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원순두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송정원순두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송정원순두부

송정원순두부

0m    1     2024-02-20

경상북도 경주시 구매1길 23

송정원순두부는 경상북도 경주시 시래동에 있다. 깔끔한 외관과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옛날 순두부며, 해물 순두부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이 밖에 간장게장, 양념게장, 오징어불고기, 돼지간장불고기도 맛볼 수 있다. 재료가 모두 소진되면 조기에 영업을 마감한다.

경주 나정

경주 나정

10.0 Km    30253     2023-11-17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이다. 박혁거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해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남아 있다. 특히 팔각건물지는 한 변의 길이가 8m나 되고 네모난 담장을 두른 것으로 보아 신라의 신궁터로 추정되며 이곳 나정을 박혁거세를 제사 지내는 신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 건국의 주역인 6촌의 촌장들이 모여, 군주를 선출하고 도읍을 정하자고 결정한 뒤 일행이 높은 곳에 올랐다. 그런데 양산 아래 나정이라는 우물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돌며 백마 1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어 가보니 백마는 하늘로 올라갔고 붉은색의 커다란 알만 남았는데, 이 알을 쪼개자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다고 한다.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들이 춤추듯 노니니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청명해졌다고 한다. 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성을 박(朴)이라 하고,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고 하였다.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인 BC 57년 왕의 자리에 올라 나를 세우고 서라벌이라고 이름지었다.

동궁

동궁

10.0 Km    1     2022-10-26

경상북도 경주시 북군길 27

동궁은 경상북도 경주시 북군동에 있다. KBS 2TV 시사 교양 프로그램 생생정보, M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생방송 오늘 저녁에 소개된 바 있다. 고풍스러운 한옥의 멋을 풍기는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순두부짬뽕이다. 이 밖에 매운고추짜장면, 복분자찹쌀탕수육, 유니짜장면, 삼선볶음밥 등 여러 가지 중화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경주IC에서 가깝고, 주변에 보문관광단지, 경주동궁원, 경주월드가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

원화루

원화루

10.0 Km    0     2024-03-29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828-21 (배동)
010-7667-3355

경주 포석로에 위치한 원화루는 전통 한옥방식에 현대적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는 한옥스테이다. 객실은 총 5개로 커플룸과 가족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객실 내부에는 방과 화장대, 욕실이 있다. 안전을 위해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다. 입구쪽 카페에서는 커피나 차, 음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조식으로 토스트, 제철과일, 샐러드, 구운계란, 음료를 제공한다. 황리단길, 첨성대, 동굴과월지 등 주요 명소가 차량 5분 이내 거리에 있다.

경주 헌덕왕릉

10.0 Km    17133     2024-02-02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473-17

경주 북천가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 809∼826)의 무덤이다.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이며,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재위 기간에 농사를 권장하고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이 일어나는 등 국내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천림사의 북쪽에 장사 지냈다고 한다. 천림사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왕릉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이곳을 천림사 터로 본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6m, 높이 6m이다. 봉분 밑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고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을 한단 깔고, 그 위에 넙적한 돌(면석)을 세웠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으며 탱석은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 무덤에는 현재는 12지신상 중 돼지(해)·쥐(자)·소(축)·호랑이(인)·토끼(묘) 등 5개상 만이 남아있다. 둘레돌 밖으로는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1970년대에 정비된 것이다.

화랑루

화랑루

10.0 Km    0     2024-03-29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828-11 (배동)
010-2690-9099

경주 포석로에 위치한 화랑루는 그림같은 전망과 탁 트인 잔디마당, 툇마루가 힐링을 가져다주는 신축 한옥스테이다. 객실은 천마총룸, 안압지룸, 월정교룸, 분황사룸, 불국사룸, 석굴암룸, 첨성대룸 총 7개로, 모든 객실은 방, 파우더룸,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고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조식으로 토스트와 제철과일, 샐러드, 구운계란, 음료를 제공한다. 주차장이 넓고, 황리단길, 첨성대,동궁과월지 등 주요 명소가 차량 7분 이내 거리에 있다.

전촌참가자미회

전촌참가자미회

10.1 Km    1     2024-03-05

경상북도 경주시 북군3길 17-1

전촌참가자미회는 경상북도 경주시 북군동에 위치하고 있다. 한옥으로 지어진 덕분에 외관에서 고풍스러운 멋이 풍긴다.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참가자미회다. 이 밖에 참가자미찜, 묵은지고등어조림, 물회, 횟밥, 매운탕 등이 준비되어 있다.

경주 인왕동 사지

경주 인왕동 사지

10.1 Km    19863     2023-11-01

경상북도 경주시 문천길 16

경주 인왕동 사지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을 위한 사찰인 인용사의 절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인용사는 신라시대에 승려나 왕이 아닌 개인을 위해 일반인들이 세운 절로서는 처음이라는데 그 의의가 크다. 현재 절터에 남아있는 석물들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로, 유례가 드문 亞자형 건물터를 비롯해 탑지, 금당지, 감당지, 회람지, 연지와 우물 등이 확인됐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를 정벌하려 하면서 당에 머물고 있던 신라의 장군이자 외교가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관음도량을 열었으나, 이후 김인문이 귀국하던 중에 죽자 극락왕생을 빌며 미타도량으로 중국 당나라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안녕을 빌기 위해 신라 사람들이 세운 절이라고 한다. 처음 김인문을 위해 절을 짓고 그의 귀국을 바라는 법회인 관음도량을 열었다가 그가 죽자 명복을 비는 미타도량을 행했다. 김인문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서 22년간 생활하면서 많은 벼슬을 했다. 무열왕 7년(660)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고, 문무왕 8년(668)에는 고구려를 통합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경주 동궁원

경주 동궁원

10.1 Km    9     2023-05-03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74-14

경주동궁원은 보문관광단지 입구에 위치하여, 농업 시험포장, 화훼재배 용도로사용되어 왔던 것을 농업을 관광자원화 하는 차원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관광 콘텐츠의 개발을 통해 사계절 체험관광시설을 조성하였다. 옛 안압지였던 동궁과 월지에 우리 조상들이 최초로 화초와 진금이수 즉 진귀하고 기이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문무왕 14년 삼국사기 기록과 신라의 관직명에 새 이름을 사용하였다는 등 경주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콘텐츠를 스토리텔링 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 이었던 동궁과 월지를 지금 이 곳 경주동궁원에 현대적으로 재현 하였습니다.경주의 역사적 배경을 스토리텔링하여 “동궁식물원”과 새전문 동물원인 “경주버드파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경주동궁원”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출저 : 경주 동궁원]

경주 월성(반월성)

경주 월성(반월성)

10.2 Km    35297     2023-12-05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이곳은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월성의 성은 돌과 흙을 섞어 싼 토석축성인데 길이가 1,841m이며, 성내 면적이 193,585제곱미터이다. 동에는 동궁과 월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첨성대가 있으며 남에는 남천의 시내가 하나의 방위선 역할도 하게 되어 있다. 기록에는 문으로 남문, 귀정문, 북문, 인화문, 현덕문, 무평문, 존례문과 임해문이 있었으며 누각으로 월상루, 망덕루, 명학루, 고루가, 전으로는 조원전, 숭례전, 평의전, 남당, 월정당, 우사록관, 좌사록관, 영각성이 있었으며 궁으로는 내성, 영명궁, 월지궁, 영창궁, 동궁, 내황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월성지하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부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 건물초석 등이 깔려 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회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昔脫解王)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 후 파사왕(婆娑王) 22년(101)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