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암산(충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포암산(충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포암산(충주)

포암산(충주)

10.3 Km    36277     2019-10-07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사지길

* 조령 5악으로 꼽히는 명산, 포암산 * 인근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등과 함께 조령5악으로 손꼽히는 포암산(962m)은 월악산국립공원 내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또한 백두대간의 주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재(525m)를 경계로 월항삼봉과 연결된다. 소백산의 중심부로 월악산(1,094m), 주흘산(1,108m), 백화산(1,064m)과 더불어 묘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이 곳의 하늘재는 본디 한훤령으로 불리워졌으며, 조선시대에 조령 관문이 뚫리기 전까지 한반도의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로서, 그 역할이 사뭇 지대했던 고개이다. 또한 하늘재 밑의 미륵사지는 고려 초기에 조성되었던 약 13,223m²(4천여평) 규모의 대찰로 주흘산을 진산으로 하여 좌우로는 신선봉과 포암산을 끼고 멀리 월악산을 조산으로 하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은 계곡산행과 능선산행을 병행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 포암산의 또다른 볼거리, 미륵사지 * 하늘재 밑의 미륵사지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약 4천 평의 대사찰로 주흘산을 진산으로 하며 좌우로는 신선봉과 이 산을 끼고 멀리 월악산을 조산으로 하는 중심혈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제95호인 5층석탑과 보물 제96호인 미륵석불이 있다. 미륵석불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북향석불'이다. 이 석불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을 담고있어 마의태자 자화상으로도 불린다.

충주호 종댕이길

충주호 종댕이길

10.5 Km    13462     2020-05-22

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

충주호 종댕이길은 충주호를 시원하게 내려다보며 동시에 자연 그대로의 숲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호수와 숲을 두루 누릴 수 있는 휴식의 길이다. 종댕이길의 종댕이는 근처 상종ㆍ하종 마을의 옛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충청도의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어원이다. 종댕이길이 둘러싸고 있는 심항산을 종댕이산이라고도 불렀다.

언덕넘어

언덕넘어

10.6 Km    18028     2020-01-29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송계로 9
043-845-7791

수안보 향토음식인 꿩 샤브샤브 등의 꿩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KBS, MBC, SBS 방송을 통해 언덕넘어 꿩요리를 수차례 선보인 바 있는 수안보 꿩요리 대표음식점이다.

사과나무집

사과나무집

10.6 Km    0     2020-09-21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비봉길 2
043-643-0888

모든 음식에 설탕, 조미료를 대신해서 사과 효소와 사과즙을 사용하여 만드는 레스토랑이다. 대표메뉴는 손두부 전골이다.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피로야 가라! 온천에서 즐기는 휴식 여행

피로야 가라! 온천에서 즐기는 휴식 여행

10.7 Km    6170     2016-09-27

수안보온천의 역사는 깊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조가 피부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충주의 유서깊 은 유적지를 돌아본 후 수안보 온천의 약알칼리수에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푹 쉬었다 돌아오자. 한결 활력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숲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 만수계곡 자연관찰

숲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 만수계곡 자연관찰

10.7 Km    3612     2017-09-20

숲에 들어가면 숲은 내 것이 된다. 숲 속 계곡 앞에서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1시간 30분 동안 숲과 계곡이 주는 모든 것을 마음껏 누려보자. 월악산국립공원 만수계곡자연관찰로 2km를 돌아 나오면 마음도 몸도 푸르러진다.

[출처]충주여행 30선 중에서

충주 미륵리 사지 귀부

10.3 Km    16556     2020-02-06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고려시대의 절터인 충주 수안보 미륵사지에 있는 귀부다. 현재 미륵리 사각 석등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옮기기 힘든 대형크기로 보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자연 암반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외형상 거북의 머리와 몸을 하고 있고, 윗부분에 비석을 끼워 고정하는 홈이 있어서 이 절터의 사적비를 받치는 데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뒷부분 일부가 조각이 덜 된 미완성 상태이다. 전체적인 외형과 돌 다듬는 수법으로 볼 때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안에는 이 외에도 석불과 석탑, 석등 등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근처에는 월악산과 충주호, 수안보온천지구 등 충주의 명소가 많이 있다.

중원 미륵리 삼층석탑

10.3 Km    15527     2020-02-05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시 수안보면의 미륵사지 근처에 있는 고려시대의 3층 석탑이다. 미륵사지 경내에서 동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원래의 터로 추정되는데 절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왜 탑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 ,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시대가 고려로 내려옴으로 인해 지붕돌 밑면받침 수가 4단으로 줄어드는 등 후대의 양식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갖추었다. 근처에 수안보온천과 하늘재가 있다.

미륵리 불두

10.3 Km    15734     2020-02-06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의 미륵사지에서 하늘재로 향하는 길가에 있는 불두이다. 불신은 없고 머리부분만 있다. 2000년 9월에 도난 당했다가 2003년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이후 새로 만든 불신 위에 불두를 올러놓았다. 높이 138cm, 너비 118cm로 불두만 보았을 때도 거대한 크기다. 불두의 전체인 모습은 역삼각형에 가깝고 머리 윗부분은 편평하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매우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옛 불상의 느낌이 보이지 않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조불두로 조형이 현대의 조각을 보는 것 같다.

하늘만큼 높은 하늘재를 걷다

10.7 Km    3413     2017-09-20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린 길이다.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달래며 넘었고, 공민왕의 황건적의 난을 피해 넘었던 길이다. 문경새재가 열린 뒤로 한적한 옛길이 돼버렸지만, 미륵리사지에서 하늘재로 이르는 2.5km의 길은 한없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숲길이다.

석종사(충주)

10.8 Km    35559     2020-06-16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길 271-56

석종사는 충주시의 외곽의 금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충주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진입로가 완전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 대형차량이 진입하기는 어렵다. 이전에는 공원지역으로 묶여 크게 중창할 수 없었으나 최근에 공원지역 지정이 해제되었다. 이후 대웅전 창건을 시작으로 여러 불사가 진행되었다. 불사는 혜국스님의 상좌들이 직접 중장비를 운전하고 신도들이 힘을 합쳐 불사에 동참하는 등 모든 이의 노력에 의해 진행되었다. 건물을 짓는 장인들은 현대 최고의 장인들이 참여했으며, 사찰을 조성하는 계획은 불교의 교리에 맞게 재해석하여 진행했다. 석종사는 출가한 승려만을 위한 공간을 지양하고, 재가자 역시 이곳에 몸담아 수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재가자들이 말년에 수행하면서 요양도 겸할 수 있는 평생선원으로 조성할 계획의 일환이다. 가부좌만 틀고 않아 멍하니 시간만 보낸다고 해서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연유로 별다른 수행의 경험이 없는 재가자들에게 스님들의 조언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 석종사의 창건 배경 * 고려시대부터 이곳에는 죽장사라는 사찰이 위치하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에 폐사되어 근래까지 폐사지로 남아있던 곳이다. 이곳에는 단지 작은 석탑 한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다시 사찰로서 그 역사를 시작한다는 것조차 매우 버거워보였었다. 이런 석종사는 최근 들어 혜국스님이 주석하게 되면서 다시 사찰로서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스님께서 봉암사에서 수행 중이던 중 하얀 옷을 입은 스님이 나타나 “아이고, 중노릇이 시원찮으니 전생에 살았던 데도 모르는구만!”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에 놀란 스님께서 “거기가 어디입니까?”하고 물으니 “죽장사도 몰라?” 하면서 앞에 눈에 익은 광경이 펼쳐지는데 사찰의 모습이 보이면서 작은 탑이 보이더라고 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물으니 중원 땅 어느 곳이라고 하시며 인연을 따라 아침에 떠나라고 한다. 다음날 봉암사를 떠나 길을 걷는 도중 버스를 잡아타니 충주로 향하던 버스였다. 충주에 닿아 이곳저곳 땅을 알아보던 중, 스님이 보여준 모습과 같은 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연이 이와 같아 그랬는지 이미 3년 전에 매물로 나와 아직까지 주인을 만나지 못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자리 잡은 혜국스님은 비구든 비구니든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갈 데 없는 노인들을 모셔 같이 살게 되었고, 후에 이분들이 외로워 하셔서 부모 없는 아이들을 모아 학교 공부를 시키고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석종사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게 되었다.

충주 산성

10.8 Km    38587     2019-10-23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삼국시대 산성, 충주산성 *

충주산성은 충주시 안림동과 직동 및 목벌동에 걸쳐 있으며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퇴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 전형적인 고식을 보이며 성 둘레는 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지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 및 기와쪽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는 옛날부터 삼국시대 각국의 변경으로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 흔적이 고구려의 유산인 중원고구려비, 신라의 유산인 누암리 고분군이며 충주산성 또한 그같은 사례이다. 축성에 대한 유래는 기록이 분명치 않아 알 수 없으나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 하여 일명 마고성이라고도 하며, 또한 백제 구이신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 몽고군과의 격전지로 추정되는 산성 *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되며,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퇴하였다.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차라대도 물러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다.

* 마고선녀의 전설이 살아있는 곳 *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麻姑仙女)가 7일 만에 축성하였다 하여 마고성(麻姑城)이라고도 한다. 《조선약사(朝鮮略史)》에는 백제 구이신왕 시대에 쌓은 것으로 개로왕 21년(475)에 보수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고려시대에는 왕을 칭하던 자가 점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충북기념물 제31호
지정연도 : 1980년 1월 9일
시대 : 삼국시대
종류 : 성지
크기 : 면적 1,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