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Km 2025-04-03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수몰역사관은 청풍 문화재 단지 안에 있는 전시관이다. 충주댐 건설 배경과 그로 인한 수몰 지역의 역사 자료를 보존하고 당시의 주민들 생활상을 담은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충주, 제천, 단양의 11개면, 38,663명의 인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총 수몰 면적 약 50%가 제천 지역이다. 댐이 생기면서 고향을 떠나기 전, 강가에 나와서 안타까운 마을 잔치를 벌이는 한수면 주민들의 모습, 청풍면 읍리의 유일한 의료 지원시설인 근춘약방, 수동 펌프 등 옛 추억과 향수가 묻어나는 사진과 모형을 볼 수 있다. 청풍 문화재 단지에는 수몰민을 위하여 청풍 읍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만남의 광장을 만들었으며 수몰 역사관과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16.0Km 2025-04-22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
충주 문주리 석조 여래 좌상은 충주시 대소원면의 탑동마을에 있는 석불 좌상이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마을 가운데에 있으며 주민들이 흙벽돌로 보호각을 만들어 봉안하고 관리도 하고 있다. 충주 문주리 석조 여래 좌상은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불상으로, 팔각 연화대좌와 광배가 함께 전한다. 그러나 석불과 광배는 대좌의 석질이 다르고, 조각 솜씨도 달라서 석불과 광배는 대략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표현되지 않았다. 이마에는 백호공이 있으며, 얼굴에 비해 코는 크고 입은 작으며 눈은 반개한 모습이다. 양쪽 귀는 짧고 어깨는 약간 위로 올라간 모습이며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보인다. 법의는 편단우견인데 옷 주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게 처리하였으며 등 뒤에까지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있으며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대좌는 하대석과 중대석만 남아 있고, 상대석은 깨어져서 스님이 기거하는 집에 방치되어 있다. 상대석의 연화문은 불상과 달리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기단석에는 안상이 조각되고 하대석에는 복련을 돌려서 표현하였다. 광배는 불상 뒤편에 따로 떨어져 있으며, 원형의 석조 광배로 두광에는 중심 원좌가 있고 주변에 연화문을 두른 원광이 있다. 신광에는 2줄의 선을 융기시켰는데 주변에 화염문의 흔적이 보인다. 불신의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고 조각이 소략하지만 대좌의 조각은 뛰어나다.
16.0Km 2025-03-17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청풍 황석리 고가는 청풍 황석리에 있는 옛 집으로, 앞면 4칸 규모이며 오른쪽 앞에 퇴칸은 두었다. 부엌·안방·윗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안방과 윗방 앞에는 마루를 놓았고, 사랑방 앞에는 마루 없이 옥외 취사공간인 한데 부엌을 두고 머리퇴에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맞을 수 있게 하였다. 청풍 황석리 고가는 머리퇴를 둔 4 칸집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16.1Km 2025-03-17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청풍문화재단지 안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 건물이다.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다. 충주댐이 생기면서 한벽루와 함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제천 청풍 응청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건물을 세웠는데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다. 2층은 앞면만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워서 난간을 둘렀다. 동남쪽으로 3단의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단청하지 않고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서 소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누각이다. 제천 청풍 응청각은 한벽루 서측에 위치한 조선 시대 청풍현 관아 건물의 하나로서 건물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방관과 고을의 세력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중들의 삶을 보듬는 정담을 나누던 장소로 여겨진다. 관아의 누각이면서도 비교적 소박함이 깃든 건물이다.
16.1Km 2025-11-07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청운로 35
청운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제5대~9대)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약 4년간 하숙을 했던 장소이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문경 인근 지역에 행사가 있으면 이곳 청운각에 들르곤 했다. 청운각은 1928년에 지어졌고 20세기에 들어 건물을 재정비하였다. 지금은 대통령의 사진과 당시 사용하던 물품 등을 전시하여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인근에는 KBS 드라마 촬영장, 문경새재도립공원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16.1Km 2025-04-28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가 바로 단양팔경 중 하나인 구담봉(龜潭峰)이다. 기암절벽 바위가 강물에 비쳐 어른거리는 모습이 마치 거북 등껍질 같다 하여 호수 속 거북, 즉 구담(龜潭)이라 하였다. 구담봉은 그 이름으로 인해 아홉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 구(九)담봉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시사철 절경을 자랑하지만 특히, 가을 단풍이 절정에 달할 때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단양읍에서 구담봉을 향하는 36번 국도는 대한민국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뽑힐 정도로 수려하고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은 중국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 없다고 극찬한 바 있다. 옥순봉(玉筍峰)은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처럼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기암으로 이뤄진 봉우리가 워낙 독특하고 아름다워 작은 금강, ‘소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단양 구담봉과 함께 충주호 유람선이나 관광선을 타고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특히, 가을 단풍 계절에는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옥순봉은 본래 청풍(현재 제천) 땅에 있는 것인데 이곳이 단양팔경에 속하게 된 데에는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명종 때 단양 군수였던 퇴계 이황이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 달라고 청풍 부사에게 청하였으나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요청하기가 껄끄러웠던 퇴계 이황은 고민 끝에 옥순봉 석벽에 단양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의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귀를 새기면서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단구동문 암각자는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인근 구담봉과 함께 여러 시인, 화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절경지이기도 하다.
16.2Km 2025-03-17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
임경업 장군 묘소는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명장 임경업 장군의 묘소다. 임경업은 광해군 10년(1618)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2년(1624)에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에는 의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백마산성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큰 공을 많이 세웠지만, 청을 반대하던 장군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반대파에 의한 모함으로 희생되었다. 숙종 23년(1697) 다시 좌찬성의 관직이 내려지고 충렬사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묘소의 석물로 양호석, 망주석, 묘비 등이 있었으며, 이 외에 정화 사업으로 상돌, 동자석, 무관석, 장명등을 새로 만들어 설치하였다. 충주 임경업 묘소는 부인 전주 이 씨와의 합장묘로 큰 편이며 봉분 아랫부분에는 화강암으로 둘레돌을 두른 원형분이며 주위에는 망주석과 신도비 등이 놓여 있다. 묘소 주변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가까이에 영정을 모신 충렬사가 있으며 유물 전시관에서 임경업 장군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16.3Km 2024-05-23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대로 8
043-848-9900
더베이스는 실내,외 웨딩홀에는 첨단 웨딩연출 장비 배치되어 있으며 각 연회실 별 빔프로젝트, 초대형 벽면스크린, 음향시스템, 노래방기기, 축소형 에펠탑 설치로 운치를 더 해주는 아름다운 호수가의 낭만이 있는 호텔이다.
16.3Km 2025-04-18
충청북도 충주시 관아1길 21
충주 청녕헌은 충주 시내의 관아공원 안에 있는 충주목 동헌이다. 관아공원 안에는 웅장한 팔작지붕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 충주 목사가 충주를 다스리던 관아의 동헌인 충주 청녕헌과 관리들이 머물렀던 충주제금당이 있어 충주가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청녕헌은 옛 관청인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이며 충주 목사가 근무를 하던 곳이다. 1870년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조병로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 자리를 옮기면서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7칸, 옆면 4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집이다. 의병전쟁 때에는 호좌 의병장 유인석의 군대가 충주성을 점령하여 한때 위세를 떨쳤던 곳이다. 충주 시내에 얼마 남지 않은 옛 건축물로 보존 가치가 높다. 관아공원 내에는 곳곳에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16.3Km 2025-11-04
충청북도 충주시 관아1길 21
중앙공원이라고도 부르며, 면적은 약 7,500㎡이다. 조선시대 충주 읍성 내에 있던 충주목(忠州牧) 관아터에 조성한 공원으로, 청녕헌(淸寧軒)과 제금당(製錦堂) 등 옛 관아건물이 남아 있다. 관아공원에 가면 가장 먼저 바깥쪽 현판에는‘충청감영문’이라 적혀 있고 안쪽 현판에는 ‘중원루’라고 씌어 있는 멋스러운 2층 문루를 만나게 된다. 문루를 지나 마당에 서면 웅장한 팔작지붕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관아의 동헌으로 쓰이던 충주 ‘청녕헌’이다. 동헌은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이다. 조선 고종 7년(1870)에 불타버린 것을 같은 해 10월에 중건했다. 청녕이라는 이름은 노자의 도덕경에서 따온 것으로, ‘맑고 편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날렵한 지붕선과 돌로 꾸민 외벽이 인상적이다. 충주 청녕헌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청녕헌 맞은편으로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충주 ‘제금당’이 있다. 제금당은 귀빈들이 묵던 영빈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청녕헌과 함께 불타버린 것을 역시 같은 해 중건했다. 제금당 뒤쪽으로는 산고수청각이 자리한다. 오늘날의 비서실 또는 부엌과 같은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관아건물들은 1870년(고종 7년) 8월 화재로 소실되어 같은 해 10월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중건한 것으로, 그 후 내부를 개조하여 중원군 청사로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이 이전하면서 충주시에서 해체하여 복원한 후 그 일대를 공원으로 꾸몄다. 관아공원은 주변에 있는 충주문화회관, 관아갤러리와 함께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역사체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아공원은 곳곳에 자리한 거수목과 고색창연한 관아 건물이 어우러져 옛 정취를 풍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