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현오거리 먹자골목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복현오거리 먹자골목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복현오거리 먹자골목

복현오거리 먹자골목

15.8Km    2025-03-17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동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오거리 일대의 위치한 골목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구 내에서 가장 유명한 ‘막창붐’이 일어나면서 경북대학교 북문 인근에서 막창집이 생기기 시작하여 2000년대 중반부터 골목이 번성하였다. 대구 지역에서는 막창을 콘셉트로 한 골목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복현오거리 먹자골목이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이곳에만 30여 곳 이상의 막창집이 있어 막창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골목이었지만 현재는 조개구이, 치킨 등 음식점들의 메뉴가 다양해지면서 방문하는 고객들의 취향에 따라 알맞은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였다.

하양포교당(경산)

하양포교당(경산)

15.9Km    2024-10-25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도리3길 12

경북 경산의 아미타도량 하양포교당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말사이다. 창건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창건된 사찰로서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사찰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상실한 채 유생들의 객사로 함께 쓰여 오다가 1927년 지석담 스님이 사찰의 재건을 위해 중수했다는 사실만 전해져 온다. 지석담 스님은 사찰의 중수와 아울러 은해사에서 부처님을 모셔와 봉안한 것이 지금까지 극락전 본존불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2001년 주지로 부임한 성본스님이 쇠락한 사역을 정비하고자 5평 남짓한 극락전을 34평으로 신축하고, 칠성각 중수, 설법전 부처님 봉안, 공양간 건립 등 사격을 일신하여 지금은 그 터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 1천여 평의 드넓은 도심분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자비와 가르침을 알리며 이 포교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하양포교당은 매일 새벽 5시 새벽예불, 오전10시 사시불공, 오후 6시 30분 저녁예불을 진행하며, 매월 초하루 기도(음력 1일)와 지장재일(음력 18일), 관음재일(음력 24일) 기도를 봉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역사회에서 각종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양포교당 소속 불교청년회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경로당이나 아동 시설 등을 방문하여 생필품 전달 및 위문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법회는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2019년부터 은해사 불교대학 강의가 하양포교당에서 진행되는 등 지역 불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도 하고 있다.

강변축구장

강변축구장

15.9Km    2025-04-08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강변축구장은 대구 금호강변에 자리한 축구 시설이다. 지역민들에게는 강변축구장 혹은 이 지역의 행정동명인 무태동을 붙여 무태축구장이라 불리기도 하며, 천연잔디 2면와 인조잔디 3면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2022년 월드컵 준비 캠프로 활용하기 위해서 시설 개선이 이루어졌고 당시 세네갈 국가대표팀의 준비 캠프를 새한 연수원에 차리면서 대구시민운동장과 함께 연습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대구시에서 주관하는 각종 생활체육, 축구대회 및 문화관광부장관기 고교축구 대회 등이 치러진다. 축구 외에도 운동 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이용자들에게 더욱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국립신암선열공원

15.9Km    2025-07-14

대구광역시 동구 동북로71길 33 (신암동)

국립신암선열공원은 국내 최대의 독립유공자 전용 국립묘지다. 이곳에는 조국의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52명의 애국선열이 잠들어 있다. 공원을 둘러보면 일제의 폭압과 탄압에 결연히 항거하며 민족의 자주정신을 지키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자 헌신한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느낄 수 있다.

대구교육박물관

대구교육박물관

15.9Km    2025-03-17

대구광역시 북구 대동로1길 40

교육 수도 불리는 대구의 교육 사료에 대한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세대 간 공감을 위한 교육 역사 체험공간을 마련하고, 시민·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지역 문화 공간의 창출을 위해 옛 대구 대동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대구교육박물관을 설립하였다. 7개의 전시실과 5개의 체험실을 갖추고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교육''과 관련된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과 대구의 숨은 교육과 역사 이야기가 담긴 전시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교육 박물관인 만큼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아리따움 복현영진

아리따움 복현영진

15.9Km    2024-03-24

대구광역시 북구 동북로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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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보쌈

기와집보쌈

15.9Km    2024-02-21

대구광역시 북구 대천로7길 6-10

기와집보쌈은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에 있다. 현대적인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기와집보쌈이다. 이 밖에 산더미 쟁반막국수, 냉막국수, 비빔막국수, 칼국수, 얼큰이칼국수 등을 맛볼 수 있다. 대구 지하철 3호선 동천역과 칠곡 IC에서 가깝다. 인근에 운암지 수변공원, 신전뮤지엄이 있다.

대구 동구 여름축제 두두썸동

대구 동구 여름축제 두두썸동

15.9Km    2025-07-17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053-662-4072

2025년 동구 봄축제 '두두벚동'의 시리즈로 계절축제의 연계성을 반영한 축제이다. '폭염' 을 주제로 한 대구 특화 여름축제 개최를 통해 관광명소와 함께 이벤트가 가득한 관광문화도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무더위에 지친 지역민의 일상 속에서 즐기고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여름철 폭염에 특화된 시원한 체험형 프로그램 및 물놀이 콘텐츠가 구성되어 있으며, 워터밤콘서트, 워터서바이벌게임, 댄스경연대회, 수제맥주펍, 플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관음시장(대구)

15.9Km    2024-07-17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중앙로28길 1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에 위치한 관음시장은 1994년에 개장하여 운영 중인 상설 시장이다. 작은 식당과 떡가게, 과일가게, 채소, 건어물 등의 점포가 영업하고 있다. 시장 내부는 협소하지만, 외부에도 도로를 따라 많은 상점이 분포되어 있다. 인근에 아파트단지와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어 관음동 주민들이 많이 찾으며, 시장 내에 위치한 관음떡집은 겉모습은 허름하지만 줄서서 기다릴 정도로 유명한 떡집이다. 평일 약 200명, 주말에도 약 200여 명의 고객이 다녀간다. 주변에 팔공산도립공원, 칠곡향교, 운암지 등의 관광지가 모여있어 연계관광이 가능하다.

동호서당·동호유적공원

15.9Km    2025-03-17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1112-2

동호서당은 의병장 면와 황경림(勉窩 黃慶霖,1566~1629)을 위하여 하양현의 사림(士林)들이 1820년에 세운 동호사(東湖祠)에서 유래한다. 동호사는 1872년 조선 고종 때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수년간 방치하였다가 1875년 본 건물을 중건하였다. 그 후 1921년 중수하면서 서당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2013년 12월에 다시 증수하였다. 황경림은 조선 세종 때 정승이던 황희(黃喜)의 후손으로 이곳 동내동의 입향조(入響祖)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하양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권응수, 곽재우 등과 함께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큰 공적을 세웠다. 이러한 업적을 높게 평가한 조정에서 여러 번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후진양성에 힘쓰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사후 창의공신(倡義功臣)의 휘호를 받았다. 서당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좌측에 2칸 온돌방을 두고 우측에 2칸 마루를 두었는데 전반적으로 소박하게 건물을 꾸몄다. 동호유적공원은 대구 신서혁신도시택지개발지구 내에서 발굴조사한 문화유적 중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지석묘(고인돌)와 석관묘를 원형 그대로 이전·전시함으로써 이를 영구히 보존하면서 시민들에게 당시의 매장의례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다. 이곳 대구 신서혁신도시지구는 팔공산괴에서 남쪽(금호강)으로 뻗어 내리는 많은 구릉들의 끝단지이자 곡부에 의해 형성된 선상지형 충적평야지대에 자리를 잡아 입지적 환경이 좋은 곳이다. 이는 청동기시대 이래로 조선시대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삶의 흔적들이 남아서 조사되었음이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