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장 (2, 7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예천장 (2, 7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예천장 (2, 7일)

예천장 (2, 7일)

19.4Km    2024-12-17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시장로 53
054-654-7336

예천장은 5일 장으로 2, 7, 12, 17, 22, 27일 열린다. 예천장은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해서 축협을 지나 300m 가량에 걸쳐 인도변을 따라 각종 노점 상인들이 들어서 장을 이룬다. 거래품목으로는 어물, 채소, 과일을 비롯해서 곡물, 약초, 의류, 잡화 등이다. 특히 봄철이면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봄나물인 냉이, 달래, 쑥, 돌나물 등과 산에서 직접 따온 각종 버섯으로 시골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옛 장터이다. 장날이면 시골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시장으로 갖고 나와 팔기 때문에 중국산이 우리 시장을 차지하는 이때 우리 농산물을 직접 구입할 수 있어서 좋다. 10년 전 교통이 발달하기 전만 하더라도 물건을 사고팔려는 타지 상인들로 만원을 이루었는데 지금은 지역 사람의 도소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김영남손짜장

19.4Km    2025-03-19

경상북도 영주시 선비로 269-1
054-632-5758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김영남손짜장은 짜장면 외에 유산슬, 난자완스, 깐쇼새우 등 다양한 중식 메뉴가 있다. 점심은 단품 메뉴를, 저녁은 코스요리를 많이 찾고 있으며 돌잔치, 회갑잔치도 많이 열리고 있다. 신선한 식재료를 많이 사용하며 기름과 조미료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여 요리하여 덜 자극적인 중식을 맛볼 수 있다.

관사골작업실 협동조합

관사골작업실 협동조합

19.4Km    2024-06-18

경상북도 영주시 두서길19번길 10
010-6646-3958

관사골작업실 협동조합은 수공예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3040 주부들로 구성되었다. 이곳은 영주관광 자원을 활용한 관광기념품 개발 및 판매, 지역 수공예작가들의 상품을 판매하는 편집숍, 관사골 원도심을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광, 그리고 방문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방형카페이다. 현재 관사골 일대 관광체험 제품들과 영주 관광기념품 등을 제작 개발하고 있으며, 주부들로 구성되어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카페관사골에서 원도심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만날 수 있고, 지역 수공예작가들의 제품들도 구매할 수도 있다. 앞으로 수공예체험과 더불어 관사골 원도심의 특징을 살린 철도 관련 골목투어 등 원도심관광의 안내센터이자 방문객의 휴식처, 체험형 관광 공방카페로 1타 5피 이상의 다양한 역할을 하는 관사골을 대표하는 곳이다.

영주향교

영주향교

19.5Km    2024-11-04

경상북도 영주시 명륜길 76

1368년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된 향교이다. 이후 군수들에 중수되었고 1597년에는 명나라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영주를 지나 선현을 뵌 후, 향교 주변 지형지세를 극찬하였으나 오른쪽 산맥이 낮고 사람과 말이 다니는 오솔길이 있는 것이 결점이라 하여, 후에 오솔길을 막고 낮은 산목을 흙으로 쌓아 올렸다. 광복 후, 향교 경내에 영주여자중학교를 설립하여 향교 건물의 일부를 학교에서 사용했다. 현재는 향교 내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각 10칸의 동무와 서무 각 10칸의 동재와 서재, 존현당, 횡루, 전사청, 전곡청 등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대성전에는 5성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 2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숫골

숫골

19.5Km    2024-12-20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 19-69

숫골은 영주의 진산으로 불리는 철탄산 아래 자리한 첫 번째 마을이다. 숫골 이란 지명에 대해선 여러 유래가 전하는데 삼국시대 신라군 주둔지가 있어 ‘술골’로 불렸다는 설과, 일제강점기에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던 막사가 있어 ‘수용소골’로 불리던 것이 지금의 숫골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품은 마을은 1942년 영주역이 들어서면서 번성하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엔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크게 번창하였다. 1973년 영주역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가기 전까지 숫골은 영주 최초의 근대 마을을 이루며 ‘영주 1번지’로 통했다. 지금은 이웃한 근대역사 문화거리와 함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 여행지로 사랑받는다. 알록달록한 울타리를 따라 걷다 보면 영주 시내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육사문학관

19.5Km    2025-03-13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525

이육사문학관은 이육사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을 길이 전하고 널리 알리는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에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의 흩어져 있는 자료와 기록을 한 곳에 모아 육사의 혼, 독립정신가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그의 출생지인 원천리 불미골에 전시관(971.75 ㎡), 생활관(497.28 ㎡), 이육사 생가(90.72 ㎡)가 지어졌다.

타양서원

타양서원

19.6Km    2025-06-27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본길 55-11

타양서원은 영조 17년(1741)에 정평공 손홍량(孫洪亮), 상촌 김자수(金自粹), 파산 류중엄(柳仲淹) 선생을 제향 하기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이후 일직 송리 뒷산에 단(壇)을 쌓아 제향을 이어오다가, 1984년 사림(士林)에 의해 복설 되어 매년 3월 중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서원의 사당은 상현사(尙賢祠), 강당은 성경당(誠敬堂), 동재는 진수재(進修齋), 대문은 ‘경앙문(景仰門)’이라 하며, 아쉽게도 서재(西齋)는 마련되지 못하였다.

근성서원

근성서원

19.7Km    2024-11-05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긴대골길 10

1812년(순조 12) 의성군 안평면 하평리에 조선 개국공신인 김인찬(金仁贊)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이곡서원(尼谷書院)으로 창건하였고, 의성군 비안면으로 이건 했다가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그 뒤 1926년에 현 위치에 복설, 근성(芹城)으로 서원명을 고쳤다. 경내의 건물은 사우와 강당, 전사청, 내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담장을 둘렀다. 서원의 경내는 매우 경사져서 강당과 사당의 고저차가 많이 난다. 구성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숭의당(崇義堂)이라고 현판을 단 강당이 전면으로 보이고, 강당 뒤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사당영역에 이른다. 한편 강당 우측방 입구 위에는 양직재(養直齋)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당에는 원훈사(元勳祠)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사당영역의 담장 밖 우측에 전사청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서재는 따로 없다.

선몽대

19.7Km    2024-10-30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1538~1591)가 1563년 창건한 정자이다. 건물의 이름을 짓기 전에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는 꿈을 꾸고 지었으며,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운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 시가 목판에 새겨 지금까지 전하여 오고 있다. 울창한 노송이 들어서 있어 자연 경관이 매우 좋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의 무사태평과 안녕을 위하여 동제를 지내고 있다. 선몽대의 뒤쪽에 있는 선몽대숲은 수해와 바람으로부터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보호림 또는 비보림(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숲)으로, 수령 100~200여 년 된 소나무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특히 누 위에 올라 가면 내성천 백사장 명사십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뒷산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산 중턱에 약수터가 있다. 이열도의 유고와 유물을 장서각에 보관하였으나 1924년 화재로 소실되고, 당시의 명인들이 기록한 제영록, 심유록만이 보관되어 있다.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

19.7Km    2023-09-07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안동 조탑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화강암 석재와 벽돌을 혼용해서 만든 특이한 탑이다. 우리나라 전탑에는 거의 모두 화강암을 혼용하고 있으나 이 전탑에서는 그러한 의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나 있다. 탑은 현재 화강석의 석축을 가진 방형 토축 기단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형태의 기단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일제강점기 이후 조사 당시에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탑이 서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가 없이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바로 탑신을 올렸을 가능성도 있다. * 오층전탑의 형태에 대하여* 탑의 형태를 살펴보면 기단은 흙을 다져 마련하고 그 위로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화강석으로 5∼6단을 쌓아 1층 몸돌을 이루게 하였다. 남면에는 감실을 파서 그 좌우에 인왕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1층 지붕부터는 벽돌로 쌓았는데 세울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문양이 있는 벽돌이 남아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에는 2층과 4층 몸돌 남쪽 면에 형식적인 감실이 표현되어 있고, 지붕돌에는 안동에 있는 다른 전탑과는 달리 기와가 없다. 이 탑의 체감 비율은 지붕보다 몸돌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했는데, 1층 몸돌의 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점과 5층 몸돌이 너무 큰 것이 그것이다. 여러 차례 부분적인 보수를 거치는 동안 창건 당시의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