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Km 2025-03-17
대구광역시 북구 동호길 96
서리지 수변생태공원은 도심 친수공간이자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힐링장소이다. 특색 있는 식물을 식재한 암석원, 가드닝 체험장,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 팔각정자 등이 조성되었고, 녹지공간에는 소나무 등 수목 52종 3만 5천 그루와 수변공간에 어울리는 물억새 등 초화류 31종 11만 포기를 식재해 경관이 훌륭하다. 2km의 서리지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보면 생명력 가득한 생 태안에서 하는 걷기 운동은 효과가 배가 될 것이다. (출처 : 대구북구청 홈페이지)
3.7Km 2024-12-30
대구광역시 북구 구리로 201-3 (국우동)
대구 북구 칠곡 지역에 위치한 디브몽트는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진 대형 베이커리 카페다. 갓 구워낸 빵의 고소한 향이 가득한 베이커리 공간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모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곳곳에 배치된 포토존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3.8Km 2025-03-17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5길 7-18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유교의 선현에 제사 지내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다. 화암서원은 고려 말 고려에 절의를 지킨 선정 백인관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서원이다. 백인관은 자는 사달, 호는 선정, 본관은 수원이며, 수원백씨 대구 노곡동 입향조이다. 백인관은 고려 말의 유학자였던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과 교유하였던 학자이다. 고려 말 나라가 문란해지자 부모를 모시고 본향인 수원으로 귀향하였다. 조선 개국 후 태종이 세 번이나 불렀으나 끝내 출사 하지 않고 금오산으로 이주하였다가, 이후 다시 길지를 찾아 대구 노곡동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화암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주심포 팔작지붕 양식의 건물이다. 화암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 건물인 숭의사와 강당인 경선재가 있고, 동재인 수덕재, 서재인 박학재, 내삼문인 진도문, 외삼문인 모송문 등이 있다. 화암서원은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태충각, 노원재, 영모재 등 여러 재실과 더불어 역사 문화 체험 공간으로, 인근 남쪽으로 금호강과 북쪽 함지산으로 이어지는 자연 체험 활동 공간으로 경험하여 보길 추천한다.
4.1Km 2025-03-17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길 45-7
탱자나무는 중국 남부 및 해안지대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경기도 남부의 경상·전라도 등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3~5월에 하얀 꽃이 피며 9~11월에 열매가 익는다. 나무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어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식재되며 묘목은 밀감나무의 대목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된다. 탱자나무 열매를 따서 곱게 말린 것을 지실이라 하고, 한약에서는 식체, 구토, 복부 통증 등 소화기 계통의 질환에 많이 사용되는 중요한 한약재이다. 북구 국우동 어느 한 집 뒤뜰에 옛날 울타리로 심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탱자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나무의 나이는 400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며, 세 그루 중 서쪽 언덕의 탱자나무는 지면 가까이에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뉘었는데 밑둘레가 1.7m에 이른다. 맨 동쪽에 서 있는 탱자나무는 높이 0.7m, 밑둘레 1.4m이고, 가지는 동남쪽으로 뻗어 자라고 있다. 강화도 갑곳리, 사기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고 포항시 보경사와 문경 장수 황씨 종택의 탱자나무도 경상북도 도지정 기념물이다. 극우동의 탱자나무는 다른 천연기념물이나 기념물에 뒤지지 않는 크기와 수령의 것들로 1992년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4.2Km 2024-05-10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665
대구 북구 8경 중 1경인 금호꽃섬은 2021년 9월 시민공모전을 통해 하중도에서 금호꽃섬으로 명칭이 변경된 곳이다. 팔달교와 노곡교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유채꽃, 청보리, 코스모스를 볼 수 있고 사계절 모두 방문하기 좋은 명소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구 대표 관광지이다.
4.3Km 2024-12-04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심천로 5-7
입석은 다른 말로 선돌이라고 부르는데,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일반적으로 땅 위에 한 개 또는 몇 개의 큰 돌기둥을 세운 형태를 하고 있는데, 당시 부족 간의 경계표시 또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기념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산 103번지에 있는 이 선돌은 높이 4.5m, 밑둘레 2m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으로는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돌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 새긴 것으로 보이며 선돌 자체는 훨씬 이전의 것으로 보인다. 선돌의 동쪽 주위를 개간할 때 민무늬토기, 돌그릇 등이 발견된 바 있어 청동기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4.9Km 2025-06-10
대구광역시 북구 호국로51길 45-17
서계서원은 1781년(정조 5)에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조선 태종 때 문예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오천 이문화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위패를 봉안하였다. 동화천의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계서원’이라 불리며, 서원 편액은 조선 말기의 명필 윤용구가 쓴 것이다. 1801년(순조 1)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싸운 이주 선생을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며, 이후 점차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 경내에는 3칸의 사우와 신문, 동·서 협문, 3칸의 강학당, 1칸의 서고, 각 3칸의 동재와 서재, 주사, 대문 등이 있다. 강학당은 화수정이라 부르며, 1924년에 중건되었다. 동재는 금수랑이라 하여 유림의 회합, 학문 토론, 행사 공간으로 사용되며 문헌과 가보도 보관하고 있다. 서재는 희리당이라 불리며 유생의 강학 공간으로, 창포리에 있던 환성정을 이전해 사용하고 있다. 서고는 부용장으로, 유생의 휴식처이자 숙소 역할을 하였고, 주사는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공간이다. 뒤편에는 이문화·이주 두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숭덕사가 있다.
4.9Km 2025-03-17
대구광역시 북구 호국로51길 45-17
환성정은 1582년(선조 15) 이주가 27세에 금호강 변에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구지방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주는 조선의 학자이며 성리학을 연구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사원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을 모집, 군량을 조달하고 초유사 김성일의 소모관으로 있었으며 뒤이어 체찰사 이덕형의 추천으로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향리에 묻혀 학문에 전념하다 서계서원에 배향되었다. 환성정은 이주가 타계한 후 없어졌다가 1902년 이주의 9세 손인 수헌 이억상이 지금의 자리에 중수했다. 정자는 6칸이었고 동쪽에 건 편액이 경의재, 서쪽은 체인재다. 1971년에는 11세손 회연 이순희가 다시 중수했다. 조선 후기에 연재 송병선, 심석재, 송변순 형제와 면암 최익현 등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곳에 방문하여 교유하고 강학을 하며, 대구지역 최고의 정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환성정은 서계서원의 경내에 있으며, 인천 이씨 서계서원 보존회에서 관리하고 환성정 현판은 대원군의 친필이다. 경내의 배롱나무는 2018년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수령 270년, 높이 10m, 가슴높이 나무둘레는 115㎝이며 가지가 갈라진 쌍간 나무이다. 이 보호수 외에도 총 10그루의 배롱나무가 꽃등처럼 경내를 환하게 밝혀 탐방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4.9Km 2024-12-02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시장1길 5
054-974-1312
대구 공업지대의 원심적인 확산으로 공장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대비하여 왜관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 낙동강변의 범람원상에 사과 과수원이 많고 교통이 편리하여 성주군과 칠곡군 일대의 농산물 집산지를 이룬다. 왜관장에서는 시장 내 농협공판장에는 참외, 수박, 오이 및 각종 과일을 염가에 구입할 수 있고, 시장사거리 도로변에는 노점상에서 싸고 싱싱한 야채를 구입할 수 있다.
5.0Km 2024-12-10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로3길 47-19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구홍과 조선 후기 의병장 구회신을 기리는 재실 송계당은 1960년에 중건하였으며, 후손 구현이 중건 기문을 썼다. 고려말 충신이었던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시문정공 송은 구홍과 그의 8세손이며 조선조 임진왜란 때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첨정공 계암 구회신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659년(효종, 10년)에 세운 건물인데 두 분의 아호를 따서 당호를 송계당이라 하였다. 가구는 3량 집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대청양쪽의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단 높고 난간이 둘러 쳐져 있다. 제고물 반자로 천정의 경사가 매우 낮고, 대공은 원형 판대공으로 되어 있으며 1960년에 중건하였다. 송계당 강당에는 기문과 시가 편액되어 있으며, 송계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무태 지역의 선비 정신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웃하여 현손이 거주하고 있는 능성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