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대왕 태실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태조대왕 태실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태조대왕 태실

태조대왕 태실

12.9 Km    19257     2020-02-11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태조대왕 태실은 조선조 제 1대 왕인 태조 이성계의 태(胎)를 봉안한 석실이다.조선 태조 5년에 건축 되었으며 태조 이성계의 태를 처음에는 함경도 본궁의 용연(龍淵)에 안치하였다가 무학대사의 지시로 금산군 추부면 만인산에 옮겨 안치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1928년 조선 총독부에서 태 항아리를 창경원으로 옮겨간 후 석비와 석조물만이 남아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 및 산재되어 있었으나, 1993년 현 위치인 추부면 마전리 산 1-66번지에 복원하였다.태실은 팔각형으로 돌 난간을 두른 정역(淨域)을 만들고, 그안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태실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앞에는 구부(龜趺) 위에 태실비가 있으며, 전면에는 '태조대왕 태실'이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태를 봉안한 후 만인산을 태봉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금산군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에 태실공원이 포함되어 2001년에 아름다운 주민의 쉼터로 조성되었으며 예쁘게 가꾸어 조성한 현 부지는 마전리 송영근(宋英根)씨가 금산군에 기탁한 임야로 자활근로사업과 공공근로사업으로 조성하였으며 1억 5천만 원의 예산 절용 효과를 보았으며 지금은 매일 많은 주민들의 산책과 휴식처로 각광을 받으며 아름다운 자생식물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 태실: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두는 작은 돌방

개삼터·개삼각

개삼터·개삼각

13.0 Km    23587     2020-02-12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개삼로 101

* 금산인삼이 처음 재배된 곳, 개삼터 *

충남 금산군 금산읍 남이면 개삼로 산자락에 개삼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개삼터는 금산에서 최초로 인삼을 심은 곳이다. 고려인삼의 종주지이며, 유통의 중심지이자 인삼의 고장인 금산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설에 따르면 금산인삼이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진악산 아래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눕자 관음굴에서 지성으로 기도하던 중 산신령이 나타나 “관앙불봉 바위벽에 가면 붉은 열매가 3개 달린 풀이 있다. 그 뿌리를 달여 어머니에게 드리면 병이 곧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산신령이 알려준 풀뿌리를 달여 드리니 어머니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강 처사는 풀의 씨앗을 받아 성곡리 개안마을의 밭에 뿌렸는데, 그 뿌리 모양이 사람 비슷해서 인삼이라고 불렀다. 개삼터에는 산신령이 강 처사에게 인삼을 내리는 그림이 있는 개삼각과 강 처사의 집이 있다. 강 처사가 인삼을 얻어 재배하기까지의 과정을 모형으로 재현해놓았다.

금산향교

금산향교

13.0 Km    17767     2020-02-12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비단로 298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백학동(白鶴洞:현재의 下玉里)에 건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 수 없고 1684년(숙종 10) 현 위치에 재건립하였으며 1967년에 명륜당과 부속건물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명륜당(明倫堂)·동무·서무·내삼문·외삼문·동재(東齋)·서재(西齋)·교직실·제기고·창고 등이 있다. 대성전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국의 5성 2현과 한국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유림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나 조선 말기 교육제도가 바뀜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으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 또한 향교에 소장된 판본 45종 171책과 사본 13종 17책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온양이씨어필각

온양이씨어필각

13.0 Km    18234     2020-02-12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어필각로 412

금성면 하신리는 원래 온양 이씨의 세거지로서 이씨문중에 5세 3효가 있는데 고사인 이태귀와 그의 증손 홍엽, 현손 원배로 효행이 탁월하므로 1924년 당시 유림의 천장으로 마침내 순종 황제까지 알게 되어 당대에 장한 일이라 칭찬하시고 이듬해 3월에 온양이씨계효지비(溫陽李氏繼孝之碑)라는 여덟자의 어필(御筆)을 하사하시게되자 지방유림과 온양이씨 후손들이 합심하여 어필비를 세우는 한편, 비각을 봉건하게 되었다.또한 3효문에 대한 정각을 세운 바 있는데 의친왕이 온양이씨삼효문(溫陽李氏三孝門)이라는 친필을 하사했고,1926년 봄 순종황제 승하시에 본손 원배공은 지방 유림과 함께 임금님께 은혜의 보답으로 전각을 봉건키로 했다는 뜻을 전해듣고 숭봉전(崇奉殿)이라는 친필액자를 하사하였다. 1943년 5월경 일본인인 금산경찰서장(石川道夫)이 승봉전에 침입, 어영은 물론 제기 및 각종 문헌을 약탈, 숭봉전을 철폐시키는 비운을 겪었다.현재는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 소유자 및 관리자: 이현수

금산 대원정사

금산 대원정사

13.1 Km    23515     2020-02-12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비범3길 17

대원정사는 원래 하신리 온양 이씨 어필각(溫陽李氏 御筆閣) 인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현재의 위치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가 1982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내부에 우물마루를 깔고 중앙의 뒤칸에 불단을 조성한 후, 신안사(身安寺)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지는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을 봉안하고 있다. 정면 3칸에 달려 있는 창호(窓戶) 중 특히 중앙칸의 창호는 정교한 쌍여닫이 연꽃살문으로 처리하여 많은 정성을 들인 것이다. 건물 구조는 길게 다듬은 돌로 된 기단(基壇) 위에 높이 93cm의 초석(礎石)을 놓고 짧은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이 주춧돌의 모양이나 재질로 보아 창건 당시의 것이 아니고 옮겨 지을 때 기둥 아래 부분의 부패 방지를 위하여 교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금산 칠백의총

금산 칠백의총

13.1 Km    23940     2020-08-28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공지사항
※ 내용 : 임시휴관 (2020.08.23 ~ 별도 안내 시까지)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행정보 변동사항 확인하기

이곳은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 의사의 묘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 25년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18일에는 호남 순찰사인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그 후 선조 36년(1603)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1647)에는 사당 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현종 4년(1663), 이 사당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왔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횡당촌 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 선생과 무명의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여 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 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게 하고 있다.

이 비각에는 중봉 조헌선생 일군 순의비의 파비가 보존되어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승장영규대사를 따라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 행적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 일본인 이씨까와 미찌오에 의하여 이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두었다가 8.15 해방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중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서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한 것이다.

* 문화재청 주관으로 매년 9월 23일 15시 제향 행사실시(칠백의총 관리소 주최)

* 주요 소장 문화재
1) 보물 제1007호(6종 7점) - 조천일기, 제문 2점, 선조대왕 교서,중봉선생 교지(조헌 문과급제 교지),전통(화살통), (조헌의병장 제수교서), 조헌 문묘배향 교서
2) 기타 유물 (8점) - 중봉전집, 항의신편 및 목각판, 심원록, 정기록,마상격문, 창살, 세독충정, 제봉문집

한국의 명약, 인삼을 즐기다

한국의 명약, 인삼을 즐기다

13.1 Km    2462     2016-09-27

금산은 인삼의 고장이다. 질 좋은 인삼을 비교하며 구매할 수 있는 금산인삼약초시장을 둘러보고 인삼 향이 진하게 우러난 삼계탕도 맛보자. 금산홍도인삼마을은 직접 인삼을 캐보고 병에 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다. 인삼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도 맛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1만5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700명의 의병이 묻힌 칠백의총도 함께 돌아보자.

만인산푸른학습원

만인산푸른학습원

13.2 Km    126815     2019-06-26

대전광역시 동구 산내로 106

* 숲에서의 자연 체험, 만인산푸른학습원 *
만인산 자연휴양림은 1997년 개장하였고, 구역면적은 183만㎡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민간위탁 운영하였으나, 시민들에게 질적 서비스 확대와 노후된 시설물 보완을 위하여 2015년 부터 대전광역시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만인산푸른학습원에는 새, 물고기, 곤충등 동물 표본을 전시한 표본관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운석 등을 전시한 화석관, 실제크기의 공룡을 전시한 공룡관, 선사시대 조상들의 생활상을 연출하고 유물들을 전시한 선사시대관이 있는 자연학습전시관과 무궁한 우주를 탐함할 수 있는 천문대, 목재체험장, 학습농장, 모험놀이시설, 산림욕장 등이 있는 휴양림시설 이외에도 운동장, 대강당, 강의실 등 단체방문객들이 이용하기 좋은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금산장 (2, 7일)

금산장 (2, 7일)

13.2 Km    13732     2020-10-14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건삼전길 11
041-754-2376

금산은 1500여 년전 백제시대부터 인삼을 재배하여 온 유서 깊은 인삼의 고장이다. 인삼은 금산인들의 모든 것이었으며 백제시대부터 기업을 이어온 전통적인 산업이었다. 따라서 금산장은 인삼을 중심으로 서고 있으며 전국에서 생산된 인삼의 80%이상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시골장은 5일 간격으로 형성되나, 인삼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5일장의 개념은 무너져 매일 인삼시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금산에 오면 언제든지 인삼과 약초를 산지가격으로 구입할 수가 있어 금산장은 항상 성황을 이룬다. 금산시장은 크게 다섯개로 나누어지는데 오래전부터 거래되었던 구 시장과 무주구천동으로 가는 길어귀에 있는 국제인삼시장과 쇼핑센타, 그리고 그 옆에 터센터와 인삼약초시장이다.금산은 국내 최대의 인삼약초시장으로 인삼약초 관련업체가 1192개소나 되며 금산읍에 들어서면 인삼약초 향기로 인하여 한약방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금산 무주 진안등의 산악지방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약초들을 만날 수 있으며 시골장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만인산식당

12.7 Km    6     2020-01-23

대전광역시 동구 산내로 111
042-274-0700

(정보제공자: 대전광역시청)

영천암(금산)

13.0 Km    20750     2020-10-19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1길 148

영천암은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악산(進樂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보석사(寶石寺)의 산내 암자이다. 진악산 산자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차량에 의한 진입이 그리 용이한 사찰이 아니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계획하고서 영천암을 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악산에 있는 명찰 보석사 주위에는 전나무 숲이 펼쳐져있어 산림욕에 적합하며 또한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된 1,100여 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위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뛰어난 자연풍광과 더불어 영천암이 위치하고 있다. 이런 명산인 관계로 진악산을 통과하는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고 이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다. 영천암은 보석사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영천암은 사내에 위치한 영천(靈泉)으로 유명한 암자이다. 이 영천암 샘물은 지금부터 1500여년전 극심한 가뭄으로 모든 물이 말라 온 산하가 타들어갈 때 이곳에서 수도하던 노승이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에 감응했는지 산이 갈라지고 하나의 물줄기가 나타나더니 이내 물이 펑펑 쏟아지며 가뭄을 말끔히 해갈시켜 주었다한다. 또한 이 영천은 병을 낮게 하는 영험함이 있어 많은 병자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전한다. 영천암이 보석사의 산내암자이나 근래에는 오랜 동안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단지 이 영천을 찾아오는 관광객만이 이곳을 가끔 지나쳐가곤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보석사의 스님이 이곳에 주석하기 시작했으며 산내암자로서 또한 스님들의 수행처로 다시 거듭났다. 스님들이 다시 거주하면서 1999년 기존의 무량수각을 수리했다. 무량수각 수리 시에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786년(건륭51)에 화주승 법성 등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법당의 형식은 암자에 적합한 형태로 되어 있는데 요사와 더불어 법당이 하나의 건물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건축물은 조선시대 무수히 많이 지어졌을 것이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남아있는 수가 극히 적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건축물로 해인사 홍제암을 들 수 있다. 홍제암은 그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최근 보물 제1300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영천암의 무량수전 역시 건축적으로 매우 뛰어난 수작임에 분명하다

금산다락원

13.1 Km    20144     2020-10-13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금산로 1559

복합다기능 문화복지체육센터인 금산다락원은 생명의집(문예회관), 건강의집(보건소), 활력의집(금산스포츠센터), 만남의집(관리동), 문화의집(문화원), 장애인-청소년의집, 노인의집, 여성의집, 농민의집, 인삼고을도서관, 기적의도서관, 청산회관, 청산아트홀, 충효예광장, 금산향토관 등 각 분야별로 시설을 찾기 쉽고, 이용하기 편리하게 설립되어 있다.

* 개관일 : 2004년 10월 29일