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제일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영남제일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영남제일관

영남제일관

13.3Km    2025-09-04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대구 읍성은 1590년에 처음 만들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뒤 1736년에 돌로 다시 쌓아 석성(石城)으로 만들었다. 성에는 동서남북에 네 개의 정문을 두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서문(達西門), 북문은 공북문(拱北門)이라 하였다. 그리고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은 이곳의 남문이었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영남제일관은 1980년에 만촌동 현 위치로 그 자리를 옮겨 중건한 것으로, 형태는 처음의 모습을 참조하였으나 규모는 원래의 것보다 더 크다. 영남제일관은 역사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구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애용되고 있으며 야경의 모습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창대서원

창대서원

13.3Km    2025-10-27

경상북도 영천시 창대서원2길 20 (과전동)

영천 창대서원은 1697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대임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천시 녹전동에 건립되었다. 이후 1786년(정조 10)에 정제를 추향 하였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55년 영천시 녹전동 창대마을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그 뒤 20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였다. 정대임은 임진왜란에 분기하여 일어나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창의 하여 적을 토벌하고, 왜군을 공격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 신문, 쌍전당, 동재, 문간채 등이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이다. 정대임과 정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쌍전당은 강당으로, 누각형 건물로서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평면의 구성은 전면 반 칸을 툇마루로 꾸미고 뒤쪽 3칸 모두를 온돌방을 두었다. 툇마루의 전면과 측면에 난간을 둘렀다. 동재는 강당의 측면에 직각으로 축을 틀어 대문채 뒤편에 두었다.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 겹처마 건물로서 평면은 강당과 마찬가지로 전면 반 칸을 툇마루로 꾸미고 뒤쪽 3칸 모두를 온돌방을 두었다.

대구부수성비

대구부수성비

13.3Km    2025-03-18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조선 고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온 김세호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다. 고종 6년(1869)에 세운 비로, 관찰사 김세호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최석로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갈 곳을 잃었다가 1932년 대구향교 경내로 옮겨 놓았고, 1980년 영남제일관을 재현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출처 : 국가유산청)

영영축성비

영영축성비

13.3Km    2025-03-18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24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공사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한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다 한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에 세워두었으며,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에 성은 헐리게 되었고, 비는 1932년 향교로 옮겨 보존되다가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영천향교

영천향교

13.3Km    2025-11-11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길 34 (교촌동)

영천향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 배치로 옛 성현께 문묘 향배를 드리고 학문을 갈고닦는 지방의 국립교육기관이다. 제사를 지내는 묘우인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 스물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은 1435년에 명나라 목수가 중국식 건축 양식으로 준공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현재 보물 제6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입구에 드나들 수 있는 유래루(牖來樓)와 앞뜰에 500년 된 회화나무를 비롯하여 양쪽에는 유생들이 기거했다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거조사

거조사

13.3Km    2025-12-23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인 거조사는 738년(신라 효성왕 2) 원참(元旵)법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뒤 진평왕 13년 혜림법사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나한을 모신 영험 있는 도량으로 유명해졌다. 거조사 영산전은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 우왕원년(1375)에 지어졌다. 상언이 그린 영산회상도와 청화화상이 자연석을 이용해 조성한 석가모니부처님, 제화갈라보살, 마륵보살님과 비롯한 526분의 나한성중이 봉안되어 있다.

까꾸리웰빙손칼국수

까꾸리웰빙손칼국수

13.3Km    2025-09-10

대구광역시 수성구 월드컵로5길 17 (대흥동)

까꾸리웰빙손칼국수는 대구스타디움 인근에 위치한 칼국수 전문점이다. 삼삼한 맛의 손칼국수와 고소한 촌두부, 바삭한 파전이 인기이다. 촌두부와 도토리묵은 야채무침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며, 손칼국수는 깔끔한 국물이 일품이다. 수육과 만두도 인기 메뉴로, 국내산 삼겹살을 사용해 부드럽고 풍미가 좋다.

망우당공원

망우당공원

13.4Km    2025-03-19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의병장이자 경상도 방어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의 공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다. 공원의 이름은 그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따왔다. 공원 안에는 곽재우의 동상이 서 있고, 동상 부근에 그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망우당기념관이 있다. 하얀 성벽 위로 보이는 누각은 영남제일관인데, 조선시대에 축조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80년 이곳에 옮겨 중건한 것이다. 이 지방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조양회관도 이곳에서 들러볼 수 있다. (출처 : 대구트립로드)

팔공산분수광장

팔공산분수광장

13.4Km    2025-11-11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27-5

팔공산분수광장에는 연중 많은 사람이 모인다. 각종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봄철이면 관광객의 방문이 더욱 잦아진다. 분수 광장이 매년 열리는 팔공산 벚꽃 축제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축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의 주최로 홍삼, 흑마늘, 천마, 산삼, 약초 등을 구입할 수 있는 팔도 특산품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 아울러 속초 오징어순대, 아바이순대, 팔공산 미나리전 등 각종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대구 고모령비

대구 고모령비

13.4Km    2025-08-14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1 (만촌동)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세 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