교 자연사박물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부안 원숭이학교 자연사박물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부안 원숭이학교 자연사박물관

부안 원숭이학교 자연사박물관

7.9 Km    28284     2019-10-30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부안로 1783

전라북도 제4호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원숭이 학교는 90여 마리의 다양한 원숭이가 살고있는 방사장, 전시관, 공연장 및 악어가 서식하는 악어 동물원, 문화 예술적으로 보전 가치가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화석, 원석 보석 박물관, 로즈마리 터널, 라벤다 동산, 스피아민트 광장 등 향긋한 허브향이 함께하는 허브식물원, 다람쥐 동산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또한, 20여 마리의 원숭이 학생들이 선보이는 좌충우돌 원숭이 친구들의 학교 생활을 테마로 한 원숭이 공연과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아슬아슬하고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중국 기예단 공연, 악어의 생태를 관찰하며 직접 악어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악어 먹이주기 체험,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물고기 잡기체험, 물레방아 보트 타기, 샌드아트 등 다양한 체험 거리들로 소풍, 각종 모임, 단체 행사 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의 나들이 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

개암동 벚꽃축제 2019

개암동 벚꽃축제 2019

9.5 Km    12     2019-01-21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197
063-582-5031

[행사소개]
부안군 상서면 개암동 벚꽃길과 개암사 일원에서 개최된다.개암동 벚꽃축제는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주변 3개 마을(봉은·회시·유정) 주민들이 개최한 성공적인 소규모 마을축제이다. 개암동 벚꽃축제는 차 없는 거리형 축제로 봄꽃을 만끽할 수 있도록 개암저수지 입구부터 차량을 전면통제하고, 거동 불편자와 장애인은 장애인전용차량을 운행함으로써 이동불편을 최소화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볼거리 먹거리가 제공되며 벚꽃축제와 함께 개암사와 주류성의 문화탐방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행사내용]
개막식, 야외음악회, 먹거리 장터, 농산물 판매, 체험프로그램

[부대행사]
왕자 풍 행렬 퍼레이드

[프로그램]
왕자 "풍 행렬 퍼레이드, 개막식, 우리동네 음악회, 포스댄스 컴퍼니, 벚꽃가요제, 부안특산품 먹거리 장터, 상서 로컬푸드 판매, 두부만들기, 딸기청 만들기, 천무대 관측체험, 페이스 페인팅, 압화 등


구파백정기의사기념관

구파백정기의사기념관

9.5 Km    18450     2019-10-18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영원로 1049

백정기의사가 1934년 6월 5일 39세의 나이로 서거한지 62년 후인 1996부터 성역화사업이 시작되어 2004년 6월 5일 70주년을 맞아 기념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총 부지면적은 6,6307평으로 기념관에는 백정기의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의열사, 백정기의사의 유출 및 활동상을 전시설명하는 구파기념관, 역사의 산교육장인 청의당 강당, 백정기의사의 민족의식과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고귀한 뜻을 새기기 위한 의열문, 백정기의사의 애국정신 과 독립정산을 기리기 위한 승의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백정기의사를 형상화 한 동상, 어록비, 순국비,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본 기념관 입구부에는 음수대 및 파고라 등 관람객을 위한 휴식공간과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명실공히 성역화의 장으로서 준비가 마련되어 있다.

* 구파 백정기의사(1986~1934)

백정기의사는 부안에서 태어나 7세되던 1902년 정읍시 영원면 갈선 마을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있은 후 다음 해 8월 동지 4명과 함께 인천으로 가 일본인 시설에 대한 파괴활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탄로되어 만주 봉천(지금 심양)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음해 본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23년 여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자유노동에 종사하며 노동관계서적을 익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해 9월에는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창립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하였고, 1930년에는 북마주로 들어가 재북만무정부주의자연맹의 동지들과 함께 자유혁명자연맹을 비밀리에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고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흑색공포단(B.T.P)」을 조직하여 천지에 있는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고 일본군 수송선을 폭파하였다. 1933년 3월 17일 상해 공동조계 무창로에 있는 일본요정 육삼정에서 일본정객 암살을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무기형을 선고 받고 일본 나가사끼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조국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34년 6월 5일 39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백정기의사의 묘는 1946년 7월 6일 서울 효창공원의 의사묘역에 안정되었다.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개암사

개암사

9.6 Km    31551     2020-02-13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

개암사는 634년(무왕 35)묘련(妙蓮)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이다.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676년(문무왕 16)원효와 의상이 중수하였고, 1276년(충렬왕 2) 원감국사(圓鑑國師)때는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능가경(楞伽經)』설법으로 많은 사람을 교화시켜 이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414년(태종 14) 선탄(禪坦)이 다시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황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고 1636년(인조 14)에 계호(戒浩)스님이 다시 중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 29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건물이며, 보물 제 1269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상회괘불탱은 1749년에 제작된「의겸」의 작품으로 가로 13.25m, 폭 9m 크기의 영산해상도이다. 개암사 뒤, 우금암을 포함한 길이 3,960m의 주류성(周留城)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풍(扶餘豐)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하다. 유물로는 1689년(숙종 5)에 조성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인 동종(銅鐘)과「중건사적기」가 있다.

숲길 따라 만나는 고색창연한 절집 풍경, 내소사와 개암사

숲길 따라 만나는 고색창연한 절집 풍경, 내소사와 개암사

9.6 Km    2938     2016-09-27

내소사와 개암사는 너무도 닮아 있는 사찰이다.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로, 단청을 칠하지 않아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렬한 대웅전과 아름다운 꽃창살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천년고찰답게 절집을 둘러보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내소사의 전나무숲길, 할머니와 할아버지당산, 대웅보전의 꽃창살과 동종, 개암사의 대웅보전과 울금바위가 어우러진 전경은 꼭 찾아봐야할 절집의 명소다.

청계서원(부안)

7.1 Km    1900     2019-11-21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구청등길 49

1708년(숙종 3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세정(宋世貞)·이승간(李承幹)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뒤에 나덕헌(羅德憲)을 추가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그 유허지에 청계사지(淸溪祠址)라는 석비만 남아 있었다. 최근 2008년 복원되었다.

고홍건신도비

7.4 Km    14789     2019-06-21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길 138

*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새긴 비 *

거북과 용머리를 새긴 이 비는 조선 현종 9년(1668)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비이다. 고흥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록에 이름이 오른 고희의 아들로, 조선 선조 13년(1580)에 출생 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왕을 호위한 공으로 호성원종공신에 이름이 오른 사람이다. 고흥건의 자는 입부이고 본관은 제주이다. 그는 호성공신 영성군 고희의 큰 아들로 선조 13년에 태어났다. 그는 선조 36년(1603)에 무과에 급제 수문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아버지 영성군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영원군에게 습작하였고, 뒤에 찬화사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임금의 어가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다. 그는 이때 장단부사로 있었는데 자원하여 서문협 수장을 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충청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그 뒤에 자헌대부로 승진되었고, 지중추부사를 역임하다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향년 76세로 죽었다.

*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 *

1668년 세워진 고흥건신도비는 지방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고,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11호로 지정 되었다. 고흥건 신도비를 지나면 두채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영성군 고희장군 사적문과 효충사이다. 효충사는 고희장군의 위패를 모신 목으로 유림에 의하여 매월 3월 22일에는 의례를 행하고 앞쪽건물은 재주 고씨 문중의 문중유물이 372년(1522-1894)에 걸친 다양한 유품이 전시되는 곳으로 20여종에 이르는 총215종이 일괄 보물 739호로 지정되어있다.

삼불암

7.8 Km    14726     2020-02-21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4길 443

삼불암은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불상을 봉안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불당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삼불암의 세 불상은 신묘한 전설과 연결되어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불당마을에는 석불이 하나 있었다고 전한다. 바닷일을 하는 마을사람들의 무사안녕을 책임지던 석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파도가 일어 그 불상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방목리에 사는 정진섭이라는 사람이 마을 앞 연못가에서 술에 취한 채 잠이 들었단다. 한참 잠을 자고 있노라니 꿈에 부처가 나타나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면 세 개의 불상이 나타날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별 이상한 꿈 다 보겠다면서도 그는 마을사람들을 불러모아 실제로 연못의 물을 퍼냈다. 그러자 꿈 속의 부처가 말한대로 세 개의 불상이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이 불상들은 조각한 것이 아니라 불상처럼 생긴 자연석이다. 이 삼불은 아기를 점지해주는 것으로 유명해 불임부부들이 많이 찾는다. 사라진 석불이 세 개의 불상으로 돌아왔다고 믿는 마을사람들은 삼월삼짓날 지내는 수륙재를 삼불암에서 준비한다.

효충사

7.8 Km    17251     2019-05-10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길 156-8

임진왜란(선조 25, 1592년)때 서울이 적에게 함락되고 선조 임금이 북쪽으로 피난길을 떠날 때 선전관의 직책에 있던 이고장 출신의 고희는 선조의 어가를 모시고 왕의 수라를 담당하던 직책으로, 임진강, 대동강, 청천강과 같은 큰 강을 건널 때는 임금을 등에 엎고 도강을 하였다. 그 후 1593년 서울로 환도 후 고희는 박천, 흥원군수, 당상관, 통정대부, 가선대부 등을 역임하였으며, 1604년 10월에 그를 호성 3등 공신으로 녹하고 영성군에 봉했다. 사망시 조정에서 그의 공로를 추모하기 위하여 정2품을 내리고 지금의 하서면 석불산 주변 사방 십리의 땅을 사패지로 정했다. 그의 유품, 유물(215점) 및 소장품을 1982년 11월 9일 보물 제 739호로 지정하였으며 이를 보전하기 위해 유물관 효충사를 건립, 보관하고 있다.

우금산성

8.9 Km    40764     2020-01-13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부안은 내륙으로 김제, 정읍, 고창과 붙어있으며 바다 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불쑥 튀어나왔다. 변산반도의 중심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우금산성은 일명 울금산성, 주류성이라고도 한다. 개암사 뒤 산길로 30분쯤 올라가면 울금바위를 만난다. 본래 우진암이라 했으나 소정방이 김유신을 만난 곳이라 해서 우금암이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우금산성은 660년 백제 의자왕이 부여를 빼앗겨 연합군에 투항하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백제 광복군이 왕자 "부여풍" 을 받들어 최후 항전을 벌였던 역사적 현장으로 전하고 있다. 이 성은 양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장되었으며 남변의 길이는 수구에서 동측선이 563m로 우금암까지, 서측선은 675m, 계 1,238m에 이르며, 동변은 1,100m이고 북변은 830m, 서변은 838m로서 평면은 북변이 좁고 남변이 넓은 사다리꼴을 이루는 형태를 하고 있다. 울금바위 정상에서는 드넓은 호남평야와 서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보령서원

9.2 Km    2043     2019-05-13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봉은길 90-5

1862년(철종 13) 김유신의 후손들이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사패지 개암동에 유적비를 건립, 이 후 사우와 강당 등을 건립하여 홍무왕을 봉안 향사하였다. 도읍지에는 둔충전으로 사설에는 개암사로 등재되었다. 1934년 보령원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림리 석불좌상

9.6 Km    15701     2019-06-17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

* 독립된 대형의 석불로서는 매우 드문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에서 옮겨온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현재 부안군 개암사에 소장되어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림리석불좌상은 일명 청림사(靑林寺) 절터로 불리는 곳에 있었던 불상으로 지금은 개암사 경내로 옮겨져 있다. 이 석불좌상은 원래 목과 몸체 부분이 떨어져 있었는데 파손되었던 목과 코를 시멘트로 복원하였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각이 정교한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다. 독립된 대형의 석불로서는 매우 드문 귀중한 유례이다.

*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 *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와 등 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갠 뒤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곧게 펴 맞대고 있다. 모아진 손바닥으로 구슬을 감싸 쥐고 있어서 전형적인 두건 지장보살상이다. 자연석을 받침대로 하고 그 위에 아래로 향한 연꽃잎을 조각한 8각형의 대좌(臺座)를 올려놓았다. 그 위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낮은 장구모양의 돌을 올려놓았으며, 맨 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대좌를 올려놓았는데 현재는 뒤집어져 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지역 특유의 신앙 형태를 반영한 것 *

두건 지장은 서역의 투르판(Turfan)과 중국의 변경 지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주로 발견되는 특이한 지장보살의 도상(圖像)이다. 그러나 회화가 아닌 조각으로서의 두건 지장보살상이 특히 전라북도 지역에 많이 유존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 특유의 신앙 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이 있었던 곳은 신청림사(新靑林寺) 터로 알려진 곳이다. 주변에 기와 편이 흩어져 있으며 여기서 출토된 고려시대 동종 1구가 현재 내소사(來蘇寺)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