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연일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연일향교

연일향교

4.6 Km    21471     2020-01-28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유동길48번길 5

조선 태조(太祖) 7년(1398)에 현재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연혁에 관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아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숙종(肅宗)때 대송면 성좌동에 중창(重創)하여 高宗8년(1871) 현감 원우상(元禹常)에 의하여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일제(日帝)때 명륜학교로 사용된 바 있고 1983년 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항시에 편입되어 보존되고 있다. 대성전(大成殿)에는 중국의 5성현(五聖賢)과 송조의 2성현 우리나라 현철(賢哲)18분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있으며, 매년 가을 상정일(上丁日)에 향제(享祭)를 올리고 있다. 특히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겹처마의 집으로 주심포계(柱心包系) 외일출목(外一出目)의 조선후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건물이다. 부속건물로 내삼문, 외삼문 및 명륜당, 중문, 포사 등이 있다.

포스코 역사관

포스코 역사관

5.3 Km    5171     2020-07-28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6213번길 14

포항의 아이콘, 포스코의 어제와 오늘

우리나라 철강 산업의 역사는 비약적인 경제발전기와 궤를 같이한다. 때문에 포스코 역사관은 단지 한 기업의 발자취를 넘어 포항의 발전, 우리 산업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전시는 기원전 4,000년 전의 철기시대부터 시작하니 스케일도 폭 넓고, 룸멜하우스의 경우 철저한 고증으로 현장감이 생생하다.

포항온천

포항온천

5.5 Km    51009     2019-12-24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법원로97번길 44

포항온천은 지하 620m에서 발굴한 약알칼리성 천연광천수의 식염유황온천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피부미용 효과를 볼 수 있다. 이태리 트래비분수를 재현한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인근에 위치한 환호 해맞이공원과 북부해수욕장, 죽천, 칠포바닷가와 연계되는 포항의 명소이다. 유황온천은 다량의 미네랄과 유기물을 함유하고 있어 신진대사 향상은 물론 여러가지 질병예방에 효능이 있으며 식염유황온천인 포항온천은 유황성분의 함량이 4.90㎎/ℓ에 달한다.

달전리 주상절리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달전리 주상절리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5.5 Km    0     2020-02-14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

달전리 주상절리는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에 위치하며, 높이 약 20m, 길이 약 100m의 큰 규모를 가진다. 이곳에 분포하는 현무암은 과거 포스코 및 국가산업단지 부지를 매립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주상절리가 발견된 이후 2000년 4월 28일 지질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41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에서 형성되는 육각기둥 모양의 돌기둥을 의미한다. 달전리 주상절리는 지질명소로 많이 알려져 있는 제주도 중문 주상절리나 광주의 무등산 주상절리처럼 위로 솟은 주상절리이다. 뚜렷한 육각기둥이 잘 발달한 이곳에서는 용암이 식어 주상절리가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달전리 주상절리의 현무암은 한반도와 붙어있던 일본이 잡아당기는 힘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동해가 형성되었을 때 만들어졌다. 잡아당기는 힘은 이 곳 달전리에도 영향을 주어 땅이 벌어지게 되었고, 벌어진 틈을 따라 땅 속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솟아오르면서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달전리 주상절리는 주상절리 그 자체뿐만 아니라 동해열림의 환경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

7.4 Km    0     2019-07-10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중명길 161

2013년 12월 완공된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은 95,000㎡ 규모로, 접근성이 좋아 지역 주민들이 산림욕을 즐기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야생화관찰원, 약용식물원, 소생물관찰원, 암석원 등 다양한 생태학습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옥녀봉 전망대, 휴게소, 상징관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이 공원은 길이 잘 닦여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곳곳에 수달, 다람쥐, 호랑이, 반달곰 등 귀여운 동물 인형들을 전시해 재미를 더한다. 팻말을 들춰보면 식물의 이름과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는 ‘나의 이름은 뭘까요?’라는 문구가 있어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자연을 배우기에 좋다.숲속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자연공부를 하고, 넓은 잔디 광장에서는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쉴 수 있다. 특히 높이 18m로 UFO 형상을 한 전망대에서는 포항시와 아름다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제철소 둘러보고, 호랑이 꼬리 따라 달려볼까?

5.0 Km    4086     2016-09-27

포항은 제철소의 신화를 간직한 고장으로 포스코 포항제철소부터 지형이 호랑이의 꼬리를 닮아 붙여진 호미곶과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까지 대표적인 여행코스다. 그 중 포스코 포항제철소에는 제철소 견학 뿐 아니라 안전센터와 포스코역사관까지 둘러볼 수 있는 견학의 명소다. 상생의 손 위로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이 아름다운 호미곶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미곶등대 뿐 아니라 국립등대박물관도 있어 바다를 밝혀주는 등대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상달암

6.0 Km    17521     2020-01-28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새마을로766번길 21

상달암은 조선 세조 때 문신인 정충출기 적개 공신 이조참판 양민공 손소(1443∼1484)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한 분암이다. 창건년대는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선조37년(1604), 정조 10년(1786),1969년 중수기와 상달암은 지금도 남아 있는 일부 고졸한 건축세부양식으로 판단할 때 1500년대를 전후한 건축으로 추정되며, 문중계보로 볼 때 양민공의 아들로 중종 때 이조판서 의정부참찬을 지낸 우재손중돈(1463∼1529)의 역사로 추정된다.상달암은 도음산록의 남경사면에 유좌로 좌정하였는데 동쪽 끝에 화수루가 2칸 남으로 돌출하여 "ㄱ"자를 이루었으며, 안마당이 남쪽에 평행으로 앉은 대문채와 서쪽에 마당을 향하여 일자로 놓인 포사와 함께 튼 자형으로 배치를 이루고 있다. 상달암과 포사사이의 북쪽에 우물이 있다. 상달암은 5칸 일자 겹집에 동쪽끝에 남향으로 루가 2칸 돌출하여 "ㄱ"자를 이루고 있다. 일자 5칸 부분의 서와 동단간은 좀 넓은 간살로 구성되었고 가운데 3칸은 간살이 좁다.

가운데 좁은 간살의 3칸은 전면 기둥 안쪽에 반칸 퇴마루를 놓았고 기둥 앞쪽으로는 헌함을 설치하여 앞마루를 넓혔는데, 동단간의 전면에 돌출한 루 서측면까지 "ㄱ"자로 현함을 돌렸다. 서단가의 전면과 측면 1칸은 중방하부를 판벽으로 꾸미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아 재수청으로 사용하고 뒷간은 토벽을 쳐서 유사실로 쓰고 있다. 가운데 간살이 작은3칸은 모두 온돌방으로 서측 한칸을 사분합미서기 장지문으로 구획하였는데, 원래 이 구획은 서측칸에 있던 것을 옮긴 것으로 판단된다.이방들 앞 퇴마루의 전면의 독립기둥만 원주를 세우고 위에는 주두없이 보아지 끝을 가늘게 뽑아내어 장식하였다. 퇴마루와 방 경계벽의 각주위에도 보아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기둥을 해체하면서 없어진듯 하다.

방과 퇴마루 부분의 천장은 모두 고미반자로 처리하였다. 동쪽 끝방은 통칸 온돌방으로 루 쪽으로 사분합 들어 역게 문을 설치하여 공간을 확장하였고 천장은 고미혀 반자로 꾸몄다. 화수루는 루하, 루상,모두 원주를 세웠고 루상은 서측 2칸도 개방하고 동과 남은 널벽의 중앙에 각각 머름중방위에 양개띠장널문을 내었다. 동쪽은 널문에는 윗쪽을 제비초리마춤을 한 가운데 설주가 서 있고 양옆의 널벽도 띠장들이 원래의 것이 서 있으나 동쪽의 두 널문은 각각 웃인방에 가운데 설주를 세웠던 홈 구멍이 남아 있으나 제비초리마춤은 되어 있지 않다.

또 아래틀에는 가운데 설주를 세웠던 홈 구멍이 남아 있지 않고 양쪽 널벽의 띠장도 윗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아 후대 보수시에 이 부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루의 원주 위에는 주두를 놓고 초익공을 두었는데 비교적 고졸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몇개는 개체된 것도 있다. 지붕가구는 삼조가로 곡보위에 고졸 나 모습을 보이는 파련대공을 놓고 첨차를 직교하여 장혀와 종도리를 놓았다. 자연석을 4단 쌓은 기단 위에 초석은 모두 자연석으로 사용하였고 재수청 부분의 지붕은 박공지에 가작지붕을 다는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포항 달전재사와 하학재

6.0 Km    17929     2020-01-14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새마을로766번길 59

달전재사는 조선 태종 2년(1402년) 경에 창건한 건물이라고 구전될뿐 확실한 근거자료는 없다. 현재는 조선조 성리학자 동방 오현 중의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묘소를 수호하는 재사로 사용하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이 건물은 80여년 전만 해도 불상은 없지만, 승려들이 거주하며 묘소를 수호하였다고 한다.이 재사는 ㅁ자형 팔작 기와 지붕으로 정면 6칸, 측면 6칸이며, 건물배치 형태가 다른 재사 건축에서는 보기드문 특이한 배치수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학재는 조선 전기 문신인 우재 손중돈의 도음산 묘하재사이다. 손중돈은 양동 마을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의 둘째 아들로 1489년(성종 20년) 문과에 급제한후 벼슬길에 올랐고, 연산군 10년 김해도호부사 때 간언하다 파직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그 후로도 여러 벼슬을 하며 지내다가 중종 24년 67세를 일기로 한성에서 별세하였다. 하학재는 손중돈의 현손인 손종하가 1663년에 건립 하였다고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재사 내의 건물로는 하학재 이외에 제수청, 주사가 있다.

남성재

7.2 Km    18475     2020-01-23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남성안길 18-16

남성재(경북 유형문화재 제 302호)는 고려 의종때 한림학사 추밀원 지진사를 지낸 영일 정씨의 시조 형양공 정습명(?∼1151)의 묘단하재숙지소로서, 과거 19칸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전한다.1858년부터 수년에 걸쳐 중수한 바 있으며, 1868년에 대문채를 건립하였고, 1897년, 1925년, 1928년의 중수기록이 있으며, 1939년에는 동/서재를, 1962년에는 대문채를, 1965년에는 재사를 개축하는 등 여러 차례의 중수와 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강서원

7.2 Km    16075     2020-02-05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강정길 40-25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손중돈(孫仲暾)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훼철 직후인 1870년에 설단(設壇)하여 단향(壇享)으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925년에 활원재(活源齋), 1960년에 묘우(廟宇) · 강당 등을 복원하였다. 1980년에 경상북도에서 수복(修復)하였다. 1986년에 동재 · 서재 · 신도비각을, 1999년에 탁청루를 복원하였다. 매년 2월 하정(下丁 : 세번째 丁日)과 9월 하정에 향사를 지낸다.

오천서원

7.3 Km    2300     2019-11-25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서원재로166번길 32-47

1588년(선조 21)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습명(鄭襲明)과 정몽주(鄭夢周)의 학문과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2년(광해군 4)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오천(烏川)’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740년(영조 16)에 정사도(鄭思道)와 정철(鄭澈)을 추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위패를 땅에 묻고 단을 만들어 향사하다가 1975년에 복원되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500여 평이 있다

오천서원

7.3 Km    2685     2020-02-24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로2안길 20

오천서원은 조선 성종 때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대봉(大峰)양희지(楊熙止)를 추모하기 위해 1744년(영조20)에 건립된 것으로 대구지역의 23개 서원 가운데 4번째로 건립되었다. 원래는 지금 위치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지점인 파령골에 있었다. 1868년(고종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고, 1905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당호를 무릉재라고 하였다. 1971년 유림총회의 의결로 사당을 신축하여 오천사라 하고 오천서원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