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7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길 200
경천묘는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에 있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묘우이다. 신라 말 927년에 경순왕은 왕위에 올랐으나 신라는 이미 사직을 본전할 힘이 미약한 상황이었으므로 935년(경순왕 9년) 이미 운명이 다한 신라의 형편을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고려에 넘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후 경순왕은 두루 다니다가 이곳 용화산(현 미륵산)의 빼어남을 보고 그 정상에 올라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에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경순왕이 돌아가시자 왕을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의 시작이었다. 고려 중기 이후 전각은 무너지고 인적도 끊어졌다가 조선 초에 이색, 권근 등에 의해 전각이 다시 지어졌다. 숙종 때 원주목사 김필진이 새로 초상화를 그리고 전각을 지어 모셨으나 화재를 당했고, 영조 때 재건되면서 임금이 영정각의 명칭을 경천묘로 바꾸었다. 그 후 경천묘는 다시 불태워졌으나 경순왕이 머물렀던 유래에 따라 신라 문화를 지켜낸 왕의 충정을 기리고자 원주시가 2006년 9월 이곳 미륵산 아래에 경천묘를 복원하였다. 외곽의 진입문은 평삼문으로 되어 있고 사당 진입문은 솟을삼문으로 되어 있는데 당우는 조선후기 익공양식으로 되어 있다.
2025-03-24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원골길 170-9
고진하 가옥은 강원 영월군 남면에 위치한 곳이다. 뒤로 병풍처럼 산을 등지고 있으며, 영서와 중부 지방의 민가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가옥의 평면구조는 외형상 서로 붙어 있는 안채와 사랑채가 ‘ㄷ’ 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헛간채가 일자형으로 배치되어 중정형의 마당을 갖고 있다. 영월 남면에 원골다리를 지나 도동마을과 원골마을 지나 위치한 고진하 가옥은 뒤로는 푸른 산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밭을 두고 있으며, 마을길 방향으로는 사랑채가 전면을 드러내고 있다. 사랑채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약간 낮은 물매의 차분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가져 주변 산새와 잘 어우러지고 있다.
2025-03-24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1428년 김복항이 금강정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영월제영’에 의하면 이자삼이 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움을 보고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자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정 아래로 푸른 동강이 흐르고 있는 이곳에서 영화 ‘라디오 스타’를 촬영했다. 금강정 주위엔 비운의 왕 단종과 관련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다. 익공계 양식으로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모로 단청으로 얹혀있다. 금강정을 계족산과 태화산이 둘러싸 영월 8경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1684년 우암 송시열은 금강정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금강정기’를 썼다. (출처 : 영월군청 문화관광)
2025-03-21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주천면 고가옥길 27
평지에 ㄱ자형 안채를 배치하고 一자형 사랑채가 있어 전체 평면은 ㄷ자형을 이루고 있는 집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과 부엌을 두고 왼쪽에는 웃방·안방·부엌·사랑방을 두었는데 사랑방은 원래 부엌의 광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웃방과 안방 밖으로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건넌방 앞에서 시작된 ㄱ자형 툇마루는 안방 앞까지 연결되어 있다. 행랑채는 나중에 새로 지은 것인데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헛간, 오른쪽은 넓은 방과 부엌을 두고 있다. 이 집은 조선 순조 27년에 세웠으며 전체 구성 형식은 영서지방 민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2025-04-02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685
2004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된 다리로 화천군 간동면에 있다.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에 건설한 다리이다.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 ‘꺼먹다리’ 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천수력발전소와 함께 당시의 산업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며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 가구식 구조 교량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꺼먹다리는 난간도 없이 일부 침목이 훼손돼 수십 년간 방치되다 최근 2007년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재정비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한국전 당시 중동부전선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교량이었기 때문에 전투도 치열했던 곳 이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소양강과 화천을 모노레일을 이용해 수송물자를 이동하기도 했다.
2025-03-26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호저면
용운사지 삼측석탑은 용운사터에 석불과 나란히 서있는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탑 주변에서 용운사라 새긴 기와가 발견되어 절 이름을 알게 되었다. 탑은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 맨 윗돌 위에는 연꽃을 두른 두툼한 괴임돌을 두어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독특한 장식 수법이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느리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 위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륜(바퀴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기단부 맨 윗돌이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기단 윗부분에 아름다운 연꽃을 장식한 굄돌을 두고,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2025-03-27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 신양 마을 뒤의 야산 바위에 선으로 조각한 3존불상이 있다. 연꽃무늬 대좌(臺座)의 중앙에 본존불이 있고 양 옆에 협시보살이 서 있다. 얼굴 부분은 모두 마모가 심하여 그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양 어깨에 걸친 옷자락에는 굵은 선으로 표현된 옷주름이 보인다. 손은 파손이 심하여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쪽의 보살상은 각각 둥근 머리광배를 갖고 있다. 왼쪽의 협시보살은 문수보살상으로 추정되는데, 부분적으로 선이 남아 있을 뿐 손상이 심해 모습은 알 수 없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보현보살로 추정되며,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았고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상체는 짧고 하체는 길어서 곡선미가 돋보인다. 비로자나삼존불 형식과 긴 하체의 표현은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이로 보아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통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2025-03-19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귀문로 1008
유물은 원래 문막읍 후용리 용바위골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해지며, 비석은 남아 있지 않다. 귀부와 이수는 같은 화강암의 석재로 조성하여 돌 색깔도 회백색이다. 귀부는 거북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용의 모습을 새긴 편에 가깝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려 뒤를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지금의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를 세울 때에도 이 석재를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2025-03-27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부흥사터에 흩어져 있던 탑의 일부분들로, 아래층 기단(基壇)과 위층 기단 일부, 탑신(塔身)의 몸돌 1개, 지붕돌 2개를 수습하여 민가 옆에 모아 놓았다. 위층 기단은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두었고, 기둥조각으로 나뉜 8곳에 8부신중(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여덟 무리의 신)을 각각 조각해 두었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네 귀퉁이에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위층 기단의 신상 조각 머리 부분에 특이하게도 둥근 두광을 새겨 놓아 눈길을 끄는 탑으로, 원주지역의 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위층기단의 조각양식과 탑신의 짜임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2025-03-27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봉산4길 45
원주시 봉산동에는 고려시대의 석조보살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조보살입상의 높이는 1.78m이고,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친근감 있는 방형의 얼굴, 도식적인 신체, 형식화된 군의 주름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전기에 제작된 지방색이 농후한 작품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으며, 풍만한 얼굴에 눈·코·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지만 미소를 띠고 있어 친근한 인상이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으며, 신체에 비해 팔은 가늘고 손이 작아서 불균형한 모습이다. 상체의 옷은 양복처럼 보이고, 큰 체구에 구름무늬 같은 하체의 옷주름이나 머리에 쓴 관 모양이 일반적인 보살과 거리가 먼 특이한 형태이다. 친근한 인상과 옷이나 신체 등 형식적인 세부표현에서 고려 보살상의 특징과 지방색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이 지방의 불상양식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