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숲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동호숲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동호숲

동호숲

13.9Km    2025-03-17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1055-1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에 위치한 동호숲은 약 500년 정도의 유서가 깊은 숲이다. 전체 면적은 약 66,000㎡이며, 30년 이상된 소나무, 자작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동호숲의 울창한 나무와 동호리 이씨고가, 영은고택이 어우러져 다양한 볼거리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제1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존상 수상의 숲으로 마을의 재물이 날아가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음이 담겨 더욱 아름답고 우거진 숲을 이루게 되었다.

캠핑 뜨락 오토캠핑장

캠핑 뜨락 오토캠핑장

13.9Km    2025-10-27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조마로 1211-10

캠핑 뜨락 오토캠핑장은 경북 김천시 조마면에 자리 잡고 있다. 김천 시청을 기점으로 강변로, 양금로, 조마로를 지나 30분이면 도착한다. 이곳은 산새 소리가 지저귀는 숲속에 위치했다. 덕분에 고즈넉함과 청량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캠핑장에는 사이트 내 주차가 가능한 오토캠핑장 21면이 있다. A 구역은 데크 2면과 잔디 5면으로 이뤄졌으며 B 구역은 잔디 10면, C 구역은 파쇄석 4면이다. 데크 크기는 가로 3.6m 세로 6m, 잔디는 가로 7.5m 세로 9.5m, 파쇄석은 가로 6m 세로 8m다. 사이트마다 일반 식탁 크기의 바위 테이블을 배치한 것이 눈에 띈다. 화로 대, 전기,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며 관리소 겸 매점에서 릴 선과 화로대를 빌릴 수도 있다. 캠핑장 인근에 김천 부항댐 물 문화관, 도동서원 등이 있어 연계 관광하기에 좋다.

가야산생태탐방원

가야산생태탐방원

13.9Km    2025-11-11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봉양로1길 313

국립공원공단은 자연·사람·미래를 연결하는 국립공원 생태체험 사업을 종합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생태탐방원을 설립했다. 성주군 수륜면에 위치한 가야산생태탐방원은 가야산국립공원에 위치한 생태체험·환경교육 전문기관으로 2018년 11월에 개원했다. 가야산권의 우수한 생태, 문화, 자원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과 생활관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 가족 단위뿐만 아니라 워크숍, 연수 등 단체 이용객을 위한 강당, 강의실 등이 갖춰져 있다. 계절별 각기 다른 오전, 오후 상시생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경상북도 유니크베뉴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자연 속 힐링을 필요로 하는 이용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거창 솔향기돌담마을

거창 솔향기돌담마을

14.0Km    2025-03-17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3길 20

솔향기 돌담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에 위치하고 있다. 동호리(東湖里)는 삼한시대부터 옛터라고 하며, 웅양면 남북으로 흐르는 미수천의 동쪽에 자리하였다고 하여 동변리로 칭하였으나, 19세기 초, 순조 때 이곳에 살전 진사 이지유의 호를 따 동호리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연안 이씨 집성촌으로 전통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경상남도 서북부 끝에 위치해 있어 덕유산국립공원, 가야산 국립공원, 지리산 국립공원에 둘러싸여 멋진 절경을 자랑한다. 소백산맥의 영향을 받아 전형적인 분지가 발달해 있으며, 경남의 다른 지역보다 고도가 높은 해발 200m 내륙 산간 분지로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달콤하고 맛있는 사과와 포도를 재배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나는야 꼬마 선비화가 옛 그림 체험, 전통염색체험, 고택탐방, 전통떡매치 등 전통체험과 포도따기, 사과따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가야산국립공원 치인자동차야영장

가야산국립공원 치인자동차야영장

14.1Km    2025-11-13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645-8

치인 자동차 야영장은 가야산국립공원 해인사지구인 치인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짙은 그늘이 시원함을 선사한다.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과 주차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새로 지은 화장실은 넓고 깔끔하다. 캠핑장 바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시원하다 못해 얼음물처럼 차가울 정도다. 이곳에서 물고기 잡기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용문폭포, 용문 자연관찰로와 인접해 있어 다양한 자연체험이 가능하며 합천 해인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연계관광이 용이하다.

춘천서원

춘천서원

14.2Km    2025-10-27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부항로 1453-3

춘천서원은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으로 춘천서당이라는 현판과 서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로 이곳이 춘천서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노론파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과 그의 후손 운평 송능상을 제사하기 위해 1756년(영조 32)에 건립한 서원이다. 지역 내 노론파 유림들이 여기에 모여 학문을 연구하였다. 1868년 철폐되어 현재는 일반 한옥 주택과 비슷한 규모의 작은 강당만이 남아 있다. 현재 향사는 지내지 않으며, 매년 곡우가 되면 함께 공부했던 연안이 씨, 하빈이 씨, 벽진이 씨, 순천박 씨, 거창신 씨, 성산이 씨 여섯 가문의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 조상을 기리며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곰내미체험마을

곰내미체험마을

14.3Km    2025-08-18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화평길 6

곰내미마을은 웅양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곳인 거창군 웅양면에 자리한 농촌체험휴양 마을로 9월이면 포도 향으로 온 마을이 달콤해지는 곳이다. 5월에는 넓은 밭에서 자라는 고사리 꺾기 체험을 하고 9월에는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캠벨얼리 포도와 샤인머스켓 포도를 내 손으로 직접 수확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감자빵, 고구마빵 만들기, 사과 피자 만들기, 하바리움 만들기, 수제 소시지 만들기, 농작물 수확체험 등 다양하다. 귀농귀촌 현장 프로그램인 농촌에서 살아보기를 운영하여 귀농귀촌에 대한 정보 제공과 성공적인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큰 일교차로 인해 좋은 품질의 포도와 사과가 생산되며 싱그러운 포도와 사과 향기가 향긋하게 풍기는 지역으로 농산물, 웅양포도 뿐만 아니라 포도엑기스, 건고사리, 사과 과즙액 등 지역 농특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체험마을에는 숙박 시설도 완비되어 있어서 숙박을 하면서 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산여울식당

산여울식당

14.4Km    2025-11-25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1415-14
054-931-5809

산여울식당은 성주군 포천파크와 포천계곡 가는 길에 위치한 한식당이다. 다양한 정갈한 한식 메뉴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대표메뉴는 빨간 양념의 오리양념불고기이다. 이외에도 시원하고 담백한 황태해장국, 점심의 대표 메뉴인 제육정식, 매콤한 쭈꾸미정식 등이 있다. 또한 몸보신에 좋은 꿩탕, 능이오리전골, 능이닭백숙 등이 있다.

무주 금척마을(금자마을)

무주 금척마을(금자마을)

14.6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풍면 탄방로 181

경상북도 김천과 충청북도 영동과 접하는 금자 마을은 전라도의 포근함과 경상도의 매력, 충청도의 온순함이 함께 묻어나는 마을이다. 논농사를 지으며, 사과 과수원이 마을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마을에 이쁜 집들이 곳곳에 있어 경관도 우수하다. 마을 뒷산에는 옥녀봉에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이 마치 금으로 만든 자(尺)처럼 생겼다고 하여 쇠자, 쇠 제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한문으로 표기되면서 마을명이 금척(金尺)이 되었다. 이런 전설을 토대로 테마를 금자(금 잣대로 비단옷을 재단하는 선녀 마을)로 정하고 50여 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농산정

농산정

14.9Km    2025-03-19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1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