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Km 2025-07-29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국가유산과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청북도청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국가유산을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 단지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국가유산을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와 청풍 석조여래입상 등 보물 2점과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 응청각, 청풍 향교 등 건축물 및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 한벽루에서 충주호가 한눈에 보이며 주변에 비봉산, 구담봉, 옥순봉, 능강구곡, 금수산, 단양 8경, 월악산국립공원, 수안보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다. 제천 청풍 한벽루은 고려 충숙왕 4년 (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며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제천 청풍 응청각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 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 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 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청풍 금병헌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 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 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 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 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 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 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제천 후산리 고가는 본래 청풍면 후산리 105번지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이다.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하여 동남을 향하고 있다. 대청의 우측에 2칸 크기의 건넌방과, 툇마루를 높이 하고 그 밑에 함실아궁이를 두고 있다. 대청은 좌측으로 윗방이 있고 윗방에서 동쪽으로 꺾어 대청의 좌측으로 후퇴를 후보 하여 제사방으로 꾸미고 있다. 전체적인 내부의 배치가 특이하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천 도화리 고가는 본래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민가였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ㄷ자형의 우진각 기와집이다. 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을 이루고, 좌측 간살은 방, 부엌, 광으로, 우측 간살은 방 2칸과 부엌으로 되어 있다.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살자창 옆의 관솔을 피워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본래 이전하기 전의 흔적으로 보아 앞쪽에는 바깥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청풍 황석리 고가는 본래 청풍면 황석리 164번지에 있었던 민가이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며, 조선 말기의 건축물로 좌측(서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윗방을 나란히 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안방과 윗방 앞에는 길게 툇마루를 두고, 사랑방 퇴는 부엌으로 구성하였다. 툇마루와 사랑 부엌 사이의 퇴주(각주) 이름이 특이하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연리지와 연리목은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라고 한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 하여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 쉽게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닿을 기회가 적을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15.4Km 2025-04-03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수몰역사관은 청풍 문화재 단지 안에 있는 전시관이다. 충주댐 건설 배경과 그로 인한 수몰 지역의 역사 자료를 보존하고 당시의 주민들 생활상을 담은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충주, 제천, 단양의 11개면, 38,663명의 인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총 수몰 면적 약 50%가 제천 지역이다. 댐이 생기면서 고향을 떠나기 전, 강가에 나와서 안타까운 마을 잔치를 벌이는 한수면 주민들의 모습, 청풍면 읍리의 유일한 의료 지원시설인 근춘약방, 수동 펌프 등 옛 추억과 향수가 묻어나는 사진과 모형을 볼 수 있다. 청풍 문화재 단지에는 수몰민을 위하여 청풍 읍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만남의 광장을 만들었으며 수몰 역사관과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15.5Km 2025-07-07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성종두담길 113
대영베이스CC의 지형 지리적 조건은 국내 타 골프장의 물리적 환경과는 차별화된 이국적인 경관을 가지고 있다. 부지가 가진 특색은 주변 지형보다 높은 고지대인 것 같은 원초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 수림과 계곡이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이다. 가장 기본적인 컨셉으로 출발하여 현재 부지가 가진 특색이 최대한 골프 코스 컨셉에 그대로 반영되도록 하였다. 먼저 기본적인 골격을 조성하는 코스의 길이와 폭은 최대한 넓게 하였고, 18홀 7,000야드는 어떠한 수준의 대회라도 유치할 수 있는 샷 벨류가 살아있다. 전략적인 레이아웃이 있고,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코스 전경은 편안하면서 와이드 한 이미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15.5Km 2025-03-06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미륵송계로 1588-1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이 가옥은 조선 후기 이조판서를 지낸 김세균의 소실이 살던 집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겼으며,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다.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었으나 안채는 무릉리에 옮겨 짓고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 ‘ㄱ’ 자형 구조로 가옥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덕주산을 배경으로 높은 축대에 자리해 있어 돌계단을 올라 일각문을 지나면 멋진 자태를 들여다볼 수 있다.
15.5Km 2025-03-17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조선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 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유산단지 안으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탁 트여 멀리 있는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한다.
15.5Km 2025-03-17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청풍부의 동헌으로 부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던 건물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하였다. 숙종 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창건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 번 개축한 기록이 있다. 건물 내부에 청풍관이라는 현판이 있다. 건물은 2단의 기단 위에 세운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전면 1칸은 마루를 깔고 뒤쪽으로 방이 있으며 왼쪽 2칸은 마루에 난간을 둘러 마치 누각처럼 꾸몄다. 청풍 지역의 관아 건축 중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이다. 관아 건물과 함께 원래의 배치 모습으로 복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제천 청풍 금병헌은 옛 청풍부의 중심 건물로서의 상징성과 조선 후기의 소박하고 단아한 건축 양식적 특징이 잘 표현된 지방 관아라는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15.5Km 2025-11-25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청풍 후산리 고가는 청풍문화재 단지 안에 있는 전통가옥이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일대가 수몰되게 되자 청풍면 후산리에 있던 옛 가옥을 옮겨온 것이다. 수몰 전에는 사람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청풍문화재 단지에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있지만 일반적인 예로 보아 안마당 앞에 사랑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넌방 쪽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부엌 쪽은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어 오래된 양식을 보여준다. 가옥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주위로는 막돌 담장을 둘렀고, 가옥의 동쪽 뒤편 담장 앞에는 단칸 규모에 이엉을 얹은 아담한 광이 자리 잡고 있다. 집 안에는 수몰 전에 사용하던 가재도구 및 농기구를 전시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제천 후산리 고가는 평면 형식, 가구 형식 등에서 농촌 지역의 부농 주거로서의 전통적인 건축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 양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안방 뒤에 수납공간인 윗방과 대청 한구석에 상제례를 위한 상청을 둔 특징이 있다.
15.5Km 2024-12-10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 청풍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이곳은 고려 충숙왕 때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원래 물태리에 있던 것을 정조 3년에 교리로 옮겼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지금은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등이 남아있다. 청풍 문화재 단지 내 청풍 망월 산성 남쪽 언덕 아래에 있으며 이전한 장소의 지형에 맞추어 남서향으로 3단으로 조성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교육 공간이 앞에, 제사 공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학생들의 생활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교육 공간을 이루고 있다. 뒤쪽으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어 제사 공간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이 남아있다. 청풍 문화재 단지를 관람하며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15.5Km 2025-11-04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를 지나는 38번 국도에는 과거의 미술품들과 생활용품들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거리가 있. 여기에서 옛물건이나 고미술품들을 팔라고 누가 지정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공예가들과 고미술 상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거대한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민속공예거리에서 옛 유물과 나무뿌리조각, 항아리, 솟대, 석탑, 수석, 민화 등을 공예가나 상인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며 구경도 하고, 구입할 수도 있다. (출처 : 충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15.6Km 2025-03-11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문화재길 54
청풍나루는 충북 제천시 청풍면에 자리한 청풍호의 나루터였다. 정확한 설치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이전부터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몰 이전 강폭은 약 250m이었는데 여울이 심하고 수심이 얕아서 배는 삿대를 이용하였고 수량이 많으면 노를 저어 도선하였다. 나룻배는 교리 학생들이 통학에 이용하거나 지역 주민들이 나무를 하거나 청풍 장에 땔감을 판매하기 위해 도선하였다. 나룻배는 하루에 60~70명을 싣고 다녔다. 충주댐의 건설로 청풍호가 형성되면서 1984년 9월 청풍나루 자리에 선착장이 개설되었다. 청풍나루는 청풍호반을 오가는 유람선들의 출발지이자 도착지다. 주차장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에 주차 후 승선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선착장에 가면 승선 신고서를 작성해서 매표소에 신분증과 함께 제출하면 확인 후 승선권을 발부해 준다. 청풍나루에서 장흥나루까지의 왕복은 1시간 반가량 걸리며 출발 30분 전까지는 승선장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면 호수와 어우러진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청풍~장회나루 코스는 충주 대교를 비롯해 충주호와 어우러진 옥순봉, 구담봉, 금수산 등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