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식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왜관식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왜관식당

왜관식당

11.2 Km    1     2024-02-14

경상북도 성주군 주산로 382

왜관식당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에 있는 청국장 전문점이다. 3대째 이어오는 맛집으로 모둠 청국장 전골, 차돌 청국장 정식, 할매 청국장 정식이 있고 그 외에 비지찌개 정식, 간장제육불고기, 촌두부, 콩국수 등이 있다. 각종 나물에 김치, 고등어조림 등 밑반찬이 푸짐해 집밥 느낌이 든다. 현지인들이 더 자주 찾을 만큼 인기 있는 식당으로 성주IC에서 가깝다.

현암서원

11.2 Km    2318     2023-11-03

경상북도 구미시 수출대로23길 30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죽정 장잠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장잠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중종 때 진사가 되었으며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 존경받았다. 1692년(숙종 18) 현암사우를 건립하고, 이후 1761년(영조 37)에 정당, 동재, 서재 등을 건립하여 현암서원이라 하였다. 대문인 보인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강당이 정면으로 자리하고, 강당 뒤에는 내삼문과 사당인 숭도사가 별도의 공간을 이루며 동일한 축으로 배치되는 전학후묘의 일반적인 서원 배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서원 아래에는 장잠이 강학하던 죽림정사가 있고, 서원 입구에는 회재 이언적과 강론을 하던 이현암이 있다.

동광알탕

동광알탕

11.2 Km    0     2024-01-08

경상북도 구미시 1공단로7길 86-9

동광알탕은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자리 잡고 있다. 한식 전문점으로 대표 메뉴인 알탕으로 유명하다. 알, 홍합, 두부, 각종 채소 등을 넣은 얼큰한 알탕 외에도 불고기덮밥, 우동, 새우튀김, 복어튀김 등을 맛볼 수 있다. 메밀국수는 여름철에만 맛볼 수 있다. 구미 IC와 가깝고, 인근에 금오산도립공원, 금오랜드가 있어 연계 관광이 수월하다.

달성 태고정

11.3 Km    22787     2024-02-05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달성태고정은 조선 성종 10년(1479)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이 세운 별당건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서 일부만 남았던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지은 것이다. 항상 바르고 올곧게 살자는 뜻에서 일시루라고도 한다. 대청에는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현판과 정유재란 후 이곳에 온 명나라 선무관이 남긴 현판 등이 걸려 있다 네모난 모양의 단 위에 서 있으며 앞면 4칸 ·옆면 2칸 크기로, 동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서쪽 2칸은 방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은 개방되어 있는데 옆면과 뒷면에는 문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청 앞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난간을 설치하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가구나 세부 가공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초익공계의 정교한 가구 구성을 갖추었기에,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태고정 주변으로 도곡재와 육신사, 충효당이 있으며 사육신기념관을 방문하여 사육신과 박팽년에 대한 전시 및 영상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육신사

11.3 Km    35480     2024-03-15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모셔 제사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로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숙종 17년인 1691년 낙빈사를 지어 이들을 봉안하고 제사 지냈으나,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다. 1974년부터 1975년 사이 [충효 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건물을 복원하였다. 이후 향사는 육신사에서 지내고 있다. 현재 육신사에는 숭정당, 숭절당, 사랑채, 외삼문, 내삼문 등의 건물과 보물 제54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과 태고정 안채 등이 남아 있다. 달성 태고정은 1479년 박일산이 태건립한 것으로 종택에 딸린 별당 건물이다. 이 밖에 사육신 육각비를 비롯하여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박준규 국회의장의 기념 비석, 헌성 방명록 비, 제13·14·15대 국회 의장 송산 박준규 생가 터 표석 등이 세워져 있다. 묘골 아름 마을 입구에는 사육신 기념관이 있다.

영명사(칠곡)

영명사(칠곡)

11.3 Km    18332     2023-12-08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금오동천로 84

영명사는 금오산 아래에 자리한 사찰이다. 1926년에 창건한 영명사는 본래 인근에서 작은 주막거리를 하면서 배고프고 아픈 이들을 돕고 살던 신심 깊은 어느 불자가 아들이 없음이 안타까워 부처님께 귀의하는 의미로 사찰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불자는 결국 아들을 얻지 못했지만 현재 영명사는 득남기도처로 유명하다고 한다. 영명사는 법당, 요사채, 목욕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인법당 형태의 전각으로 내부에는 최근 조성한 청동아미타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창건 당시 모셨던 삼존불상은 손상이 많아 경기도 여주의 목아박물관으로 이전했다. 이 밖에도 극락회상 후불탱화를 비롯하여 지장탱, 칠성탱, 신중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도곡재

11.4 Km    15597     2024-02-05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0

도곡재는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세거하는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에 있는 사랑채로, 1778년(정조 2) 대사성 서정 박문현이 주택으로 건립하였다. 19세기 중엽 도곡 박종우가 공부방으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도곡재는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 기와집이다. 평면 구성은 오른쪽으로부터 전면 툇간과 연결된 1칸 골방과 2칸 온돌방을 두고, 1칸 마루방과 1칸 누마루를 연접시켰다. 1칸 마루방과 1칸 누마루 사이에는 사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았다. 누마루는 후대에 툇간을 달고 대청을 넓혀 누처럼 꾸몄으며, 삼면 개방에 상부는 다락형으로 꾸미고 가적 지붕을 얹었다. 사랑채의 각 기둥에는 납도리를 얹어 장식성이 없는 소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도곡재는 전체적으로 전통 한옥의 일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박한 건물로, 사랑채나 안채의 외형 등을 집주인의 필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변형시켜 사용하는 사례를 보여 주는 건물이다. 도곡재가 위치한 묘골마을은 사철 아름다운 풍광과 곳곳에 박팽년과 관련된 육신사, 태고정 등 문화유산이 분포하여 먼 걸음이 보람될 수 있는 장소이다.

롯데하이마트 광평점

롯데하이마트 광평점

11.5 Km    0     2024-03-23

경상북도 구미시 구미대로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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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옐롱

더옐롱

11.5 Km    6     2022-12-15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로 560

더옐롱은 성주의 청년들이 모여 관광기념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주민사업체이다. “지역주민이 가장 보여주고 싶은 성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성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성주 여행을 리마인드 할 수 있도록 한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참외 산지인 성주의 장점을 담아 참외로 만든 먹거리 기념품(참외잼, 참외빵, 참외청, 참외말랭이 등) 과 성주의 풍경, 성주의 귀여운 마스코트 참별이를 이용한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상품에 이용되는 참외는 직접 생산한 참외를 사용하고 있으며, 6차 융복합인증을 받은 상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성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체험과 참외 음료를 맛볼 수 있다. (일부 상품과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운영)

묘골마을

11.5 Km    16529     2024-05-21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39-4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