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옛길을 걷다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2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옛길을 걷다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2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옛길을 걷다

2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옛길을 걷다

11.0 Km    2908     2023-08-09

영주는 백두대간 소백산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고장이다. 죽령은 영남에서 한강유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로 우리나라에서 하늘재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옛길이다. 희방사역에서 죽령주막까지 약 2.5km로 2천년의 역사와 자연을 품은 아름다운 길이다. 죽령 정상의 주막에서 목을 축이며 배를 채우는 시간마저도 즐겁다.

만죽재 고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만죽재 고택[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11.0 Km    0     2023-10-24

경상북도 영주시 무섬로234번길 11-10
054-638-1127

만죽재 고택은 경북 영주의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으로 무려 36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병자호란 이후 박수 선생이 은둔 군자의 삶을 살고자 세운 고택으로 13대 후손들이 대대손손 거주하였다. 객실은 섬계초당과 사랑채, 안채, 책방 총 4개로, 모두 2명이 머물기에 적당하다. 섬계초당은 최고의 명당으로, 마루에서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내성천, 백사장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창문을 활짝 열면 시원한 바람과 자연의 소리가 감미롭게 다가온다.

물돌이 무섬마을과 외나무다리를 밟아보다

물돌이 무섬마을과 외나무다리를 밟아보다

11.1 Km    3323     2023-08-08

영주는 부석사와 소수서원 말고도 옛 선비의 자취가 많은 고장이다. 무엇보다 무섬마을은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물돌이 마을로 마치 육지 속의 섬마을과 같은 독특한 풍경을 품고 있다. 곧 무섬 외나무다리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 시골정취 그윽한 외나무다리를 찾아가 한번 밟아보자.

영주 무섬마을

11.1 Km    60461     2024-05-09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물수리’의 우리말 이름을 가진 전통마을이다. 때로는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불린다. 40여 가구의 전통가옥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이 중 30여 채가 조선 후기 사대부가 가옥이며, 역사가 100여 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30여 년 전까지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외나무다리가 마을의 대표 상징물이다. 무섬마을에는 무섬외나무다리 축제, 무섬 문화재 등의 축제와 행사가 있고, 전통한옥체험과 무섬 문화촌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전통한옥체험에서는 김욱 가옥, 김천한 가옥, 김태길 가옥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데 감상뿐만 아니라 직접 숙박체험을 하며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무섬 문화촌에서는 도자기, 염색체험, 사군자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무섬 외나무다리

11.1 Km    36078     2024-05-23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

무섬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고택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로 내성천이 마을의 3면을 감싸듯 흐르고 있어, 그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육지 속 섬마을이다. 과거에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내성천을 건너 뭍의 밭으로 일하러 다녔는데, 장마철이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았다.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한 외나무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에 이르고, 폭은 30cm에 불과한 다리이다.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 채 건너야 한다. 현재의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년간 마을과 뭍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를 마을 주민과 출향민들이 힘을 모아 예전 모습으로 재현시켜 놓은 것이다. 매년 가을이면 이곳에서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열린다. 영주 지역 대표 문화축제로 잊혀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향유하고자 개최되며 행사 내용으로는 무섬마을 야행, 가을음악회, 고택문화체험, 전통공예체험, 전통놀이 체험, 전통혼례 재연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다.

여우생태관찰원

11.3 Km    1     2023-08-25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2481번길 33

여우생태관찰원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토종여우 복원을 위해 2016년 11월 5일 영주시 태장리에 개관하였다. 영주시에서 부지와 시설을 제공하고 종복원기술원에서 운영 중이다. 주로 사고를 당하거나 병이 든 여우를 보호하고 회복 시켜 자연으로 돌려내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여우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며 소백산에서 시작해 백두대간을 따라 설악산과 지리산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여우생태관찰원은 관리동과 홍보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전문해설사와의 동행 아래 생태학습장을 탐방할 수 있다.

영주 순흥 어숙묘

11.3 Km    20230     2023-11-07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비봉산 언덕의 서남쪽에 있는 어숙의 묘로 1971년에 세상에 알려진 굴식돌방무덤형의 벽화고분이다. 흙을 쌓아 올린 원형의 봉토 무덤으로, 봉토 아래쪽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돌렸으며 봉분의 지름은 16m 정도이다. 분묘 안에는 [을묘년어숙지술간]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어숙은 고구려인의 이름이며, 술간은 신라의 관직명으로 신라로 망명하였던 고구려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을묘년은 535년이나 595년으로 추정된다. 신라 지역의 돌방무덤 내부에 고구려 계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역사 자료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벽화는 무덤 안 길 천장의 연화도와 석비 겉면의 인물도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나머지는 거의 훼손되었다. 이 천정 연화도 7장의 연잎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꽃잎의 조각 수법, 갈색 옷을 입은 신장도의 화법 등 벽화에는 고구려 고분의 성격이 짙게 배여 있고, 어숙이라는 사람의 이름도 고구려계로 추측된다. 이는 순흥 이 지역이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인 소백산 죽령에 위치한 국경 지대로 고구려와 신라의 통로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궁전파크모텔

궁전파크모텔

11.3 Km    25026     2023-11-08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예봉로 2043
054-674-0300

궁전파크모텔은 주위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더불어 깨끗하고 조용한 시설을 자랑한다. 궁전 같은 화려한 외관과 포근한 실내 분위기, 도시생활의 지친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자연 속의 휴식처이다.

소수박물관

소수박물관

11.3 Km    21915     2023-11-08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80

소수 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에서 보관하던 유물을 전시하며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아가기 위해 설립된 유교 박물관이다. 2004년 개관하였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로 5개의 전시실과 수장고, 시청각실, 야외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 전시실은 기증받은 2만여 점의 유물을 연차적으로 순환 전시하고 있으며,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를 비롯한 삼국시대, 조선시대의 문화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은 [유교의 전래]라는 테마로 이황의 성학십도와 사서삼경, 학맥도를 전시하며, 제3전시실은 조선시대 시학 기관인 서원과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에 대한 것을 전시하고 있다. 제4전시실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서원인 소수서원 창건 이야기와 소수서원에 배향된 인물 등 소수서원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소수 박물관 통합 관람권으로 영주 선비촌, 소수서원, 소수 박물관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소수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11.4 Km    54094     2024-04-04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백두대간의 정기를 머금은 소백산자락 영귀봉(靈龜峰)아래 위치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주세붕(周世鵬)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데서 비롯되었다. 평소 고려말 유현(儒賢)인 안향(安珦)을 흠모하던 주세붕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542년(중종 37), 안향선생의 고향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 해 1543년에는 학사를 건립하여 사원(祠院)의 체제를 갖춘 것이 백운동서원의 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