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석공방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웅석공방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웅석공방

웅석공방

0m    10699     2020-09-14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 1325
055-973-4118

웅석공방은 지리산 자락인 웅석봉 아래에 위치하여 전통소목가구와 예술가구, 목공예 생활용품등을 생산하고 있다. 기반 시설로는 전시동 60평(2층)과 작업실, 관리실 및 전시판매장을 두고 있다. 2001년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지리산 중산리에 지리산 문화상품 개발연구소를 5개 대학 (홍익대, 전북대, 신라대, 진주산업대, 연암공업대학)의 협조로 개설하여 공예아카데미를 개최하기 위한 시설과 지리산권을 중심으로 한 공예품 및 문화상품 개발을 위해 전시관과 미술관을 갖추어 개발과 보급 그리고 일반인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고있다.

웅석계곡

웅석계곡

796m    25146     2019-12-04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호암로1253번길

군립공원 웅석봉(1,099m) 기슭의 청정한 계곡으로 산청읍을 휘감아 흐르는 경호강에 물을 보태준다. 지곡사를 지나 웅석봉 본류와 지류가 만나는 합류지점을 건너면 산길에 접어든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완만한 능선과 연결되는 등산로이고, 계곡으로 들어서면 등산로는 가파르지만 한국자연보존협회에서 '한국명수1백선'으로 선정한 선녀탕을 감상할 수 있다. 웅석봉 등반을 하려면 어느 쪽으로 올라도 능선에서 만나므로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계곡으로 들어서면 점차 경사가 심해진다. 땀을 흘리며 오르다 보면 이름 없는 폭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소(沼)들이 이어진다. 웅석봉의 절경이 선녀탕은 두 계곡이 만나는 지점 바로 위에 있는데, 주변에 넓은 암반이 펼쳐져 있어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가을에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피서와 등반을 위해 많은 관광객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참조은펜션

참조은펜션

1.6 Km    0     2020-04-27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산청대로1212번길 112-5
010-9459-4603

참 조은 펜션은 원목으로 이루어져 자연 친화적이며 깔끔하고 모던한 복층 객실이 준비되어 있다. 단체 펜션에 알맞은 넓은 주차장과 여러 가지 즐길 거리들이 있으며 펜션 바로 뒤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다.

청계계곡

청계계곡

2.1 Km    29692     2020-09-29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701번길

선사시대의 유적인 '선돌(立石)'을 비롯해 천년의 풍상을 이겨온 석탑이 아직 남아 있는 단속사지, 6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혹독한 시집살이를 못 이겨 죽고만 어느 여인의 한맺힌 삶이 아직도 고갯마루에 돌무덤으로 서 있는 계곡이 청계계곡이다. 볼거리가 많고 사연이 많은 계곡답게 차로 한달음에 찾아갈 수 있게 잘 개발되어 있으며 청계(淸溪), 단속(斷俗) 등의 이름에서 벌써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계곡이 얼마나 맑았으면 '청계'라 했나 싶고, 골짜기가 얼마나 깊으면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이라 했을까 싶다. 먼저 청계계곡의 들머리에 해당하는 남사마을부터 고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목화를 처음 재배한 배양마을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4㎞ 거리에 있는 남사마을에 들어서면 정감있는 토담집 앞에 우뚝 솟아있는 솟을대문 그리고 고졸한 멋이 느껴지는 40여채의 기와집과 동네를 뒤덮고 있는 숲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의 품위를 느낄 수 있다. 남사마을을 지나면 호암교 위로 운곡 관광농원, 다물민족학교 등의 푯말이 있는데 이 푯말을 따라 들어가면 청계계곡이다. 계곡을 들어서면 입석마을을 보게 된다. 입석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높이 약2m의 선사시대 유적인 '선돌'은 청계계곡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증거물인 셈이다. 단속사는 가족간에 오붓이 야영할 수 있는 공간과 도로변에 민박집이 있어 쉼터로도 적당하다. 또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 단속사는 현재 보물 72, 73호인 3층석탑이 있고, 한때는 경덕왕의 초상화와 솔거가 그린 유마상 (維摩像)에, 각기 다른 형상의 석불만도 500여기가 있었다고 한다. 석탑이 있어 마을 이름도 탑리로 부르는 단속사터에는 옛절의 규모를 말해주듯 당간지주가 석탑과 멀찍이 떨어져 있다. 당간지주를 지나 석탑 앞으로 올라서면 천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그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탑 2기가 동서로 나란히 서 있다. 아무 기교없이 다듬어 놓은 단아한 모습의 석탑은 그것으로 이미 지난 세월의 풍상을 모두 말해준다. 특히 석탑 앞의 대나무는 석탑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올곧게 서 있고, 석탑 뒷편 정당매(政堂梅)로 불리는 매화나무와 비각은 또 하나의 전설을 더해준다. 탑을 돌아나와 고갯길로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청계계곡의 백미라 일컫는 계곡이 나온다. 여름이면 사라진 절의 흔적인 양 바위틈새를 비집고 서 있는 소나무 그늘을 의지한 텐트들이 들어서는 곳이다. 여기가 없었다면 청계계곡이란 말도 없었을 정도로 계곡이 아름답다. 넓다란 시내폭에 잔돌로 이루어진 공터가 있고, 물도 맑은데다 깊이도 어른 무릎 정도라 물놀이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선유동계곡(산청)

선유동계곡(산청)

3.4 Km    28672     2019-12-04

경남 산청군 신안면 수월로

선유동(仙遊洞)이라는 글자 그대로 선녀가 하강해 놀았던 곳이다. 그 증거로 사람들은 계곡에 선녀가 술을 빚어 담아 두었다는 동이 2개가 아직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 폭포 위쪽에 있는 거대한 반석에 보면 지름이 50cm, 깊이가 약 2m에 이르는 장독 모양의 커다란 홈이 있다. 대나무와 소나무가 언제나 푸르름을 뽐내는 수월마을은 선녀가 놀다간 절경 아래 위치한 마을답게 소담스런 풍경을 하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계류따라 1km 정도 가면 암벽 깊숙이 감춰져 있는 수월 폭포가 보인다. 수량은 많지 않으나 높이 약 15m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의 모습이 여인의 단아한 치마폭 같이 조신해 보인다. 폭포수가 모이는 소(沼) 역시 명주 실타래를 세 개나 풀어도 끝이 닿지 않는다는 말처럼 깊은 데다가 주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해 신비감까지 자아낸다. 특히 폭포를 이루고 있는 바위 위쪽에는 용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승천하면서 물 양쪽 바위를 걸어가며 천천히 하늘로 올랐는데 그 발자국이 이어져 두 줄로 길게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선유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한 전설이다. 선유동의 이름을 낳은 계곡은 폭포에서 다시 1km 정도를 더 올라가야 한다. 선녀들이 빚은 술을 담았다는 동이 모양의 홈을 비롯해 자연스레 생긴 바위의 굴곡을 두고 선녀들이 한잔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남겼다는 발자국이라는 그럴듯한 해설을 들으면서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는 우리네 민족성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웅석봉군립공원

웅석봉군립공원

4.1 Km    28392     2019-12-04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

1983년 11월 23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웅석봉은 지리산에서 흘러온 산이면서도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산인다. 천왕봉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져 쑥밭재~새재~외고개~왕등재~깃대봉을 거쳐 밤머리재에 이르러 한 번 치솟는데 이 산이 바로 웅석봉(熊石峰)으로 산의 모양새가 곰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자연보존협회에서 '한국명수 1백선'으로 선정한 선녀탕을 감상할 수 있으며 구절양장 경호강을 굽어볼 수 있으며, 가을이 되면 화려하게 물드는 단풍으로 온 산이 불타는 것처럼 보인다. ※산높이 - 1099m * 지곡사 코스 지곡사는 산청읍에서 10분거리이며 산행초임은 지곡사주차장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주차장에서 정상쪽 임도를 따라 5분정도가면 지곡다리가 나오고 계곡으로 들어가면 곰골 쪽으로 가는 곳이고 오른쪽으로 사면은 왕재로 가는 곳이다. 이곳에 가면 정상 1.4km라는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 선녀탕에서 여름시즌이면 1차 식수를 준비하는게 용이 하고 이지곡은 겨울이 면 빙벽을 즐기는 남도 산악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겨울 모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수량에 따라 빙벽형성이 변하기에 많은 애를 태우기도 한다. 본격등산로 초입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선녀탕 오른쪽 사면으로 오르면 되는데 이 지곡 입구에는 조그마한 폭포도 있고 조금만 더가면 다시 폭포가 나온다. 이곳에서 마루금을 쳐다보면 마치 카라코람 산군같은 착각의 연속인데 웅석봉의 높이는 불과 1000m 남짓하지만 이쪽에서 보는 산세는 칼날 능선으로 보여 웅석봉에서 곰이 떨어져 죽은 사연을 이해하게 된다. 쇠줄과 사다리를 몇 군데 지나다보면 오른쪽 능선아래 작은개울에는 사시사철 산삼 섞은 물이 흐르는데 그냥 지나치지말고 목도 축이고 수통도 채우는 것이 용이 주도한 산행이 될 것이다. 산행 초입부터 1시간30분 정도면 왕재에도 착하게 되는데 이곳은 925고지로서 천왕봉, 중봉, 하봉, 황금능선의 구곡봉 등 하늘 마루금의 진수를 느끼게 된다. 왕재에서 휴식을 취한후 정상으로 가는 능선은 지루하지 않고 조망능선의 진가에 취다 보면 남릉이 나오고 이곳에서는 웅석봉이 보이고 경호강의 푸른물이 둔철산을 놀리듯이 감돌아 흐르는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를 다시금 느끼게한다. 조금 더 가다보면 안부가 나오고 바로 헬기장과 연결된다. 헬기장에서 남쪽으로 50m 내려서면 샘이 있고 샘 옆으로 청계방향 임도 길과 연결된다. 헬기장에서 정상은 10분 이면 되고 정상에는 곰을 새긴 정상비가 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산군의 향연은 웅석봉을 오르지 않고는 그 느낌을 표현하고 말하기는 인간의 무력함을 느낄 것이다. 정상에서는 곰골, 어천, 청계 가는 길 등이 나와 있다. * 밤머리재 코스 해발 570m의 밤머리재는 밤나무가 하도 많아 붙여진 지명이며 산행초입부터 계단으로 이루어져있어 계단을 싫어하는 이는 약간 지루한감을 느낄 것이고 이 계단은 웅석봉이 군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산청군청에서 등산로 정비사업일환으로 축조된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연출되는 나리 꽃 향연과 떡갈나무의 생동감을 보면 대자연의 조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북쪽으로 조망되는 왕산, 필봉, 왕등재, 깃대봉, 지리산줄기봉들의 위용을 만끽하게 되면 856봉이 나오며 이 곳에서는 천왕봉, 황금 능선, 산청읍, 경호강의 파라노마 또한 일품 이라고 생각할쯤 되면 왕재 (925m)에 도착되는데 이 곳은 삼거리로서 지곡사코스와 연결되는 곳이다. 조금 지나면 남릉이고 이곳은 웅석봉이 눈 앞에 보이고 남쪽으로 연결되는 분깃점 바로 아래 헬기장이 있으며 여기서 정상은 금방이다.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4.6 Km    19960     2020-02-21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673번길 12-1

단속사 옛터의 금당터 앞에는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는데 그 중 동쪽에 세워진 것이 이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단의 아래층은 ‘ㄴ’자 모양의 돌을 이용해 바닥돌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그 위로 기단을 한층 더 올린 후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쌓은 탑신을 올려놓았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상·하의 비례가 알맞고 위로 오를수록 탑신의 크기가 알맞은 크기로 구성되어 있어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함께 세워져 있는 서탑과 비교할 때 그 규모와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쌍탑의 배치와 더불어 주목되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조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단속사지에는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유명한 화가 솔거(率居)가 그린 유마상(維摩像)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삼층석탑은 신라중기 이후의 전형적인 신라양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기단부(基壇部)가 상·하 2층이며, 하층의 탱주(撑柱)가 2주이고 상층의 탱주가 1주인 점은신라 중대 이후의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동탑은 서탑과 그 규모와 건조(建造)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상·하의 비례가 알맞고 석재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어 보인다.

단속사 정당매

단속사 정당매

4.7 Km    20292     2019-10-28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673번길 12-1
055-970-6000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줄기가 힘차께 뻗어 내려오다가 멈춘 옥녀봉 아래 남향으로 자리한 단속사 절터에는 동.서의 삼층석탑과 주춧돌이 어지러이 놓인 가운데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된 정당매(政堂梅)이다. 인재 강희안(1419~1464)의《양화소록(養花小錄에)》에 보면 우리 선조 통정공께서 소년시절에 지리산 단속사에서 글공부를 하실 때에 손수 매화 한 그루를 뜰 앞에 심어놓고, 시 한 수를 읊었다고 씌여 있다. 여기서 인재가 말하는 선조는 고려 말기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1357~1402)으로 우왕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성과 문하성의 종2품 벼슬)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었다. 그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강희안의 조부가 되며 통정이 소년시절 정당매를 심고 시를 읊었다. 통정집에 기록된 또 하나의 시는 그가 46세로 일생을 마치기 전에 손수 심은 정당매를 찾아와 읊은 시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과 감회를 느끼게 한다. 단속사의 스님들이 공의 재덕(才德)을 생각하고 깨끗한 풍채와 고매한 품격을 사모하여 그 매화를 보면 곧 공을 본 듯 하였다. 해마다 흙으로 뿌리를 다져주고 북돋아 기르기를 때를 맞춰 알맞게 하였다. 그 가지의 모양이 가까스로 굽고 또 푸른 이끼가 나무줄기를 감싼 것이 《매보(梅譜)》에서 말한 고매(古梅)와 다름이 없으니 참으로 영남의 한 고물이라 하겠다. 이로부터 영남에 나랏일로 오는 사람들이 이 고을에 오면 누구든지 단속사를 찾아서 그 매화를 감상하고 우리 선조의 시운에 맞춰 시를 써서 문 위에 걸어놓곤 하였다. 이와 같이 단속사의 스님들은 이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게 되었고, 통정공의 후손들과 영남에 내려오게 된 관리들이 정당매를 찾게 되었다.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통정공이 소년시절 단속사에서 글을 읽을 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가 이 절에서 공부한 시기를 20세 이전의 등과하기 전으로 본다면 대체로 1376년 이전에 식재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수령은 63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로서 근간에서 4본의 지간이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었다.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이다. 3월 20일 전후이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후손들은 이 정당매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웠다. 매각(梅閣)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와 통정공의 매화원운(梅花原韻)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현재 이 정당매는 1982년 11월 10일자로 경상남도의 도나무(고유번호 12~41호)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둔철산

3.4 Km    21003     2019-12-04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범학길

둔철산(해발 811m)은 황매산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정수산을 거쳐 경호강에 산자락을 내리면서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산청읍과 신안면, 신등면 사이에 있으면서 웅석봉과 마주하며 철을 생산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둔철(屯鐵)이라는 지명은 생산보다는 보관했다는 말을 더욱 설득력있게 한다. 신안면 심거마을에서 시작해 깊은골로 해서 둔철산 정상으로 곧장 오르는 코스와 외송리에서 암봉을 거쳐 정상에 가는 코스, 월성초등학교 둔철분교가 있는 둔철에서 정상으로 가는 코스, 척지마을에서 둔철산으로 가는 코스, 신등면 단계에서 정취암을 들머리로 대성산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둔철산으로 가는 종주코스가 있다. 자가용으로 산행을 나섰다면 3번 국도에 있는 외송리에서 시작해 둔철산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심거마을 방향으로 하산, 외송리로 돌아오는 코스가 좋다. 이 코스는 외송리 마을회관 뒷편 과수원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마주보이는 둥그런 능선을 보며 비탈길로 곧장 20여분 오르면 거대한 암봉이 막아선다. 암봉 틈새로 이어진 능선으로 1시간 가량 가면 심거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원점 회귀산행을 하려면 정상에서 되돌아 나와 여기서 심거마을로 하산해 내심거마을을 못 미쳐 왼쪽으로 이어져 있는 오솔길로 접어들면 된다. 이 길은 외송마을에서 올라올때 만났던 암봉 바로 위로 연결된다. 원점 회귀 산행은 오르는데 2시간 30여분, 내려오는데 1시간 30여분 해서 4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은 심거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서 30여분 더 오르면 나온다. 정상에는 진주 교직원 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다. 사방을 둘러보면 먼저 웅석봉 자락이 경호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커다란 곰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웅석봉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수산 넘어 거창으로 이어진 산자락이 끝이 없어 보이고, 그 오른쪽에는 대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연결돼 있다. 둔철산에서 대성산을 가려면 척지마을과 둔철마을로 내려서는 690m 고지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된다. 능선 길이와 대성산의 높이가 둔철산보다 낮음에 따라 산행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지곡사(산청)

4.1 Km    20209     2020-03-27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 396

지곡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이다.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고,고려 광종 대에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다. 최근 지곡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8~9세기 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위와 같은 이야기를 뒷받침하였다. 지곡사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되었다가, 근래 옛 지곡사 산신각 자리에 중창하여 옛 지곡사의 전통을 이어 받아 법등을 밝히고 있다.

* 창건

옛날의 지곡사는 인근인 내리 772-4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應眞)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다고 조선시대 후기에 기록된 『지곡사용화당기(智谷寺龍華堂記)』에 전한다. 또 진관선사오공탑비(眞觀禪師悟空塔碑)에는 고려 광종(光宗) 대에 고승인 진관 석초(眞觀釋超) 스님을 지곡사의 주지로 임명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절을 크게 중창하여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으나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 되었다.

* 연혁

지곡사와 관련된 문헌은 적은 편인데 전성기에는 300여 명의 스님들이 있었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홍예다리를 놓아 오색 무지개가 공중에 걸린 듯 하여 다리를 건너면 티끌세상의 번뇌를 씻을 수 있다고 하여 세진교(洗塵橋)라 하였는데 그 홍교는 흔적만 남아 있는 길가에 세진교비(碑)가 홀로 서서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 스님이 지은 『유산음현지곡사기(遊山陰縣智谷寺記)』에 따르면 지금의 축대 위에는 대웅전이 있었고 왼편에는 약사전 오른편에 극락전이 있었으며 앞에는 큰 누각, 누각 밖에는 천왕문과 금강문이 있었고 회랑과 요사가 좌우로 늘어서 있어 영남의 으뜸가는 사찰로 선객과 시인들이 즐겨 찾던 가람이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음현(山陰縣)』조에는 고려 예부 상서 손몽주(孫夢周)가 쓴 혜월(慧月)과 진관(眞觀)의 두 비(碑)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귀부(龜趺) 2기만 남아있고 다행히 비문은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암 성안(寒巖性眼)과 추파 홍유 스님이 절의 중흥을 도모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 일제의 침략으로 폐사가 되었으며 한암대사비와 추파당대사의 탑비가 절 위쪽 300m 지점에 있다. 옛 지곡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세진교 각자(刻字), 우물 배례석편, 수조 4기, 귀부2기, 물방아 확(수조), 부도, 장대석, 축대 등이 남아 있다. 무상한 세월과 함께 대찰이 폐허로 변했지만 지곡사지에서 멀리 동쪽으로 황매산(黃梅山)을 바라보면 부처님이 누운 와불 모습으로 바라보며 신비감을 더해준다. 지곡사지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지곡사는 1958년에 강덕이(姜德伊) 스님이 중건 했는데 본래의 지곡사 배치와는 무관하게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수월폭포

4.5 Km    28894     2019-12-04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수월로

대나무와 소나무가 언제나 푸름을 뽐내는 수월마을은 선녀가 놀다 간 절경 아래 있는 마을답게 소담스러운 풍경을 하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계류 따라 1km 정도 가면 암벽 깊숙이 감춰져 있는 수월폭포가 보인다. 수량은 많지 않으나 높이 15여 m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의 모습이 여인의 단아한 치마 폭같이 조신해 보인다. 폭포수가 모이는 소(沼) 역시 명주 실타래를 세 개나 풀어도 끝이 닿지 않는다는 말처럼 깊은 데다가 주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해 신비감까지 자아낸다. 특히 폭포를 이루고 있는 바위 위쪽에는 용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승천하면서 물 양쪽 바위를 걸어가며 천천히 하늘로 올랐는데 그 발자국이 이어져 두 줄로 길게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선유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한 전설이다.

목계서원

4.7 Km    1649     2020-05-12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석대로525번길 40-13

1778년(정조 2) 창건되었으며,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1983년에 중수되었다. 현재 편액은 목계정사(牧溪精舍)이고 1동이다. 재실만 있다. 조선 숙종 조에 사림이 김담(金湛)과 이조(李晁)를 두능서원(杜陵書院)에서 봉향하다가 서원이 훼철되자 1778년(정조 2)에 유림들이 목계서원을 지어 다시 봉향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된 것을 1883년(고종 20)에 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3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 서원을 ‘목계정사(牧溪精舍)’로도 부르는 것은 훼철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