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Km 2024-12-10
경상북도 영천시 문화원길 6
영천강 북쪽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건물인 조양각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당시 부사이던 이용과 향내 유림들과 합심하여 지은 건물로서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대루의 하나로 불린다. 명원루 혹은 서세루라고 불렸으며 원래는 조양각을 중심으로 좌우에 청량당과 쌍청당 등, 여러 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조양각에는 이 고장을 거쳐 간 수많은 명현, 풍류객들의 시구가 조각된 80여 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경내에는 산남의진비와 영천지구 전승비, 백신애 문학비와 황성옛터 노래비 등의 기념물이 있다.
11.3Km 2024-11-20
경상북도 영천시 창대서원1길 9-18 (과전동)
영천 창대서원은 1697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대임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천시 녹전동에 건립되었다. 이후 1786년(정조 10)에 정제를 추향 하였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55년 영천시 녹전동 창대마을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그 뒤 20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였다. 정대임은 임진왜란에 분기하여 일어나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창의 하여 적을 토벌하고, 왜군을 공격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 신문, 쌍전당, 동재, 문간채 등이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이다. 정대임과 정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쌍전당은 강당으로, 누각형 건물로서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평면의 구성은 전면 반 칸을 툇마루로 꾸미고 뒤쪽 3칸 모두를 온돌방을 두었다. 툇마루의 전면과 측면에 난간을 둘렀다. 동재는 강당의 측면에 직각으로 축을 틀어 대문채 뒤편에 두었다.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 겹처마 건물로서 평면은 강당과 마찬가지로 전면 반 칸을 툇마루로 꾸미고 뒤쪽 3칸 모두를 온돌방을 두었다.
11.3Km 2024-01-08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12
화평대군 식당은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에 있다. 1975년에 개업한 이후 지금까지 한우만을 사용해 요리를 만든다. 대표 메뉴는 육회비빔밥이며 육회, 소주물럭, 소금구이, 한우소찌개 등도 맛볼 수 있다. 내부에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갖기 좋다. 동영천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우로지자연생태공원과 시엘 GC가 있다.
11.3Km 2024-01-08
경상북도 영천시 호국로 135
포구어가는 경북 영천에 위치한 전문 횟집이다. 자연산 활어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가자미, 도다리, 광어, 우럭 등 싱싱한 활어회가 메뉴로 준비되어 있다. 또한 육수가 시원한 자연산 물회와 광어 활어초밥 등 입맛을 사로잡을 식사 메뉴까지 준비되어 있는 식당이다.
11.4Km 2024-11-04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
고려 후기 영천 지역의 문신인 정몽주(1337~139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세운 효자비이다. 공민왕 5년(1355) 부친상을 당하여 묘 곁에서 3년 상을 치르고, 그 후 공민왕 14년(1365) 모친상까지 당하여 역시 3년 상을 지내였다. 이토록 지극하였던 그의 효성이 조정에 보고 되자, 출생지인 이곳 우항리 마을에 비를 세워두도록 하였다. 비는 반듯하고 널찍한 사각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앞면에는 효행을 행한 마을이라는 뜻의 효자리라는 글귀를 세로로 큼직하게 새겼다. 공양왕 원년(1389)에 세운 것으로, 그 후 잃어버렸던 것을 조선 성종 18년(1487) 땅속에서 찾아내어 비각을 세워 모시고 있다.
11.4Km 2024-01-09
경상북도 영천시 호국로 155
우즈베이커리 영천점은 경상북도 영천시 조교동에 있다. 도심 속 모던한 느낌의 베이커리 카페지만, 내부에서 농촌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1층과 2층 건물 구조로 되어 있고 특히 테라스 좌석이 인기다. 대표 메뉴는 에스프레소이며, 아메리카노, 카페모카, 카페라테, 카푸치노 등과 함께 다양한 베이커리와 우즈 브런치, 오일 파스타 등도 맛볼 수 있다. 동영천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이 있다.
11.4Km 2023-09-19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승마휴양림길 62-16
운주산승마 조련 센터에 자리 잡은 말문화 체험관은 새로운 승마 콘텐츠 개발과 보급을 위해 2019년 말 산업 육성 지원 사업으로 건립되었으며, 말을 매개로 다양한 체험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馬 누리 카페, 유아 놀이방, 야외 테라스, 전시, 교육실, 말문화 체험시설, 어린이 승마장, 포니 레일 마차, 말문화 승마 숲길, 가족쉼터 꽃동산 등 다양한 체험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1.4Km 2025-03-17
경상북도 영천시 언하동 167-1
054-334-9757, 010-9365-9757
경북 영천시 언하동에 위치한 영천목탁공예사는 목탁 제조를 전문으로 입술 목탁, 좌탁, 죽비 등 수작업 목탁을 제조하고 있다. 목탁은 살구나무가 뿌리에서 베어진 상태에서 약 3년이 지나야 목탁이 되어 소리를 얻는데, 1년은 그냥 밖에 두고 숙성을 시킨 후 가운데 심을 빼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나무의 진을 빼기 위해 삶는 과정을 거쳐야 목탁을 제조할 수 있다. 목탁은 그만큼 모든 정성과 수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이다. 좋은 토질에서 알맞은 기후의 살구나무 원목만으로 제조하고 있는 영천 목공예사는 고유의 민족혼과 선조들의 얼을 담은 다양한 종류의 전통 목공예품을 주문 생산한다.
11.5Km 2024-10-17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
인각사는 643년(선덕여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번성하여 고려시대에는 국사 일연 스님이 1284년(충렬왕 10)부터 임종할 때까지 5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이 당시 인각사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퇴락하여 거의 폐사가 되었다가, 1721년(경종 1) 스님이 화주(化主)를 맡고 배흥일이 시주하여 대웅전, 극락전, 승방, 종루 등이 다시 갖추어지는 중수가 이루어졌다. 사적으로 지정된 인각사는 경내에 보물인 일연스님의 부도탑인 [보각국사탑과 비]와 [군위인각사석불좌상]이 있고 일연의 업적과 삼국유사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일연학연구소와 삼국유사 박물관이 있다. 사찰의 앞에는 수많은 백학들이 서식하였다는 운치있는 학소대가 있다. 인각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병암과 마주치게 된다. 밑으로는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여름이면 매일 수 천명씩 이곳에서 피서를 즐기기도 한다. [인각사 석불좌상] 이 불상은 10~11세기에 제작한 불상으로, 실존하는 고승을 모델링하여 조성한 불상양식과 계층을 같이 하고 있다. 광배와 한 돌로 구성된 석불좌상인데 광배는 거의 깨어졌거나 불상은 완전하게 남아있고, 머리는 육계가 불분명하지만 윤곽선이 표현되어 육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머리칼도 나발이 꽤 큼직하게 묘사되고 있다. 가부좌한 두발은 가사로 덮여 있으나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는 항마촉지인의 두 손은 비교적 작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보각국사 일연의 탑과 비는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일연스님의 부도탑과 비문이다.보각국사 일연스님이 노년에 인각사에서 노모를 지극히 봉양하고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보각국사비와 정조지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인각사 보각국사탑] 탑의 상층은 불상, 중층은 연화, 하층은 토끼·사자·원숭이 등 여러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아침에 해가 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승려 일연스님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팔각의 탑의 중심부에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는 탑명과 사천왕입상과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원래 이 탑이 인각사 동쪽 2km 떨어진 부도 골에 있었으나 외지 사람들이 자기 조상의 묘를 안장하기 위해 1928년 서편으로 50m쯤 옮겨 놓은 것을 1978년에 인각사 경내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 조성시대 : 고려 충렬왕 21년 - 소유자 : 인각사 - 규모 : 탑고 2.4m / 재료 : 화강암 [인각사 보각국사비] 비는 충렬왕 21년(1295) 국사의 불제자인 법진에 의하여 세워졌다. 높이 6자, 폭 3자반, 두께 5인치인 탑신의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은 명문이며, 글씨는 왕명에 의하여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유필을 집자하여 만들었으며, 지금은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있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