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덕산계곡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덕산계곡

0m    44292     2024-01-24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덕산리 772

장수의 팔경 중 하나인 장안산 군립공원 제일 계곡인 덕산은 울창한 원시림과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용이 승천하듯 굽이치며 흐르는 모습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 욕심 때문에 승천하지 못한 어미용과 아들용이 살았다는 윗용소, 아랫용소, 민들바위, 용바위, 신선바위, 정승바위 등 20여 개의 기암과 은골, 절골, 감골 등 헤아릴 수 없는 골짜기와 맑은 물은 이곳을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선정되게 하였다. 장수읍에서 논개 사당 뒤로 6km쯤 가파른 덕산고개를 넘어가면 몇 채의 집이 있는 덕산마을이 나오는데, 영화 남부군에서 6.25 때 회문산에서 철수한 전북도당이 덕유산에서 이현상부대인 남부군과 합류한 후 빨치산 오백 명이 1년 만에 처음으로 옷을 벗고 목욕하는 인상적인 장면의 배경이 바로 덕산계곡이다. 방화동자연휴양림에서 덕산계곡까지 방화동 생태길로 연계되어 있어 천연 황토 산책로와 휴게데크에서 산림욕 및 황토걷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와룡자연휴양림

10.1 Km    50804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비룡로 (632, 와룡자연휴양림)

와룡자연휴양림은 1996년 6월에 개장한 삼림 휴양공원으로서 삼림욕과 자연관찰, 학습탐방, 그리고 가족단위 휴양이나 단체 수련 등을 위해 제몫을 톡톡히 하는 장수군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일일 수용인원은 약 1,200명 정도이며 연중무휴로 개방한다. 시설물로는 야영객을 위한 야영장과 야영데크 및 평상, 그리고 일반/단체 방문객들을 위한 연수의 집, 복합 산막, 숲속의 집 등 각종 시설과 숙사를 갖추어 놓았다. 아이들을 위한 사계절 눈썰매/물썰매장, 야외수영장과 천연 물놀이장 등의 시설도 구비해 놓고 있다. 휴양림으로서 자연학습장과 체련단련장 등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으며, 단체객들을 위한 야외무대도 마련되어 있는 종합적인 숲속 휴양공간이자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다.

화산사

10.8 Km    1612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남면 화산길 24-21

화산사는 1961년 창건되어 박수기·박상·김정·박지견·박순·박지효 등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이들은 모두 조선 중기 이전의 문신과 유학자들로서 성품이 곧고 절의가 빼어난 분들이다. 이곳은 충주 박씨 문중 사당으로, 박상과 뜻을 같이 했던 김정을 함께 제향하고 있다. 이 사당은 화산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능선의 서쪽 사면에 있다. 진덕문을 들어서면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절개와 의리, 우국충절을 보인 선현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61년 화산사를 창건했다. 주위에 둘러볼 곳은 김해김씨효열비, 충주박씨기행비, 장수미술관 등이 있다.

장수 논개생가마을 [농촌전통테마]

장수 논개생가마을 [농촌전통테마]

10.9 Km    2312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논개생가길 21-5

논개생가마을은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한 주논개가 태어난 마을로서 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옛적 마을은 대곡제 저수지 축조로 수몰되고 2000년에 조부가 살던 곳에 논개 생가지 확장 정화사업으로 20,000평이 조성되며 수몰되었던 생가마을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부지에는 의랑루, 단아정, 연못, 논개동상, 논개부모묘, 기념비, 시비, 논개생장지사적불망비, 최경회현감선덕추모비, 그리고 논개의 초가집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생가 복원의 맥을 이으며 마을 전체를 민속마을로 가꾸고 있다. 마을입구에는 주논개를 낳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성황당이 마을의 지킴이로 남아있고, 매년 정초가 되면 노송 앞에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지금은 호수로 변한 주논개의 생가터에는 부친에게 조석으로 정화수를 떠다 드려 해수병을 낳게 했다는 약수천이 남아 있다. 주변여행지로는 생가지와 인접한 논개생가체험마을(주촌민속마을)과 한옥숙박단지, 힐링산책로, 도깨비전시관이 있는 대곡관광지가 있다.

원흥사(장수)

원흥사(장수)

11.0 Km    1814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백제 무왕 때 창건한 팔성사의 일곱 암자 중의 하나이며, 고려 중기에 창건되어 조선 초기에 폐허화되었다고 한다. 절의 폐허 후에도 이곳에는 높이 4m, 둘레 3m의 거대한 미륵입상이 남아 있었다. 노천에 있던 이 불상은 1904년에 원흥 마을에 살았던 이 처사 부부가 현몽한 뒤 불당을 지어 봉안하였다. 그 뒤 부인은 출가하여 운선이라는 법명을 얻어 원흥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딸 청신과 손자 김귀수가 그 뜻을 이어받아 현재의 원흥사를 이룩하였다. 원흥사의 문화재인 원흥석불입상은 몸에 비해 얼굴이 크고, 눈과 입은 작고, 코가 크며 귀는 길다. 목은 매우 짧고 양손을 가지런히 배에 대고 옷소매에 넣어 감추고 있다. 본래 머리 위에 관을 쓰고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불상은 크기와 비례, 조각수법 및 형태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법당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높이는 4m의 원흥석불입상이 있다. 사찰 주변으로 어필각, 압계서원, 호룡보루 등 연계 방문할 만한 문화유적지가 위치해 있다.

원흥석불입상

11.0 Km    1519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장수군 산서면 마하리 팔공산 기슭에 있는 원흥사 법당 안에 있는 높이 4m의 거대한 석불 입상이다. 원래 노천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04년 이 마을에 살던 이처사 부부가 꿈을 꾼 뒤 불상을 만들어 모셨으며, 그 뒤 딸 청신과 손자 김귀수가 현재의 원흥사를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살찐 모습이며 눈과 입이 작은 편이나 코는 큰 편이다. 목은 매우 짧게 표현되었으며 3개의 주름인 삼도는 분명하지 않다. 신체는 어깨와 하부의 너비가 같아 둔한 느낌을 준다. 양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는데 가슴이 거의 노출되었고, 양 소매와 배 아래로는 형식적인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손은 양 소매에 넣어 감추고 있으며, 무릎 이하는 땅속에 묻혀 있다. 머리 위에 모자가 얹혀 있었다 하는 이 불상은 손 모양이 특이하며 전체적인 조각 기법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논개생가

논개생가

11.0 Km    27964     2024-01-24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의암로 558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논개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논개는 선조 7년에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 주달문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위태롭자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진하여 기적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와 부군 최경회의 원수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 순절한 의암 주논개의 충절 정신을 기리고자 20,000여 평의 부지에 50억 원을 투자한 논개생가 복원사업이 2000년 9월 완료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논개생가 주변에는 생가뿐 아니라 논개기념관과 단아정, 의랑루 등의 건물과 주논개비, 최경회비, 주논개부모묘 등이 있고 민속놀이마당과 인공폭포등이 조성되어 있다. 논개생가가 있는 지역은 덕유산, 오동제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장안산 군립공원과 지지계곡, 동화댐을 연계한 등산 코스가 열려있어 논개생가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으며, 연중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의사전해산 추모비

11.1 Km    2030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성암길 92

의사전해산추모비는 전해산 호남의병장의 애국정신을 고양하기 위하여 장수군 향교유림들이 1972년 11월 17일 번암초등학교 앞에 건립하였다. 이후 2014년 6월 16일에 전해산기념관이 준공되면서 의사전해산 추모비는 이전되었다. 전해산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분기하여 해산한 군인과 포수들을 모아 의병부대인 대동 의병단을 조직했다. 이후 심남일, 김영엽, 오성술 등과 호남 의병의 연합조직을 결성하였으며 1908년 겨울 호남동의단을 탄생시켰고 대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전라도에서 활동하던 11개 의병부대가 참여한 큰 규모의 부대였다. 순창, 고창, 정읍 함평, 영광 등 전남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였고 71회 전투에서 수 백 명의 일본군을 살상하였다. 일시 귀향 중 왜병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910년 7월 19일 31세의 나이로 옥사하였으며, 그 해 9월 8일 시신이 번암면 원촌마을 생가로 운구되자 부인 김해김씨도 자결했다. 전해산기념관에는 추모비는 물론 전해상 의병장의 영정을 모시는 산해재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상이암(임실)

11.1 Km    2189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길 658

상이암은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이다. 이 사찰에서는 왕이 되리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백일기도를 끝내고 못에서 목욕을 하던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하늘로부터 용이 내려와 몸을 씻어주고 승천하면서 ‘성수만세(聖壽萬歲)’라 했다고 한다. 이곳의 산이름이 성수산인 것에 거기에서 유래된 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니 하늘에서부터 “앞으로 왕이 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렇게 성수산 상이암은 고려와 조선의 태조가 왕이 될 것을 예언하는 소리를 들었기에 산 이름과 절 이름을 얻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태조 이성계와 인연이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절 입구에 태조 이성계가 쓴 “삼청동(三淸洞)”이라 새긴 비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일 기도를 드렸으나 별다른 감응이 없자 이곳에서 3일을 더 맑은 계곡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려 비로소 관음보살의 계시를 얻게 되었다. 이 비석은 그것을 기념하여 자연석에 새긴 것이라 한다. 이처럼 나라를 세우려는 인간의 큰 뜻도 부처님의 가피력이 있어야만 실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상이암에서 또한 옛날과 다르지만 이러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공부를 많이 한 주지스님이 계셔서 보살과 처사들의 인연에 맞추어 부처님의 진리를 쉽게 설명해주시곤 한다.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상이암의 규모에 걸맞게 여러 전각도 새로 지었을 뿐만 아니라 오고가는 나그네에게조차 부처님의 존재를 각인시켜주는 곳이 상이암이다.

이임간유허비

11.2 Km    1566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월곡리

이임간유허비의 유허비란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세가 세운 비를 말한다. 장수이씨의 시조 이임간(1262~1327)의 호는 이헌, 본관은 장천으로 고려 충선왕 때 사람으로 당시 문하시중병장사를 역임하고, 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대학자 익재 이제현의 5촌 당숙이었고, 고려 말기의 무신 이을진의 증조할아버지이며, 이씨조선세종대왕 때 대마도와 왜구를 토벌한 이종무의 고조할아버지로 다른 이름은 이직간이다. 이임간은 고려조에 장천부원군(전라북도 장수의 옛 이름)에 봉작되었고, 그의 증손자 이종무의 훈공으로 손자 이을진 역시 장천부원군에 추증되어 습봉하였다. 이 비는 1987년 그의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천천면 월곡리 국도변에 있다. 장수이씨의 시조 이임간은 이알평(경주이씨의 시조)의 51 세손이며, 그의 손자 이을진은 공민왕 때 정승을 지냈고 순충적덕보조공신에 책록 되어 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로써 후손들은 장수(장천의 현 지명)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